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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잣봉 트래킹 ~ 동강 래프팅
❍ 일 시 : 2009. 7. 18 (토) 05:00 구청 앞 출발, 20:30 도착
❍ 행사내용
- 잣봉 트래킹(08:45 ~ 12:20, 중식시간 포함)
* 거운리~마차마을~잣봉~어라연~만지나루~거운리
- 동강 래프팅(10km, 13:30~16:00)
* 문산나루 ~ 어라연 ~ 만지나루
❍ 참여인원 : 2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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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가는 길은 미리부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 두 해 동안도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영월행을 고집했지만 한 번도 성사되질 못했다. 산행도 산행이지만 여름 한철 북새통을 이루는 동강에 래프팅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섞고자 한 것이 지나친 욕심이었던지 그 때마다 날씨가 길을 막고 나서더니 올 해도 한 열흘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장마가 아직까지 길을 허락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날씨만을 탓하고 있을 순 없다. 어쩌면 이번 영월행을 포기하면 다시는 기회가 찾아올 것 같지도 않고, 어쩌다 우연히 찾아온다 하더라도 그때도 지금처럼 마음이 내킬런지 그것 또한 장담할 수 없어 그냥 나서보기로 했다. 만약 래프팅을 하지 못한다 해도 아쉬움을 달랠 뭔가를 준비한다면 그래도 좀은 분이 풀릴 수 있겠지 하는 대리충족감까지 준비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토요일 중부지방에 태풍을 동반한 강한 비가 예보되어 있음에도 유독 우리가 가는 영월쪽은 그리 많은 비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현지 예보다.
대구를 출발, 중앙고속도로 단양 휴게소에서 다리쉼을 하고는 단양 나들목으로 나와 국도로 단양, 제천을 지나 영월로 들어갔다. 오늘의 첫 행선지인 쳥령포에 도착한 시각이 8시 10분. 아뿔싸!! 너무 이른 시간이라 서강(西江)을 건너는 배가 미처 채비를 하질 못했단다. 9시부터 운행한다고 하니 40여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하루에 너무 많은 걸 욕심내느라 일찍 출발하고 보니 현지 도선 운행시간을 염두에 두질 못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잣봉 산행을 먼저 한 후 래프팅을 하기 전 시간짬을 내 다시 오기로 하고 그냥 버스를 출발했다. (하지만 나중 청령포 도선장으로 연락해 본즉, 서강의 강물이 불어 며칠간은 배를 띄울 수 없다는 말에 결국 청령포 관람은 포기해야만 했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조선왕조 여섯 번째 임금자리에 오른 단종. 임금자리에 오른 세 해 뒤인 1457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의금부 도사 왕방연과 중추부사 어득해가 이끄는 군졸 50여명의 호송을 받으며 유배 길에 올랐다. 한 여름으로 접어드는 음력 6월 22일, 단종은 한양을 출발하여 일주일만인 6월 28일 영월 청령포에 도착했다. 단종이 피눈물을 흘리며 거쳐 온 유배 길 700리는 어디일까?
“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곳 없어 냇가에 앉았더니
저 물도 내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청령포에 단종을 두고 서강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가며 읊은 시조이다. 비록 단종 호송의 책임을 맡긴 했지만 이역만리에 어린 임금을 두고 떠나는 금부도사인들 어찌 피눈물이 쏟아지지 않았겠는가?
산행 출발지인 거운리에 도착하니 8시 30분경. 마을자치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듯한 잣봉 입산 관리사무소가 산행기점인데 과거에는 입산료(사실은 쓰레기 처리비용 명목으로)를 한 사람당 1,000원씩 받았으나 내년 4월까지는 입산료 징수가 유예되었으니 그냥 입산하라는 마을 부녀회원인 듯한 분의 친절한 안내가 어쩐지 오늘 행사가 순조로울 것 같은 느낌이다.
