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차(2016. 2. 14) 숭풍회 정기답사 안내(강원도 고성)
2016년 2월 숭풍회 첫답사는 남녘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북쪽 땅인 강원도 고성지역으로 정했습니다. 백두대간의 허리이며 금강산이 보이는 통일전망대에서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간단한 시산제를 지낼 예정입니다. 백두대간과 금강산의 기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시산제와 통일전망대 관산이 끝나면 김일성과 이승만 별장이 있는 아름다운 화진포를 둘러 봅니다. 한국의 4대 사찰 중 한 곳으로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건봉사를 답사합니다. 또한 6.25 전쟁도 피해 갔다던 동막골 같은 왕곡전통마을(고성군 죽왕면 오봉리)도 답사합니다. 백두대간이 힘차게 남진하는 모습을 보며 병신년 큰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답사가 될 것입니다.
1) 통일전망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남녘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북쪽에 있는 땅이다. 휴전선 철책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이 모두 보인다. 금강산가는 도로를 따라 더 갈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통일전망대에 올라서면 천하절경 금강산이 보인다. 선녀와 나뭇꾼 전설로 유명한 구선봉과 해금강이 지척에 있고, 맑은 날에는 신선대, 옥녀봉, 채하봉, 일출봉, 집선봉을 비롯해서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이 보인다. 통일전망대 옆 작은 공원에는 미륵불과 성모마리아가 북녘 땅을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도 이곳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며 시산제를 지낼 예정이다.
통일전망대는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제7군단을 방문했을 때 “비로봉과 해금강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 반공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지시하여 세워진 것이다.
2) 화진포
물색이 맑은데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잘 어우러져 동해안 최대의 아름다운 자연호수다. 강물에 실려 온 모래가 바다 물결에 부딪쳐 강 하구에 쌓이기를 거듭하여 생긴 모래톱이 길게 바다를 막아 생긴 호수를 석호(潟湖)라 한다. 강릉 경포호, 속초 영랑호, 고성 삼일포, 등이 석호에 속한다. 호수 주변에는 해당화가 만발하게 핀다하여 이름 붙여진 회진포다. 경관이 빼어나 주변에 유명한 별장들이 많이 있는데, 6.25 전까지 김일성 별장이 이후에는 이승만 별장이 아직도 남아있다.
3) 건봉사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신라 법흥왕 7년(520)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원각사(圓覺寺)라 이름하였다. 758년(경덕왕 17)에 발징(發徵)이 중건하고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 10,000일동안 염불을 계속하는 모임)를 열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만일회의 시초이다. 그 후 도선국사가 사찰을 중수하여 서봉사(西鳳寺)라 개칭하였는데 1358년(공민왕 7)에는 나옹대사 사찰을 중수하고 다시 건봉사(乾鳳寺)라고 개칭하였다.
1464년(세조 10) 세조가 이 절로 행차하여 원당(願堂 : 소원을 빌기 위한 지정 사찰)으로 삼고 사방 10리 안을 모두 절의 재산으로 삼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 6,000명을 일으킨 곳이며, 왜란이 끝나고 사명대사가 일본으로 건너가 통도사에서 가져간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12과를 찾아와 건봉사에 봉안하였다. 6·25 전쟁 전까지는 31본산의 하나로 우리나라 4대 사찰 중 하나로 설악산 일대의 낙산사, 백담사 등을 거느렸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아군 5,8,9사단, 미군 10군단과 북한군 5개 사단이 이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때 B29의 융단폭격으로 사찰의 대부분이 폐허로 변했으나 1994년 이후 점차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옛 절터와 대웅전, 불이문(강원 문화재자료 35), 9층탑을 비롯한 7기의 탑, 48기의 부도(浮屠), 31기의 비석이 있다. 반세기 가까이 오염으로부터 보호된 자연과 그 속에 자리 잡은 옹달샘은 건봉사가 주는 선물이다.
4) 왕곡마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에는 50여 호의 강릉최씨, 강릉함씨의 집성촌이 있다. 송지호 호반을 끼고 울창한 송림에 쌓여 있는 왕곡(旺谷)마을 주산은 오음산(260m)이다. 이 산에 올라가면 장현리, 왕곡리, 적동리, 서성리, 탑동리에서 들려오는 개소리와 닭소리를 들을 수 있다하여 오음산(五音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해변에서 불과 1.3km 떨어져 있지만 어촌보다는 깊은 산촌 같다. 오봉리 지명처럼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양지바르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해발 200m 넘는 다섯 개의 봉우리와 커다란 송지호에 의해 외부와 차단되어 수많은 외적의 침략이 있어도 이 마을만은 병화(兵禍)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6.25때도 이 마을만은 무사했다고 하니 큰 부자는 없어도 평화로운 영화 속의 동막골과 같은 곳이다.
전란과 재난이 없으니 전통가옥이 잘 보존되어 1988년 제1호 전통건조물 보존지구로 지정되었다. 겨울이 긴 추운 지방의 주거 공간 배치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이 마을은 집집마다 굴뚝위에 항아리를 얹어 놓았는데 아직까지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한다. 다만 그저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이기에 지키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마을엔 우물이 없다. 마을의 생긴 모양이 배 모양 즉 행주형(行舟形)이라 우물을 파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 때문이다. 이 마을은 부자가 아니어도 기와집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인근 구성리 마을에 기와 굽는 가마가 있어서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