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구례 줄풍류에 있어 사실상의 시조라 말할 수 있는 추산 전용선에 대한 글이다. 단소, 대금, 양금, 가야금등이 추산 선생의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옥빛 물결에 물고기가 뛰어노는 듯 거침없고 아름다운 글이다. 추산 선생은 그 뛰어난 단소 산조를 음반으로 남기지 않았다. 알음알음 몰래 녹음하거나 상을 받은 후에 녹음한 몇 개의 음원이 있을 뿐이다. 배경으로 듣는 음악은 추산 단소 산조 중 진양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가히 단소의 신이라 부를만하다.
예용해의 [인간문화재](어문각, 1967)에서 전용선의 편(43-47쪽)/황봉구 시인의 미 또는 아름다움에서 재인용
두꺼운 청태靑苔가 오른 골기와집들로 질펀한 으슥한 뒷길을 가느라면 높은 흙담 너머로 흔히 악음樂音이 들린다. 가늘고 먼 그 소리가 피아노인가고 멈칫 귀를 기울이면 가야금 타는 소리인 것이다. 담너머의 심규深閨, 머리채를 길게 닿아 내렸을지도 모를 낭자娘子를 생각하고 왠지 마음이 흐뭇해지곤 했다. 제법 사랑간이나 지닌 집엘 찾아들면 으레 흰 닥종이로 도배한 벽간에 서화폭이 드리웠고, 방 한 모퉁이에 고금古琴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문갑 위에 한 두 자루 죽관竹管이라도 뒹구는 것으로 과시果是(*과연) 풍류향風流鄕인가 싶었다. 지난날에는 지주들이 많이 몰려 살았다는 호남의 고읍 - 콩나물국이 맛 나는 전주는 그런 고장이었다. 그 전주 어는 가난한 율객律客의 집에서 추산秋山으로 호號하는 전용선全用先(73세)씨를 만났던 것이다. 담뿍 해가 진 다음이라 달도 없는 하늘이 어둑하고, 희미한 전등불에 비치는 뜰앞 나무에 초롱초롱 열린 풋대추가 어둠 속에서도 사랑스런 초저녁이었다. [단소短簫 잘 하는 전노인全老人]을 찾기 일년, 그토록 운수雲水와 같던 행적을 알 길 힘들더니, 뜻밖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밤은 어두웠어도 마음은 해후邂逅로 즐거웠다.
세칸三間 홑집 툇마루에는 선객先客이 사오인 있었다. 대머리를 한 노인老人 한 분이 주인이라고 통성명을 하고는 이 분이 추산이라고 소개를 했다. 희게 세어진 머리를 7.3으로 단정히 가른 훤칠하고 끼끗한 노인이었다. 얼굴이며 몸체가 늘씬늘씬하게 말라 품이 선골仙骨이라고나 할까. 가늘게 뜨는 눈이 명상에 잠긴 듯하여 인상이 고요했다.
출생은 녹두장군으로 이름이 난 정읍 고부, 중농가中農家 사형제 중의 셋째였다. 어려서 서당엘 다녔으나 글보다 초동樵童(*어린 나뭇꾼)과 섞여 놀기를 더 좋아했다. 서당에 가지 않는다고 회초리로 맞은 볼기의 핏자국이 채 마르지도 않아 서당 뒷벽에 기대에 단소를 불었다. 단소를 처음 배운 것이 십칠세 때, 벌써 단소 없이는 살 수 없돌고 단소병이 고황膏肓(*병이 그 속에 들어가면 낫기 어렵다는 부분)에 들었다. 낮에는 끼니때 외에는 언제나 단소를 불었다. 자리에 들어서도 단소를 품고 잤다. 그런 새에 집에서는 완전히 버린 자식이 되었다. 집안에나 동리 어른들도 인사를 하느라면 외면을 했다. 나직한 목소리였다. 느린 말씨로 이렇게 단소에 빠지게 된 소싯적 얘기를 했다.
