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실상 전국 최다 득표를 얻다.
재선의 고지를 넘기가 처음 국회에 입성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이완구 의원은 당선 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재선을 위한 계획은 특별한 것이 있을 수 없었다.
단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의정활동과 지역구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뿐이었다.
충청권에서 신한국당으로 유일하게 당선된 이완구 의원은 당시 이홍구 대표비서실장에 전격 발탁된다.
홍성.청양발전에 있어 이완구 의원의 대표비서실장 발탁은 큰 행운이었다.
홍성의료원 현대화, 홍성,청양우회도로, 코오롱 공단 유치등 굵직한 사업들은 대부분 이때 성사가 됐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국회와 당에서 열심히 일하고 주말만 되면 어김없이 지역구를 내려가 활동하는 것이 생활화 되다보니 당직자들은 물론 기자들까지 이완구 의원은 못말리는 의원으로 아예 정평이 날 정도였다.
당선 후인 96년 5월 포텐샤 승용차를 구입한 이완구 의원은 99년 7월까지 38개월 동안 지구 여섯바퀴 이상 거리인 25만 Km를 달리고 새차로 바꿔야 할 정도로 달렸던 것이다.
이때 청양.홍성 515개 마을에서 각 마을별로 3회 이상씩 의정보고를 했다.
당선만 되면 코빼기를 보이지 않을거라고 비아냥 거렸던 시골 아주머니들 조차 이완구 의원은 다른 의원과 틀리다면서 초봄 양지녘에서 눈녹아 내리듯 아주머니들의 마음이 하나하나 녹아 내리고 있었다.
98년들어 이완구 의원은 중대한 기로에 놓이게 된다. DJP정권 출범에 따라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국무총리에 임명됐으나 국회동의를 받지 못해 6개월여 동안 서리 딱지를 떼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너무 심하다는 국민들의 여론과 함께 특히 충청권은 더 했다, 홍성.청양에 내려갈 때 마다 대다수 군민들은 자민련에 입당하여 김종필 총리가 국회동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아우성이었다.
군민들로부터 이같은 요구에 세뇌가 되다시피한 이완구 의원은 홍성의 마온월드라는 예식장에 주요당직자 1천여명을 모이도록 했다.
그리고 자민련 입당에 대해 허심탄회한 토론 후 찬반 비밀투표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결과는 자민련 입당에 대한 찬성이 94%였다.
기존의 탄탄한 조직과 늘 걸림돌이었던 자민련 바람을 우군으로 끌어들여 순풍에 돛을 단 형국이 되자 재선의 고지를 넘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조부영 대한주택공사 사장이 공천경쟁에 뛰어들어 공천경쟁이란 1부능선을 넘는 것이 약간의 걸림돌이었으나 그리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그러나 99년12월 31일 국무회의에서 홍성세무서를 서산으로 이전한다는 안이 통과가 된 것이다.
이를 뒤늦게 안 홍성신문은 호외를 발행하고 상대후보 진영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홍성세무서를 빼앗기고 기상대와 법원 검찰도 빼앗겼다더라”라는 등 있지도 않은 사실을 온갖 유언비어로 만들어 광범위 하게 유포 시켰다.
전후좌우 사정을 모르는 시골 아주머니들과 할머니조차 덩달아 아예 군청까지 빼앗겼다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
심각함을 깨달은 이완구 의원은 국세청과 청와대등 이리저리 뛰면서 이를 일단 진정부터 시켜야 했다. 2000년 7월1일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일단 시간을 벌어놓게 된다. 그리고 공약하길 “당선만 되면 농림분과에서 국세청을 관할하는 재경분과로 옮겨 반드시 되찾아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해 3월6일자 중앙일보는 전국 후보자들에 대한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이완구 후보 77.7%, 홍문표 후보 11.1%, 박호순 후보 6.5%로 압승이 예상됐다. 이렇게 해서 재선고지의 2부 능선을 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제16대 총선을 한달여 이상 남겨둔 시점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홍성군은 비상이 걸렸다. 정당연설회가 취소되는 등 선거운동은 사실상 중단 되다시피 했다.
홍성경제의 40%를 차지하는 축산경제가 입은 피해는 막대해 당시 홍성군이 추정한 피해액만도 570억원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이완구 의원은 4월3일 구제역 사태로 인한 긴급 대책회의를 읍면별로 여는 중 마지막인 금마면 대책회의에서 구제역 소독약인 구루탈을 식수로 오인해 마시는 사건이 발생했다.
큰 일을 앞두고 늘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듯 선거 열흘을 앞두고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로 인해 후보자 토론회가 연기되고 개인연설회도 전면 취소돼 선거사무실은 초긴장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것이 바로 재선 고지를 넘는 3부 능선이었다.
이렇게 하여 2000년 4월 13일 제16대 총선에 이완구 의원은 전라도와 부산지역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경기,서울 충청권에서 가장 높은 69.3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재선고지의 능선을 완전히 넘었던 것이다.
홍성.청양에서의 이같은 득표율은 그동안 제7대 장영순 의원이 64.3%로 최다득표율이었으나 이번에 이완구 의원이 장영순 의원의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2009.3.28 시골촌놈)
다음편도....
첫댓글 홍성만 강조안하면 좋겠습니다.지사님은 청양 출신이신데...
어디든 거론하면 어떠합니까. 지사님은 국민모두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와!!!
존경스럽습니다. 지사님~ ^^
오랜만에 들어 보는 이름 장영순의원.....ㅎㅎ 부인과 따님을 어려서 뵌 적이 있었는데 이지적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