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산진구가 불만스럽다. 부산진구란 이름이 불만스럽다. 조선시대 수군이 주둔하던 진지인 부산진에서 착안한 행정지명일 텐데 역사 속의 부산진과 행정상의 부산진은 영 아귀가 맞지 않는다. 역사성과 행정지명이 따로따로 겉도는 기분이다. 자치구의 행정지명에는 당연히 지역의 특성이 담겨 있다. 지역의 특성은 지역이 자리잡은 위치일 수도 있고 지역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행정지명은 위치를 돋보이게 하든가 역사를 돋보이게 하든가 해서 짓는다. 부산진구란 이름이 불만스런 건 부산진구에 있어서 부산진은 지역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위치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지역의 역사를 말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겉 다르고 속 다르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부산진은 대단히 소중하다. 오랜 내력을 가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첫 전투에서 맨손으로 맨몸으로 끝까지 맞섰던 부산사람의 기질이 배인 서슬 퍼런 이름이다. 끝까지 맞서다가 모두 전사한 원통한 이름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지나가야 하는 이름이 부산진이다. 부산진이 있고 부산진성이 있던 곳은 지금의 좌천동 일대. 그러니까 동구 일대다. 부산진성에 딸린 작은 성, 그래서 아들성이라 불리던 자성대가 있는 곳도 마찬가지다. 임란 첫 전투 전사자를 기리는 제단인 정공단도 좌천동 일신기독병원 인근에 있고 부산진역도 부산진시장도 다 그 어름에 있다. 그뿐인가. 하다 못해 부산진세무서도 동구에 있다. 외지에 사는 친구들이 한번씩 묻는다. 부산진구가 부산진역 있는 곳이냐고. 부산진역에서 내리면 되느냐고. 이렇게 묻는 친구도 있다. 부산진 유적을 찾아보려면 부산진구에 가면 되느냐고. 내 답은 번번이 길어지지만 그들은 요령부득인 모양이다. 얼른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 이름은 중요하다. 개인의 이름도 중요하고 지역의 이름도 중요하다. 갓난아이 이름을 지을 때도 아이 사주를 살펴서 짓듯이 지역의 이름을 지을 때도 이것저것 살펴서 짓는다. 개인의 이름도 소중한 터에 두고두고 이어지는 지역의 이름은 오죽 소중하랴. 이름만 들어도 뭉클해지는 이름, 그게 나를 낳고 나를 키운 지역의 이름이다. 지역의 이름이 갖는 힘이다. 부산진구가 그 이름을 얻은 지 올해로 50년이다. 50년이란 긴 날들을 써 온 이름이기에 이름을 바꾸는 건 어렵다. 바꾸자는 말을 꺼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이의 이름을 바꾸려고 법원에 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법원 가는 발걸음만큼이나 무겁다. 그러나 다가올 50년을 생각하고 다가올 100년을 생각하면 지나온 50년은 차라리 짧은 시간이다.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은 시간이다. 부산진구는 부산의 중심이다. 부산진구의 중심이 서면이란 데 누구도 토를 달지 않듯이 부산의 중심이 부산진구란 데 누구나 고개 끄덕인다. 하지만 진정으로 부산의 중심이 되려면 이름부터 제대로 되어야 한다. 제 이름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명품을 입고 다닌들 남의 옷이라면 좀 그렇지 않은가. 부산진구 어디에도 바다가 없듯이 부산진구 어디에도 부산진은 없다. 부산진구 어디가 부산진인가? dgs11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