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12년 4월 29일(다섯째주 일요일) 날씨:약간 흐림
산행지:전북 완주군 구이면,전주시 완산구,김제시 금산면 모악산 도립공원(해발793.5m)
산행코스:원기리 상학주차장~선녀폭포~대원사~수왕사 갈림길(쉼터)~무제봉
~모악산 정상~갈림길~북봉~금선암 갈림길~매봉~도통사 갈림길
~금동계곡~연리지~혜덕왕사탑비~금산사~금산교~관광안내소(주차장)
산행시간:4시간(중식시간 포함)
모악산은 봄에도 좋고 가을,겨울에도 산행하기 좋은산이다.몇번을 갈려고 계획하였다가 결국은
이런저런 사유로 가지못한 산이라 더욱 가보고 싶었다. 여성분들이 산을 오르기에는 적당한
고도와 함께 무척 매력적인 산으로 추천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늘푸른 산악회 회원분들과
함께 가을 즈음에 한번 가볼까 합니다. 이번에 저와 함께 동참한 상혁씨, 찬옥씨, 김영태씨
이분들도 가을에 한번 금산사 단풍이 좋다고 하니까 와보면 어떨까요 하고 적극 추천 하였습니다.
오늘 하루 산행에 고생하신 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모악산 정상 모습.
금산사.
***참고하시기를....(원본클릭)
소재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김제시 금산면, 완주군 구이면
◈ 모악산(母岳山 793.5m)은 익산 미륵산, 정주 내장산과 함께 만경평야를 감싸고 있는 명산으로, 평야지대와 산악지대를 구분하는 경계선 제1보루에 위치한 호남평야의 전망대 역할을 맡고 있다. 모악산을 경계로 동쪽 계류는 삼천천으로 흘러들어 만경강으로, 서쪽 계류는 원평천을 경유하여 동진강에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간다.
방면으로 산릉을 끌고 나가는 호남정맥 상의 오봉산(513.2m)과 묵방산(538m) 사이에서 호남정맥을 이탈하여 북쪽으로 가지를 치는 능선이 있다. 이 능선이 약 8km 거리인 국사봉(543m)에 이르러 두 가닥으로 갈라진다. 서쪽으로는 상두산과 천애산으로 가지를 치고, 북으로 화율봉∼배재∼장근재를 거쳐 약 7km 북진한 곳에서 빚어 놓은 산이 모악산이다.
산세는 정상을 중심으로 전주시 방면 북쪽과 장근재 방면 남쪽, 그리고 금산사 방면 서쪽은 산릉이 길고 부드러운 반면, 동쪽 구이면 방면은 능선이 짧고 다소 가파른 편이다. 정상을 중심으로 금산사 방면을 내모악, 구이 방면을 외모악으로 구분한다. 옛부터 모악춘경(母岳春景)은 변산하경(邊山夏景), 내장추경(內藏秋景), 백양설경(白陽雪景)과 함께 호남 4경의 하나로, 60만 전주시민과 10만 김제시민을 비롯하여 전국 등산인들에게도 사랑 받아왔다.
무제봉, 장군봉, 눌연계곡, 금동계곡, 선녀폭포 등 자연경관과, 금산사, 귀신사, 대원사, 수왕사, 청룡사, 용화사 등의 사찰들을 비롯하여 미륵신앙의 본거지인 오리알터의 증산교 본부 등이 모악산에 움틀고 있다. 특히 금산사 미륵전 등 보물 10점과 귀신사의 보물 1점 등 보물 11점이 모악산에 집중돼 있다.
모악산은 예전부터 호남평야의 젖줄 역할을 톡톡히 해온 산이다. 모악산 남서쪽에서 발원한 원평천과 북쪽 기슭에서 발원한 두월천이 부양면 용성리에서 합류해 호남평야의 영양분을 공급해온 벽골제(碧骨堤)의 수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벽골제는 백제 비류왕 27년(330년)에 제방 길이 3km로 축조된 것으로, 사적 제 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벽골제는 하천 폭을 넓히고 강물을 곧게 흐르게 하는 등 수리시설 개량으로 인해 옛 모습은 볼 수 없고, 제방 일부분과 수문석주(水門石柱), 벽골제 사적비만이 남아 있다.
모악산 산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금산사지>에 '조선의 고어(古語)로 엄뫼와 큰뫼로 칭하였다. 엄뫼는 모악이라 의역(意譯)하고, 큰뫼는 큼을 음역(音譯)하여 금(金)으로 하고, 뫼는 의역하여 산(山)으로 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금산사의 이름도 여기에서 연유된 것으로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또 다른 산이름 유래로는, 정상 아래에 위치한 쉰길바위가 아기를 안고 있는 형상과 비슷하다 하여 모악산이라 이름지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다음으로는 모학산(母學山)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지금도 모학산과 연관된 지명으로 ‘학가산’, ‘학래’ 등의 지명이 있고, 지금은 원기리로 바뀌었지만 윗학래, 아랫학래라는 곳도 남아 있다. 모악산은 삼국유사와 고려사에는 금산(金山)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모악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풍수지리설은 난세에 더욱 민중의식 속에 파고들어 모악산은 계룡산과 더불어 민중신앙 및 신흥종교의 텃밭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조선조 말기에서부터 6.25 이후까지 모악산에는 수십 개의 신흥종교집단이 성행했었다. 그러나 신흥종교 중 하나였던 용화교주 서백일이 신도의 칼에 사망하고, 도립공원 개발과 함께 무허가 건물로 단속 철거됐다.