비록 비는 내리지 않지만 우기로 인해 습도가 높은 탓인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온통 땀이 비오듯 흐른다. 잣봉 가는 길은 그리 힘든 길은 아니다. 마차마을까진 임도를 따라 걷다 마차마을 뒤편으로 난 자드락길을 따라 한참을 오른 후 동강을 맞춤하게 굽어볼 수 있는 능선을 따라 1시간여의 발품을 팔다보면 어라연(魚羅淵)이 굽어보이는 전망대에 다다른다. 소나무 가지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동강의 현란한 자태가 눈을 어지럽게 한다. 장한의 굵은 힘줄같이 불끈 솟은 뼝대(바위로 이루어진 높고 큰 낭떠러지를 강원도 사투리로 일컫는 말) 사이에 누운 어라연. 하지만 어제내린 비로 인해 동강의 물줄기가 누런 황토물로 변해 물고기가 비단처럼 하늘거리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지만 그래도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거북바위 등등 협곡사이의 그 비경만큼은 입이 저절로 벌어지게 만든다.
잣봉에서 어라연 내림길은 급경사다. 어라연에서부터는 동강을 옆구리에 끼고 줄곧 내려오는 길인데 오전 래프팅에 참가한 사람들의 노(패들) 젓는 구령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수인사, 눈인사를 나누면서 강을 따라 내려오다보니 그리 힘들이지 않고 어느새 만지나루 주막에 도달했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청령포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는 것이 어떨까하고 곰곰 생각하고 있는데 청령포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취해본 총무로부터 배를 띄울 수 없다는 연락을 받고는 3시로 예정된 래프팅 행사를 1시 행사로 앞당기기로 하고는 맞춤한 자리에서 시장기를 달랬다. 식사 후 거운리로 되돌아 온 시간은 12시 20분.
오후 래프팅은 1시 30분쯤에 시작했다. 비록 일행을 짐짝처럼 태우고 널뛰듯이 덜컹거리며 문산나루로 이동하는 봉고차가 얄밉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중 경험하게 될 스릴을 생각하느라 타박할 것 까진 아닌듯하다. 마음의 들썩거림 중에도 차창 밖으로 언뜻언뜻 스치는 현지 마을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묘한 애절함을 느끼게 된다. 도회지 사람들이야 철따라 왔다 즐기고 가면 그만이지만, 붙여야 할 땅 한뙈기 마뜩챦고 삽짝 뜯어 군불 지펴야 할 걱정거리만 늘어진 궁벽진 산골마을 사람들한테야 아무리 좋은 풍광인들 어디 반갑기만 하겠는가? 묘한 상념의 오버랩에 잠깐이나마 혼란스러운 기분이다.
문산나루에는 이미 먼저 도착한 래프팅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비도 간간이 흩뿌린다.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진다. 막상 강물에 배를 띄우자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세상시름이야 애초부터 없었던 듯하다. 강 양안으로 천애의 협곡을 배경삼고 때마침 내린 비로 누런 황토물로 변한 동강이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이 강을 따라 뗏목을 띄웠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추라도 하는 듯하다. 동강의 길이는 약 51km 정도라고 한다.
지난 2003년쯤으로 기억되는데 백두대간 종주 중, 정선 임계면에서 하룻밤을 묵고는 이튿날 동강의 출발점인 정선 가수리에서 시작하여 약 20여km를 강을 따라 답사했던 경험이 있다. 요즘이야 동강하면 영월의 강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동강은 정선에서 출발하여 계방산에서부터 발원한 평창강과 영월의 남쪽에서 합류하여(영월의 남쪽에 도착하면 평창강은 서강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곳 현지인들은 서강을 ‘암캉’, 동강을 ‘수캉’으로 더 자주 사용하고 있다.) 남한강이라는 이름으로 유장함을 더해 흘러가니 여기까지가 동강이라고 보아야 한다.
