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념은 종교적인 것이건 세속적인 것이건 모두 나름대로 지향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유토피아이고 동시에 이 지향점을 향해 일정한 행동의 기준을 제공하는 점에서는 현실적인 지침서를 내포한다. 이 지침서가 국가의 정책에 활용될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가 논의할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여러 국가의 중심적인 정책지침으로 되고 있다. 그리고 실제적인 행동의 결과는 반드시 어떤 구체적인 효과를 갖게 마련이다. 이념은 모든 개별적인 정책의 최후의 이론적 근거라는 점에서 최고수준의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효과는 정책의 현실적 타당성의 근거를 제공한다.
이념-정책-효과의 삼차원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고 실제 현실의 과정 속에서 논란이 벌어질 때는 경우에 따라 대립점이 형성되는 차원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는 하나의 문제를 놓고 이념과 효과라는 차원 모두에서 논란이 벌어진다. 쉽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이해를 위해서는 반드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력, 철도 산업의 혁신과 관련하여 민영화냐 국유하의 기업지배구조 개혁인가 라는 문제는 이념적 차원에서 성립하는 대립구도이다. 만약 신자유주의가 압도적인 정치적 우위를 확보한 경우라면 민영화는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보이게 되고 다른 대안들은 가능성으로서 무대에 등장하지도 못할 것이다. 민영화와 관련된 논란 속에서 진보진영은 효율성이라는 평가기준 이외에 공공성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힘겹게 견지하고자 했는데 그 이유는 효율성을 유일한 선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신자유주의의 이념에 포획 당하고 말기 때문이다. 한편 정책의 선택에 관한 논란은 동시에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보다 명시적인 목표에 정책이 적절한 효과를 창출할 것인가라는 기준을 가지고 진행된다.
신자유주의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이 세 가지 차원을 구분하여 그 내용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각 차원에서 적절한 비판의 시각을 확립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책의 타당성을 비판하기 위해 그 이념의 문제점을 이용하여 비판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며 효과의 부정성도 보여야 한다.
이 글은 구체적인 정책이 아니라 일반적인 관점에서 신자유주의 이념의 특성을 정리하고 그것을 비판할 수 있는 이론 틀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또 같은 관점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효과를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어떻게 달라 질 수 있는지를 밝힌다. 정책의 효과를 밝히는 문제와 관련하여 종종 이념적인 혐오감 때문에 풍부한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신자유주의의 비판은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어떤 인과관계를 통해 모순을 발생시키고 불안정과 양극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야 완성된다.
I. 이데올로기적 특성
신자유주의는 종종 시장 대 국가라는 대립 축에서 시장중심주의로 이해되기도 하고 인간 특히 개인의 인권, 자유, 평등 등을 강조하는 고전적 자유주의(구자유주의)와 혼동되기도 한다. 또한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시장경제를 반대하는 측에서 만든 용어일 뿐 실체가 없고 과도한 국가 개입이 왜곡시킨 시장경제를 본래대로 돌리자는 것일 뿐 특별히 새로운 이념은 아니라는 보수적 입장도 있다. 이 문제를 명백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전적 자유주의, 시장자유주의, 신자유주의를 구분하여 그 내용상의 차이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18세기 이후 서양의 정치철학에서 등장한 사상으로 처음에는 봉건적 질곡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근대적인 국가체제를 만들어 가는데 매우 진취적인 역할을 한 정치사상이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 또는 20세기 초반 이후 사회주의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자본주의체제를 방어하는 보수적 이념으로 발전해 왔다.
그 기본 내용을 보자.
① 자유주의자들은 사회형성이 과정의 산물이어야만 한다고 본다. 과정은 모든 사회성원의 참여와 상호작용의 결과일 때 정당화된다. 예를 들어 이들은 시장이 가장 훌륭한 예라고 본다. 따라서 개인들의 자발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어떤 외부로부터의 간섭도 부정한다.
② 특히 자유주의자들은 부의 분배는 시장의 결과일 때 정당(just)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부의 재분배가 국가정책의 목표 자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③ 자유주의자들은 사회를 인위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며 어떤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 차원의 의식적 노력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 생각은 과거의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반대의 과정에서 특히 강조되었고 신자유주의 이념이 도래한 이후 극단적인 탈규제 정책에 영향을 주었다.
④ 이들은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정당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 또한 '정당'하다고 본다.
