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2006.8.10)
1일차
충주 새벽의 달래강을 건너 지리산으로 향하는 차안에는 종주에 대한 기대감으로 묘하게 기분을 들뜨게 한다. 멀리 중부고속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티켓을 빼내어 오창 휴게소에서 샌드위치로 아침 허기를 메운 후 시원하게 달려 경부고속도로와 합류한 후 대전으로 향한다. 호남고속도로 갈림길을 지나치고 대진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엔진소리와 함께 지리산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가 차안에 가득하다. 인터넷으로 장터목 대피소와 뱀사골대피소 예약신청을 하던 순간의 긴장감과 예약되었을 때의 성취감에 대하여 서로 즐거워한다. 까막 산악회에서 지난 수년간 다니던 산들과 이번 지리산 종주를 위해 회원들이 많은 산행으로 다져진 분들이 많다. 은퇴하신 안선생님, 회장 김선생님, 대장 이선생님, 사무총장 정선생님외 아가씨 로 불리는 여선생님 세분이 일행으로 모처럼 장대한 지리산을 종주하고자 준비를 해왔던 사무총장님이 수고를 많이 하신 덕에 우리가 지금 차안에서 있다고 말씀들 하신다. 문수보살이 계시는 방장산, 백두산에서 흘러 내려왔다는 두륜산, 어리석은 자가 오면 현명해 진다는 지리산으로 불리는 유래를 알려주는 등 이야기는 계속되며 인삼랜드를 지나치고 드디어 거대한 지리산의 산그늘이 푸르게 감싸 안은 지리산 나들목으로 나와 백무동으로 향하는데 산천이 맑고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합수머리 부근에 아침을 먹으려는 파출소 옆 예약된 식당에서 자장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백무동 매표소까지 올라 배낭을 추스르고 본격적인 산행을 준비한다. 많은 등산객들이 버스에서 내려 우루루 모여든다. 평소에 지던 배낭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평소에 30kg의 배낭에서 52kg의 배낭을 짊어지니 어깨가 주저 않는 느낌이다. 이걸 매고 종주를 시작한다니 조금은 걱정이 된다. 그렇지만 여기가 자주 오는 곳도 아니고 평생에 몇 번 할까 말까 하는 종주이기 때문에 각오가 새롭다. 드디어 오르막이다. 계곡으로 올라 시작하니 울창한 숲이 서늘한 기운을 내뿜는다. 하동바위를 지나 참 샘에 이르니 다람쥐가 많다. 등산객이 가까이 가도 도망치지 않는다. 물가에서 등산객이 흘린 과자를 먹는데 귀엽다. 물을 보충하고 배낭을 추스르고 다시 올라보니 점점 힘들어 진다. 땀은 비 오듯 하고 길가에 핀 야생화가 힘내라고 격려하는 듯하다. 안부에 올라 능선을 타면서 조금 쉬워진다. 전망바위에 이르니 장터목 대피소가 눈에 들어 온다. 정선생님이 수박한통을 잘게 얼려 싸오셔서 그 것을 배낭에 넣고 올라오셔서 모두 맛있게 먹고 고맙다는 말을 하며 감로수박이라고 비유를 하였다. 사진을 찍고 힘을 내어 오라 모퉁이를 돌아 나오니 바로 장터목이다. 장터목대피소에 일단 배낭을 내리고 천왕봉으로 발길을 돌려 오르니 배낭무게가 없어진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쉽게 몇 굽이 오르니 제석봉이고 고사목지대가 펼쳐진다. 과거 도벌꾼들에 의해 불타기도 하고 고원지대라서 추위와 매서운 바람에 굽을 대로 굽어지기도 한 고사목들이 의연하다. 바위와 가문비나무 숲을 지나 통천문이 앞에 선다. 천왕봉으로 향하는 문이다. 색이 바래서 조금은 허전하다. 철 계단을 올라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오선생님이 곰을 발견하고 쉬잇 하신다. 나와 아들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무슨 사과 같은 열매를 으적거리며 먹는 모습을 조심스럽게 보며 아기곰보다는 약간 큰 어미돼지정도 크기의 곰이 사라지기까지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계속 몰려오자 곰은 스르르 바위 아래로 사라지고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곰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정상에 올라 천왕봉비석을 배경으로 사방을 바라보니 멀리 반야봉과 노고단이 이스라하게 운무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발아래 거대한 지리산자락이 파도치듯 산아래로 이어진다. 