현금玄琴 십년, 단소 이십년이라는 말이 있다. 현금은 십년이 지나면 제대로 소리가 나나, 단소는 이십년이 지나야 득음得音을 한다는 뜻이다. 단소는 길이가 일척사촌 가량이고, 후면에 하나 전면에 넷의 지공指空을 뚫었다. 제2공과 제3공, 제4공과 제5공 사이는 식지食指와 장지長指의 두 손가락을 붙인 길이이고, 제3공과 제4공은 식지, 장지, 무명지의 세 손가락을 붙인 길이로 앞엣것보다는 조금 사이가 뜨다. 이 단소는 악학궤범에 실려 있지 않으니 언제 된 악기인지 확실치가 않으며, 종묘악과 보허자步虛子, 낙양춘洛陽春 등 당아계唐樂系의 곡에는 쓰이지 않았다. 주로 향악에 쓰이었다. 그것도 무용반주에는 쓰이지 않았고, 영산회상靈山會相과 자진한잎 같은 관현합주에 씌었다. 이 밖에 생笙과의 이중주, 또는 양금, 해금과의 삼중주, 때로는 독주도 한다. 단소를 만들 수 있는 대는 암대라야 좋다. 암대는 대통이 둥근 숫대와 달리 편원扁圓을 이룬 것으로, 아무리 큰 대밭이라도 해도 한두 개 있기가 고작이다.
이런 얘기들을 하느라니 어느덧 밤이 이슥했다. 곁의 사람들이 “추산 이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단소를 듣자”고 했다. 그는 힘없이 단소를 잡고 몇 번 입김을 불어넣어 보았다. 이제는 배의 힘이 짜부라지고 김이 쇠해서 음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한숨을 짓는다. 단소가 제대로 소리를 내는 것도 육십까지인데, 칠십이 넘어서도 이렇게 소리가 나주니 고마운 일이나 전만 같지 못하다고 그는 거듭 탄식이었다. 마음은 늙지 않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씁쓸한 표정이었다. 단소를 놓고 불까말까 망설이더니, 어디 장단 기운으라도 불어볼까 장단을 청했다. 곁에 앉았던 한 분이 들고 있던 원선圓扇(*둥근 부채)을 목침 위에 얹고 손으로 치며 장단을 잡혔다. 장단을 타고 가락이 흘러 나왔다.
절절히도 구슬프고 청량淸亮한 가락으로 숨을 죽인 좌중은 금시 울먹일 것 같다. 정악正樂 한바탕을 마폈다. 단소를 놓자 그는 어깨로 날숨들숨 숨이 가빠했다. 한 古老는 “추산은 죽신竹神이여” 했다. 또 한 사람은 “암! 대지팡이를 불어도 소리가 날걸...” 하고 맞장구를 친다. 과찬이었을 것이언마는 어색치가 않다. “무얼......”하는 추산노秋山老의 짤막한 겸사謙辭도 자연스러웠다.
우리나라에서 단소의 산조를 낸 이는 추산이다. 그는 처음에는 정악만을 했다. 의젓하고 무기武氣 깃드는 정악에 대해서, 그는 오늘날까지도 옳은 악이라고 말한다. 단소의 끊어지려는 정악가락을 위해서 평생을 다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정악가락만으로는 다 못한 회포가 있었다. 그것이 산조를 낳게 했다. 호남일대에서는 추산을 모르는 이가 없다. 단소산조의 시조로 더 유명해진 것이다. 일년 전 전추산이 전주에 산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전주에 찾았을 때는 멀리 전남 구례로 떠난 후였다. 다시 구례로 통지를 하면 어디론가 떠났다는 얘기다. 얼마를 있다가 진주로 갔다고 하더니, 한 때는 풍문에 대구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라고도 들었다. 이렇듯 그는 일관一管의 단소를 벗 삼아 표표히 떠다녔다. 그리고는 정악과 산조가락을 이을 제자를 길러 내었다.
