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8. 3. 15. 15:26
▲소재지 :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사계리에 소재한다.
▲송계재(松溪齋)
▲송계재 편액(扁額)
● 27世 이대유(李大㕀)
[세 계] 익재공 후 24世 재사당 원의 증손
[생졸년] 1540년(중종 35)∼1609년(광해군 1)
[생원진사시] 선조(宣祖) 3년 (1570) 경오(庚午)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1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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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인(景引), 호는 활계(活溪). 문충공(文忠公) 익재(益齋) 이재현(李齊賢)의 10대손이다. 증조는 예조좌랑 재사당(再思堂) 원(黿)이고, 조부는 군수 수(洙)이고, 아버지는 생원 종윤(倧胤)이며, 어머니는 창원정씨(昌原丁氏)로 담지(燂之)의 딸이다.
1570년(선조 3) 생원시에 합격하고 성혼(成渾)에 의하여 사옹원참봉(司饔院參奉)에 천거되었으나, 얼마 뒤 어머니의 질병으로 사직하였다.1595년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취임하지 못하였고 이듬해 사포서별좌(司圃署別坐), 1600년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1605년 사도시주부에 제수되고 이어 형조좌랑(刑曹佐郞)에 승진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대학》을 즐겨 읽고 연구하였으며, 인(仁)에 뜻을 두고 경(敬)을 먼저 실행하기에 힘썼다.
전북 임실의 영천서원(寧川書院,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활계유고(活溪遺稿》 2권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