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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적 가왕 조용필
조용필이 처음 전업 음악인으로 무대에 선 것은 1960년대 중후반이다. 당시 최고의 드러머 중 한 명이었던 김대환, 훗날 사랑과 평화를 결성해 국내에 소울 음악을 선보였던 최이철, 이남이 등과 활동했던 그는, 애드킨즈, 파이브핑거스, 김트리오 등에 몸 담으며 주로 미 8군 무대에서 기타와 보컬리스트로 활약했다. 우리에게는 1980년 조용필 1집 발매 이후, 당시 문화계 및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던 거대한 팬덤 문화의 형성과 국내 가요계를 장악했던 그의 대중성에 주목하게 되지만, 그는 이미 1972년 최초의 솔로 앨범을 내놓은 이후 꾸준히 자신의 앨범을 발매해 왔던 인물이기도 했다. 오늘은 실로 5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대중성, 작품성, 가창력 모든 측면에서 흠잡을 곳을 찾을 수 없는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적 가왕인 조용필의 음악 중 필청곡을 Giggle의 주관에 의해 선정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 사랑의 자장가 (1972, 조용필 스테레오 힛트 앨범)
원곡은 영국 민요 Jordie다. 워낙 많은 가수들이 불렀지만 우리에게는 포크 가수 존 바에즈가 부른 곡이 유명하다. 조용필은 1972년 이후 자신의 이름이 올라간 몇 장의 앨범에 이 곡을 싣는다. 사랑의 자장가라는 제목 이외에 Maria라는 이름으로 수록된 경우도 있는데, 이 곡에서 들리는 조용필의 목소리는 상당한 미성이다. 번안곡이지만 조용필의 가창력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초기 히트곡이다.
● 돌아와요 부산항에 (1976, 조용필)
원래 이 작품의 원곡은 1970년 김해일이 부른 돌아와요 충무항에 였다. 하지만 김해일은 당시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연각 호텔 화재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이 곡 역시 별다른 팬들의 반응을 얻지 못한 체 묻히고 만다. 이후 이 곡의 작곡가 황선우가 조용필에게 노래를 다시 주면서 조용필의 노래로 알려지게 된다. 1972년 돌아와요 해운대로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됐지만 실제 대중적인 성공은 1976년 다소 빠른 템포로 편곡되어 발표된 이후에 이루어진다. 이 곡의 인기는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그의 이름을 일본에까지 알리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후 원곡의 가수 김해일의 유족과 작곡가 황선우 사이에 작사가를 둘러싼 표절 공방이 이루어지는데, 이 때문에 한 때는 조용필이 표절을 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 창밖의 여자 (1980, 조용필 1집 - 조용필 대표곡 모음)
대마초 파동으로 잠시 무대를 떠났던 조용필이 다시 재기의 발판으로 내놓은 야심찬 앨범의 타이틀 트랙이다. 이미 몇 장의 앨범을 발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이 1집이 된 것은 아마도 당시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한 첫번째 앨범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신곡 이외에도 이전에 발표했던 작품들이 일부 수록되어 있다. 창밖의 여자는 당시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로 만들어진 작품인데, 그가 1970년대에 불렀던 노래들과는 그 성향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이다. 국내 가요에서 찾아보기 힘든 미스테리한 전개과 마치 가슴 속의 격정을 토해내는 듯한 샤우팅 창법은 그의 전성시대를 알리는 시금석이 된다.
● 단발머리 (1980, 조용필 1집 - 조용필 대표곡 모음)
전자음악 사운드가 특징적인 앨범의 또다른 히트곡. 1980년대 영미 팝계를 뒤흔들었던 디스코와 뉴웨이브의 영향력이 감지되는 작품으로 당시 국내 가요팬들에게는 매우 세련된 작품으로 인식된 곡이다. 창밖의 여자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진성과 가성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조용필의 창법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 한오백년 (1980, 조용필 1집 - 조용필 대표곡 모음)
지금 기준에서 보자면 이 앨범은 일정한 방향성을 찾아보기 힘든 어수선한 구성이라고 볼 수도 있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이 앨범에 포함된 작품들의 성향에는 어떤 일관된 기준이 없다. 특히 한오백년이라는 우리 전통 민요가 포함된 부분을 보자면 조금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작품들에서 선보이는 그의 창법이다. 그는 완전히 다른 장르의 음악에서 그 장르에서 선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가창력을 통해 완전히 다른 창법으로 모든 곡을 소화해 내고 있다. 한편 이 앨범에서는 잊혀진 사랑, 사랑은 끊나지 않았네, 대전 블루스, 슬픈 미소 등도 큰 사랑을 받아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1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해 당시 가요계를 충격에 빠뜨린다.
