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5. 목요일
오래 전부터 계획한 제주도 일주 라이딩 여행을 시작했다.
아들과 같이 라이딩에 필요한 물품을 꾸린 후, 자전거 바퀴를 분리해서 승용차에 싣고 오전 8시 30분쯤에 의정부에서 출발하여 완도항으로 향했다. 나는 MTB, 아들은 로드바이크.
추석 다음 날이라서 고속도로는 지체와 정체가 반복됐다. 정체가 심한 구간에서는 국도와 지방도로 우회도 했으나 크게 시간을 단축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완도항에 도착하니 저녁 6시가 다 되었다. 무려 9시간 30분이나 소요되었다.
애초 계획은 해남의 윤선도유적지와 강진의 다산초당에 들를 예정이었으나 도로 정체로 인한 시간 지연으로 실행할 수가 없어서 완도항으로 직행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이틀간 풍랑이 심해 파고가 높아 연안여객선이 출항하지 못했기 때문에 완도항 주변과 숙소들은 발이 묶인 수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완도항에 들러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었다.
10. 6. 금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자전거를 조립한 후 완도 연안여객터미널로 가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예매해 놓은 제주행 승선권을 발권받았다.
이틀간의 풍랑이 잠잠해진 게 정말 다행이었다.
레드펄호(2,862t, 정원 365명)에 승선하여 자전거는 맨 아래의 차량 보관 화물칸에 두고 객실로 올라갔다.
레드펄호는 08:00에 완도항을 출항해 추자도에 들렀다가 12:20에 제주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들에게 급한 문제가 발생하여, 일을 마무리 지은 후 밤늦게 안덕면 숙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제주항에서 13:40에 나 혼자 라이딩을 시작했다.
밤새 내리던 비가 다행스럽게도 정오쯤 그치기 시작해 라이딩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
용두암을 거쳐 제주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 '제주환상자전거길'의 사정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무단 주차 차량, 좁은 폭, 거친 길 표면…
그러나 제주 시내를 벗어나자 환상자전거길의 사정은 급속히 좋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1132번 지방도 양쪽으로는 대부분 넓고도 상태가 좋은 자전거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수도권보다 그 이용객 수가 한참 적을 게 분명한 실정을 고려하면 상당한 예산 투입이라 하겠다.
내내 감사한 마음으로 그 길을 지나갔다.
주로 1132번 지방도를 따라가다가, 해안도로로 들어서서 아름다운 제주 해안을 감상하곤 하는 그런 코스였다.
애월항, 한림읍, 해거름전망대, 한경면, 신창풍차해안, 대정읍, 산방산을 지나 18:20에 안덕면에 도착하여 예약해 둔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77km의 거리를 4시간 40분간 달린 셈인데, 비록 완만하긴 했지만 길게 이어지는 언덕길이 많아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걸렸다.
해거름전망대카페에 들러 생수를 사려고 하자 주인이 얼음물을 무료로 물통에 담아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다음에 제주도에 오면 꼭 다시 들러야겠다고 새겨뒀다.
신창풍차해안을 지나, 다시 1132번도로로 이어지는 코스는 아주 멋진 코스였다.
대정읍을 지나 산방산을 지날 때, 내내 두터운 구름에 가려져 있던 한라산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넘어가며 수줍은 듯이 연한 노을빛을 살며시 뿌리는 저녁 해와 함께…….
일을 처리한 아들이 밤 11시쯤 숙소로 와 합류했다.
10. 7. 토요일
오늘 오후 6시 45분,
제주도 일주 라이딩 완료!
오늘 133km,
어제와 오늘 1.5일간,
210km의 길을 라이딩했다.
제주도 특유의 바람과 쉼 없이 이어지는 언덕 때문에 예상보다 힘들긴 했다.
아들이 지닌 계기에 기록된 오늘 하루의 누적 상승고도만 650여m!
어제의 상승고도까지 더하면 아마도 1,000m 가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해안의 풍경들…
그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구름이 벗겨지며 드러나는 푸른 하늘…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한라산.
수없이 다양한 색깔로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는 바닷물…
변신은 아름다운 제주 바닷물의 특권이런가?
심폐기능과 다리는 괜찮았지만, 어깻죽지와 그 근처 근육들이 무척이나 아파서 신경이 쓰였다.
내 육체에 물리적 변화가 올 때가 됐음을 새삼 깨달으며 내내 달렸다.
맞바람은 시원하면서도 부담이 되는 그런 이중성을 띠었다.
하긴 세상사와 인생사도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아들이 고마웠다.
맞바람이 강하게 부는 코스마다 앞에서 끌어줘서 한결 쉽게 라이딩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길을 잃거나 새로운 길을 탐색할 때마다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며 최적의 상황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라이딩을 마치고, 아들과 저녁을 먹으며 얘길 나눴다.
술잔을 진하게 나누며 오랜 시간 얘길 나눴다.
나이 차이가 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이런 시간을 함께해준 아들이 고마웠다.
10. 8. 일요일
제주도 라이딩 3일째인 마지막 날,
한라산 1100고지에 올랐다.
오전 11시 11분, 시내 숙소에서 출발했다.
라이딩 마니아들만 도전하는 힘든 코스라 짐은 숙소에 맡기고 최대한 가볍게 했다.
시청과 도청 중간쯤에서 오라CC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한라산 쪽으로 향했다.
완만한 언덕길이 계속됐다.