⑤ 선악에 관한 어떤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선한 인간이건 악한 인간이건 동등한 사회적 권리를 가져야 마땅하며 타인에 대해 위해적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인간 자체를 가지고 선악을 논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⑥ 모든 사람은 형식적으로 평등하지만 생물학적인 능력의 차이는 인정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미 정치적 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가 거의 실현되었기 때문에 고전적 자유주의는 더 이상 중심적인 대립지점을 형성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는 인권단체들이 주장하는 수많은 인권 침해의 사례에서 보듯이 여전히 자유주의의 기본 가치들로 받아들이는 많은 것들이 여전히 확보되고 있지 않다. 어떤 탈근대적인 사상도 자유주의를 통과하지 않고는 어렵다고 하는 말은 한국처럼 여전히 집단적인 강제가 개인의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사회에서는 일정한 진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자유주의 따로 신자유주의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환경에서는 자유주의=신자유주의가 될 수밖에 없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는 자유주의 일반에 대한 부정을 어쩔 수 없이 내포하게 된다. 혹자는 자유주의의 진보성을 내세워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옹호하거나 적어도 신자유주의가 아닌 자유주의 일반의 특징을 구분해 내려고 애쓰기도 하는 데 이는 잘못된 시도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자본주의의 퇴행적 형태인 제국주의와 '정상적' 자본주의를 구분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편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정치적 권리에 집중되어 있고 자본주의가 확립된 이후 점점 더 많은 사항이 시장을 통해 해결되고, 또 그만큼 시장을 중심으로 갈등이 증대했기 때문에 사상의 중심이 시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이동했다. 이런 환경 하에서 시장경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회주의 사상과 대비되는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시장자유주의가 출현하였다. 모두가 공감하지는 않지만 시장자유주의의 대체적인 공통분모를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① 이들은 시장을 선으로 본다. 따라서 시장은 가급적 확대되는 것이 좋다고 보며, 특정인을 배제하는, 패쇄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영역은 제거되고 모두에게 거래의 가능성이 개방되는 것을 높게 평가한다.
② 사회의 중요한 측면은 시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고 특히 소득과 부의 분배는 그래야 한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아래에서 보겠지만 이 명제를 더욱 확장하여 모든 사회생활이 시장에 의해 결정, 규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데 있다.
③ 당연히 이들은 국가에 의한 계획경제를 반대하며 기타 어떠한 시장간섭도 일단은 악으로 본다.
④ 이상적인 시장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시장력(market force)이 생성하지 못하는 어떤 재화나 서비스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고전적 자유주의와 함께 모든 유토피아에 반대하지만 실은 그 자신 하나의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⑤ 이들은 기업을 시장의 중심적인 존재로 본다. 따라서 기업은 시장에서 특별한(특권적인)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한 기업은 반드시 기업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사실 기업을 기업가라는 어떤 특수한 사회집단인 기업가에게만 맡겨한다는 선험적인 이유는 없다. 왜 노동자, 관료, 심지어 성직자가 기업을 전부 또는 일부라도 책임지면 안 되는가? 시장 자유주의자들의 신념에 따르면 기업가만이 기업을 책임져야 한다.
⑥ 실제 성숙한 시장경제는 「사업가 집단」이 지배적인 집단으로 되어 있다. 대체로 그들은 특별한 언어, 문화, 인맥을 형성하면서 기업, 비영리 조직, 국가 기관 등을 통제하고 있다. 결국 시장자유주의란 이러한 현실을 정당화하는 이념이다. 특히 미국 같은 사회를 보면 대학의 필수 교양과목으로 주류경제학(시장자유주의 이념이 구현된 학문체계)을 공대학생 까지 포함하여 누구나 배운다. 바로 주류엘리트들의 기본 언어와 담론체계인 시장자유주의를 배우기 위해서이다.
이상에서 시장자유주의는 사회를 시장을 중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회주의가 경제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체제를 비판하는 것에 대응하여 시장을 옹호함으로써 체제를 정당화하려 하는 데 기인한다. 시장 자유주의는 2차대전 이후 서구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경합하면서 세력다툼을 벌였고 결과적으로 서구 유럽의 경우에는 두 사상이 적당히 타협을 이룬 수정자본주의 체제가 성립한 이후 자유주의에서는 개혁적 자유주의1)가 그리고 사회주의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두 개의 사상적 중심축을 형성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세력이 처음부터 미약했던 미국에서는 위에서 열거한 특성에 가장 근접한 시장자유주의가 상당한 세력을 유지했고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라는 급진적인 사상의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이상의 두 사상과 구분되는 점, 나아가 급진성은 자유주의와 시장자유주의를 더 이상 여지가 없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말고 나간데 기인한다. 신자유주의는 단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분배를 이른바 시장원리로 수행해야 한다는 데 머물지 않고 모든 인간생활이 시장을 통해 이루어져야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사회를 완전히(100%!) 시장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야말로 과격한 급진사상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시장의 숫자, 빈도, 반복성을 극도로 강화할 것을 주장하고 거래를 형식화(표준화)2)할 것을 끊임없이 주장하게 된다. 이 이념의 전형적인 특징을 살펴보자.
① 시간과 공간상에서의 시장의 확장:세계적 규모의 시장은 이미 수세기 동안 존재해 왔다. 신자유주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시장영역을 발견한다. 이들은 저녁 시간에 상점이 문을 닫게 되면 시장이 축소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아담 스미스가 다시 살아나서 이런 주장을 듣는다면 놀랄 것이지만... 신자유주의자에게 23시간 경제는 정당화될 수 없다. 24시간 시장이 열리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② 계약의 극대화:신자유주의자들은 커피한잔을 거래하는 것보다 수많은 소량 거래하는 것이 좋다고 보며 기업내부의 활동을 분할하여 거래와 계약의 수를 늘리는 것이 그것을 방해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좋다고 본다. 한전의 민영화와 관련하여 찬성론자들이 새로운 기법과 기술의 발전으로 매 시간대 별로 장소별로 전기도매 "시장"을 열면 지금처럼 한전과 소비자가 한번 거래하고 끝나는 것보다 성과가 좋다는 주장이 좋은 예이다.
