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사무실을 새로 열 때처럼 무엇을 처음으로 할 때 하는 의례가 있다. 고사가 그것이다. 고사를 할 때 보통 떡을 한 시 루 해서 올려놓고 돼지는 머리만 놓는다. 그러곤 막걸리를 바치면서 연신 절을 한다. 물론 돈을 바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런 의례를 하는 이유는 앞으로 하는 일이 사고 없이 순탄하게 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렇게 친숙한 고사는 어 디서 유래한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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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처음으로 시작할 때 우리는 고사를 지낸다. 고사의 유래는 무엇일까?
가장이 주관하는 제사, 주부가 관장하는 고사
조선조를 보면 집안에서 중요한 두 가지 의례가 정기적으로 행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가장이 주관하는 ‘제사’와 주부가 관장하는 ‘고사’가 그것이다. 우리가 아직도 행하고 있는 고사는 바로 이 주부들이 행하던 고사의 연장이다. 제사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지내고 있다만 고사는 집에서는 거의 사라지고 이렇게 사회 관습으로만 남았다. 사실 집에서 하는 고사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고사란 집안에 산다고 믿어지는 신들에게 올리는 제사였다. 이전에는 집안 곳곳에 신들이 살았다. 그런데 이젠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주거 형태가 아파트로 바뀌었다. 집의 구조가 너무나 달라져 이전의 신들이 있을 데가 없어졌다. 그런데 이 가신 신앙과 고사 역시 우리의 훌륭한 전통이고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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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란 매우 특이한 의례이다. 여성인 주부가 집전하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가부장 문화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의례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고사는 원래 10월에 추수가 끝난 다음에 지냈는데 형편이 닿으면 무당을 불러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의례가 끝나면 신에게 바쳤던 떡을 이웃들과 나누었다. 제가 어렸을 때인 60년대만 해도 10월이 되면 이 떡(시루떡)을 이웃에게 나르고 이웃으로부터 받아먹느라 즐거워했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이때 주부가 모셨던 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신은 성주신이다. 성주신은 그 집의 가장을 수호하는 신인데 전통적으로 집의 대들보에 산다고 전해진다. 집 건물에서 제일 중요한 게 대들보고 집안에서 제일 중요한(?) 존재가 가장이라 생각해 이 둘을 유추해 연관시킨 것 같다. 이 대들보가 있는 공간은 마루이다. 마루는 집안에서 가장 성스러운 공간이다. 마루는 제사나 굿 같은 신성한 종교 의례가 벌어지는 곳이고 결혼식처럼 중요한 행사가 치러지는 곳이다. 이에 비해 안방은 세속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먹고 자고 그러다 죽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주신의 몸체는 지방마다 다른데 일반적으로 작은 단지에 쌀을 넣어서 표현한다. 이것을 마루 귀퉁이나 대들보에 올려놓는다. 고사는 이 성주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성스레 시루떡을 해서 그 위에 북어나 실타래 같은 것을 놓는다. 여기에 촛불을 켜놓기도 하는데 막걸리 한 사발을 올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주부는 여기에 절을 하고 손을 비비면서 올 한 해를 무사히 넘긴 것을 감사해 하고 앞으로의 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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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단지. 집의 가장을 수호하는 성주신을 모시는 단지이다. <출처: 한국민속종교연구소 장정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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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을 주관하는 삼신할머니와 부엌을 주관하는 조왕신