산과 산사이로 수많은 계곡들이 굽이치고 갑작스럽게 구름이 밀물처럼 치솟기도 한다. 지리산은 날씨변화가 다양하여 늘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한다. 다행히도 비는 오지 않고 다시 장터목으로 오는 동안 곰이 나타날까 싶어 숲속에 한번 더 눈길을 주면서 장터목 대피소로 내려오니 해는 서쪽하늘에 걸리고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다. 오늘은 비박을 하기위해 마당에 자리를 깔고 물을 받기 위해 줄서 있으려니 예쁜 아가씨가 인사를 한다. 오래전 가르쳤던 제자들이다. 한녀석은 공사를 졸업하고 비행장에 근무하는 공군 장교이고 한 녀석은 유학 후 학생신분이란다. 모두 자기의 길을 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누룽지를 풀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코펠과 버너를 사용해 진수성찬을 마련하여 식사를 하니 모두가 꿀맛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비박을 하면서 밤바람이 차가워지고 보름달은 환하게 비춰 장터목 능선에 부는 세찬 바람도 비닐속에서 따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새벽녘에 추위가 조금 왔지만 견딜만 하고 아침에 찌개로 든든하게 먹은 뒤 사진을 찍고 연하봉으로 출발한다. 햇빛은 뒤에서 내리 비추고 공기는 맑아 걷기에는 더없이 좋다. 숲속은 짙푸른 녹음으로 어두컴컴하고 바위 길은 거칠고 높낮이는 심하다. 좌우 에 펼쳐지는 능선은
푸르스름하게 아득하고 주목이나 가문비나무는 남쪽으로 가지를 내고 기울어 졌다. 촛대봉은 왜 그리 높은 지 배낭의 무게가 무거워 진다. 오르면 내리막이 있듯 장쾌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멀리 백무동이 조그마하게 보이고 칠선계곡이 보일 쯤 세석 대피소 안내 이정표가 눈에 반갑다. 도착하니 거대한 세석 평전이 고원처럼 펼쳐지고 습지와 바위가 어우러진 곳 아래 아늑하게 세석산장이 자리 잡고 있다. 햇빛은 따가웠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요즘 등산복이 다 그러하듯 땀을 말려 시원하다. 영신봉 칠선봉을 지나 드디어 선비 샘에 이르러 맑고 찬 물이 손이 시릴 정도이다. 물을 가득 채우고 또다시 벽소령 대피소로 향한다. 높은 철 계단과 계곡과 능선으로 이어지는 종주 길은 험하기만 하다. 아차 싶은 순간 발이 접질리기도 하고 돌부리에 발이 걸리기도 하고 등산지팡이로 몸의 균형을 잡아 한 발짝 전진한다. 간간히 산중에서 만나는 등산객에게 안녕하세요? 즐산하세요, 안산하세요라고 인사하며 서로가 밝게 웃어주고 거리를 묻고 정보를 얻는다. 어쩌다 초등학생을 만나기도 하는데 대단한 아이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선생님이 아들을 데리고 성삼재에서 오는 중이라고 한다. 반가워서 악수하니 밤기차로 내려 왔다고 한다. 좋은 체험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벽소령 대피소를 그냥 지나치고 계속 이동하며 간간히
쉬기도 하고 해서 이윽고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삼성에서 신입사원들의 교육이 있는 모양이다. 지휘자가 음료수를 나누어준다. 모두 지친 표정이지만 산속에서 건강한 얼굴은 모두 같은 얼굴이다. 해는 어느새 중천을 지나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여선생님이 조금 늦게 와서 걱정이지만 워낙 끈기가 있는 분이라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먼저 선발대가 가서 뱀사골 야영을 신청해야 하므로 바람처럼 달린다. 높다란 토끼봉에서 뒤돌아보니 저 멀리 높은 봉우리들이 지나온 길은 알려주고 있다. 잘 알려진 화개장터로 넘어가는 화개재를 지나 어둑어둑해질 무렵 뱀사골 대피소로 들어가는 계단으로 다가간다. 달궁으로 이어지는 뱀사골 계곡은 아늑한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다. 방을 예약확인하고 저녁을 준비하고 쉬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초임 발령 시 같은 곳에서 근무한 선생님이다. 아들이 고등학생이란다. 그런데도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선이 곱다. 