③ 계약기간 감축: 이 주장은 특히 노동시장과 관련하여 노동계약은 장기, 또는 무기한 계약이어서는 안되고 계약기간을 명시할 뿐 아니라 짧을수록 좋다고 본다. 언제 사정이 바뀔지 모르므로 장기 계약은 비효율을 낳는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이 일반 제조품 시장보다 비시장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제조품이 시장 수요자를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가격을 달리 하듯이 '노동력 상품'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④ 반복적인 평가를 통해 시장력(market forces)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고용계약의 경우에는 계약 기간 내에라도 연속적인 성과측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요즈음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면 현재 물건의 이동상황 정보가 시시각각으로 구매자에게 전달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과도한 시장정보와 이를 이용한 평가의 예가 된다.
⑤ 옥션방법의 확산:경제성이 있는 그 어떤 것도 거래의 대상에 넣어야 마땅하고 이 경우 가장 좋은 거래 방법은 공매 시장이라고 본다. 최근 3세대 이동통신과 관련하여 일종의 주파수 공매를 한국을 보함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실시한 것이 좋은 예이다.
⑥ 인위적 거래의 범람: 신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 거래는 단지 어떤 기초자산이나 상품에 국한 될 필요가 없다. 주식을 단지 사고 팔 뿐 아니라 그 주식의 사고 팔 권리(옵션)을 거래할 수도 있고 다시 옵션의 옵션도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오늘날 통계적으로 파악되지도 않는 어마어마한 수의 파생상품이 거래되는 것이 이 경향성과 관련되어 있다. 얼마전 도산한 엔론은 날씨 옵션도 팔았다고 하는데 미래 어떤 시점의 일기가 좋은가 나쁜가 하는 사항도 거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해수욕장의 상인들이 올 사업을 망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데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물으면 "그것은 사람들이 시장을 잘 이용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즉 만약 해수욕장 상인들이 강수량이 일정 이상으로 증대하면 돈을 받는 옵션을 샀더라면 비가 많이 와도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러면 상인은 "그런 옵션 시장이 어디 있어야 사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면 신자유주의자는 "그러니까 시장의 종류를 극도로 늘리는 신자유주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답할 것이다.
※파생상품의 만연은 시장거래에 의존하는 정도가 증대하고 이에 따라 개인이 직접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가 증대하기 때문에 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발생하는 측면도 있다. 위험 자체가 상품화되는 것이다. 거래에서 한 사람이 위험을 떠 안는 대신 프레미엄 및 예상되는 이익에 대한 권리를 얻고 이 가격을 지불한 당사자는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식이다.
※ 거래의 종류와 횟수가 증대함에 따라 계약과 관련된 비용은 엄청나게 증대하여 종종 기술발전에 따른 비용감축분을 초과하는 거래비용 증가가 초래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함께 변호사, 브로커의 수입은 엄청나게 증대했지만 그것이 경제전체적으로 볼 때는 중대한 낭비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자산의 유동화가 증대하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다. 기업에 자금을 장기로 대출해주고 수익을 기대라는 일은 주위에 엄청난 수익기회를 포기하는 셈이 되므로 은행은 대출채권을 기반으로 하여 채권을 발행하고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는데 다양한 형태의 자산담보부 증권(ABS)이 이에 해당한다. 신자유주의의 확대는 자산유동화를 극도로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다.
⑦ 거래 속도의 증대:정보통신 혁명의 결과 거래 속도는 증대했으며 이 점을 신자유주의들은 좋은 일로 반긴다. 가장 단적인 예가 주식시장에서 데이 트리이더(day trader)의 증대이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데이 트레이딩은 어떤 좋은 경제적 효과도 없이 단지 사람들의 사행심을 극단적으로 증대시키고 황폐화시킨다고 주장하겠지만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이상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간 것으로 보일 것이다.
⑧하부시장(sub-market)의 팽창: 한국의 기업에도 소사장제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말이 아닌데 이는 조직내부 가장 깊은 곳까지 시장원리를 확산시킨 경우에 해당한다. 신자유주의는 직장 내에서도 서로 격렬히 경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무수한 계약과 시장의 연쇄가 가능한 한 조직 내외에 확대되어야 한다.
※ 강도가 강화된 경쟁의 만연은 다시 파생적 시장을 창출한다. 한국의 살인적 입시전쟁이 수험생의 대상으로 복습시켜주는 과외, 선행학습과외, 심지어 수험생 스트레스 풀어주는 활동과외 까지 수많은 파생서비스시장을 낳듯이 일반 시장의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파생상품의 만연을 가져온다. 시장 위험이 증대함에 따라 개인의 경제적 위험을 커버해주겠다는 온갖 위험관리서비스(예를 들어 자산관리사), 보험 상품의 만연도 있다.
한편 신자유주의는 단지 경제현상에 대한 극단적인 시장 지상주의를 넘어 사회생활에 관한 보편적 이념으로 주장되고 있는 측면이 많이 있다.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살펴보자.
① 신자유주의는 시장 이외의 사회영역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비경제적 영역도 시장원리로 조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시장용어를 이런 조직 설명에 원용하는 경향이 있다. 상식적으로 국가와 기업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CEO 대통령이라는 말이 매우 큰 미덕으로 칭송된다. 요즈음 대학의 경우에도 보면 홍보자료에 우리 대학의 총장은 CEO 총장이라는 선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영향이다. 통상 대학의 연구, 교육활동은 명백히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그 결과물이 반드시 시장에서 유용한 것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어 왔고 또 극단적 시장논자가 아니라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은 설령 그렇다고 해도 대학의 "생산성", "경쟁력"은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은 시장원리에 포섭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들은 국가, 대학 뿐 아니라 지방정부, 다시 그 이하의 지역자치단체는 서로 경쟁하는 조직으로 보고, 기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한다.
