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4장 26절, 마태복음 5장 16절, 사도행전 11장 24~26절, 요한일서 2장 3절
셋도 아들을 낳고, 아이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하였다. 그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창세기 4장 26절, 새번역>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6절, 개역개정>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사도행전 11장 24~26절, 새번역>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때에 비로소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요한일서 2장 3절, 공동번역>
아담과 하와가 낳은 첫째 아들 가인은 둘째 아들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놋 땅에 가서 '에녹'이라는 자식을 낳고, '에녹'이라는 도시를 짓고 살아갑니다. 점점 하나님을 떠나 악한 세상으로 가는 기초가 된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새로운 아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셋'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거울삼아 셋만큼은 아벨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이어져 셋 역시 자신의 아들까지 이 '신앙교육'이 잘 이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셋의 아들 '에노스' 시대에 '비로소' 처음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시작됩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아이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하였다. 그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기 시작하였다. <창세기 4장 26절, 새번역>
에노스가 살던 시대에,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던 아벨의 제사가 에노스가 살던 시대에 회복이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시대에 쓰임받았던 인물이 '에노스'입니다. 에노스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에노스가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구약 시대로 보면 제사장 역할을 담당한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에노스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연결점을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역시 비슷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비로소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결심했던 선조들을 통하여 다음 세대들은 꾸준히 신앙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의 60~90년대초까지 교회 주일학교에 정말 놀라운 부흥을 허락 하셨습니다. 주일 오전이면 모든 교회마다 아이들로 넘쳐났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려면 놀이터가 아닌 교회로 가면 되는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배운 이들이 사회로 나가서 다시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던 시대였습니다. 건강하고 든든히 서가는 교회, 날로 구원받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부흥했던 교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칭찬받던 교회, 실로 '초대교회'역사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던 부모를 통해 90년대 이후 출생한 지금의 청년들 역시 신앙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부모 세대와 달랐던 한 가지는 문화와 더불어 신앙교육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교회 밖에 없던 시절과 세상에 재미난 것들이 많아진 시절의 교회 신앙교육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양질의 신앙교육을 통하여 지금의 청년들을 '복음'으로 잘 세워 나갔습니다. 다시금 이 자리를 빌어 이 악한 시대에서 셋이 되어주시고, 에노스로 교육시켜 주신 모든 부모님들께 박수를 드립니다.
이제 2021년에 새롭게 '에노스'가 나타날 시기가 왔습니다. 이 시대가 '신앙교육'을 받은 청년들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너무도 오랜 시간 하나님을 떠나 악의 길을 걷던 이 시대에, 비로소 주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게 할 시작을 만들어 줄 에노스가 필요합니다. 그 에노스가 바로 지금의 청년들입니다. 악한 세상과 동조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변화시키어 다시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할 에노스가, 바로 당신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청년 여러분, 부담은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소위 '영적 부담감'이라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무기력해진 수많은 청년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자신들을 향한 기대만큼 살아내지 못했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문화에 동화되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면서 '믿음'에 대한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 있기 어려운 멘탈일 수 있습니다. 참 어려운 시대입니다. 참 악한 세대입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발버둥을 쳐도 너무도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더더욱 '에노스'가 되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자신이 가진것보다 무엇을 더 하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이 배운대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인정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배운대로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임을 인식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배운대로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배운대로 정직을 이제 삶에서 실천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배운대로 관용과 배려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됩니다. 여러분이 배운대로 사랑을 나누어주면 됩니다. 정직과 관용과 배려와 사랑은 결코 양의 문제가 아닙니다. 크기와 양에 상관없이 여러분이 가진 그대로,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 드러내면 됩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선생님이신 부모님이 있습니다. 까먹었다면 다시 물어보십시오. 다시 배우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으로부터 배운대로 행동하면 됩니다. 언제나 부담을 가지고 내가 가지고, 배운 그 이상을 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에노스'가 할아버지 아담과 할머니 하와, 아버지 셋에게서 배운 그대로 행동한 것처럼 여러분들도 배운 것 그대로 행동하시면 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이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당신이 가진만큼입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여러분의 모습을 보일 때 바로 마태복음 5장 16절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6절, 개역개정>
예수님이 주신 이 말씀은 '억지'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살아내는 자들만이 실천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먼저 소유하고 그대로 사람들 앞에 비친 것 뿐인데 많은 이들이 당신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창문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혹시 에노스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에노스라는 이름의 어원은 히브리어 '아나쉬(אנשׁ)'로서, '깨지기 쉽다, 약하다'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노스는 인간이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약하고 부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대로 전해지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주님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림을 받았던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도 아니고, 열두제자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바나바와 바울이 일년동안 머물면서 열심히 가르친 이방인의 땅 안디옥에서 세워진 교회, '안디옥교회' 였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사도행전 11장 24~26절, 새번역>
바나바와 바울은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안디옥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사람들은 그 가르침대로 살아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안디옥에서는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말씀대로, 배운대로 그대로 살아내기만 하였는데 'Christianos'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란 별명을 듣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청년 여러분도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배운대로 행동하면 됩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배운대로, 부모님께 배운대로만 살아간다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부분에서 자신의 생각이 들어있고, 자신의 뜻과 길대로 행동하려 하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운 것을 지킬 때에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때에 비로소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요한일서 2장 3절, 공동번역>
또한 스스로가 '에노스'가 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앞으로 '에노스'를 키워낼 '셋'도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말씀대로 교육하고 양육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배워오신 것을 잘 이어주어야 합니다.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지도록 오늘도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자녀들 앞에서 말씀대로 사는 모범이 되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에노스'가 되도록 응원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비로소 우리의 자녀 시대에 더욱 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청년 여러분, 모든 예배자 여러분, 동역자 여러분! 이 시대의 '셋'이 되어 주시고, '에노스'가 되어 주십시오. 늦지 않았습니다.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도 됩니다. 다시금 복음의 문을 열고 족보를 써내려갔던 셋도 되어 주시고,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게 했던 '에노스'도 되어 주십시오.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배운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살아가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 향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는 압니다. <요한일서 3장 23~24절, 새번역>
말씀을 통하여 강철멘탈을 키우기 원하는 청년 여러분들에게 마지막으로 간곡한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배우신대로, 말씀을 주신대로, 그대로, 이 시대에 '에노스'가 되어 주십시오. 바로 말씀을 통해 강력멘탈을 지닌 청년분들을 통하여 다시금 예배가 회복되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잊지마십시오. 여전히 여러분들이 교회의 희망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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