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여름날의 추억 한 가닥 (1) >>
지금부터 거의 20년 전
내가 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다.
또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여기 회원 명부에 있더라.
한 놈만 빼고.
몇 몇 친구들에겐 들려줬던 실화.
그리고 여름철이면 졸음에 겨워하는 학생들에게 자주 들려주곤했던....
자~~시작.
나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학교를 다녔으니까
방학만 되면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지내곤 했었다.
물론 시골 친구들과 더 많이 어울렸지만 말이다.
그 해 여름도 역시 고향에 내려와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친구들과 두리번거리다가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그 때만 해도 텐트를 들고, 들과 산으로 바다로 몇 일씩 야영을 하는 것이
한 참 유행이었단다.
우리 일행은 다섯명.
목적지는 지리산.
당장 내일 출발하기로 하고 계획을 세웠단다.
오늘 저녁에 부산에 가서 각자 친척집 등에서 자고서
내일 아침 일찍 부산역에 모여서 출발하자.
회비는 일만원.
준비물은 시골에서 나는 쌀, 밑반찬 등 이런 것들을 각자 적당히 가져가고,
가스버너가 있는 친구가 있어서 그걸 가져가기로 하고,
텐트가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그 때 왠만한 집에 텐트
하나쯤은 있었는데 여기는 워낙 시골이라)
대신에 여름이니깐 방에 치는 모기장(‘방장’이라고 했었다)을
하나 가져가기로 했었다. 모포도 한장 있다더군.
그런 것들을 가지고 일단 부산으로 그 날 저녁에 출발했다.
부산으로 가서 각자 친척집으로 헤어졌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모이기로 한 시간, 나는 부산역으로 갔었지.
아직 친구들이 아무도 안 왔더군.
좀 더 기다렸더니 친구 넷이 저기서 오는 게 보이데.
그런데 넷이 한꺼번에 오는 모습들이 영 초라해보이고
기운이 쭉 빠져있더군.
왜 그러는지를 물었지.
한 친구의 말
“어제 우리 셋이서 친척집에 가기가 좀 뭐해서,
남포동에 여인숙을 잡아 거기서 자기로 했는데…..”
한 친구는 친척집으로 가고, 나머지 셋은 남포동에
여인숙을 잡아놓고서 저녁에 밖으로 나왔다더군.
술 한잔 먹고싶어 자갈치 시장 근방에서 술을 먹었데나!
술이 한 잔 들어가고 또 한 잔, 한 잔 씩 계속 먹었더니 제법 취했다나!
한 참 먹고 나중에 계산을 하고 나니 가지고 있던 돈은
거의 다 술값으로 지불하고 말았다더군.
그 다음 날, 아침을 대충 먹고 부산역으로 오는데
부산역 앞에서 야바위꾼들이 보이더래.
말하자면 돈 놓고 돈 먹기.
야바위꾼이 카드 3개를 놓고, 한 카드에 특정 표시를 하고
엎어놓은 다음, 손으로 하나씩 옮기다가 손님이 표시된 카드를
맞추는 식 이라나.
없어진 돈을 복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남은 돈으로 그걸 했대.
처음에는 돈을 제법 땄는데 나중에는 완전 빈털터리가 되었다더군.
그 때 친척집에 갔던 다른 한 친구가 오더래.
그 친구의 돈도 역시 거기서 탕진하고 말았대.
이제 아무도 돈이 없다. 나 밖에….
내가 그 때 회비 만원 낼 것과 몇 천원이 더 있었지.
급히 여행일정을 수정하기로 했다.
지리산은 그만두고 밀양에 있는 얼음골이나 표충사에 가기로 했다.
가진 돈은 갈 때의 기차삯과 조금의 여유돈 밖에 없었지.
일단 밀양역 까지의 기차표를 끊고 기차를 탔다.
밀양역에 내려서 남은 돈 몇 푼으로 라면을 사고,
또 사진을 찍겠다고 사진관에 가서 스냅사진기도 빌렸지.
부탄가스도 사야 하는데 돈 아끼느라 마른 나무 줏어다 밥 해먹기로 했다.
밀양역에서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먼 길을 걸어가서,
거기서 시외버스를 타고 표충사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서 표충사로 오르는 길은 아주 넓고
큰 계곡을 따라 나있더군.
계곡을 따라 한 참을 올라가는데, 계곡 속에는 많은 야영객들이
물이 흐르지않는 자갈밭에 텐트를 치고 놀고 있었다.
우리는 표충사를 조금 지나 계곡 가에 큰 나무가 있고
그 아래 넓직한 바위가 있는 천하의 명당에 자리를 잡았지.
마른 나뭇가지를 줏어다 불을 피우고,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가지고 온 찬거리로 된장국을 끓였단다.
그 때 나이프가 없어서 옆 텐트에서 빌려 썼던 기억도 난다.
끓이는 동안 나머지 친구들은 나뭇가지에 모기장을 매달아 치고는
그 안에서 고스톱을 했단다.
가지고 온 소주와 함께 푸짐한(사실은 매우 초라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천하에 부러울 게 없더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바로 모기장을 꿰뚫고 들어와
우리의 끈적끈적한 몸을 시원하게 씻어주었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는 그야말로 천상의 음악이었지.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또 한 참을 고스톱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거야.
물론 빗방울도 모기장을 바로 통과, 곧바로 우리들의 머리위로
낙하했지.
이 일을 어쩐다.
우리들은 회의를 했지. 그 결과 특공대를 마을로 내려보내기로 했다.
두 사람이 마을로 가서 비닐을 얻어 오는 거야.
그걸로 모기장 위를 씌우는 거야.
이렇게 의논하고 두 사람을 뽑아 마을로 내려보냈다.
물론 마을로 내려간 친구들이 무사히 비닐을 구해왔고
우린 그걸 모기장 위에 씌웠지.
그랬더니 정말 좋은 텐트가 되더군.
바람은 솔솔 불어오고 비는 안 떨어지고..껄 껄 껄….
또 한참을 촛불을 켜놓고 놀고있는데 갑자기
내 머리 위에 뭔가가 닿는 거야.
손으로 만져보니 감촉이 마치 여자 엉덩이처럼
물컹물컹한 것이 만져지더군.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빗방울이 모여서 모기장이 아래로 축 늘어져서
머리까지 닿았더군.
밑에서 그걸 손으로 떠받쳐 빗물을 밖으로 쏟아내었지.
한참지나서 또 한 번 그렇게 하고 자리에 다시 앉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소나기가 내릴 기세야.
이 일을 어쩐담.
벌써 밖은 어두워져서 잘 안 보이는데…
우린 정말 난감해 했지.
도저히 버틸 상황이 아니었단다.
< 다음에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