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Land
8
"엄마, 이거 돌멩이야."
한 개구리가 엄마에게 말했다. 내민 손바닥 위에는 연두색의 완두콩이 올려져있었다. 개구리의 엄마는 동시에 인상을 찌푸리더니
입술을 오물거려 덜 씹힌 완두콩의 시체를 집게손가락으로 들어낸다. 그리고 우리를 쳐다본다.
"난 그만 올라갈래. 사실 근무시간도 아니고."
역시 가영은 민첩했다. 그녀는 여자의 시선을 무시하더니 또각또각 멀어져갔다. 괜한 헛기침을 연발하던 길리가 주방으로 들어가
버린 것도 그때였다. 그리하여 나는 설익은 완두콩밥에 대한 여자의 원망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것도 손가락으로 종
이를 접으면서. 황당한 개구리들. 어째서 색종이 따위를 가지고 다니는 것일까!
"에이, 이건 개구리가 아니잖아!"
길게 뻗은 목 끝으로 머리를 접어 넣으려던 순간, 개구리들이 튀어왔다.
"이건 바로 학이라는 동물이야. 개구리랑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우아한 생물이지."
양 집게손가락에 멋진 곡선을 가진 날개 한 쌍이 펼쳐졌다. 어디로 보나 그럴듯한 종이 학. 하지만 눈앞의 두 개구리는 나란히 팔
짱을 낀 채로 날 비웃듯 쳐다본다.
"개구리도 못 만드는 바보!"
"바보!"
"찬이, 진이, 얼른 밥 안 먹니?"
개구리의 다른 말, 찬이 진이. 아무튼 둘은 부리나케 여자가 있는 테이블로 뛰어간다. 어지간히 엄마는 무서운 모양이다. 조금 전
까지 내게 바보라고 소리치던 그 기세도 쏙 기어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종이 학을 향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너
도 나처럼 쓸모가 없어졌구나, 하다 설거지 연습이나 해야겠다 싶어 터덜터덜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길리는
깜짝 놀라더니, 나라는 걸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난 정말이지 사내아이들이 싫어."
왜 놀라고 그러냐며 묻지도 않았는데 길리는 투정처럼 말했다. 길리를 안다면 아는 사람의 입장으로 봐도, 그는 정말 싫은 표정이
역력했다.
"원래 아이를 싫어했군."
나는 제법 싸늘하게 그를 응시했다. 길리가 하는 말에 일일이 나를 갖다 붙이는 것도 병이겠지만, 그것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
러워서 가끔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다. 나의 의도를 알아차린 길리는 또 금세 방어적으로 나온다.
"넌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어, 재인. 이 말에 목숨을 걸어도 좋아."
기껏 바다에나 빠져 죽을 뻔한 주제에 뭐 그리 대단한 목숨이라고. 그러고 보니 그 사건에 대해 아직 아무 것도 묻지 못했다. 만약
그때 길리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과연 존재하기나 했을까? 그 생각에 미치니 조금 전까지 길리를
얄미워했던 마음이 녹아간다.
"여기요! 아무도 없어요!"
아, 정말이지 저 여잔! 조금 전까지 내 명예를 위해 목숨까지 걸어주던 길리는 눈 깜짝할 새도 없이 내 앞에서 사라졌다. 분명 카페
아일랜드의 친절한 사장이 되어서. 굳이 그것을 확인할 작정은 아니었지만 나는 주방문을 살짝 열고 그 틈새로 한쪽 눈을 가져다
댔다. 좁은 사이로 희미하게나마 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썩 괜찮은 식사였어요. 밥이 좀 그랬긴 하지만. 디저트는...... 아, 잠깐."
현란한 벨소리. 여자는 길리를 세워둔 채로 핸드폰을 받았다. 이상한 각도로 꺾인 손목이 길리 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어
디 가지말고 그대로 있으라는 표시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친절한 길리는 진짜 그대로 서있는 것이었다. 정말 진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응, 자기."
그렇게 시작된 여자의 통화는 '그럼, 언제와?' 라든가, '아, 정말 여긴 이상한 섬이야. 밥 먹을 데가 없는 거 있지.' 등등으로 이어졌
다.
"애들?"
하지만 그 대목에서는 갑자기 돌변하더니 목소리를 낮춘다. 덕분에 엿듣고 있는 나까지 귀를 기울일 판이었다. 여자는 어쩐지 찬
이, 진이 라고 불리는 개구리들의 눈치를 힐긋 보더니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기까지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개구리들은 종이 접기
에 흠뻑 빠져있었지만.
