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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4/02 02:13
조회수 : 131
알프스 등반기 (1)
우리끼리만의 산, 그곳에 간다. 목숨을 걸고, 돈과 시간을 꼬라박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선배들로부터 말로만 들어왔던 꿈에 그리던 알프스, 그 이름만으로도 너무 유명하고 누가 간다고 하면 부러워 하던 곳.
세계적 유명 알피니스트들의 발자취와 영광과 고난, 땀과 피와 노력이 스며있는곳.
우리가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 사연과 엄청난 전설을 간직한곳 알프스-그 알프스에 왔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사는 곳.
모든걸 혼자 감당하고 준비하고 목숨을 걸어야했던, 내 능력의 전력을 기울여야만 했던 지난 등반들.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알프스에 왔다. 그러나 등반력은 떨어진 채로.. 잔재주만 늘어서 알프스에 온 것이다. 아직 알프스의 본모습을 보지 못했는지 기차 창밖의 스위스의 전원풍경과 멀리 아이거의 모습을 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밤새도록 장대같은 비가 내려 쉽게 갤것 같지 않다. 앞으로 몇일은 등반을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화창하다. 서둘러 오전에 샤모니 시내에서 볼일을 보고 오후에 몽블랑 등반을 하기로 했다.
임의의 조로 무전기 3대를 나누어 가지고 나왔다. 빨래, 보험, 엽서, 장비구입, 식량, 기상정보등 할 일이 많다. 먼저 장비구입을 위해 샤모니 시내로 나와 제일 먼저 장비점으로 향했다. 그러나 산놈들의 장비욕심과 지적호기심은 하루종일을 장비점에서 죽치게 했다. 마치 장비점에서 장비 사는 것이 알프스에 온 목적인냥 다른 아무 생각은 하지 않는다. 빨래를 하러나온 상건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빨래담은 배낭을 메고만 다닌다. 식량 담당인 경준이는 부식 구입하는걸 잊어먹고 장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
오후 4시쯤, 드디어 상건이가 정신을 차리고 보험이라도 얼른 들고 오자고 해 가이드 회관으로 향한다. 보험을 들려는데 그곳에서 근무하는 할머니가 언제 어디를 등반할거냐고 물어본다. 그랑드죠라스 북벽이라고 하니 극구 말린다. 지금의 벽상태는 겨울상태이고 눈이 너무 많아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기야 우리가 도착한 날부터 지금까지 맑은 하늘을 볼수가 없었고 계속 비가 왔으니 산쪽은 분명 눈이 많이 쌓엿을 것이다. 걱정과 함께 다시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비점으로 돌아왔는데 역시 아편마냥 걱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장비가격과 신제품, 종류등 장비들을 구경하기에 정신이 팔려 버린다.
다음날 몽블랑 등반을 위해 케이블 카를 타고 에귀디 미디로 올랐다. 에귀디미디에서 바라본 멀리 서있는 웅장한 봉우리 - 그랑드죠라스는 상상외의 큰 벽이었다. 쉽게 생각했던 알프스의 벽들, 그러나 멀리서 본 그랑드 죠라스의 옆모습은 가셔브럼4의 거대한 벽을 연상시킬 만큼 크고 멋있었다. 아, 이래서 알프스의 3대 북벽이구나 라는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온다.
작성일 : 2002/04/13 18:47
조회수 : 186
알프스 등반기(2)
그 흔한 이름 알프스 3대 북벽,
모든 자료는 현지에서 찾아보기로 하고 아무 준비없이 91년 경상대보고서만 달랑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
에귀 디 미디에서 바라본 거대한 그랑드 죠라스는 월출산 암벽하듯 쉽게 떠나온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이런 어머어머한 벽들이 흔하게 널려있는... 알프스를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만든 기사들, 3대북벽을 24시간만에 끝냈다느니 단독등반으로 몇시간 만에 올랐다느니 등등... 내가 알프스를 너무 무시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4,000미터의 북벽고도는 고소증세가 있을수 있으므로 나와 현조를 제외한 후배들의 고소적응차 몽블랑을 등반하기로 하고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어떠케 하면 땀 안흘리고 올라갈까 라는 생각만 한다. '20분 걷고 5분 쉴까 아니면 30분 걷고 10분 쉴까..'