송천과 임계천을 받아들여 정선 아우라지(‘아우라지’란 어우러진다는 우리말이고 보면 송천과 임계천이 합류함에서 연유한 듯하다.)를 지난 조양강이 정선의 가수리에서 다시 남동천을 받아들여 동강을 이루고 이 동강이 감입곡류하여 황새여울, 된꼬까리여울을 지나 영월 남면에서 평창강(서강)과 몸을 섞어 남한강이라는 이름으로 한강으로 흘러 서해에서 그 수(壽)를 다하니 결국 정선 가수리에서 시작하여 평창강(서강)을 만나기까지의 지점이 동강이며 이 길이가 51km이다. 한자표현도 옛날에는 오동나무 동(桐)자를 써 桐江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영월의 동쪽을 동강, 서쪽을 서강이라 표현하고 한자로도 東江, 西江으로 쓴다.
사실 동강은 1996년까지만 해도 도회지 사람들한테 별로 알려지진 않았다. 1996년 영월읍내가 홍수로 온통 물에 잠긴 후 동강댐을 건설한다는 정부의 발표와 함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된다. 빨리 보상받아 궁벽진 살림살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현지인들,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도회지 사람들이 들끓으면 먹고살기에 좀 낫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들뜬 자치단체와 인근지역 사람들,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를 우려하는 시민단체, 재난을 항구적으로 막아보겠다는 정부 등등의 서로 다른 이해타산으로 근 10여년간이나 끌어오다 결국은 정부의 댐 건설 포기로 현지인들의 갈등만을 부추긴 채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입히고 막을 내렸다. 이런 와중에 동강의 비경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결국은 도회지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들이게 된다.
흔히들 갑자기 많은 돈을 모은 것을 일컬어 ‘떼돈 벌었다'고 표현한다. 이곳에서 나는 재목을 실어 내던 뗏목꾼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 정선과 영월이다. 정성군수와 영월군수의 월급이 20원정도일때 정선에서 떼 한 바닥 타고 가서 강 주인한테 넘기면 단번에 30원을 받았고 보통 떼꾼들이 정선에서 영월을 거쳐 서울을 한 번 다녀오면 큰 소 한 마리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잘 벌었는지 "떼돈 번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해방 이후 정선에서 한강까지 오는 길목에는 1천여 개의 객줏집이 늘어서 떼꾼들의 떼돈에 기대 살았다. 밤낮없이 떼를 모는 떼꾼들을 위해 객줏집 여자들은 거룻배에 장구와 술을 싣고 아예 한강까지 떼꾼들을 따라 나가기도 했다. 그러하니 여자를 가까이 하거나 노름을 하는데 떼돈을 모두 날리고 서울에 도착한 뒤에는 집으로 돌아갈 여비가 없어서 고생하던 떼꾼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능숙한 떼꾼들은 1년에 대여섯 차례 서울을 오가며 돈을 벌었다는데, 그 떼꾼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지금은 전산옥(全山玉) 주막터만이
그 옛날 흥청거렸던 떼꾼들의 애환을 전해주는 듯하다. 하기야 지금 동강변에는 외지인들의 래프팅 업체, 팬션등이 즐비하니 이것 또한 현대판 떼꾼들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결국 돈(자금)의 흐름은 현지인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돈냄새를 잘 맡는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이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이런 저런 상념에 배는 급류를 따라 휘어지고 잦아지며 어라연을 지난다. 동강은 몰라도 어라연은 안다 할 정도로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대부분 동강의 비경을 소개하는 사진은 이 어라연이다. 동강의 열 두 곳 비경중 하나이며 물색깔이 하도 맑아 하늘에서 보면 고기떼가 노는 모습이 흡사 비단이 나풀거리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장한 강을 따라 노(절대 "노"라고 하면 안되고 "패들"이라고 해야 한다며 가이드로부터 주의를 받았건만 어쩐지 "노"란 표현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를 젓다보니 어느새 만지나루의 주막에 다다랐다. 비록 떼꾼들은 아니지만 주막집의 상술(商術)에 막걸리 한잔 걸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마지막 급류에 몸을 내맡기다보니 어느새 거운리 나루터다. 하루의 피로는 준비해 간 삽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풀었다.