이틀간의 제주도 일주 라이딩으로 쌓인 피로로 초반에는 다리가 무거웠으나, 20여 분이 지나자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12시 정각,
노형교차로부터 본격적인 1100고지 라이딩이 시작됐다.
1139번 지방도(1100로)를 따라 한발 한발 페달을 힘주어 밟으며 업힐을 이어갔다.
가파른 언덕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전국의 수많은 고개를 오른 아들의 말에 의하면 대관령보다 경사도가 한층 크다고 한다.
노루생이삼거리를 지날 즈음 4명의 라이딩팀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한 라이딩협회 회원들인데 탐사차 1100고지를 넘어 서귀포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 팀과 자연스럽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어승생삼거리 이후로는 우리 뒤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들은 내 속도에 맞추느라 앞에서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어리목입구삼거리를 지나면서 다리의 피로는 극에 달했고 호흡도 거칠어졌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이 자꾸 눈으로 흘러 들어가 시야를 방해하는 바람에 더 힘들었다.
그나마 도로 주변에 펼쳐진 한라산의 울창한 숲이 안겨주는 아름다움이 힘이 돼 주었다.
아들이 수시로 보내주는 응원과 함께…
오후 2시 40분~
마침내 1100고지에 올랐다!
아들과 함께 기쁨을 나눈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구름에 감싸여 반쯤 모습을 드러낸 한라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참이나 감상하다가 다운힐을 시작했다.
중력가속도에 의한 스피드와 시원한 바람~
스쳐 지나가는 풍경~
업힐할 때의 힘들었던 기억이 말끔하게 씻기는 듯 했다.
순간 최고 속도 59.5km를 찍었다.
아들은 78km를 찍었는데 맞바람이 불어 80km를 넘지 못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힘은 들었지만 기억에 남을 추억거리를 만든 보람이 있었다.
아들의 권유가 없었다면 아마 시도해보지 않았을 도전이었다.
라이딩 내내 많은 도움과 라이딩 관련 팁들을 준 아들이 고맙고 대견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몸을 씻은 후, 식당을 검색하여 맛집이란 곳을 찾아갔다.
아들의 요청으로 고등어회와 갈치회를 먹고, 이어서 옥돔구이를 먹었다.
아들의 권유로 수제맥주 판매 전문점인 맥파이 브루잉(Magpie Brewing)에서 4가지 수제 맥주를 마시고, 해변을 거닐었다.
저녁 내내 아들과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0. 9.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후, 제주항으로 갔다.
완도행 승선권을 발권받아서 한일카훼리1호(6,327t, 정원 975명)에 올랐다.
08:20에 제주항을 출항했다.
갑판 위로 나오니 한라산을 배경으로 한 제주항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11:20에 완도항에 도착하여 하선한 후, 자전거 바퀴를 분리하여 차에 실었다.
갈치조림으로 점심을 먹고 12:45분에 완도를 출발해 의정부로 향했다.
저녁 7시에 의정부에 도착했다.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가득 채운 후 오랜 만에 연비를 계산해 봤다. 완도까지의 왕복 연비는 13.4km/l(SM5, 2003년식, 수동)가 나왔다. 아직은 연비가 좋은 편이다.
아들과의 4박5일 여행.
뜻깊고 즐거운 추억들을 쌓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 이번 제주도 라이딩을 통해 알게 된 사실:
- 사전에 바람과 지형(도로의 표고 변화)에 대해 상세히 사전조사를 하여 라이딩 계획에 반영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일반적으로 제주도 일주 라이딩은 제주항에서 출발하여 반시계방향으로 돈다. 그 까닭은, 그렇게 해야 도로의 오른쪽으로 가면서 바닷가 풍경을 감상하기에 좋고 쉴 때도 바닷가 쪽으로 접근하거나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 촬영을 하기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 제주도의 라이딩 코스를 대략 동서남북 방향으로 4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남쪽 코스가(특히나 서귀포 시내 근처) 표고 변화가 가장 크다. 제주시에서 애월읍, 한림읍, 대정읍을 지나는 북서 코스와 서쪽 코스는 보통 수준의 표고 변화이다. 그리고 서쪽 성산읍에서 제주 시내로 가는 동쪽과 북동쪽 코스는 가장 표고 변화가 작은 쉬운 코스이다.
- 따라서, 바람의 방향과 남쪽 코스를 라이딩하는 방향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겠다. 즉, 동풍(또는 북동풍이나 남동풍)이 불 때는 시계방향으로 일주하는 것이, 서풍(또는 북서풍이나 남서풍)이 불 때는 반시계방향으로 일주하는 것이 맞바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고 하겠다. 물론, 다리의 힘이 강하여 맞바람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얘기가 되겠지만.
- 1100고지를 업힐할 때도 방향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남풍이 불 때는 서귀포 쪽에서 오르는 것이 유리하며, 더운 여름철에는 북풍이라 하더라도 태양을 바라보며 오르기 때문에 이점을 고려하여 서귀포 쪽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여유 있게 제주도 해안 풍경을 감상하면서 일주 라이딩을 하려면 3일 정도는 필요하다.
- 연휴나 주말에 완도~제주 승선권을 예매하려면 미리 예매 정보를 파악하여 미리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첫댓글 큰 일을 해낸 두 부자(父子)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냅니다... 좍좍좍좍~ !!!!
뭐 그렇게 거창한 박수까지야...
아무튼 재밌고 힘도 들었고 뜻 깊었던 시간을 보내고 왔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