② 신자유주의는 더 나아가 인간이 시장을 위해 존재하지 시장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선이며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무언가 결함이 있는 존재로 본다. 시장의 스트레스는 그 자체로 선한 것이므로, 강한 스트레스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경쟁은 아름다운 것이고 시장의 승리자는 선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좀 지나친 것 아닌가 라고 반문하는 독자라면 일전의 월드컵 경기를 생각해 보라. 피 말리는 "축구시장"의 축제인 월드컵에서 남보다 활약이 두드러진 선수들을 영웅시하는 일반인의 마음속에는 이미 신자유주의가 깊이 침투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최고의 비판자인 마르크스도 실은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였다. 자본주의에서 주인은 자본이라는 물질이며, 자본주의에서는 결코 물질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경우에는 자본주의의 악인 몰인간화 경향을 비판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전개했지 그것을 선이라고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자본의 정신, 자본의 이념은 사람들의 정신에 침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비경제적인 관계가 시장의 원리로 조직될 수 있다고 주장한 적은 없다. 즉 사회는 경제의 기반이 되지만 결코 경제에 완전히 해소되어 사회영역은 소멸한다고는 보지 않은 것이다.
③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의 확대하는 이념은 특별히 신자유주의적이다.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은 인간의 신성한 도덕적 의무로 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특히 칭송한 신지식인이 바로 이런 인간상의 전형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세계 1위를 달린다고 하는 성형의 경우도 칭송 받을 만한 일이 된다. 성형을 통해 노동시장, 결혼시장에서 자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얼굴을 온통 뜯어고치는 사람은 훌륭한 인간의 예가 된다.
※그렇다면 도저히 시장에서 자신을 팔아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 이들의 곤궁은 신자유주의에서 볼 때는 마땅히 본인의 책임일 것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란 ①전통적인 경제영역에서 시장을 극도로 강화하고 확대하고, ②비경제적인 영역까지 포함하여 인간생활 전반을 시장원리로 작동시키고자하는 이념이며 따라서 시장에 전인격을 포획하고자 하는 기획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어떤 이념도 -그것이 과격한 것이건 온건한 것이건 상관없이- 반드시 그 발생의 기원을 가지고 있으며 현실에 존재하기 위한 물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이념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발생의 기원과 물적 토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II. 신자유주의의 발생기원과 존립의 물적 토대
신자유주의 이념은 기성 정치인, 기업가, 경영자, 언론인 등등 다양한 신흥 지배층에서 많건 적건 공유되고 있으나 그 이념을 거의 완벽한 형태로 자신의 영혼(soul)으로 하고 있는 존재는 오늘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금융자본이다. 특히 투기적인 자본, 그 중에도 헤지펀드가 주목의 대상이 되지만 사실 금융자본을 투기적 자본과 투자자본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 은행을 통해 환류 하던 금융자산과 오늘날 직접 자본시장을 무대로 활동하는 금융자본의 영혼이 달라졌다면 그 물적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완전히 자유롭고 유연한
시장에 의해 조직된 사회를 이상향으로 추구하는 이념은 오래 전부터 존재한 순수한 자본의 이념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에 대해 저항하는 세력, 특히 노동자세력의 존재를 전제로 하며 이 저항의 정도만큼 자본의 정신은 약화된 형태로만 구현되었다. 보다 순수한 자본의 이념이 구현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본에 대한 저항세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의 동전의 이면이다. 순수한 자본의 영혼, 이념에 접근한 신자유주의의 득세도 이러한 일반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통상 신자유주의 정책의 중심적인 내용이라고 일컬어지는 노동유연화, 복지축소, 규제완화, 민영화,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는 바로 저항세력의 약화에 의해 가능했고 이러한 정책이 보다 완전하게 수행된 나라에서 자본의 자유는 극대화되고 모든 사회성원의 시장에의 포획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선진국의 경우 70년대 중반 경제위기가 오기 전까지 수정자본주의체제가 지배했던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수정자본주의란 자본의 운동을 국민국가가 포섭함으로써 일국 차원에서 자본축적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을 일정정도 사회화하고 국가가 그것을 적절한 정책수단으로 재분배함으로써 경제적 안정을 기하고 사회적 형평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이 환경 하에서는 자본의 이윤욕구 뿐 아니라 노동의 삶의 질에 대한 요구, 사회적 안정, 형평, 균형발전 등등의 다양한 요구가 동시적으로 충족되도록 사회적인 강제가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란 이러한 자본에 가해지는 '족쇄'를 해체시키기 위한 정책을 핵심 내용으로 하며 자본이 시장에서 무한 자유를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한시도 달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를 더욱 세차게 달리게 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하려는 정책이다. 70년대 중반 이후 고질화한 자본의 수익성 위기와 저성장 문제를, 자본이 중심이 되어 이른바 시장원칙에 따라 급진적인 구조조정을 수행하고 수익성이 보장된 투자출구를 확보하여 고수익, 고투자, 고성장의 괘도로 다시 진입한다는 구상이었다.