역시 원정경험이 처음인 대원들이 고소증세 때문에 전진이 느리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몰려온다. 기상도 안좋아져 결국 타꿀봉 넘어 설사면에 텐트를 설치했다. 가장 증세가 심한 미애와 승현이. 텐트 한쪽에서 아예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자고 있다. 그리고 그 둘과 나란히 누워 역시 비몽사몽간을 헤메고 있는 우리의 문종국. 아! 누가 알았으랴, 본인이 고소증세로 이렇게 미애와 승현이랑 사이좋게 누워서 눈은 게슴츠레 반쯤드고 밥도 못먹고 죽만 먹을지를...
좌우지간 처음 땀도 안흘리고 올라갔다 내려오려는 나쁜생각 부터 잘못됐다.
다음날 역시 날씨가 안좋아 몽블랑을 뒤로 한채 눈물을 머금고(미애 - 6대 북벽 트레킹때문에 몽블랑 등반이 중요한 의미를 차지 했었는데..) 철수. 화이트 아웃속에서 겨우겨우 코스믹 산장 밑까지 내려와 텐트를 설치하고 2박을 했다.
5월 21일
다음날 일찍 에귀디 미디로 다시와 케이블카를 탄다.(이그 돈 아까운거)
야영장으로 돌아와 냉면으로 점심을 하고, 수요일까지 날씨가 좋다는 기상을 확인, 그랑드 죠라스 등반을 위해 오늘 바로 렛쇼산장으로 옮기기로 한다. 몽블랑 등정의 실패 때문인지 괜히 주위의 사람들에게 쑥쓰럽다.
샤모니에서 오후 5시 열차를 타고 몽땅베르 역에 내리니 5시 30분.
4시간여를 걸어서 렛쇼산장에 도착하니 그랑드 죠라스가 빤히 보인다.
에귀디 미디에서 나를 감탄케했던 그 봉우리, 그리고 3대 북벽등반의 첫 단추 그랑드 죠라스.
첫 단추를 어떠케 끼우느냐에 따라 다음 단추도 영향이 있으니 그랑드 죠라스 등반에 전력투구를 결심한다. (3대 북벽을 단추에 비유하다니) '자 작전을 어떠케 짠다?' 열심히 짱구를 돌려본다.
'6명 전원이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팀은 두팀으로 나누고 팀당 인원은 2명, 4명, 무전기는 분배를 잘해 벽에 붙어있는 모든대원이 통제가 되도록하며 1부터 6번 등반자까지 정확한 순서대로 맡은 분담역할을 기게적으로 반복하면 전원이 정상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작성일 : 2002/04/16 12:07
조회수 : 146
알프스 등반기(3)
렛쇼 산장 밑에 텐트 2동을 치고 저녁 식사 후 회의를 한다. 모두들 등반욕으로 충만, 가벼운 긴장감이 돈다. 아주 좋은 정신 컨디션이다.
항상 그렇지만 등반을 앞두고 벽 밑에서 오름을 준비 할 때 다가오는 불확실함에 대한 가슴 뛰는 흥분과 설레임. 이 기분이 좋다. 등반이 시작되면 이제는 위험에 대한 긴장과 고난의 연속, 인내하며 극복해야하는 과정의 현실뿐. 다가오는 미지의 모험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에 가슴 두근거리지만 현재는 안전함과 편안함 속에 있다는 것을 누린다고나 할까?
다음날 등반을 개시하였으나 레뷰파 크랙을 못 찾고 헤메던 중 눈과 우박이 내리며 기상이 악화 되 철수하였다. 하단부 에서 시간을 끌고 있을 때 기상이 나빠져 빨리 철수 결정을 내릴수 있었기에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후로 5일 동안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는 나쁜 날씨가 계속 됐다. 샤모니로 돌아와 2차 등반시도까지 날씨가 풀리길 기다리는 동안 낮에는 가이앙 암장을 등반하기도 하고 샤모니의 체육센터에서 수영과 스케이트, 인공암벽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밤에는 현조와 미애의 요리솜씨에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고 시내로 나가 호프집에서 맥주도 한잔, 와인도 마셔보고... 계속 날씨가 나빴으면 좋겠다.