산에 다니면 역시 예뻐지고 건강하게 되는 것 같다. 어둠이 짙게 깔릴 무렵 모두 도착한다. 헤드랜턴을 잘 준비하여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대피소 안에는 다양한 소리의 화음이 조합을 이룬다. 몸은 피곤하지만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잠자리 바뀌고 칼잠을 자야하니 영 잠이 오지 않는다. 이선생님은 자다가 더워서 주섬주섬 잠자리를 들고 나가 밖에서 주무시다 새벽녘에 추워서 다시 돌아와 부시럭거리며 잠든다. 어느 순간 깜박 잠이 들어 깨어보니 웅성거린다.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출발하는 팀들이 밥을 짓고 세면을 하고 배낭을 추스린다. 우리도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누룽지와 밑반찬으로 먹고 배낭을 준비하고 인원파악을 하니 모두 건강하다. 산장지기와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오르니 무릎이 욱신거린다. 안부에 올라 햇빛을 바라보니 따갑게 느껴진다. 오늘은 삼도봉과 반야봉 노루목으로 해서 노고단에 이르는 코스로 어제보다는 조금 짧다. 경상남도와 전라남북도가 만나는 삼도봉에서 피아골의 단풍이야기를 안선생님이 들려준다. 두 시간 거리의 반야봉에 올라 보니 저 멀리 천왕봉이 아득하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의 연속적 이어짐이 눈에 선명하다. 돌탑을 쌓아올린 반야봉을 오르면 노고단과 천왕봉이 모두 보이고 지리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성삼재가 손에 잡힐 듯하고 노고단이 한발에 건너 뛸 것 같다. 지리산은 우리민족에 있어 애증의 얼킴이 서려 있는 산이다. 태백산맥에서 소화와 남부군의 파르티잔의 활동유역이며 남부군 대장 이현상, 토벌대, 학살, 공비, 골로 보낸다.
이런 단어들이 생겨난 곳이고 실제로
<산동애가>라는 노래를 지은 백부전이라는 처녀가
잘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도 못하고
까마귀우는 골을 병든다리 절어절어
다리머리 들어오는 원한의 넋이되어
노고단 골짝에서 이름없이 스러졌네
라고 읊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리산 골짝에는 산수유마을이 유명하다.
곽재구 시인의 <산동에서>시이다.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의 길은 삼십 리.
그리워서 눈감으면,
산수유 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 리.
반야봉을 내려와 노루목을 지나 임걸령에 이르니 샘물이 있고 물맛이 정말 차고 시원하다. 지리산 능선에 이러한 샘이 몇 군데 있어 두세 시간 마다 목을 축이니 신비하기도 하다. 1500고지에 물이 퐁퐁 솟아오르니 말이다. 지나는 길목마다 야생화가 꽃 잔치를 벌이는 듯 화사하지만 소담스러운 조그만 꽃들이 지천이다. 8월의 야생화는 담황색의 동자꽃 희고 고운 들국화, 노랑의 원추리, 점박힌 참나리 산수국 등 다채롭다. 멧돼지가 출현한다는 돼지평전을 지나 드디어 노고단에 이른다. 시원한 고원위에 하얀 돌탑을 쌓아 전망이 좋고 사방이 확 틔어 눈이 시원하다. 저 멀리 화엄사가 희미하게 보이고 섬진강 자락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 힘든 여정이지만 다시 성삼재로 내려오는 길은 돌로 잘 다듬어져 차량이 다닌다. 성삼재에 내려와 차를 기다려 지리산 온천으로 가서 2박3일의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온천에 몸을 담궈 피로를 푸고 전주 호남각에서 정식을 먹으니 많은 반찬과 맛있는 음식으로 마무리하고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휴게소에서 커피한잔을 마신다. 벌써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하면 11시가 될 듯싶다. 모두들 산에서 본 달빛과 충주에서 보는 달빛이 다르다고 말한다. 지리산 위에서 보는 달빛은 푸르게 차가운 달이었고 여기는 엷은 구름에 가려 흐릿하다. 충주에 도착하니 도시가 후덥지근하다. 벌써 지리산이 다시 그리움으로 다가와 아련하다.
첫댓글 2006 여름 지리산 종주 2박3일 좋은 분들과 같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