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명절 음식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음식거리들을 마산에서 장만해서 올라오시기 때문이었다. 마산사람들 제사 상차림에는 생선이 주류를 이룬다. 우리 집에선 좀 독특하게 그 가운데서도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 될 게 있다. 돔배기다. 돔배기는 소금 간을 해 토막 낸 상어고기다. 같은 경상도라 해도 돔배기를 모르는 지역이 더러 있다. 마산도 그 수준이다. 당연히 제사상하고는 거리가 멀다. 돔배기는 안동이나 경주. 영천 등 경북 내륙지방의 제사 상차림에 반드시 올려 져야 하는 음식이다. 바다가 먼 이 지역에서는 싱싱한 생선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주로 염장한 생선 류를 먹는다. 제사상에 올려 지는 해물도 그러한 것이다. 저장이나 보관이 오래가는 문어도 그 중의 하나다. 아버지가 나셔서 자란 곳은 경주 인근이다. 그러니 돔배기를 잘 안다. 그런 관계로 우리 집에서는 예전부터 돔배기가 제사상에 올랐다.
어머니가 노환으로 나들이가 불편해 우리 집으로 올라오시지 못한 것도 몇 년 된다. 그러니 명절 음식도 직접 마련해야 한다. 일산 오일장에서 이것저것 고르다가 퍼뜩 생각난 게 돔배기다. 돔배기는 어머니가 매년 추석, 올라오실 때마다 갖고 오시던, 말하자면 어머니 차지의 명절 먹 거리이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돔배기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제사상을 물린 음복 상에서 돔배기는 아버지의 차지였다. 아버지가 좋아하시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욕심이 많아 독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들은 그 돔배기에 관심이 없었다. 장만해 놓은 돔배기는 생긴 것도 좀 이상하고 진한 아연 내를 풍기는 게 우리들 입맛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나이가 들면서 이 돔배기가 슬슬 입에 당겨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 아래 남동생도 그러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돔배기는 나와 동생의 몫이 됐다. 어머니는 돔배기를 마산 선창가의 잘 아는 어물전에서 조달해 오셨다. 소금간이 된, 직사각형 모습으로 반듯하게 일률적으로 썰려진 돔배기를 어머니는 명절 즈음이면 갖고 올라 오시곤 했다.
일산 오일장에서 돔배기가 생각났을 때, 떠 올린 돔배기도 어머니가 갖고 올라오시던 그것이었다. 어떤 어물전에서 용케 돔배기를 팔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파는 돔배기는 어머니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냥 냉동상태의 뭉텅이 채로 팩에 둘둘 말려진 상어고기 덩어리였다. 한 눈에도 좀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그것을 시장에서 사와 돔배기라며 내 밀었을 때 아내는 만지기를 꺼려할 정도였다. 자,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인터넷 레시피에 의존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해동을 시킨다. 껍질을 벗겨낸다. 뼈를 발라낸다. 그리고는 반듯하게 네모형태로 썬다. 소금 간을 해 냉장고에 한 이틀 숙성을 시킨다. 물에 씻은 후 소금기를 적당하게 털어내 채반에 널고는 말린다. 그리고 입맛과 습식에 따라 요리를 한다. 요리법으로는 산적과 구이, 그리고 졸임이 있다고 했다. 우리 집은 구이였다. 그냥 플라이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부치는.
아내가 만지기를 꺼려하니 결국 내 몫이 됐다. 껍질과 뼈를 발라내는 게 쉽지 않았다. 이 작업이 어려우니 직사각 형태로 반듯하게 썬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껍질과 뼈를 적당하게 제거한 후, 그냥 칼 잘 가는대로 썰었다. 그리고 소금장을 하고 숙성을 시켰다. 이 과정을 속성으로 했다. 좀 걱정이 됐다. 레시피대로 안 했으니 그 맛에 대한 걱정이다. 부치는 것은 아내더러 하도록 했다. 마침내 돔배기가 만들어지긴 했는데, 아내는 맛을 보면서 소태맛이라고 했다. 짭다는 것이다. 내 입에도 그랬다. 돔배기 특유의 냄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실망스러웠지만 별 도리가 없다. 이것이나마 아버지를 생각해 상에 올릴 수밖에.
추석을 앞두고 이렇게 나름 심혈(?)을 기울여 돔배기를 장만한 것은 실상 내가 먹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추석 분위기를 일찌감치 느껴보기 위한 측면도 있고. 그런데 만들어놓고 보니 그 맛이 짜고 좀 그렇다. 어떻게 하나. 맛이 그러니 제사상에 놓아야 할지도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별 수 없다. 내가 먹어 치우자. 어떻게든 내가 구해 장만한 것이니 내 입맛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냥 채반에 담아 다용도실에 뒀다. 내 입에 어떻게 맞출 것인가를 기대하면서.
다음 날 저녁, 부엌 쪽에서 뭔가 아련하면서도 익숙한 냄새가 풍겨난다. 이게 무슨 냄새지 하면서 두리번거리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용도실에 있는 돔배기였다. 그 아련한 냄새는 돔배기에서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맡아지던 친숙하고 익숙한 냄새. 생각은 좀 복잡했지만, 그냥 아무렇게 다용도실에 놓아뒀던 돔배기가 하루 밤 사이에 무슨 변모를 한 모양이다. 그 냄새에 끌려 한 점을 떼 먹어봤다. 어라, 별로 짭지가 않다. 짭쪼롬한 맛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내 입에는 맞았다. 신기했다. 하루 밤 사이에 맛이 변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루 밤 새에 그만큼 숙성이 돼 내 입에 맞는 그런 맛으로 변했다는 것인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돔배기에 걸었던 나름의 작은 소망이 이런 형태로 나타난 것에 대한 감사함이다. 그에 굳이 상식이나 과학을 들먹일 생각은 없다. 추석을 맞이하는 작은 소망과 정성에 따른 것으로 여기자.
그런 생각으로 돔배기를 먹고 있다. 짭짤하고 콤콤하면서 쫀득하게 씹혀지는 돔배기를 안주삼아 마시는 소주 맛이 좋다. 그런 돔배기 맛에 아버지가 떠올려지는 추석날 즈음이다.
첫댓글 그려.....내 기억엔 마산지역에서는 비늘 없는 고기는 먹지 않았다...
전갱이는 먹어도 고등어는 안먹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