어느덧 사쿠라자카 중학교의 장대한……취소. 허름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
했다. 창문 중 제대로 달려있는 건 절반이 채 안 되고, 교문에 당당하게 서
있는 석상은 목과 왼팔이 달려있지 않았다. 나를 이런 60년대 학교에 진학
시키려고 아버지란 놈이 초등학생 때부터 자취생활을 시켰다는 거다. 이런
데 부모라는 작자들에게 투정이 생기지 않겠는가?
"나같이 여린 미소년을 혼자서 생활하게 하면서 자기들은 시즈나이에서
'아잉~ 이러시면 안 돼요.' '후후, 왜 그래? 좋으면서~'라고 깨를 쏟으
며 살고 있다는 거지. 이런 게 아동 학대의 좋은 예가 아니겠어?"
"뭐, 마이토 형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 하지만 마이토 형은 그
런 느끼한 대사를 할 위인이 못 돼. 그냥 쭈뼛쭈뼛 다가가서 '오늘은…
…?' 이런 간접적인 물음을 할 게 분명해. 안 그래, 에이?"
"너무 마이토 오빠를 야하게 보는 거 아냐? ……뭐, 그런 생각들을 한
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대화의 주제는 뺑소니에서 내 양아버지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그러고 보니 에이는 몇 반이었지? 우리랑 다르잖아."
카즈토의 물음에 에이는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4반이야. 미즈네도 카즈토랑 같지?"
"응, 2반이야. 에이만 반이 다르네."
"치……. 모두 다 같았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이건 에이의 괴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나는 힘 안 세!"
우드드득.
"그대의 주먹은 아프로디테의 미소와도 바꿀 수 없으며, 그대의 두 발
은 엘도라도로 가는 방법을 말한다 해도 감히 만질 수 조차 없을 겁니
다. 오! 나의 여신, 나의 마리아여."
"……왜 하필 주먹과 발이야?"
"엇, 설마 모르는 거야? 홋카이도 여성의 48.23%가 자신의 주먹과 발을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대."
"그, 그래? 그러면 좋지만. 아하하!"
아아, 여기 또 폭력 아래 무릎을 꿇은 간사한 남자가 있구려. 나는 그에
게 비릿한 미소를 지어주었고, 그 또한 페미니즘 짙은 미소를 지었다. 여왕
페하 만세! 타이거 킥 만세! 이두박근에 찬양을!
……그런데 왜 이리도 우울해지는 거지?
"그럼 쉬는 시간에 보자!"
그리고 에이는 손을 흔들며 자신의 반으로 달려갔다. 에이의 모습이 완전
히 사라지고 나서야 우리는 반으로 들어갔다.
안은 이미 몇몇 그룹들에 의해 시장 바구니처럼 시끌벅적했다. 물론 그 구
석에선 혼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남자A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남자B
같은 고독한 늑대들도 있긴 하였다. 아아, 그런 소극적인 태도로는 이 경쟁
사회를 살아가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저러한 모습들을 방관하기엔 순수하고
풋풋하며 덧붙여 미소년인 이 몸은 너무 선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걸
어주기로 하고 먼저 남자A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고독에 몸부림치는 남자A
답게 우울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나는 슬그머니 녀석의
등 뒤로 다가갔다.
"야, 같이 놀……."
순간 녀석의 휴대폰 액정 화면에 쓰여져 있는 짧은 문장.
- 제발 좀 떨어져! 너 없어도 나는 여자가 일곱이나 있다고.
"뭐?"
"아, 아냐. 하던 일 열심히 해. 하하. 하하하!"
나는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어주며 뒷걸음질쳤다.
"그냥 평범한 애를 골라."
"그,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카즈토의 속삭임에 나는 투덜거리며 정상적인 상대를 물색했다. 좋아, 이
번엔 남자B다! 나는 바깥만 쳐다보고 있는 남자B의 어깨에 손을 갖다댔다.
"야, 같이 놀……."
순간 나를 돌아보는 녀석의 얼굴에 가득한 흉터와 문신들.
"뭐?"
"아, 아냐. 하던 일 열심히 해. 하하. 하하하!"
나는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어주며 뒷걸음질쳤다.
"평범한 애, 평범한 애."
"……포기하지."
카즈토의 속삭임에 나는 힘없이 웃었다.