● 축복(촛불) (1980, 조용필 2집)
1집이 나온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지도 않은 체 발매된 2집 앨범. 다분히 음반사의 상업적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전반적으로 2집은 그의 초기작들 중에는 그 무게감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TBC 드라마의 주제가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대중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게 된다. 키보드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넘치는 사운드가 특징적인 작품으로 예의 조용필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엿볼 수 있는 곡이다.
● 미워 미워 미워 (1981, 조용필 3집)
전통 트로트 작품이다. 1980년대는 트로트의 전성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현미, 설운도, 송대관, 현철 등이 이후 가요계의 주류 장르로 트로트를 부상시킨다. 그 시작을 조용필이라고 하는 것이 가요사적으로 타당한지는 확신이 없지만 그가 전통가요의 대중적 인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그의 창법에서는 트로트에서 흔히 보이는 꺾기가 없다는 점이다. 그는 스트레이트한 창법으로 트로트를 소화하고 있다. 그는 이 앨범에서는 일편 단심 민들레야라는 또다른 트로트 장르의 히트곡을 내놓기도 했다.
● 고추 잠자리 (1981, 조용필 3집)
조용필이 3집에서 시도한 가장 혁신적인 작품이다. 당시 국내 가요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펑키한 사운드, 독특한 화음, 락 베이스이면서도 서정적인 전개, 잦은 변주를 통한 음악적 스타일의 변화, 가성과 스캣을 이용한 보컬 등이 특징적인 작품이다. 전통음악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바 있지만 그의 음악이 락에서 시작되었음을 이 음악이 증명하고 있다. 실험적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그 해 대중음악계를 뒤흔든 가장 큰 히트곡이 된다.
● 못찾겠다 꾀꼬리 (1982, 조용필 4집)
고추 잠자리의 연장선 상 위에 있는 곡이라고 봐도 무방한 작품이다. 형식은 보다 단순해 졌지만 그루브한 진행이 듣는 이를 흥겹게 만드는 작품이다. 박수소리가 효과음으로 사용된 가운데 조용필의 목소리는 훨씬 락적으로 변해 있다. 가사는 어린 시절 술래잡기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실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 비련 (1982, 조용필 4집)
가사의 첫 소절 '기도하는'이 나오면 곧바로 관객의 함성이 등장함으로써 당시 조용필의 인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곡이기도 하다. 피아노와 현악기 중심의 안정적인 연주에 비해서는 드라마틱한 전개와 절규하는 듯한 창법인 인상적이다. 한편 이 앨범에서는 서정적인 작품 산장의 여인도 인기를 얻었다.
● 친구여 (1983, 조용필 5)
조용필의 인기가 점점 대중적 신드롬으로 번지던 시점에 나온 작품이다. 앨범은 전통적인 가락을 가요에 접목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지만 실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은 록앤롤 스타일의 나는 너 좋아와 미드템포의 친구여다. 나는 너 좋아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얻은 곡이지만 지금 들어본다면 음악적 특징을 찾기는 쉽지 않은 곡이다. 그에 비해 친구여는 안정적인 전개와 함께 친구를 그리는 좋은 노랫말로 아직까지 조용필의 대표곡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 어제, 오늘, 그리고 (1985, 조용필 7집)
음반사와의 계약 문제로 6집이 다소 조급하게 만들어지던 당시 그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7집에 쏟기로 마음을 먹는다. 6집에서도 눈물의 파티가 큰 인기를 끌었지만 그 곡은 온전한 조용필의 작품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7집의 두번째 트랙인 어제, 오늘 , 그리고는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반주 위에 락 보컬리스트로서 조용필의 역량이 투영된 작품이다.