숨을 돌린 추산노는 맞은 편에 앉은 이에게 시조를 읊으라 권하고는 단소를 들었다. 그러자 한 사람은 장고를 들고 거문고, 가얏고며, 그 자리에 앉은 이들은 제각기의 악기를 들고 나와 서로 청淸을 맞추기에 한동안 동당대더니 추산노가 스르르 눈을 내리감고 입술을 축이자 좌중의 잡음이 그치고 긴장이 흐른다. 그 고요를 흔들며 단소가 먼저인가 창이 먼저인가......
백발을 팔랴 하니
백발 살 이 뉘 있으며
청춘을 사랴 하니
청춘을 팔 이 뉘 있으랴
지금에 파도 사도 못할진대
노소동락老少同樂 하리라......
거문고의 우현幽玄, 가얏고의 섬세纖細, 장고의 흥과, 평시조의 우람한 창唱 - 이 모든 것을 누르고 추산노의 단소는 흰 구름이 유석幽石을 감싸듯 하다가 높은 메뿌리의 장송長松처럼 고고하기도 하고 장간章間 창이 끊기는 사이사이 중렴中斂에서는 자지러지듯 흐느끼기도 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도연陶然케 한다.
시조의 뜻도 그러하거니와 이 풍류 한 마당의 노소동락이 “원래遠來의 젊은 필자”를 위한 후의임이 분명한 것을 생각할 때, 그들의 풍류도 그러하거니와 오히려 그 마음들이 더 소중한 것으로 고마웠다.
이번에는 추산노의 단소산조다. 가락이 산조에 들자 핏기가 없던 얼굴이 홍조를 띠고, 입김을 불어넣는 목이며 지공을 짚는 손이 신죽神竹인양 떤다. 단좌하여 정악을 하던 때의 모습과는 전혀 사람이 다르다. 허공을 응시하며 지그시 감은 눈길에 귀기鬼氣가 어른거리는 듯하다. 어쩌면 그 소리는 이승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산조의 비율悲律(*슬픈 가락)은 밤하늘 어느 어둠 속을 몰아온 귀곡성鬼哭聲인양 열두 간장을 어루만진다. 넋을 잃은 듯 가락에 홀린 것이 얼마나 지났는지 어느덧 가락은 그치고 천심天心에 은한銀漢만 기울었다(*하늘에 은하수만 기울었다). 한동안 아무도 말이 없다.
추산노가 외마디 “나는 이것을 한으로 분다”고 했다. 평생을 한낱 죽관에 붙여, 불고가사不顧家事(*집안 일을 돌보지 않음), 집안 사람이 주리든 헐벗든 아랑곳없었으며, 술, 여자의 외도도 모르고 지냈다. 심지어는 환거鰥居(*홀아비) 이십년에 외로운 것을 모른다. 생각느니 단소와 그 가락뿐, 예藝를 돈과 바꾼 일이 없고, 분전分錢(*푼돈)을 몸에 지니는 바 없었다. 칠십 평생에 남긴 것이 있다면 허공에 떠보낸 무수한 입신入神의 묘율妙律뿐...... 그래도 유한遺恨은 있다. 좀 더 젊었더라면 이 짓을 더 해볼 텐데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나머지 소원인 것이다.
추산노는 혼잣말처럼,
“단소란 끝내는 영靈인 것이오” 라고 중얼거리는 것이다.
밤은 한껏 깊었다. 그와 헤어져야 한다. 살아남은 마지막 율객다운 율객과의 작별이 이토록 애상에 젖는 것은 그의 슬픈 단소의 가락으로 인함인가, 아니면 그가 너무나도 어렵게 지낸다는 얘기를 들은 탓인가.
추산노는 왼손을 내밀며 필자의 바른 손을 꼭 쥐어 주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서로 이렇다 할 만날 기약도 없는 별리別離였지만 그것이 작별 인사의 전부였다. ( 1961. 9월15일)
jinyang.mp3
첫댓글 ...........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단소 소리가 이리 아름다운 거였군요^^
좋타~!!
단소란 끝내 영인 것이오, 거기까지~~~ 얼마나 멀고 멀까~~~~ 쓸쓸한 이야기, 쓸쓸한 가락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