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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법회인유분 제1 [2]
【경문】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세존께서 사위성(밖) 제타태자의 숲 급고독장자가 지은 절에서 훌륭한 비구스님들 천 이백 오십 인과 함께 계셨다. - {1}
그때 세존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드신 뒤 사위대성에 들어가시어 성안에서 차례로 밥을 비신 후,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오시어, - {2}
공양을 드신 후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 {3}
【松江】여기 아주 멋진 법회가 있다.
날이 밝아지고, 어둠에 잠겨 있던 숲에서 고요한 사원 하나가 안개 속에 홀연히 솟아난다. 제타태자의 숲에 수닷따장자가 부처님을 위해 신심으로 지은 기원정사이다. 아직 움직이는 것은 숲 위를 날기 시작한 새들뿐. 해가 솟자 미동도 하지 않는 스님들의 모습이 조각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그 중심에 빛을 발하시는 어른이 계신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세존이시다. 그 주위를 이미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 훌륭한 제자들 1250여분이 에워싸고 있다.
넷 에움(사위四圍)이 완전히 밝아지고 사람들의 일상이 제 궤도에 오를 즈음, 부처님께서는 삼매로부터 일어나시어 대가사를 수하시고 발우를 챙기신다. 사원전체가 일시에 물결처럼 흐름이 생겼으나 고요하긴 마찬가지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발끝에 이슬을 느끼시며 성을 향해 나아가신다. 몸이 아주 불편한 스님들을 몇 제외하고는 전 대중이 부처님 뒤를 따라 사위성 안으로 들어간다. 성에 이르자 제각기 방향을 잡아 흩어지고, 사위성에는 깨달은 이들의 빛과 향기로 가득해진다. 세존께서도 신심 깊은 이들에게 미소를 보이시며 몇 집을 돌아 발우에 음식을 받으시고는 성에 들어가셨던 모습 그대로 빛을 뿌리시며 성 밖으로 나오신다. 그리고 떠나셨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오신다.
이윽고 해가 중천으로 오를 즈음, 하루에 한 번 뿐인 공양이 시작된다. 숲의 새들도 함께 와 식사를 나누고, 저 허공의 모든 생명까지 모두 함께 한다. 공양이 끝나자 부처님은 발우를 있던 자리에 두고 대가사도 벗으신다. 그리고 발을 씻으신 후, 가부좌를 맺으시고 삼매의 경지로 들어가신다.
만약 부처님과 함께 탁발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더 이상 금강경을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말씀도 하시진 않으셨으나 입을 빌리지 않는 무량한 말씀으로 이미 다 깨우쳐 주셨다. 이 모습 외에 다시 또 어떤 언어가 부처님을 그려낼 수 있으며,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 줄 수 있겠는가. 이것이 해탈의 삶이며, 이것이 열반의 삶이다. 이외에 또 다른 무언가를 찾는다면, 귀신들의 장난에 말려들어 모진 고생을 한 후에야 겨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경문】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세존께서 사위성(밖) 제따태자의 숲 급고독장자가 지은 절에서 훌륭한 비구스님들 천 이백 오십 인과 함께 계셨다. - {1}
【松江】이 부분은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그대로 옮긴 것을 증명하여 경을 보는 이로 하여금 믿음을 내게 하는 것이므로 ‘증신서[證信序-증명하여 믿게 하는 머리글)]’라고 하며, 또 모든 경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앞머리라 해서 ‘통서[通序-공통적 머리글)]’라고 하는데, 여섯 가지 항목을 반드시 갖춰야 된다고 해서 ‘육성취(六成就)’라고 한다. ‘여섯 이룸(육성취)’이란 ①믿음 이룸[신성취(信成就)] ②들음 이룸[문성취(聞成就)] ③때 이룸[시성취(時成就)] ④주체 이룸[주성취(主成就)] ⑤장소 이룸[처성취(處成就)] ⑥무리 이룸[중성취(衆成就)]이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 아무렇게나 말하면 불신을 당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누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있으면서 어떤 것을 얘기하는 것을 들었음’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금강경으로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믿음 이룸[신성취(信成就)]
이것은 아난존자가 만들어 낸 얘기가 아닌, 들은 그대로를 옮겼다는 믿음을 주기 위함이다. 여기에서는 ‘무엇을’ 들었느냐를 설명하는 것으로, 다음에 오는 경문 전체를 가리켜 ‘이와 같이(如是)’가 여기에 해당한다.
②들음 이룸[문성취(聞成就)]
이것은 현장에서 분명히 들은 법문이란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아난존자가 잘난 체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다. 경의 ‘내가 들었다(我聞)’가 여기에 해당한다.