이 구상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 당사자에게 떠 남기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익이 되면 노동자를 이용하다가도 필요 없게 되면 신속히 정리해고하고 그에 따른 충격은 노동자 개인이 짊어지라는 것이고 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고 국가조차 이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개인이 한가지 기술, 기능을 익히기 위해 10년을 투자했는데 갑자기 시장에서 쓸모 없게 되었다고 하면 그 비용은 개인이 져야 한다는 식이다. 왜? 그러한 잘못된 "인적투자"를 한 개인에 책임이 있으므로. 노동자 뿐아니라 극빈층, 지역사회, 환경 등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유사한 논리가 적용된다.
주요국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승수효과」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한나라의 자본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성공하여 '자유'를 획득하면 그 나라로 타국의 자본도 몰려들며 타국도 자본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유사한 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정책적 기조로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WTO체제처럼 전세계적인 규모로 무역자유화정책이 추진된 경우도 있지만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유무역협정, 투자자유협정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미 각국간 신자유주의 개혁의 경쟁상태에 돌입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III. 신자유주의의 귀결과 대안
신자유주의 정책이 실제로 실시되어 나타나는 효과는 다층적인 것이고 세계의 수많은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신자유주의 정책 가운데 무역 및 투자자유화는 말하자면 그 영향의 관점에서는 표피적인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구성한다. 영향이 표피적이라 함은 무역이 자유화되는 것은 대외적 거래의 개방화를 의미하므로 외부의 영향에 한 경제가 노출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 영향은 내부의 구조가 어떠하냐에 따라 얼마든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민영화, 복지축소, 규제완화는 시장에 노출된 개인에게 모든 보호막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말하자면 추위가 왔을 때 무역자유화는 피부에 한기를 주는 것이라면 내부 구조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뼈속까지 한기가 밀어닥친다는 뜻이다. 물론 새로운 환경 하에서 돈을 더 많이 번 사람들은 더 좋은 집과 따뜻한 옷,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이 한파를 피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의 사람에게는 생존의 불안감을 증가시킨다. 무역이 자유화되고 내부구조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편되는 가운데 산업 자본, 금융자본이 세계적 차원에서 활동의 무한 자유를 획득하게 되면 개인은 하나로 통합된 거대한 대양에 일엽편주 돗단배에 의지해 항해를 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수시로 닥치는 엄청난 파도와 폭풍을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가라는 거대한 과제를 안게 되는 셈이다.
무역 및 투자의 자유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본조건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생산 및 재화의 유통이 점점 더 세계화되는 것은 신자유주의정책과 직접 관련시킬 수 없는 역사적인 추세이다. 문제는 이 과정을 인위적이고 급진적으로 추진하는 데서 주로 생긴다.
생산활동은 많은 자원을 직접 그리고 간접적으로 동원해서 이루어지는 데 비해 자본주의 기업은 자기 기업의 좁은 이윤성만을 고려하여 움직이고 필요에 의해 동원한 자원들이 어떤 이유로 필요 없어지면 그 자원소유자와의 거래나 계약을 즉각 종결시키려하기 마련이다. 한 기업이 일정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갑자기 떠나 버리면 뒤에 남겨진 노동자, 협력업체, 지역의 유통망, 지역사회의 기반시설 등등은 어떻게 되는가? 국가가 개입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사회화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기업과 노동자들의 세금을 가지고 손실을 집중적으로 전가 받는 집단에 일부 재분배하고 고통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투자가 자유화되어 있어서 어떤 지역을 떠난 기업이 외국으로 이전하는 경우라면 어떻게 되는가? 만약 타국에 비해 높은 세금을 물린다면 처음부터 이 나라로 들어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각국이 경쟁적인 투자유치를 벌리는 상황은 결정적으로 자본에 유리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그 나라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 기업이 높은 세금을 물게 되고 보다 유동적인 기업은 세금을 덜 물게 된다. 만약 각국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비용을 시장참여자 개인에게 모두 물리는 경우라면 어떻게 되는가? 이 때는 그야말로 자본의 무한 착취에 개인이 노출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우리가 무역/투자 세계화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투자자유협정(BIT)에 반대하는 주요한 이유에는 보면 어떤 국가의 조치로 피해를 입은 기업이 투자국의 국가를 상대로 제소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투자활동이 야기하는 예상하지 못한 부정적 결과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여 이를 시정하는 것은 국가 주권에 속하는 고유한 의무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발상이다. 자본은 이익을 그야말로 사유화하고 비용은 투자국의 국민에서 전가시키겠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사회적 안정망, 그리고 형평성과 심각하게 마찰을 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진국의 경우는 기존의 안전망이 약화되는 문제를 갖게 되는 반면 안전망 자체가 부재하거나 초보적인 상태에 있는 중진국 이하의 국가들의 경우는 경제적 사회적 불안정이 극대화되는 경향을 갖게 된다. 자본이 순전히 선진국간에 이동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효과는 발생한다. 자본의 가동성과 노동 및 기타자원의 비가동성이 존재하는 한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적 안전망, 재분배 메커니즘은 많건 적건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내부적으로 시장의 자유와 유연성을 최대로 보장하면서 강한 복지국가를 통해 개방에 따른 충격을 국가 차원에서 흡수하는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모델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더욱 진전되면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다른 주요 선진국도 유사한 모델을 채택하여 자본 유치 경쟁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경우라면 물론 생존력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과거처럼 자본을 국민국가 수준에서 가두어 두고 일일이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개방체제에서 마음대로 영업 활동을 하되 그에 따른 온갖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일정정도 사회화하는 모델, 그러니까 자본과 그 반대 세력의 거대한 역사적 타협의 형태가 될 것이다. 