● 그대여 (1985, 조용필 7집)
아시아의 불꽃과 함께 이 앨범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용필이 이끄는 밴드 위대한 탄생의 단단한 연주를 배경으로 락과 뉴웨이브의 절묘한 결합이 느껴진다.
● 사랑하기 때문에 (1985, 조용필 7집)
유재하의 유일한 유작앨범에 실려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최초로 앨범에 실은 가수는 바로 조용필이다. 당시 유재하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멤버였기에 그의 작품 중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곡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발표 당시에는 이 앨범에 실린 수 많은 히트곡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이 곡과 함게 들꽃도 들어볼 가치가 있는 곡이다.
● 미지의 세계 (1985, 조용필 7집)
감히 시대를 앞서간 락 넘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곡의 전개, 연주, 구성 등 어느 하나 뒤쳐지는 부분이 없는 깔끔한 곡으로 당시 조용필의 락적 감성이 얼마나 풍부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노래다.
● 여행을 떠나요 (1985, 조용필 7집)
조용필을 대표하는 또 다른 작품. 사실 음악적 성취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 노래가 담고 있는 가사의 의미, 경쾌한 리듬 등이 대중적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한 때 단체 여행을 떠난 사람이라면 전국민이 다 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노래다.
● 허공 (1985, 조용필 Vol. 8)
7집이 나온지 불과 7개월 만에 나온 여덟번째 정규앨범의 타이틀 트랙이다. 이전에도 2집이나 6집처럼 계약관계에 의해 서둘러 발매된 앨범들이 있었지만 8집은 그런 앨범들과는 달리 상당한 만듦새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발매시간 상 그가 직접 작곡한 곡들은 없지만 곡 선정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인다. 특히 이 곡은 그가 발표한 전통가요 풍의 작품 중 가장 세련된 작품 중에 하나다.
● 킬리만자로의 표범 (1985, 조용필 Vol. 8)
8집은 전반적으로 전작이 보여준 락 성향에서 성인 취향의 작품 성향으로 변화한 특징을 보여주지만, 킬리만자로의 표범 만큼은 젊은층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양인자의 서술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가사가 독특한 이 곡은 국내 가요사에서도 매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 그 겨울의 찻집 (1985, 조용필 Vol. 8)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함께 김희갑, 양인자 두 부부가 작곡과 작사를 맡은 작품으로 조용필 본인도 이 곡의 가사에 대해 엄청난 만족감을 표현한 곡이기도 하다. 실제 한 겨울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들을 수록 그 가치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1987, '87 사랑과 인생과 나)
이전과 달리 새로운 앨범이 나오는데 비교적 긴 시간이 걸렸다. 가정사적으로도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겹쳤던 이 시절에 그는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며 모든 국내 시상식에서의 수상을 거부하는 선언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앨범에는 마도요라는 작품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에 훨씬 더 애착이 간다. 상당히 낭만적인 스타일의 연주가 인상적이다.
● Seoul Seoul Seoul (1988, '88 조용필 10집)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발매된 10번째 정규앨범이 타이틀 트랙이다. 다소 나른한 느낌의 전개로 인해 그 당시 다른 서울 관련 가요에 비해서는 분위기가 다소 침잠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 곡이 그 어떤 노래에 비해서도 대중성을 지닌 작품임은 그 해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한 번 입증되게 된다.
