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쁜 일상에서 평화로운 그림읽기로의 여행 *
늘푸른(aprilnov@hanmail.net, 시와 고전음악... 그리고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늘푸르게 살고 싶은 여자) 2000년 5월 30일
아주 오래 전.
목련과 술병이 그려진 제 그림을 마주하고 긴 한숨을 토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한숨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지요. 양수리는 야외스케치하러 자주 가던 장소이기도 하지요. 그림 그리는 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에마저도 순수하게 몰입하지 못했던 못난 자신을 인정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림에 조금의 끼도, 재능도 없었던 자신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더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일찍이 그런 자신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게 어쩜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은 좋은 그림 많이 보러 다니는게 제 낙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좋은 이미지로 와 닿는 그림이 별루 없어서 섭섭하지만요. 얼마 전 평창동 가나 아트 센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 3인의 작품을 감상한 적이 있는데요. 특히 좌우균제미(symmetry)를 통해 우주의 조화를 이야기하려 했던 문신의 브론즈나, 권진규의 영원한 이상향, 얼굴을 소재로 한 테라코타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과 대화를 나누었지요. 무언의 대화...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그 넓은 화랑에 관람객은 오로지 저 하나.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 텅빈 공간이 주는 산산함을 끔찍하게 즐겼습니다. 2층 야외 테라스에서 만난 북한산과 또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요?
오늘....
오랜 세월의 때가 묻은 편지들을 정리하다가 절 무척 따랐던 예쁜 친구의 엽서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언니, 겨울이 성큼 왔습니다.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며 차분해진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지요. 커피포트에선 물이 신나게 끓고 있습니다. 낡은 탁자 위의 정물들-- 몇 개의 낯익은 컵들과 사과 두 알, 호롱불, 양파, 색 바랜 초등학생 운동화, 오래된 화병, 몇 송이의 꽃을 보며, 숨쉬고 있다는 기쁨을 느낍니다. 이런 정물들과 함께 그림 그릴 수 있다는 의욕으로 충만하여…….
미완으로 남겨 둔 언니의 작품 '바다새'은 언제 끝내실건가요?' '81/12/어느날...
아마 그 '바다새'는 아직껏 미완으로 후암동화실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오늘밤은, 왠지 자꾸만 그 바다새가 보고 싶네요.
그럴 때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만났다. 그녀의 글 속에서 또다른 그림보기의 경험을 했다. 나도 누구에겐가 그림이 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 낙서는 내 안의 내가 일상의 내게 보내는 편지가 아닐까. * 바스키야가 내게 준 자유의 이미지는 팝콘이다. 절대로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의지와 비교적 정돈된 일상의 모습으로. 이런 내 안에는 여러 알의 팝콘이 숨어 있다. 언제나 카운트 다운을 하고 언제든 일탈의 준비가 된. 나는 자유롭고 싶어하는 열 받은 팝콘이다. * 앙리 마티스<금붕어와 조각> 뭔가 '덜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 내가 완성하고 싶은 느낌이 들게 하는 그림. 가능성으로 비어 있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결에 스며들게 하는 그림. * 미술을 보거나 찾아나선다는 것은 일상에 매우 특별한 '시간할애'가 되는 현실. 나는 미술이 조금 더 적극적이고 사회와 호흡할 수 있는 그 무엇이길 원한다. * 현대미술과 연애하자.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많이 듣고 보아 친근해진 것과 특이하고 어쩌다 접해서 껄끄러운 것의 차이일 뿐. 보느라고 보아도 또 한 발짝 달아나버려 지쳐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미술과 친해지는 방법 중 한 가지는 화가와 친해지는 것이다. * 과학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인상파 화가들. 사진을 보고 순간이 포착된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과학이 미술의 대중화의 숨은 공로자인 셈이다. *
바쁜 일상에서 평화로운 그림읽기를 집에서 쉽게 접해 볼 수 있는 책이였다.
한젬마의 예쁜 얼굴 표정의 책표지가...
쉽게 한 권 집어 들게 만든것 같다.
그리고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는 산으로... 들로... 해안으로 산책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지쳐있는 마음에게 휴식을 주는 그림들
이미수(bombbi10@hanmail.net,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000년 5월 22일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였다. 흰색 캔버스를 계속 노려보지만, 어떻게 그려야 할지, 어떤 색으로 칠해야 할지... 다른 친구들은 쓱쓱 잘도 하는데, 유독 나만 멈추고 있었다. 내가 상상하고 생각한 그림을 왜 난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어린 마음에 나름대로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졸업 후에도 내 그림 솜씨는 조카들의 숙제에서 탄로나고 말았다. 아이들의 희망과 기대로 부풀어 있던 눈은 어느덧 실망으로 눈빛으로...
그러다가 우연히 신문 속에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주저하지 않고 선택했고.... 역시 나의 선택은 대만족이었다. 낯설게만 느껴지던 그림들이 서서히 내 눈속에, 내 머리에, 내 맘 속에 쏙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까지 추천하면서 내 나름대로 터득한 책 읽는, 아니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다른 독자들을 위해서..... ; 먼저 그림만 보고 감상한 후, 제목을 보고 다시 그림을 감상한다. 그러면 처음보다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글을 읽고, 글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그림을 감상한다.) 그림을 볼 때마다 어쩜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처음과 두번째, 세번째.... 볼 때마다 마음의 파문이 점점 넓어지는 걸 느낀다. 글만 읽을 줄 알았지, 그림을 감상하는 눈이 전혀 없던 내게 차근차근 어렵지 않게 그림을 이야기해 주는 한젬마. 그녀 때문에 나도 좋아하는 그림을 찾았고, 그 그림속에 빠지며 살고 있다. 요즘 그림 속에서 외로움, 그리움, 사랑, 웃음을 찾고 있다.물론 서툴지만.... 그래서 나는 지금 그 자체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