여타의 약소국의 경우는 선진국의 정치적 변화에 따라 적응하는 형태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중진국이 독자적으로 새로운 흐름을 개척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이러한 타협, 또는 다른 형태의 타협이 어떻게 구체화될지는 반신자유주의 세력의 성장과 그 세력을 기반으로 한 정치력에 의존하여 결정될 것이지만 어떤 타협에 대해서도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금융자본 우위의 체제는 반드시 종식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산기반과 유리된 금융자본의 질주는 자본의 영혼이 광적인 상태로 치닫는 근본 원인이다. 자본이 생산을 통해 이윤을 얻는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지만 자립화한 금융자본은 어떤 사료가 공급되지 않아도 무한정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다는 환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다. 극단적으로 유동화한 금융자본은 생산기반과는 관계없이 주어진 기간 내에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기 마련이고 단기적 이익에 몰두하는 금융자본이 경제의 주도권을 잡게 되면 경제는 전체적으로 불안정화하고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한다. 세계화에 따른 불확실성과 위험의 증대가 금융의 비대화를 초래하지 그 역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러한 위험은 네덜란드 모델에서처럼 국민국가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위험의 극대화, 그에 따른 금융활동의 팽창, 또 이 금융활동의 팽창에 따른 투기화와 위험의 심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대안을 통해 이러한 전도된 주장을 비판해야 한다.
IV. 맺음말
신자유주의 이념과 정책은 과거 개입주의에 대한 자본의 반발이 극단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개입주의가 자본주의를 극복한 것도 아니고 단지 자본의 성장을 전제로 하여 성립한 취약한 체제였다고 할 때 자본의 반격은 능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념과 정책은 일방적이며 광적인 것이고, 조만간 전세계경제에 대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남기게 될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이 과도한 광기에 도전하는 자본의 논리를 경제적 사회적 안정과 양립 가능하도록 최대한 억제하는 이념과 정책이 다시 주도권을 잡도록 정치적 역량을 증대시키는 일이다.
<보론>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와 밀접히 관련된 문제를 내포한다. 보론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자주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를 자세히 살펴본다.
①세계화 일반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구분되어야 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개념적으로 양자는 구분되어야 한다. 우선 세계화는 인류사의 보편적인 과정의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물론 세계화는 자본주의를 통해 결정적으로 가속화된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성과인 물질적 생산력의 해방 자체가 분업의 세계적 전진을 내포함으로 세계화는 역사발전의 조건을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적 세계화가 자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만 세계의 교류가 촉진되고 기능한다는 점에서 전 인류의 전인격적인 교류양식의 확립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자체만큼이나 궁극적으로 극복의 대상이다. 그러나 넘어야 할 대상과 피해야 할 대상은 엄연히 다르다. 과거 좌파이론이 자본주의는 건너뛸 수 있고 따라서 피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 사회주의 붕괴에서 보듯이 자본주의는 통과야 할 그 무엇이지 피하고 생략할 수는 없다. 따라서 만약 반세계화론이 혹시 이러한 역사법칙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세계화를 비판하고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자본주의 또는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진전을 통해 증대된 부와 생산력을 인류의 필요에 부응해 사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진보주의적 관점에서 정당하다. 또한 후진국의 노동자의 초과착취를 반대하는 것은, 그 착취의 존재가 선진국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강화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진보주의자가 마땅히 지지하는 입장에 된다. 그러나 어떤 환경론자가 "환경 파괴의 문제는 인간의 과도한 생산과 소비에 있다. 따라서 자원의 소모 자체를 막아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자본주의라는 「생산관계」가 문제의 원천이 아니고 자본주의 「생산력」 자체가 문제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 되고 진보주의와는 상충한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일부 환경론자들은 세계의 주요 자원을 가장 적극적으로 개발, 소비하는 일차적인 당사자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므로 종종 이들 기업을 공격대상으로 삼는다. 이들은 인류가 자본주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극복할 계기를 발견해야 한다고 보지 않고 피해야 할 악으로 보기 때문에 자본주의 세계화도 그런 관점에서 반대하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는 반대로 자연보존, 인간과 자연의 평화공존은 인간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연을 개발하고 자연을 보다 깊이 연구함으로써 자연에 다 가까이 다가가고 자연을 파괴함이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생산력 자체를 부정적으로 공격해서는 안되듯이 세계화 자체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류가 인간과 인간의 공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성취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일 뿐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화의 특정 형태,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자본주의의 퇴행적이고 매우 반동적인 운동이라고 본다. 특히 금융자본의 세계적 규모에 있어서 완전 자유, 주도권의 장악은 세계경제의 불안정과 불건전성(=투기성)이 증대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물론 이러한 금융자본의 운동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고 각국 내부의 다양한 방면에서의 신자유주의 개혁, 대외적인 자유화가 상승작용을 한 결과이다. 예를 들어 금융자본의 과도한 힘은 노동시장 유연성의 심화, 노동시장의 금융시장에의 종속을 떠나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민영화, 규제완화, 복지 축소, 자유화 등등이 상호 작용하면서 결과적으로 금융자본의 헤게모니가 탄생하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지 금융자본의 폐해에만 집중하는 것은 사태의 뿌리를 간과하고 그 표피적 결과만을 보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금융자본은 「순수지속」(pure duration)의 개념을 자신의 영혼 속에 가지고 있다. 시간당 수익률이 얼마인가라는 판단에 있어서는 어떤 자연적 시간은 사라진다. 그러나 실제의 생산활동은 이제는 1차 산업 이외에는 많이 극복했다고 하나 여전히 계절의 리듬 위에서 일어나며, 생산력의 확보와 개선은 구체적인 공간 안에서 서서히 진행될 뿐이다. 금융자본의 급작스러운 철수로 수십 년 성장해온 산업적 생산력, 지역사회를 하루아침에 파괴되는 경우 노동자, 지역사회 뿐 아니라 산업 자본 나아가 자본 전체의 관점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생산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자본의 형태가 주도권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 금융자본의 이러한 영혼은 자본의 정신의 퇴행, 광적 착란상태를 의미할 뿐이다.