모악산(母岳山 793.5m)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꽤 가파른편이다. 모악산엔 정상이 없다. 정상에는 사람이 밟을 수 있는 땅 대신 송신탑이 자리하고 있다. 송신탑은 1977년 TV방송 전파 송출을 위해 KBS전주방송국이 당시 금산사 주지와 무상으로 '모악산 정상 토지임대차 계약'을 통해 세워졌다고 한다.
금산사와 KBS가 체결한 재계약 내용을 보면 방송시설 이설과 관련해 '전북도민의 정서와 모악산 살리기운동에 인식을 같이하며 송신소 전면 20m지점에 청사를 재건축 한다'고 적고 있다. 또 자연환경 원상복구에 대해서는 '기존 방송시설을 2001년 12월 31일까지 재건축한 청사로 이설하고 기존청사는 2002년 12월 31일까지 완전히 철거하고 원상을 복구'하기로 정하였다는데 아직 전주 KBS는 이전을 하지 않고 있다. 공영 방송답게 아래로 이전해야하지 않을까?.
김제평야의 동쪽에 우뚝 솟아 호남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모악산은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구이저수지·금평저수지, 안덕저수지와 불선제, 중인제, 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이 곳 모악산으로부터 흘러든다.
정상에 올라서면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바라다 보인다. 동학농민운동과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큰 나무는 거의 베이거나 불에 타 사라졌지만, 4월에 피는 벚꽃과 배롱나무 꽃은 장관이다. 예로부터 논산시 두마면의 신도안(新都安), 영주시 풍기읍의 금계동(金鷄洞)과 함께 명당(名堂)이라 하여 난리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각종 무속 신앙의 본거지로 널리 알려져 왔다. 신라 불교 오교구산(五敎九山)의 하나로 599년(백제 법왕 1)에 창건된 금산사(金山寺)를 비롯해 귀신사(歸信寺), 대원사(大院寺) 등의 사찰이 있다.
금만경평야의 젖줄인 모악산은 과연 어떤 산인가?. 일설에 따르면 모악산의 원래 이름은 금산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는 금산사란 절이름에 근원을 두고 한 말이다. 그렇다면 금산(金山)이란 무슨 뜻인가. '큰산'을 한자음으로 표기했다는 설과 금산사 입구 금평호에서 사금이 나오기 때문에'금(金)'자가 들어갔다는 설로 갈리기도 한다. 또 모악산은 그 정상에 마치 어미가 어린애를 안고 있는 형태로 보이는 바위가 있어 이로부터 생겨난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모악산은 한국의 곡창으로 불리는 김제와 만경평야를 그 발 아래 두고 있다. 이들 벌판에 공급할 공업용수가 바로 모악산으로부터 흘러들기 때문이다. 특히 삼국시대 이전부터 관개시설의 대명사로 꼽혀 온 벽골제의 물이 그 물의 근원을 모악산에 두고 있음에랴. '징게맹경'의 젖줄이 바로 모악산에 닿아 있다. '어머니'산은 양육(養育)을 뜻한다. 그 품안에서 새 생명을 키워낸다.
불교의 미륵사상이 도입된 이래 호남지방에서 미륵사상은 모악산을 중심으로 개화했다. 금산사의 미륵전이 그 대표적인 표상이다. 그런가 하면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도 금산사에 유폐된 견훤을 빌미로 후백제를 점령했다. 근세에 이르러 동학혁명의 기치를 든 전봉준도 모악산이 길러낸 인물이다. 모악산 일대를 신흥종교의 메카로 만든 강증산(姜甑山)도 이산 저산 헤매다가 모악산에 이르러 천지의 대도를 깨우쳤다고 한다.
동으로 구이저수지, 서로 금평저수지, 남으로 안덕저수지, 북으로 또 불선제, 중인제, 갈마제를 채우고 호남평야를 온통 적셔주는 젖꼭지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산이다. 정상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 동으로 전주가 발아래 있고,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멀리 보인다.
오른쪽 가지는 동남방으로 굽이쳐 흘러가 12절(마디)아래서 구성산을 이루었고, 그 너머로는 호남평야의 중심지인 징게맹경의 평야가 있다. 모악산은 정유재란과 동학농민봉기, 그리고 6·25등 숱한 재난을 거치는 동안 여러차례 벌채되어 큰 나무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특기 할 만한 동식물은 없다.
그러나 모악산을 훼손되지 않은 산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으며, 여러 길로 나뉘어진 수많은 등산코스는 제각기 독특한 산경(山景)과 민속적 신앙을 담은 암자가 하나씩 어우러진 신비감마저 불러 일으킨다.
모악산 가는길.
대원사에서....
한숨 돌리며 원기리 마을,구이저수지쪽 풍경을 내려다 보면서....
드디어 정상이 눈앞에....
이곳이 정상이라고 인증샷을 찍었건만.....^*^~~엣날에는 그랬데요^^
진짜 정상으로 가는길~~(송신탑에 접근을 못하게하려고 예전엔 통제를 했다네요)
4년전에 새로이 설치된 진짜 모악산 정상 팻말입니다.
옥상으로 오르면 망원경이 설치되어 주변 풍경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점심식사후 매봉쪽으로 진행하며 정상을 배경삼아 한 컷~~!!
하산후 계곡물에 발을 담갔는데 아직은 정말 물이 차갑더군요.
금산사에서....
금산사 주변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