그 다음으로는 생활공간인 안방으로 가서 그곳을 주관하는 신께 예를 올려야 한다. 이 신은 보통 삼신할머니로 알려져 있는데 아이들의 수태부터 임신, 출산, 양육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주는 아주 자애로운 신이다. 아이들의 수호신령인 셈이다. 그런데 이 신을 할머니로 묘사하는 게 재미있다. 할머니는 긴 인생을 살아 아주 노련하다. 그 노련함으로 출생이나 사망처럼 안방에서 일 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게 분명하다. 이 신을 위해서는 벽 위쪽에 작은 단지를 모셔놓고 그 안에 쌀이나 보리 같은 귀한 곡식을 넣은 다음 한지로 덮어놓는다. 삼신할머니께는 이때만 제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낳은 다 음에도 한다. ‘삼신메’라는 밥을 해서 이 신께 바치면서 산모와 아이가 건강하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 그것이다. 그 다음은 부엌이다. 부엌은 밥을 하는 곳이니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는 당연히 불이 있는데 불은 많은 사회에서 신성시되어 왔다. 불이란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에 정화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그런 불이니 불을 신성시 하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엌에는 조왕신이라는 신을 모셨다. 이 신은 사는 곳이 부뚜막 위이기 때문에 이곳에 깨끗한 물을 담은 사발을 놓았다. 주부는 매일 이 사발의 물을 새 물로 갈고 합장을 하면서 예를 갖추었다. 사실 이 조왕신은 중국 도교에서 모셔지던 신이다. 삼신할머니가 토속신인 데에 비해 조왕신은 외래신이다. 요즘에 이 신을 모신 현장을 보려면 절에 가면 된다. 절의 아궁이를 보면 한자로 조왕신이라고 쓴 곳을 아직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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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을 관장하는 삼신할머니에게 바치는 상인 삼신상(왼쪽)과 부엌과 불을 관장하는 조왕신(오른쪽)의 모습. <출처: 한국민속종교연구소 장정태>
신들이 집에 거주한다고 믿음으로써 주거지를 신성하게 여겼던 우리 조상들
그 다음의 큰 신으로는 터줏대감 혹은 터주신이라 불리는 신을 들 수 있다. 이 신령은 말 그대로 집터를 관장하는 신이다. 우리가 일상용어에서 ‘터줏대감’이라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다. 이 신은 집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장한다고 하는데 욕심이 많아 밖에 있는 것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속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부자가 되려면 이 신을 잘 모셔야 한다. 이 신은 보통 뒤뜰 장독대에 항아리에 햅쌀을 담아 모신다. 항아리 위에는 깔때기 모양으로 된 짚을 덮어 놓는다. 이 안에 있는 쌀은 다음 해에 새 쌀로 바꾸면서 떡을 해서 먹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때 한 떡은 절대로 남에게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자신들의 복이 새어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집안에는 작은 신들도 있다. 예를 들어 집안의 재산을 지킨다는 업신이 있다. 재산을 관장해서 그런지 이 신은 광(창고)에 산다고 전해진다. 이 신과 관련해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초가의 지붕에 살곤 했던 뱀이나 구렁이가 이 신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동물을 잡지 않았는데 거꾸로 이 동물이 집을 나가면 망한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그런가 하면 변소에는 측신이 있다. 이 측신은 ‘변소각시’라 해서 하얀 옷을 입고 머리를 무릎까지 풀어헤친 처녀로 묘사된다. 왜 청결하지 못한 변소와 처녀를 연결시켰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이전에는 변소에 들어갈 때마다 헛기침을 해서 인기척을 이 신령에게 알렸다고 한다. 이 이외에 문지방에 사는 신 등 다른 작은 신들이 더 있지만 이런 것들을 일일이 다 볼 필요는 없겠다. 이제 이런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앞서 말한 대로 주거구조가 현저하게 바뀌어 그렇게 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상들은 집에 신들이 거주한다고 믿음으로써 자신들의 주거지를 신성시 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집은 그저 무정물이고 어떤 때에는 투자의 대상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집 안에서 살았던 우리의 삶이 소중하다면 그 그릇인 집도 소중한 것다. 우리 주위서 수십 년 정들게 살았던 아파트를 재건축하겠다고 부수면서 ‘경축’이라고 쓴 현수막을 걸어놓는 경우를 가끔 본다. 이것은 집을 투자대상 이상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집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조상들의 혜안이 그리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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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최준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