● 모나리자 (1988, '88 조용필 10집)
조용필이 만들어낸 또다른 락 넘버로 그가 평양에서 행한 공연에서도 허공과 함께 부른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허공은 당시 평양 시민들에게도 꽤 인상을 남긴 작품일 것으로 보이지만 이 곡은 다소 생경하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락 넘버지만 댄스곡과 유사한 비트감을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Q (1989, 조용필 제10집 Part. II)
원래 더블 앨범으로 기획되었던 10집 앨범은 국내 가요계의 그간의 출반 관행에 따라 별도의 두 장의 앨범으로 발매되었고, 그에 따라 이 앨범에는 제10집 Part.II라는 앨범 제목이 붙는다. 하지만 현재 이 앨범은 조용필의 공식 11집 앨범으로 인정되고 있다. 8집과 마찬가지로 김희갑과 양인자 콤비에게 모든 작품의 작곡과 작사를 맡긴 앨범으로 이 곡은 이 앨범 최대의 히트곡이기도 하다.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라는 도입부의 가사가 일품이다.
추억속의 재회 (1990, Sailing Sound)
12집의 타이틀 트랙으로 발라드 계열의 작품이다. 사실 기존에 조용필이 발표했던 발라드는 엄밀히 말하자면 성인 취향의 작법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이는 1970년대 이후 국내 가요계에 존재했던 스타일의 작법이라 할 만한데 이 곡은 그에 비하면 상당히 현대적인 스타일의 발라드라 할 만하다. 멜로디 전개가 상당히 고급스러운 특징을 보여준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1990, Sailing Sound)
앨범 발매 당시에는 엄청난 대중적 호응을 얻지는 못했던 작품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그 가치가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 존재한다. 이 곡 역시 그런 부류의 음악이다. 이별의 아픔, 다시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절절하게 담은 가사가 빛을 발하는 곡이다. 이전보다 절제된, 그리고 편안한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 중년 가객의 완숙함이 느껴진다.
꿈 (1991, 'The Dreams)
13집의 타이틀 트랙이다. 도시 생활의 고난함을 담은 이 작품은 꿈을 쫓아 서울로 올라왔으나 결국 자살로 비운의 삶을 마감한 한 가장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그렇기에 비교적 빠른 템포의 곡임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주는 감정은 슬픔 또는 애환에 가깝다.
고독한 Runner (1992, Cho Yong Phil 14)
조용필 본인의 삶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시작이라는 신호도 없고 마지막이란 표시도 없는 고독의 길을 뛰어 온 자신에 대한 격려이자 회환을 담은 작품으로 엄청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은 아니지만 진심을 담은 곡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아우라가 있는 곡이다.
바람의 노래 (1997, Eternally)
1980년대의 선풍적인 인기를 뒤로 하고 점차 방송에서의 활동이 잦아든 시점은 1990년대 초반을 넘어서면서 부터였다. 대신 그는 자신의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공연활동에 주력한다. 그러던 그가 1997년 발매된 16집에서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작품을 발표한다.
기다리는 아픔 (1998, Ambition)
17집의 대표곡이다. 락 발라드 계열의 작품으로 다분히 친근한 멜로디 라인이 인상적이다. 물론 조용필은 더 이상 이전처럼 한국 가요계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시킬 만한 가수는 아니다. 하지만 중년의 가수로 지속적인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Bounce (2013, Hello)
18집 발표 이후 10년만에 발매한 정규 19집 앨범에는 최신의 음악적 조류를 접목하려는 조용필의 노력이 엿보인다. 발매 당시 그의 나이가 63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앨범을 통해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이루어냈다는 점만 보아도 충분히 평가할 가치가 있다. 일렉트로닉 계열의 본 작품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사랑을 받았다.
● 조용필의 인기가 최정상에 있을 때, 당시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의 시절을 보냈던 나는 개인적으로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그의 앨범을 하나씩 구입하고 듣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 노년의 가수가 만들어낸 노래들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대중들의 큰 인기를 얻고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는 이들이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겠지만, 조용필 만큼 자신의 음악적 신념과 능력, 그리고 가창력으로 전세대를 아우르며 이토록 긴 세월을 노래 그 하나에 매진할 수 있는 가수가 또다시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가왕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아래의 동영상은 1987년 Pax Musica에서의 공연실황을 담은 것으로 그는 고추잠자리를 열창한다. 화질은 시대가 시대인지라 상당히 열악하지만 그 당시 그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는 자료로서의 의미가 있을 듯 싶다.
- 2015. 12. 19 Gi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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