③때 이룸[시성취(時成就)]
진리의 가르침은 구체적 날짜를 밝히지 않는다. 모든 종교의 성전이 모두 그렇다. 그래서 막연하게 표현한다. 진리가 설해진 날자는 따로 없다. 오직 사람의 마음에 들리는 그때가 법회가 이뤄진 시간인 셈이다. 경의 ‘어느 때(일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④주체 이룸[주성취(主成就)]
이 말씀이 믿을 만한 분에 의해 이뤄진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경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거나 아니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 것들이다. 결코 누군가 생각나는 대로 얘기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우리가 항상 만나야 될 분이기에 그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경의 ‘세존께서(佛)’가 여기에 해당한다. 범본에는 ‘세존’으로 되어 있고, 구마라집 스님은 ‘불(佛)’로 한역했다.
⑤장소 이룸[처성취(處成就)]
법문이 설해진 장소는 모든 경전에서 분명하게 밝혔다. 경의 ‘기수 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말로 옮길 때는 범본에 따라 ‘제따태자의 숲 급고독장자가 세운 절’로 했다.
⑥무리 이룸[중성취(衆成就)]
어떤 대중들이 설법을 들었는가를 밝혔다. 경전에서 ‘훌륭한 비구 1250인’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松江】 ‘이와 같이’는 금강경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와 같음을’이라고 새기면 보다 정확해진다. ‘나는 들었다’에서의 ‘나’는 아난존자(阿難尊者)이다. 아난존자(Ānanda)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가장 기억력이 좋으면서, 부처님을 곁에서 가장 많이 모신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정확히 기억했기에, 부처님 열반 후 결집(結集-경을 외워 편찬함)할 때에 아난존자가 암송하고 다른 장로들이 인정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아난존자가 『금강경』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틀림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금강경』은 바로 부처님의 진리말씀이라는 뜻이다.
믿음은 마음을 열어 새로운 것을 듣게 한다. 아무리 훌륭한 말씀이라도 불신하는 자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요[우이독경(牛耳讀經)], 말의 귀에 동풍이 부는 것처럼[마이동풍(馬耳東風)]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때】
【松江】불교경전에서는 언제 법문을 설했는지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어느 때’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다. 그것은 인도인들 또는 불교인들이 역사적인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진리란 어느 한 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다.
그럼 금강경이 설해지는 때는 언제일까? 법문을 듣는 사람이 부처님과 만나는 때가 금강경이 설해지는 때이다.
아난존자가 금강경을 들었다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건 아난존자의 문제일 뿐이다. 금강경이 나에게 빛이 되고 길이 되려면 내가 들어야 한다. 귀는 법문을 듣지 못한다. 그럼 무엇이 법문을 듣는가? 분별을 놓을 지어다.
나는 길을 가야만 했다. 그런데 내 앞에는 나를 닮은 사람이 길을 막고 있었다. 길을 비키라고 외쳤더니 상대도 같이 외쳤고, 손을 들어 물러나라 했더니 상대도 삿대질을 하며 양보하지 않았다. 내가 비켜가려고 옆으로 옮겼더니 상대도 옆으로 옮기는 게 아닌가. 온갖 방법을 다 썼으나 별 도리가 없는데 문득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가 번개처럼 스쳤다. 그렇다. 상대를 죽일 수밖에 없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 쏟아 상대의 면상을 정확히 가격했다. 상대는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는 생전 처음 보는 놀라운 세계, 거칠 것 없는 무한한 세계가 열렸다. 허공 속에서 잠을 깨우는 소리가 날아 왔다. ‘쨍그랑!’
【세존께서】
【松江】이『금강경』역사적으로 접근하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涅槃(nirvāna)에 드신 후 5~6백년이 지나서 편찬된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이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경의 내용이 부처님께서 깨달으셨던 그 세계를 열어 보이고자 하는 것이므로, 곧 부처님께서 설한 것과 동일하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오시지 않았던들 이경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위성(밖) 제타태자의 숲 급고독장자가 지은 절에서】
【松江】수닷타장자(長者-요즘의 재벌)는 본래 인자하고 정이 많아 불쌍한 사람을 보면 무엇이던지 베풀어 주길 잘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을 돕는 어른’이라고 존경했다. 이 수닷타장자가 아들의 결혼 문제로 이웃나라인 마가다(Magadha-한역으로는 마갈타摩竭陀)국의 수도인 왕사성(王舍城, Rāja-grha : 제1결집이 있었던 곳)의 친구인 호미장자의 집에 갔던 길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신자가 되었다. 부처님께 코살라국에도 와 주십사고 청하여 승낙을 받자 귀국하여 부처님과 제자들이 기거할 수 있는 절을 짓기로 했다.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당시 국왕인 파사익왕(波斯匿王, 쁘라세나지뜨Prasenajit-부처님과 생일이 같고 부처님 성도하신 해에 왕위에 오름. 부처님께 귀의하여 독실한 신자가 됨)의 태자인 제따가 소유한 동산이 가장 적합한 곳임을 알고 태자에게 팔 것을 요청했다.
팔 생각이 없었던 태자는 농담으로 ‘한 치 두께의 금으로 깔고, 그 금으로 사겠다면 팔겠노라’고 했고, 장자는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이에 놀란 태자가 그 연유를 알고 나서는 , 자기도 숲의 나무를 기증했고, 그렇게 해서 지은 절을 ‘제따태자의 숲에 급고독장자가 지은 절’이라는 뜻으로 ‘기수 급고독원’이라 했고, 훗날에는 ‘기원정사(祇園精舍)’라고 했다. 지금도 기원정사 유적은 기초가 남아 옛날을 그려 볼 수 있다.
