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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제자들중 시몬 베드로만큼 예수님을 열정적이고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실 때, 베드로는 거침없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마16:22)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비록 이러한 행동이 베드로의 인간적인 변호이긴 했지만, 그것은 베드로의 진심이었고, 그것은 예수님을 향한 베드로의 열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붙잡히시던 날 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다 자신을 버리고 도망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자(마26:31) 그때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26:35)고 앞장서서 대답했던 사람입니다.
이렇듯 베드로는 주를 향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자꾸 예수님과 코드가 맞질 않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자신의 방식대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채식주의자인 저에게 아내가 자기가 좋아하는 고기부페를 데리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 오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거듭하여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예전처럼 “예”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신의 사랑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로마병정들에게 붙잡히시던 날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같이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도망갔을 뿐만아니라 그날 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 베드로는 여전히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근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이 아시잖아요…” * 3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러한 고백 위에 자기의 양을 맞겨 주셨습니다.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오늘 시몬 베드로처럼 “주님이 아시잖아요!”라고, 자신의 사랑을 예수님께 고백하는 모든 이에게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저에게 주신 또 하나의 말씀은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면 교회가 부흥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자기의 양떼를 먹이도록 맡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예수를 믿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극히작다는데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안에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은 ‘필수’이지만, 예수를 사랑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우리의 선배들의 신앙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선교지에서 저는 혼자입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과 아내 외에는 아무도 저를 지켜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열심히 한다고 알아 주는 사람도 없고, 게으르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혼자 있을 때 나의 모습이 하나님앞에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열심히 사역하고 있을 때의 나의 모습이 아니라. 모든 일을 마치고 혼자있을 때 나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 진정한 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한 시도 방심할 수 없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처럼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주를 향한 저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어느 선교사의 고린도전서 13장 묵상
내가 완벽하게 언어를 구사하고 현지인처럼 말을 한다해도
그 분의 사랑이 나에게 없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리
내가 화려한 졸업장이나 학위를 가지고 있고
모든 현대의 선교방법을 알고 있다 해도
그 분의 사랑으로 감동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리
내가 현지인들의 모든 종교를 성공적으로 논박할 수 있고
그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 수 있다해도
그 분의 애절한 사랑의 편지가 없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리
내가 온전한 믿음과 큰 이상과 장엄한 계획을 갖고 있다해도
그 분의 사랑에 젖은 땀과 피와 눈물과 기도와 간구가 없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리
내가 모든 야망을 내려놓고 집과 친구들을 떠나도
나의 선교경력을 하나님께 재물로 바친다해도
매일의 삶에서 크고 작은 귀찮은 일들 때문에
싫증을 내고 이기적이 되어 버린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리
내가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다해도 그분의 사랑이 부족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에 아픔을 주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리
내가 갈채를 받을 만한 글을 쓰고 책을 낸다해도
십자가의 말씀을 사랑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리 …
우리 주님은 우리가 위대한 일을 꿈꾸고 위대한 일을 감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전부로 사랑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전부로 사랑하기까지는
우리는 아무 것도 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하여 착각하시면 안됩니다.
된 것 같으나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실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전부로 사랑하기까지는
우리는 아직 진짜 예수님을 믿은 것도, 주님의 종이 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이고 마지막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오늘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존재의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고, 목자를 섬기고, 성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랑이 빠지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지고 이제 치유가 되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터진 상처가 간지럽더라도 긁지맙시다. 긁으면 그 상처 위에 썽이 나고 피부가 썩어들어 갑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아파하십니다.
저는 기도할 때면, 하나님!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그 한 영혼을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속(중심)이 빠져 버린 인간의 열심으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교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형제의 자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가슴에 앉고, 우리 모두 함께 하나되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러면 이전보다 훨씬 더 건강한 교회 좋은 교회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동안 한국교회의 곪았던 상처를 터뜨리시며, 한국교회를 치유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그 상처가 너무 가려워서 자꾸 긁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치유가 아니라 그 상처에 성이나게 하고 피부가 썩어 들어 가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려우면 긁지말고 약(신약, 구약)을 바릅시다. 너무 너무 가려워 못참겠으면 신약과 구약으로 온 몸에 떡칠을 합십시다.
한국교회 선교의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총회세계선교회가 주도하여 선교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를 파송한 파송교회가 주도가 되어 선교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송교회가 기침을 하면 선교지는 감기에 걸리고, 파송교회가 아프면 선교지 교회는 알아눕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끊어지면 선교지에서는 한 영혼씩 한 영혼씩 죽어갑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건강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너무 중요합니다. 교회가 건강해야 선교도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북한에서 예수를 믿는 한 일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실화입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철호와 그의 아내가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에서 고문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철호의 아내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시편23 말씀을 암송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철호의 아내의 시편 23편의 진정한 묵상은 이렇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님이 계신 그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아내는 순교했지만, 철호는 “목숨도 믿음도 살아남아야 지킬 수 있다”며 혼자 살아 남게 됩니다.
그리고 2년 후 철호는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남조선으로 탈북하겠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 영화에는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는데, 하나 같이 찬송 중에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찬양을 하며 죽어갔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
자기 생명보다도 더 귀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철호의 탈북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탈북을 시도하려고 했던 마을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 철호도 붙잡혀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주인공이 죽는 마지막 순간에는 이 찬양을 합니다.
“갈릴리 호수가에서 주님은 철호에게 물으셨네, 사랑하는 철호야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당신만이” 빵! 빵! 빵!
주인공도 그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아내를 따라 순교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저에게 깊은 감동과 충격을 주었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교한 주인공의 아내가 남편에게 한 말입니다.
“여보! 어제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내가 어떤 방에 있씁디다. 밖에 인민들은 고통을 하고 있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기도를 하고 있씁디다. 근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쳐서 기도를 멈추믄 밖에 있는 인민들이 하나씩 죽어갔씀다. 기도가 끊기면 인민들이 계속 죽씁디다. 할 수 있는게!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밖에 없씁디다. 그러니까 너무 애쓰지 마씨오.”
저는 이 말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쳐서 기도를 쉬면 한 영혼이 죽는다.”
저는 새벽마다 기도할 때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한 영혼 한 영혼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제가 기도를 쉬는 날도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쳐서 기도를 쉬면 한 영혼이 죽는다.”
그리고 저에게 주었던 또 하나의 교훈은
“할 수 있는게!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밖에 없씁디다. 그러니까 너무 애쓰지 마씨오.”
너무 애쓰지 말고 쉬지말고 열심히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수고와 열심으로는 한 영혼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여러분 간지럽더라도 긁지 마시고, 오히려 참고 인내하며, 서로 서로 하나가 되어 눈물과 기도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 가십시오.
우리 교회가 기도의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기도의 불씨가 이전보다 더 활활 타오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전부로 모시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성령 하나님! 예수님이 전부인 내 인생이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이 내 인생의 첫째가 되시고 둘째가 되시고, 셋째가 넷째가 마지막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 때로는 너무 아프고 가려워서 기도가 되질 않을 때가 있어요. 하나님! 우리의 꿇은 무릎에 힘을 주세요. 하나님! 우리가 기도를 쉬면 한 영혼이 죽고, 우리가 기도를 멈추면 계속해서 죽어간데요.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민족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교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형제의 자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로 나아가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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