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의 원천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데 있다(엡2:13-19;골1:20).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지면 자기 자신과 그리고 타인과의 화평도 이루어진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3:18)고 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자는 어디서나 화평을 만들어내나 그렇지 못한 자는 어디서나 불화와 분쟁의 근원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화평의 창조자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남을 화평케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5:1)--- 모든 인간은 범죄 함으로써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롬5:10). 이 '원수'의 관계를 '화목'의 관계로 변화시킨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이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고서는 인간에게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화평은 먼저 하나님과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엡2:13,14)---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하나로 만들어 화평케 하셨다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민족적 편견을 제거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과 인간끼리의 차별과 갈등을 해소한다. 그는 모든 인류를 형제 자매로 만드신다(막3:35).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취한 연고니 이제 그것을 화평히 다시 돌리라'(삿11:13)--- 이 말씀은 암몬 왕이 이스라엘을 치기 위하여 길르앗에 진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의 사사 입다의 사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 지상에서는 역사 이래로 국가와 국가 간에 전쟁이 중단된 때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전쟁도 불사한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기본으로 되어 있다.
수많은 평화 회담이 진행되었어도 이 세상에는 아직 완전한 평화가 정착되지 않다. 인류가 배타적 민족주의와 국가 지상주의를 극복하지 않는 한 이 땅에 평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 평화는 이루어질 것이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날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하여 성취될 것이다(사2:2-4).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신자는 하나님과 화평하고 인간과 화평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신자는 그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불화와 분쟁은 사탄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그는 시험하는 자요 (살전3:5), 참소자요(계12:10). 대적하는 자이기 때문이다(살후2:4).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1:20)--- 신자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 화목 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고 구원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다. 그리고 사랑과 구원은 하나님의 기쁨의 원천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시37:37)--- 화평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평안이 주어진다는 말씀이다. 분쟁은 근심과 불화를 낳으나 화평은 안심과 평안을 산출한다. 화평한 곳에 질서가 있고 건설이 있고 성취가 있다. 인간의 모든 긍정적 활동은 그 심령이 평안할 때의 산물이다.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궤휼이 있고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잠12:20)--- 하나님은 화평케 하는 사람에게 기쁨이 있게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화해에서 오는 기쁨이며 인간과의 화목에서 오는 기쁨이다. 화해와 화목은 사랑의 표현이며 사랑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