※ 동강의 빼어난 곳 12곳을 ‘동강 12경’이라 이름 붙였는데 여기다 소개한다.
기회가 허락한다면 한번 쯤 가 보는 것도 괜챦을 것이라 생각하여 감히 추천하는 맘으로 소개 드린다.
설명은 여기저기 소개서, 인터넷에 떠도는 설명 등등을 조합하여 구성하였다.
1경-동강이 시작되는 조양강과 동남천의 합수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정선군 가수리 수미마을. 700년 전 처음 들어온 강릉 劉씨가 심었다는 높이 35m 둘레 7m의 느티나무와 함께 평화로운 마을로 동강 12경의 첫 문을 연다.
2경-정선군 운치리 수동마을 앞 섶다리. 가운데가 높고 물살에 잘 견디도록 상류로 휘게 역학적으로 놓인데다 솔잎가지로 섶을 가려 강물로부터의 공포심을 없앴다. 겨울철 강마을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3경-정선군과 평창군을 잇는 칠족령은 고갯마루의 소나무와 참나무가 얽힌 성황목과 함께 동강 중상류의 산과 강을 돋보이게 한다.
4경-정선군 신동읍 고성리의 고성산성. 삼국시대 한수 이북을 지키기 위해 고구려가 쌓은 석축산성으로 감입곡류하는 동강 중상류의 장관을 사방으로 펼쳐진 산세와 함께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5경-'바새'앞 뼝대는 동강의 석회암 단애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경관. 이 절벽의 능선과 사면에는 자생향나무 등 희귀식물이 자라고 있어 보존대책이 시급.
6경-연포마을. 배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동강 끝자락에 가장 아름답게 눈에 들어오는 마을. 황토와 몇 가닥의 목재로 세운 담배건조막은 이 마을의 정경과 어우러져 돋보인다. 강건너 높이 솟은 형제바위는 봉우리처럼 앞을 가려 이곳 사람들은 해뜨기를 세 번 본다.
7경-백룡동굴. 전장 1천200m가 넘는 이 동굴은 77년 발견이후 천연기념물 206호로 지정, 영구 보존 동굴로 일반인에게 비공개되고 있다.
8경-평창군 마하리의 황새여울의 주변에는 어른 몸 만한 바위들이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무리지어 있어 하나의 자연조각공원을 이루고 있다. 당연히 취사 야영 등이 금지되어야할 곳.
9경-두꺼비바위와 어우러진 자갈밭과 모래톱, 그리고 앞 뼝창. 얼마전 골재 채취의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앞 뼝창의 돌단풍 등의 식물상과 빼어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야영취사는 물론 모터를 단 선박의 유선행위도 제한돼야한다. (* 뼝창 - 절벽의 강원도 사투리)
10경-어라연. 동강은 몰라도 어라연은 알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곳. 희귀식물 군락지로 보존구역설정이 요망.
11경-동강의 하늘과 산마루에 걸린 흰 구름. 동강유역에 구름 雲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2경-정선 운치리의 나리소. 그 특이한 분위기속의 조용한 물흐름으로 동강 수경의 인상적인 첫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시작된 물길은 덕천리 파랑새 하늘벽 앞의 동강 물살중 가장 깊은 하방소를 맴돌아 평창동강의 두룬이 앞에서 아름다운 수중경관을 연출하고 영월동강의 문산리를 지난뒤 두꺼비바위 모래톱과 어라연을 거쳐 유장하게 흘러 호수처럼 느껴지는 만지에 이르게 된다.
함께 한 회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첫댓글 사전 찾아가면서 잘 읽었습니다. ^^
윤회씨 여기서나마 만나게 되니 참 반갑네~~^^ 열심히 자~~알 하고 계시죠~~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 오릅니다..... 이 여름이 가기전에 또한번 가고 싶네요..^^
어.. 제가 담배피는 모습이 찍혔군요...
웃고있는걸 보니 아마도 비닐봉지에 고이고이 싸온 담배맛이 너무 맛있어서 였을듯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