7월30일
그랑드 죠라스 2차 시도를 위해 렛쇼산장으로 향한다. 모두들 비장한 마음가짐이다.(그동안 너무 놀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1차 등반경험이 있어 쉽게 레뷰파 크랙까지 올라왔다. 상훈이와 현조, 상건, 경준이가 번갈아 리딩을 해가며 정상으로 점점 나아간다. 뒤에 따라 올라가며 궂은일은 상건이와 승현이에게 모두 맡겨놓고 나는 주위 감상과 온갖 마음의 여유를 부리며 느긋하게 올라간다. 죽을둥 살둥 앞서서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 후배들에게 약간의 미안한 감정을 느끼면서...
75m 디에드로에 도착했을 때, 미안한 마음에 선등으로 올라가던 상훈이의 배낭을 내가 가지고 가겠다고 자진해서 건네 받고 그 배낭을 확보줄에 매달아 늘어뜨리고 쥬마링을 할라는 찰나, 카라비너로 연결했던 배낭의 고리가 뜯어지며 저 멀리 떨어져 버린다.
그 안에는 상훈이의 식량과 비박장비, 헤드렌턴등 여러 가지가 들어 있었는데 내가 떨어뜨려 버렸으니 미안함을 넘어 이제는 후배들에게 죄송(?)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해서 그날 비박지에 도착, 상훈이 배낭을 떨어뜨린 벌로 내가 비박 할 때 입을려고 새로 산 우모복을 상훈이 에게 주고 비닐만 몸에 둘둘 감고 잠을 청한다. 무지 춥다.
다음날 일찍 등반을 속개, 회색암탑을 지나니 정상으로 이어지는 릿지가 보인다. 잡힐 듯이 눈에 보이는 정상이 가도가도 끝이 없다. 마음은 급해 내 앞에 가던 승현이에게 괜히 화풀이를 한다.
" 야! 이 xx야 빨랑 빨랑 안갈래? "
" ..........? "
새벽 2시, 드디어 전원이 정상에 섰다. 어두워 정상등정 기념촬영은 못했지만 모두들 기쁨에 포옹을 하며 그 때야 배고픔에 허기를 달랜다. 바로 하산을 하려 했으나 생각보다 하산길이 험해 날이 밝으면 내려가기로 하고 그 자리에서 앉은 채로 1시간 정도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랑드죠라스 북벽을 마치고 하산하는 도중 푸름과 흰 눈으로 명확히 대비되는 풍경, 정상쪽은 눈과 바위 뿐이고 설선을 중심으로 그 아래로는 푸른나무와 물, 길, 집들이 보인다. 푸름은 풍요와 평화와 안전함의 상징이요, 흰눈은 춥고 위험하고 아무것도 살지않는 외로운 세계로 대변할수 있다. 가파른 설사면에서 하강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문득 우리는 저 푸른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아니 죄를 지어 흰 설선위로 유배당한 집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유배지에서 탈출하여 생명이 있는 저 푸른 숲으로 가기위해 이토록 고생하며 오름짓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도데체 나는 하늘에서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곳에(산으로) 유배를 내렸단 말인가? 저 푸른 세계에서 나도 보통사람처럼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들을 가지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 과연 저 숲으로 갈수 있을까? 그 숲은 나와 어울리는 세계인가?
원정이 끝난후 귀국할때면 항상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곤 했었다. 산에서는 오직 동료를 생각하며, 양보와 희생, 거짓없는 한점 티 없는 맑은 마음으로 자연속에 묻혀 깨끗하게 생활하다가 귀국하게 되면 그 전의 온갖 삶의 찌꺼기 들을 다시 맞아야 한다.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강하할때 여지껏의 하늘나라 천사의 모습에서 이제 속세로 내려가 속인이 되어 험한 세파와 싸워 나가야 하는구나 라는....
하늘하고 가까우면 순수해 지는걸까, 천사가 될려면 비행기를 많이 타고 높은산을 자주 가야할 것 같다.