【훌륭한 비구스님들 천 이백 오십 인과 함께 계셨다.】
【松江】비구는 브힉수(bhiksu)의 소리 옮김으로 20세 이상 250계를 받은 남성출가자이다. 옛 스님들은 ‘대비구중’을 ‘아라한(阿羅漢 arhan)이 되신 분들’이라고 번역했다. 1250인의 숫자는 최초의 제자인 아야교진여 등 5인, 가섭삼형제(우루빈나·나제·가야)가 거느린 1000명, 사리불과 목련존자가 거느린 200명, 야사가 거느린 50인등 1260여인에 근거한 듯하다. 그러나 이들 외에도 많은 제자가 있었으므로 정확한 숫자라기보다는 부처님께서 많은 제자들과 더불어 계셨음을 뜻한다.
【松江】위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저(아난)는 어느 때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1250인의 훌륭한 스님들과 함께 계시면서 이렇게 금강경을 법문하심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하릴없는 구경꾼이 되고 만다. 우리는 지금 심심해서 여흥으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금강경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관람객으로 이 세상을 구경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곧 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주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아난존자는 잊어라! 나는 지금 부처님과 마주하고 있다. 부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분이니,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념을 던져버리면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과거의 기록을 뒤적이며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야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따위는 버려라. 성지순례 하듯이 잡초 무성한 기원정사에 가서야 부처님의 미소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도 버려라.
“저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 뭇 생명들과 더불어 부처님을 뵙고 있습니다. 허공같이 텅 빈 마음으로 기쁨 충만하여 부처님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만나고(聞) 있습니다.”
[기원정사 유적지 1]
[기원정사 유적지 2]
첫댓글 금강경 공부을 하면서 행복은 마음속에 있고 ,현재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나만의 행복을 누리라는 스님 법문 중에 가슴에 담아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스님감사합니다 ()()()
자기 한 몸도 운신하기 어려운 사람이 남 돕기 정말 어렵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근심하는 사람이 남을 편케 하기 정말 힘들지요. 멋진 나날 만드시기 바랍니다. ^^
!!여기 아주 멋진 법회가 있다.!!
우리 개화사의 모습 아닐까요??항상하는 법회고 늘 뵙는 스님 이지만 스님께서 법상에 오르시면 저희들은 정말로 숨 죽이고 침을 꼴깍 넘깁니다. 그런데 그 고요한 순간에 왜? 하필 침이 꼴깍 넘어갈까요????
조그마한 우리 절이 이럴진데 이름난 사찰은 대단할꺼라 믿었지요...이런 부분에 스님께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
기러기떼 들이 줄지어 나는 것 처럼 아직도 저희들 그렇게 못 하지만, 특히 저는 스님들의 고요함을 따르려 노력 하겠습니다.....
침 꼴깍의 에너지 충만한 순간, 문득 한 경계가 열릴 수도 있겠지요!! ^^
아 ! 부처님 ! 수보리 존자 아니라도 <편단 우견 우슬 착지 합장 공경>...
저절로, 우러르게 되옵니다.부처님의 세계가 어떠하기에 , 얼마나 드높고
광활하기에 ,다 버리시고 온전히 드러내시나이까!!! 실천하고 따르는 일
멀기만 해도 ,죄스럽고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냥 부처님의
제자라고 떼써보고 싶습니다.희유하신 부처님,존경하옵는 스승님,발아래
엎드려 절올립니다.
우러러 예배함도 수행이고, 따라서 기뻐함도 수행이며, 부끄러워함도 수행이고, 환희 찬탄함도 수행일지니, 곧 '그곳'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 가부좌를 맺으시고 삼매의 경지로 들어가실때 1,250분의 비구스님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깨우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러한 경지의 말씀은 통해서 하는 법문보다 더 무량하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는지요?
"결가부좌를 맺고 삼매로 들어 가신다" 고 한 그 다음의 문장은 금강경에서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1250인의 스님들은 이미 깨달으신 분들이기에 그 이후에 깨달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대승의 가르침에 의한 새로운 깨우침은 분명히 일어나지만, 질문과는 상관없는 것이고요. 금강경의 내용을 앞으로 자세히 풀어가겠지만, 가장 뛰어난 경지에서는 제1분의 내용을 듣고는 바로 깨달을 수 있다는 뜻으로 설명한 내용입니다. ^^
부처님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대로 물 흐름과 같아 높고 낮음이 없이 자연스러우심니다.
한 말씀 없으셔도 잘 알고 따르며 수행하는 당시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해도 스님 모습을 따라 정진코자 합니다.감사합니다.( )( )( )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
기원정사~부처님의 평화로운 숨결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보고 싶은~그리운 고향길 같습니다!!
이미 걷고 있는 줄 알았더니 ------^^
기원정사의 마력에 끌려~ 잠시 깜빡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