"뭐, 친구를 사귀고 싶은 내 맘은 잘 알겠지만, 요즘은 남자든 여자든
다 소극적이라서 말이야. 먼저 다가가는 것이든, 받아들이는 것이든.
다 무서워하거든."
"쳇, 별의별 것을 다 무서워하는 군."
카즈토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히아카는 안 그래?"
"나 같은 미소년이야 어차피 사람들이 다가오게 돼 있어. 이미 전국 곳
곳엔 히아카 추종 연대가 124개나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몰라?"
그렇게 농담을 했지만 녀석은 여전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
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내 안의 무언가를 꿰뚫고 있는 것 같았고,
괜스레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카즈토. 내가 무슨 대답을 하길 원하는 거야? 그래, 나는 거짓말을 하
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될까? 응?"
최대한 화를 억눌렀지만, 말투에서 새어나오는 차가움만큼은 어쩔 수 없었
다. 그제야 카즈토도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단지……."
"그럼 이쯤에서 멈추자. 더 이상 하면 좋지 않을 거 같아."
"응……."
카즈토는 힘없이 말했고 그런 모습을 보니 내가 한 말에 내 자신이 당황하
고 말았다.
"그, 그러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 내 말은 그저 히아카
라는 미소년을 정육점 주인의 이미지로 만들지 말라는 것뿐이야."
내가 부끄러움을 달래며 조그맣게 말하자 카즈토의 미소가 엷지만, 부드럽
게 변했다.
"……히아카는 착하구나."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다, 당연한 소리 하지 마. 이 몸이 착한 건 히아카가 알고 저기 교실
문에 서 있는 미소녀가 아는 일이라고."
내가 허둥지둥되며 대충 말을 늘어놓을 터였다.
"아, 미즈네! 늦었구나."
응? 카즈토가 손을 흔드는 곳을 보자 아까 전 교실 문에 서 있는 미소녀가
마주 손을 흔들며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소녀가 이 쪽으로 가까이 올
수록 남자들의 시선이 갑자기 소녀와 우리에게로 향했다. 몇몇은 소녀에게
보내는 탐욕의 눈초리, 몇몇은 우리를 향한 질투의 눈초리. 그 강렬한 카오
스 에너지는 연약한 미소년에게 현기증을 주기에 충분했다.
"카, 카즈토. 너는 저 시뻘건 동태 눈깔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거냐?"
"아, 나는 익숙하니까."
그러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카즈토를 창밖으로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
다. 내 살인계획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즈토는 그저 소녀에게 인사를 건네
었다.
"좋은 아침이야, 미즈네."
"좋은 아침이예요, 카즈토 군."
"……조조존댓말이라니! 이게 무슨 쪽팔린 짓인가, 미소녀!"
"아, 카즈토 군의 친구 분 되시나요?"
"부, 부, 부우운!"
"오버하지 마, 히아카."
존댓말 쓰는 동급생도 신기하지만, 그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기는 이
녀석이 더 무섭다.
"……이 자식, 이 소녀에게 도대체 어떤 부끄러운 훈련을 시킨 거냐!"
"이, 이상한 소리하지 마! 미즈네는 원래부터 이랬다고."
그렇게 서로 투덜대고 있는데 옆에서 소녀가 헛기침을 하였고, 자연히 우
리의 시선은 그녀에게 향했다. 그제야 그녀도 다시 방긋 웃더니 나에게 몸
을 돌렸다.
"카즈토 군의 친구라면 저의 친구이기도 해요. 카즈토 군이 선택한 만
큼 좋은 분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 서로 통성명을 밝히는 게 좋
겠죠?"
"아, 그래. 내가 착하긴 하지……가 아니라 그러니까 이름이……미츠네
였던가?"
내 재미 없는 농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말
했다.
"미츠네가 아니라 카와하라 미즈네라고 합니다. 카와하라나 미즈네라고
부르시면 되요."
"내 이름은 사쿠라이 히아카. 그냥 히아카라고 불러."
"그럼 히아카 군이라고 불러요, 아니면 히아카 님이라고 부르나요?
"님……이 아니라 군."