작성일 : 2002/04/21 11:36
조회수 : 433
알프스 등반기(4)
그랑드 죠라스 북벽 워커스퍼 루트 등반을 마치고 샤모니의 반대편인 이탈리아의 꿀루마이어로 하산을 하니 벌써 오후 5시다. 꿀루마이어 또한 아름다운 산악 도시의 모습이다. 꿀루마이어에서 샤모니까지는 격일로 오전과 오후를 번갈아 가며 버스가 하루에 1대 다니는데 오늘은 이미 가버렸고 내일 오후에 1대가 있단다. 미애에게 무사히 등반하고 내려왔다는 안부를 전하고 내일이면 뵙게될 단장님 일행을 생각하며 꿀루마이어 시내를 기웃기웃하며 지루한 기다림을 보낸다.
우리가 그랑드 죠라스를 등반하는 동안 미애는 순천에서 혼자 등반하러 온 홍만씨와 함께 처음 목적했던 곳을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닌 모양이다. 매일 선배들과 같이 있다가 혼자 남게 되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다.
꿀루마이어 에서 샤모니의 야영장으로 돌아와 짐을 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드디어 단장님 일행분 들이 샤모니에 도착 하셨다는 은호형의 전화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묵고 계신 호텔로 갔다. 은호형이 먼저 반갑게 맞아준다. 그리고 유재선 단장님, 소병현 선배님께서 역시 반갑게 나오신다. 다른 세 분은 처음뵙는 분들인데 아무래도 단장님의 꼬임에 같이 오신것 같다. 그러나 산에서의 만남이라 그럴까 쉽지 않은 발걸음 이었을 것임에 처음 뵈었지만 친근하기 그지없다. 근처의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밤이 늦어버렸다. 내일 저녁은 우리가 묵고있는 야영장에서 모두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헤어져, 단장님 일행은 숙소로, 우리는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늦잠을 자고 피로가 아직 덜 가신 상태로 오늘 저녁의 만찬을 준비한다. 역시 미애의 음식솜씨가 발휘된다. 미애와 현조의 지휘아래 모두들 부식구입과 요리, 밀린 개인 짐정리 하느라 동분서주한다. 나는 대장의 권한을 십분 이용해 바쁜척 볼일 있는것처럼 혼자 야영장을 빠져나와 은호형과 샤모니 시내를 놀러 다닌다. 은호형과 함께 있으면 모든게 즐겁다.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격 때문일까....
저녁 식사시간에 맞춰 신나게 놀다가 야영장에 도착하니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모두들 피곤할 텐데 나 노는동안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대신 맛있게 먹어 줄께∼'
식사후 한국서 가져온 소주잔이 돌며 단장님 일행중 박영수 선배님의 '어느 산골소년의 슬픈 사랑 이야기' 노래를 멋진 목소리로 부르신다. 가창력 최고.
이어 주형탁 선배님께서 무사히 등반을 잘 하라는 말씀과 함께 격려금까지 주신다. 오랜만의 음주로 알콜기운이 살짝 올라 우리 대원들과 단장님도 기분이 좋다. 이때 이현길 선배께서
"자, 분위기도 좋고 우리가 말로만 듣던 알프스에 왔는데 전부 '에델 바이스' 노래 한곡 부릅시다. 하나 둘 셋!"
"에델 바이스∼ 에델 바이스∼" 여기 까지는 이현길 선배님 큰소리로 잘 하셨는데 그 다음
"에브리 모닝유 그리트 미∼ 스몰 앤드 화이트∼" 노래 끝날때 까지 조용하셨다.
" 좋은 한국말 놔두고 왜 영어로 불러..."
다음날 유재선 단장님과 소병현 선배님 일행은 5일의 짧은 일정으로 오셔서 남은 기간동안 다른 곳으로 관광을 떠나시고, 우리는 마터호른 등반을 위해 체르맛으로 이동을 한다. 마터호른에 관한 여러 보고서를 보면 공통된 한가지가 '낙석주의'다. 등반성 보다 낙석의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 등반이다. 그래서 성공을 하면 좋고 실패를 하더라도 단 한번의 시도에 끝내기로 마음먹고 샤모니를 출발.(역시 단 한번 시도하고 구조되어 끝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