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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 금서 논란
이번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금서 논란은 예술적 표현과 외설적 요소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다시 불러일으켰습니다. 채식주의자는 한국 문학에서 독특한 작품으로, 주인공이 고통스럽게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 억압된 욕망, 개인의 자유와 자아를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성적, 폭력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는 작가가 의도한 예술적, 철학적 메시지의 일부분입니다. 특정 장면에서는 처제의 나체에 그림을 그리고 이를 촬영하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이 장면은 단순한 성적 표현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적 불안과 욕망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 장치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이 작품을 청소년 유해 도서로 분류하여 여러 학교에서 폐기되거나 열람을 제한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청소년 보호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이러한 조치를 긍정적으로 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예술적 표현의 맥락을 무시한 과도한 검열로 보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노벨문학상 수상까지 이루어낸 만큼, 그 예술적 가치를 단순히 성적 묘사라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예술 vs 외설
예술과 외설의 관계는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끊임없이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예술적 표현에서 현실의 어두운 면이나 금기된 주제를 다루는 것은 종종 인간의 본질과 내면을 깊이 탐구하기 위한 시도이지만, 이러한 표현이 외설로 간주될 위험도 존재합니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주관적이며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에 그 논의는 복합적입니다.
문학사에서 금기와 논란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성적 묘사와 독창적 서술 방식으로 출간 당시 외설로 간주되어 여러 나라에서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이스의 작품이 심오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아 오늘날에는 20세기 최고 문학작품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조이스는 율리시스에서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고, 도덕적, 사회적 갈등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복합성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이는 곧 성적 표현을 외설로 볼 것인지, 아니면 예술적 탐구의 일부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이번 논란은 청소년 보호와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올바른 균형점을 찾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성적 묘사를 포함한 작품을 전체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청소년보호법 제8조에 따르면, 청소년 유해 매체물 지정 시 작품의 부분적인 장면보다는 "전반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적 내용이 포함되더라도 작품 전체가 전달하려는 철학적, 예술적 가치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예술 작품이 개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외설의 유무로 판단될 수 없으며,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의도를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각 시도교육청과 교육부 차원에서 독서교육 전문가, 성교육 전문가,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이 협력하여 청소년에게 적합한 도서를 선정하고, 성적 내용을 다룬 작품의 경우 교사 지도하에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술 작품이 청소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표현을 포함하더라도, 올바른 독서 지도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교육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와 예술적 교육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심리적 억압과 자아 탐구라는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며 독자에게 인간 본성과 욕망의 본질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주인공이 채식주의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억압된 감정을 탐구하는 이 이야기는 문학적 상징을 통해 인간 내면의 심리적 변화를 세밀하게 그립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단순한 서사 이상의 삶과 인류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되며, 이는 문학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채식주의자의 논란이 된 장면들조차도 문학적 맥락에서 인간의 내면과 억압된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나체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은 단순히 선정적 목적이 아니라, 정체성을 억압하고 권위에 순응하는 개인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인간이 가진 복합적 감정과 내면의 갈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청소년 독서에서 제외하는 것은 오히려 이들이 진정한 인간성을 이해하고 자아를 탐구할 기회를 제한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또한, 문학은 청소년이 다루기 힘든 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같은 작품은 청소년들이 인생에서 직면하게 될 복잡한 감정과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들이 단순히 문학적 표현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심리적, 철학적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논란적인 소재를 다루더라도, 작품의 예술적, 교육적 맥락을 통해 청소년에게 안전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술 작품을 성적인 장면만으로 판단해 검열하는 것은 오히려 청소년이 폭넓은 시각을 기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문학 작품은 삶의 복잡성을 담아내고, 인간 경험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중요한 교육적 도구입니다. 채식주의자와 같은 작품을 통해 청소년은 자아 성찰의 기회를 얻고,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이 금서로 지정되지 않고, 올바른 독서 지도를 통해 청소년에게 건전하게 전달될 때 예술이 가진 본래의 교육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무식한 것도 아니고 무지한 것도 아닌, 천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모 저런 생각을 할수 있다고 봅니다.
채식주의자에서 처제와 바람피고 싶어하는 한 남자의 저열한 욕구를 잘표현 했는데 내 자식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생각을 할수는 있죠. 근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중고딩에게 저정도 수준의 섹슈얼 이슈는 아주 아주 이지한 모드라는걸 그 학부모들은 과연 모를까여? ㅋㅋ
채식주의자를 읽고 나니까 왜 금서로 지정했는지 알긴 하겠더군요. 그래도 금서 지정도 책 좀 읽은 사람들이 했을텐데 왜 저리도 사고가 얕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