순간 옆구리를 가격하는 수도에 나는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옆구리를 부
여잡으며 나는 카즈토를 노려보았지만 저 뻔뻔한 남자는 휘파람까지 불어대
며 내 살기어린 눈빛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 때, 미즈네가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다 갑자기 쿡쿡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왜 웃어? 저쪽에 히아카라는 미소년 사진이라도 붙여있어?"
그리고 고개를 돌려 미즈네가 보고 있던 것을 보았다. 거기엔 '적당히 살
지 마'라는 마이토 놈이 자주 떠들어대던 문장이 쓰여 있었다.
"엇? 하하하! 저거 떼지 않았네? 설마 진짜로 급훈으로 만든 건 아니겠
지?"
"그랬다면 우리 계획이 성공한 거네요."
그리고 카즈토와 미즈네는 웃음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저 글자에 대한 정보
가 없는 나는 자연스럽게 소외되기 시작했다. 안 돼! 이런 분위기로 나갔다
간 교내 이지메, 전교 이지메, 국가 위험등급 A판정을 받게 되고 결국엔 사
회 미아가 되 버리고 말거야!
"그런데……. 저거 보고 왜 웃는 거야? 그냥 내 양아버지 놈이 자주 외
치던 말일 뿐인데."
그렇게 마이토를 지칭하자마자, 녀석들은 더욱 웃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잠시 후 미즈네가 웃음을 간신히 멈추고 입을 열었다.
"거두절미해서 말하자면 저 교훈은 마이토 오라버니가 붙인 거랍니다."
미즈네가 말한 '마이토'라는 이름에서 나는 대략적인 사건의 전말을 파악
할 수 있었다. 역시 무서운 놈이었던 것이다(부들부들). 곧 카즈토가 자세
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2년 전, 마이토 형이 시즈나이로 떠나기 전 '너희의 중학교 생활을 장
미꽃의 화단을 밟으며, 산딸기주를 마시는 부르주아의 러브스테이지로
만들기 위해 이 한 몸 희생해주지.'라고 그 당시 자신이 얼마나 심심한
지를 표현하고, 종이를 여러 개 복사해가지고 우리를 데리고 밤에 몰래
들어와서 각 교실마다 붙였지."
"가, 각 교실? ……설마 다른 교실도 저렇다는 거냐!"
"아, 다 그렇지는 않아. 2, 3학년 교실만 모두 끝마치고 1학년 교실도
중반 정도 끝낸 무렵에 숙직 교사한테 걸린 거지."
이어서 미즈네가 이어 말하였다.
"하지만 저희도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죠. 밑에서 저와 에이가
이불을 가지고 에어 매트를 만들어놓았거든요. 카즈토 군과 마이토 오
라버니가 달밤을 배경으로 멋지게 뛰어내리는 모습은 아직도 잊지 못할
거예요."
"……멋지게?"
"예, 공중에서 둘이 멋지게 엉켜서 무한궤도를 그리며 공중에서 팔랑팔
랑거렸답니다. 다행히 카즈토 군은 안전히 떨어졌지만, 마이토 오라버
니는 발이 땅바닥에 부딪혔죠. 그렇게 다리를 절룩이시면서도, 멋지게
탈출에 성공하셨답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예요."
"하지만 다음날, 모든 죄를 나에게 떠넘기고 시즈나이로 줄행랑을 쳐버
렸고, 덕택에 나는 중학교 교사들로부터 일주일간 쫓기는 신세가 되버
렸지. 정말 주도면밀한 사람이라니까."
"……너희는 그런 말할 자격 없어!"
그 때, 스피커에서 기계음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그럼 쉬는 시간에 보자고."
그리고 카즈토는 내 어깨를 토닥이고 자기 자리로 향했고, 나도 내 자리로
이동했다. 내 자리의 이점은 창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었고, 그것을 만 배
활용하기 위해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춘곤증에 빠지려고 할 때였다.
첫댓글 흐음... 글마다 한줄이나 두줄 정도의 여백을 만들어 주시면 읽기가 편할거 같네요;;
지금까지 제가 읽었던 글들 중에 줄마다 여백둔 거 본 적이 없는데;; 뭐, 그래도 다음부터는 여백 만들겠습니다.
재미있어요~ ^^ 줄은 지금처럼 문단이 자주 나뉘니 보기 편한데요. 너무 줄마다 벌려도 정신사나워서 더 보기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