"물론 둘 다 데리고 왔지...... 아냐. 결심은 섰어...... 응......"
띄엄띄엄 들려오는 진의를 알 수 없는 말들. 불현듯 마음이 어두워져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숙였던 허리를 펴고 문을 닫
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여자가 길리를 향해 뭔가를 말하는 모습이었다.
"비행기는 어때? 사내라면 무릇 비행기지."
개구리들에게 둘러싸여 길리는 진땀을 빼고 있었다. 개구리들은 개구리를 만들 줄 모르는 길리를 향해 이번에도 바보라고 비웃었
다. 여섯 시가 넘은 아일랜드는 무척이나 북적였고, 또 다시 등장한 가영과 기하를 향한 손님들의 애정도 여전했다. 바 안에서 유
리잔 씻는 일을 맡고 있는 나는 오전에 나타나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개구리 일행을 지켜봤다. 특히나 핸드폰을 꼭 쥔 채
안절부절 못 하는 여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자는 대낮부터 지금까지 다섯 병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이따
금 개구리들을 야단칠 때 갑자기 붉어졌다, 또 조금 후면 제 색으로 돌아오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어이."
눈앞에서 하얀 손이 와이퍼처럼 움직였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면 유니크하게 찡그리고 있는 기하의 얼굴이 포착된다.
"와인 잔 좀 달라고."
"아! 미안. 몇 개나 필요해?"
"세 개."
"세 개......"
기하의 말을 따라 읊조리며 뒤를 돌아 선반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리고 반짝반짝 잘 닦여진 와인 잔을 하나, 둘, 세...... 개 꺼낸다.
"여기."
잔을 올린 쟁반을 밀어주면 기하는 그것을 들고 가야 하는데, 어쩐지 꼼짝도 않고 내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꽤나 근접한 거리
여서 귀가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다. 바 안의 조명은 너무 뜨겁다.
"하재인."
기하는 나를 풀 네임으로 불렀다.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이건 부탁인데."
사람들은 왜 부탁을 부탁처럼 하지 못 하는 것일까? 조금만 더 착한 얼굴이면 좋을 텐데.
"적어도 내가 하는 말에는 집중 좀 해."
마치 가죽을 벗고 사라지는 호랑이처럼 기하는 그 말을 남긴 채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멍해 있는 내 앞으로 이번에는 가영이 나타
났다. 그녀는 홀에서 등을 돌린 자세로 바 테이블에 기대 담배를 피웠다. 팔꿈치를 괴느라 살짝 치켜세워진 어깨의 둥근 뼈가 매끈
하게 빛났다. 정말 예쁜 아이. 현실적이진 못하지만.
"가영."
"응?"
"적어도 내가 너의 말에는 집중을 해줬으면 좋겠니?"
가영의 짙은 스모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그리고 내 쪽을 향해 새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오렌지 색 조명 아래서 그 연기들은
느린 춤을 추듯 브라운 운동을 했다. 이어지는 가영의 허스키 한 음성.
"그건 또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
"미안. 내가 실례를 했어."
얼른 손바닥을 펼쳐 든 나는 그렇게 사과했다. 그리고 다시 잔을 씻기 시작했다. 가영은 남은 담배를 길고 맛있게 피우고 있었고,
나는 대체 기하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궁금해 죽을 지경이 되었다.
"저기, 여기 혹시 아이 둘과 함께...... 아, 저기 있네요. 고마워요."
대단한 해변 차림의 남자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를 치더니 황급히 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쩐지 신경을 쓰게 만드는 바로 그
일행들의 테이블로 가 앉는 것이었다. 나의 온 신경이 다시 그 곳으로 집중된다. 이 거리에선 도저히 들릴 리가 없는 그들의 대화
에까지 귀를 기울일 정도로.
계속.
첫댓글 아이들에게 둘러써안 길리를 보면서 마구 키들키들 웃었습니다. 당췌 개구리 아이들과 낯선 남녀는 무슨 관계일까요? ㅇ.ㅇ
개구리 아이들 싫어요! 저 여자도 싫어요! ..아..영업시간 전에 들어오면 싫다구웃!!!
왠지 저 몰상식한 아줌마의 다음 행각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ㅋ 재인의 말에 끄덕끄덕, 왜 사람들은 부탁을 부탁처럼 하지 못하는걸까요? ㅋㅋㅋ 빠르게 다음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