자본주의가 다른 어떤 체제보다 생산력을 가장 급속히 발전시킨다고 할 때, 그 핵심은 수익성에 따라 자원이 신속히 결합 해체되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익성이 없는 노동자는 결국은 해고되고, 그런 기술과 산업에서는 철수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그기에 고용된 노동과 자본이 자연적 시간 차원에서 서서히 감가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순간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자연적인 감가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요구할 때는 강제적인 감가도 이루어질 수 있으나 이 때 발생하는 손실은 적절한 방식으로 사회 전체와 철수한 기업 자신이 적절하게 분담하게 된다. 금융자본이 아무 비용 없이 순간적으로 철수할 수 있고 또 그것이 효율성 기준에 비추어 정당하다는 생각은 이 모든 문제로부터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IMF 사태 이후 국내외의 시장주의자들이 수익성이 없는 기업은 당장 망해야 한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없이 이야기했고 사람들은 겁을 먹고 어떤 반론도 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의 기업의 30% 내외가 이자보상배율이 1이 되지 않았으니 이중 반만 망해도 한국 기업의 15%는 하루아침에 망하고 그기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되어도 좋다는 무서운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금융자본, 나아가 신자유주의자들의 비이성적 광기의 전형이라 할 것이다.
정도가 덜 하기는 하지만 WTO 협상에서 제한 없는 무역자유화라는 정신에서도신자유주의의 광기는 발견된다. 오로지 비교우위의 관점에서만 각국이 생산을 하라는 주장, 그것도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여 단시일 내에 성취해야 한다는 생각은 생산과 인간 생존의 자연적 기초를 무시한 폭력적인 발상이다.
②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국의 역할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인위적이고 폭력적이며, 세계화라는 일반론적 관점에서 정당화하기 힘든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과정을 극단적으로 주도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는 그야말로 자연적 과정, 역사필연이고 따라서 이 과정을 주도하는 세력은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 군사대국, 정치적 헤게모니 세력이 없다면 절대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국제적인 기구인 IMF, 세계은행에 주도권을 강하게 유지하려 하고 자신이 주도권을 가진 조직과 경쟁하는 국제 기구의 탄생을 극도로 방해해 왔다.
만약 유럽이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가정해 보라. 유럽은 여전히 내부적으로 과거의 수정자본주의 체제의 요소를 많건 적건 유지하고 있고 따라서 대외적으로도 그들이 주도권을 쥐는 한 결코 신자유주의적인, 즉 자본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운 세계질서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자국 내부에서 자본에 단기수익성이라는 강한 압력이 없는 경우에는 외부에 대해서도 그러한 방향의 압력을 가하려는 힘이 감소할 것이다.
물론 미국이 주도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의 효과가 순전히 미국의 이익, 미국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실현시켜준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복잡한 힘의 충돌의 결과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미국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는 말속에는 그 주도권을 인정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많은 추종세력이 있다는 점이 내포되어 있고 이들은 서로 경쟁하는 세력이다.
③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국민국가
자본은 국적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공권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사유제산 제도와 시장질서, 화폐는 공권력이 없다면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는 것들이다. 또한 자본주의는 자체의 '광기'와 경향성에 의해 시시때때로 실패하며 경제에 교란과 불황, 공황을 야기한다. 신자유주의자들도 97년 아시아 위기, 미국의 금융기관 도산 위기 등에 개입하고 이른바 공적 자금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정책에 누구보다 앞장을 서서 찬성했다. 국가가 공적자금을 동원하여 기업을 구제하는 행위는 과연 자본주의적인가? 물론 아니다. 가장 비자본주의적인 것이다. 국가가 개입하여 비용을 사회화하는,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자도 그 존재이유를 인정하는, 자본주의에서 마지막 남은 '사회주의 영역'인 것이다. 자본이 원하는 것은 국가의 소멸이 아니라 자신이 '대형사고'를 쳤을 때만 구원해주고 나머지 모든 경제적 문제는 자본이 사적인 영역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자유를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공권력의 현실적인 존재 형태는 국민국가이다. 추상적인 공권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세계국가, 세계정부는 인류의 꿈이기는 하되 아직 요원한 일이다. 따라서 자본이 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국민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미국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 세력, 초국적 기업, 금융기관이 미국이라는 국가의 국제적인 힘에 의존하는 것은 두말할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말로는 국가개입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렇게 그 어떤 세력보다 국민국가를 필요로 한다. 단지 그들은 국가가 자본의 세계적 차원의 자유를 위해서 활동을 하되 자본의 활동을 제약하거나 다른 필요에서 개입하지 말아 달라는 것뿐이다.
