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천 제방에서 바라본 이심정과 부속건물들. 지난 여름 수해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났으며 추가붕괴를 막기위해 이심정 부속 건물 아래쪽에 파란색 비닐포장을 덮어놓았다. 현재 이 건물은 인근 나주나씨 문중에서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방장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자락이 이곳 이심정까지 이어진다. 직강공사와 제방이 축조되기 전에는 정읍천의 물줄기는 자유곡류했을 것이고 모래사장과 이심정의 건물이 어울려 지금보다 훨씬 멋있는 풍광을 만들었을 것이다. 오른쪽에는 해평리다리, 멀리 두승산이 보인다.
수십년 전까지 정읍소재 학교에서 소풍장소로 가장 즐겨찾던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정읍시 공평동에 자리잡은 이심정이다. 이곳 이심정은 옛날부터 풍류객들이 즐겨찾던 풍광좋은 정읍천변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었다.
방장산에서 뻗은 산줄기가 이곳까지 와서는 몸을 크게 낮추는데, 그런 나즈막한 산의 절벽 중턱쯤의 너럭바위 위에 조성되어 있는 건축물이 이심정인 것이다. 이곳에 올라보면 왜 기쁜 마음이라는 뜻으로 정자의 이름을 지었는지 금새 느껴지기도 한다. 마을과는 조금 떨어져있고 솔숲에 둘러싸여 있기에 무척 한가롭고 조용한 느낌이며, 정읍천의 물줄기와 백사장이 내려다보이기에 또한 눈이 즐거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는 내장산, 입암산, 방장산의 연봉이 아스라이 바라보이고, 가까이는 정읍시내의 시가지가 손에 잡힐듯 보인다.
바로 이런 곳에서 1910년 한일합방 직후 정읍의 우국지사들이 망국의 울분을 달래기위해 '망국제' (亡國祭)라는 행사를 열기도 하였다고 한다. 당시 정읍시 흑암동 (현 배영중고등학교 앞쪽 마을)에 소재한 영주정사라는 교육기관에서 동문수학하던 12명의 지사들이 이곳 이심정에 함께 모였다. 그들은 국권을 잃은 것에 통분하여 서울을 향하여 대성통곡하고 국권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의 의열을 굳게 다짐하였던 것이다. 우리고장 정읍시 영원면과 관련되는 독립운동가 구파 백정기 의사가 15살 나이에 참여했던 행사였다. 이때 함께 참여한 분들의 명단을 기록해본다. 고인주(38세, 당시 영주정사 학감), 고응중(36세), 백관수(22세), 김성수(20세), 박봉규(20세), 박승규(17세), 김기홍(17세), 한성수(17세), 김연수(15세), 백정기(15세), 최동규(14세), 박방원(13세) 이상 모두 12명이다. [참고문헌 : (사)구파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한 '항일혁명투사 구파 백정기']
정읍의 역사지리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심정에 이런 유서깊은 역사가 서려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학창시절엔 이곳을 단순히 소풍장소로만 기억하였는데, 앞으로는 이런 역사적인 의미를 후세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라도 이심정을 찾는 이들에게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안내판을 세우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첫댓글 음,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역사네요. 알고 나니 다시 가보고 싶어집니다. 뜨거운 마음 안고.
한때 이곳에 살았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몰랐네요. 귀한 정보 감사해용.
정읍천변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이심정 참 멋진 곳입니다.
그중 박승규는 삼례찰방을 역임했고 영주정사를 건축한 박만환의 아들로 흑암리에 승동학원을 세웠다 나중에 백정기의사와 의기투합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그뒤 영주정사의 유림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다
이심정은 현재 나씨 집안의 노부부가 지키고 있는데, 얼마전 학생들과 견학을 갔었는데, 이심정 건물은 1936년에 완공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태풍으로 인해 이심정 이라는 현판이 파손되어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