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마르 페이버, 에바-마리아 슈누어/ 박지희 옮기, 『1517 종교개혁』(21세기북스, 2017)
종교개혁은 고지식하고 과거에 정체된 중세 시대에 대항한 이성의 반란이며, 무지의 어둠을 밝힌 빛이자 근대라고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연 사건이라 여겨진다. 독일에서 종교개혁 기념일인 10월 31일을 법적 공휴일로 지정한 주는 많지 않지만 독일인은 종교개혁을 국민 의식 속에서 크게 기념할 만한 사건으로, 루터를 위대한 민족 영웅으로 생각한다.
2017년은 루터가 논제를 발표한 지 500주년이 되는 해다.(18쪽)
종교개혁은 많은 변화들이 서로 강하게 상충하며 역동하는 시기에 일어났다. 루터의 사상이 세상에 나올 무렵에는 종교뿐 아니라 정치와 문화, 사회와 경제 분야에서도 근본적인 변혁의 움직임이 싹트고 있었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루터의 주장이 그렇게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루터보돠 앞서서 등장한 체코인 얀 후스Jahn Hus와 영국인 존 위클리프John Wyclif도 비슷한 주장을 했지만 지지 세력이 충분치 않아 성공하지 못했다. (19쪽)
1492년 크리스토퍼 컬럼버스는 그때까지 미지로 남아 있었던 신 대륙을 발견했고, 그 대륙은 1507년이 되어서야 세계 지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1519년부터 1522년까지 페르낭 디 마갈량이스(잘 알려진 영어 이름은 페르디난트 마젤란)가 최초로 배를 타고 지구를 일주하여 몇 세기 전부터 알려져 있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비로소 경험적으로 입증했다.(19쪽)
1543년 주교좌성당 참사회원이자 천문학자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오랜 시간 연구와 관찰을 통해 자신이 내린 결론을 한 편의 논문으로 제출했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 주의를 궤도 선회한다는 내용이었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니 얼마나 혁명적인가!(20쪽)
한편으로는.화폐 제도가 빠르게 정착, 도시에 인구가 몰리면서 새로운 교통로가 유럽을 더욱 긴밀하게 이어줌, 인쇄술의 발달로 오늘날 신문의 전신인 《새로운 소식》근대에 발생한 사건과 소식을 빠르게 전하는 매체로 떠올랐다.(20쪽)
중세 시대에는 계시록의 환상에 등장하는, 임박한 종말에 대한 생각이 만연했으나 특히 세기가 바뀌는 황제 막시밀리안 1세 시대에는 어두운 종말이 유난히 많았다. 수많은 천문학자들이 특이한 행성이 위치 변화를 보고 1524년 2월에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추측했고, 혜성이 지나가면 대홍수가 일어날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루터 또한 종말이 가깝다고 확신했다. 그는 한 편지에 종말을 예감하게 하는 조짐이 계속 보인다고 썼다.(21쪽)
황제 막시밀리안이 지배하는 동안 많은 놀라운 표적이 하늘에 나타났고, 땅과 바다에도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제 그 어느 세기에도 보지 못한 거대한 표적을 모두가 보게 될 것이며, 우리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확실한 소망을 품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루터에게 임박한 종말의 조짐은 일종의 경고였다. 모든 거짓과 모든 잘못을 뉘어치고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며 스스로 준비되었는지 되돌아보라는 메시지였다.(22쪽)
종교개혁 Reformation이란 단어는 글자 그대로 뜯어보면 형태를 되돌림, 즉 원형으로의 복원을 의미한다. 단어의 의미가 시사하듯 루터는 날카로운 눈으로 미래를 내다본 것이 아니라, 현재보다 더 나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본래의 상태로 회귀하려 했다. 루터가 살던 시대에는 이렇게 옛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것이 전형적이었다. 사람들은 시대가 변하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도 대부분 전통적이고 숭고한 듯한 질서에 따르는 것이 최고라 여기는 중세의 사고방식을 고수했다.(22쪽)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고린도전서 14장 34절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창세기 9장 7절
루터가 남긴 마지막 글인 「유대인에 관한 경고」에서(1546년 2월)
“유대인은 우리의 적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주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성모 마리아를 창녀라 부르고 그리스도를 사생아라고 부르며 우리를 뒤바뀐 아이 혹은 유산아라고까지 부릅니다.”(278쪽)
“유대인들이 회심하고 그리스도 모독과 우리에게 하는 죄악을 멈춘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들을 용서할 것입니다.”(279쪽)
슈피겔 ; 당시에 독일에 살던 유대인은 전체 인구의 0.2%가량이었잖아요. 어째서 루터는 유대인을 몰아내는 일에 그렇게 매달렸을까요?
카우프만 : 당시에는 유대인에 대한 비상식적인 두려움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제사를 마술의 의식으로 의심하고 이들이 사탄과 연합했다고 믿었습니다. 루터는 이들이 ‘육체에 깃든 악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이들이 사람들에게 큰 불행을 끼친다고 믿을 수도 있는 것이죠. (281쪽)
하나의 국가에 다양한 종교가 공존할 수 있다는 현대적인 생각은 당시 대부분의 군주와 민중에게 낯선 개념이었다. ‘통일된 종교는 사회를 통합시킨는 필수 요소다’라는 원칙이 가장 보편적이었다.(288쪽)
1541년에 스웨덴어로 된 최초의 신‧구약 성경이 출간되었고 이것은 스웨덴 문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안드레에와 페트리 형제가 번역한 성경은 현재 ‘구스타프 바사 성경’으로 알려진 성경이다.(2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