언술을 떠나 현실 자체를 본다면 자본과 국민국가는 갈등과 협력의 관계에 있다. 2차 대전 이후 상당기간 자본은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국민국가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노동자 등 반자본주의적인 세력이 국민국가 권력을 점점 더 장악해 들어가자 이에 반발하게 되었고, 국민국가의 '포위망'을 벗어나는 가장 강력하고 유효한 수단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강하게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요구하는 이런바 국제 표준은 영업의 자유에는 기여할지언정 그동안 국민국가의 주도 하에서 각국이 구축해 놓은 안정적인 경제적, 사회적 재생산망과 충돌하고 있다. 세계화론자들은 세계의 각 지역에서 야기되고 있는 불안정과 불평등의 증대에 국가가 개입하여 시정하라는 요구를 세계화 시대에 국가 개입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마르크스조차 자본은 모든 지역적인 것을 파괴하면서 단일의 세계시장을 건설해 나간다고 말했다. 이는 역사적 필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러한 일반론 차원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 첫째, 만약 모든 규제를 없애고 완전한 의미에서 자유경쟁이 촉발된다면 그 경쟁은 일방적으로 강자에게 유리하다. 현실에서 각국의 기업은 그 동원할 수 있는 자원에 있어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쟁은 언제나 대기업의 승리로 끝났다. 중소기업은 결국 가능한 최대한의 이윤을 대기업에 넘겨주고 종속적인 지위에 머물거나 대기업의 이익에 반할 때는 도산했다. 승리한 자본의 출신지역에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이러한 양극화는 국가 간 성장의 차별화로 나타날 것이다. 현재도 세계의 가용 투자자금에서 선진국의 경우는 미국, 개도국의 경우는 중국이 투자자금을 독식함으로써 불균등 성장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둘째, 거시경제적 불균형은 이제 국제적 전세계적 차원에서 누적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해결할 공권력의 주체는 부재함으로 인해 세계경제의 불안정화는 가속화 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자본의 자유가 부메랑이 되어 자본자신에게 돌아오면서 자본의 부자유로 귀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복수의 여신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자본은 모른다.
셋째, 다소 고급의 문제에 속하지만 원리상 자본의 논리는 이익의 사유화와 비용의 외부 전가를 내포하고 있다. 빈곤층의 증대, 환경의 파괴 등 수많은 비용이 자본이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세대 및 미래의 세대에게 남겨지는 데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에 대해 이 비용에 대한 책임을 면제시켜준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공권력이 각각의 경쟁하는 국민국가로 분할되어 있는 현실을 자본이 극대로 이용하는 체제의 창출로 이끈다. 세계의 자본이 격화되는 경쟁환경에서 비용이나 기술의 면에서 유리한 지역과 자원을 선점하기 위해 과도한 투자를 집중하는 한편, 일단을 진출했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남보다 먼저 빠져나가려는 과도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사회전체에 남겨지는 비용은 급격히 증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는 자본의 유출을 억제하기 위해 또는 자본을 유인하기 위해 사회적 안정망을 강화하기 힘든다. 자본에 세금을 올릴 경우 자본이 유출될 것을 염려하여 노동이나 국제적 가동성이 떨어지는 경제 영역에 세금이 더 부과되는 한편, 전체 정부 수입은 준다. 따라서 사회안정망의 유지를 위한 재원은 압박을 받게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본의 이윤추구 활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국민국가를 매개로 하여 내부화되는 메카니즘이 파괴된다. 이것은 사회적인 갈등을 누적시키고 사회적 균형을 파괴할 것이다. 자본은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지금까지 수정자본주의체제하의 국민국가는 진보진영에 포획되어 이윤을 희생하고 과도한 소득을 노동자와 일반국민의 복지를 위해 재분배해 왔다"고. 그러나 이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가 그 반대의 극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자본의 가동성과 모순되는 공권력의 국민국가들간의 분열, 자본의 가동성과 다른 자원의 비가동성이라는 현실적 조건 하에서 만약 가장 유동적이고 생산으로부터 자립화한 금융자본에 주도권이 장악된다면 그것은 가장 불건전한 이윤추구의 동기, 투기적 이윤추구 동기를 필연적으로 극대화 할 것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떡을 서로 차지하려는 유동적 금융자본간 경쟁은 자본주의의 광기와 퇴행적 행태를 낳을 것이다. 자본주의라고 해도 그 생산력의 고도화에 걸 맞는 생산관계가 정착해야 일정한 정당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 조건들을 파괴한다.
주:
1) 개혁적 자유주의는 대체로 시장이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없고 또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보아 국가가 시장에 일정한 정도 개입할 뿐 아니라 어떤 경우는 시장을 대신해서 국가가 필요한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