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자운리(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1. 연혁 : 비교적 낮은 산악지대와 들이 자리한 지역으로 고려시대에 마을이 들어선 것으로 보이나 삼
현(三賢)들이나 밤나무정이 마을에서 더러 신라통일시대의 기와조각이나 토기편이 발견된다
고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금병산 남쪽으로 산줄기가 낮아지면서 진산을 이루는데 동쪽으로는 백운이고, 북쪽으로는 청
운, 남쪽으로는 자운(紫雲)의 삼운 사이에 있는 살기좋은 땅으로 알려진 잔 산 아래에 마을이
있 다하여 잔골 또는 자은동(慈恩洞), 자운동(自雲洞)이라 부른다.
1760년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자은동에는 102호에 256명이었다. 느러리와
밤나무정이를 포함하지 않은 것을 볼때 자운동의 들을 끼고 300호가 넘었을 것으로 그 시대
농촌의 기반이 잡혔던 마을이었다. 그 후 공주읍지에는 가호수가 105호이고, 1979년도에는가
호수 116호였고, 인구는 630명이었다.
2. 마을 : * 느러리 - 자운리 북쪽에 자리한 마을로 마을 앞에 선돌이 있었으므로 돌서니 입석리(立石
里)라고 부르는 마을로 늘어진 잔 산밑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마을로 자운리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다.
(김경숙. 손영룡. 윤영순. 이광욱. 이억부. 이재희. 이종진. 한복수. 김대연)
* 고내골 - 밤나무정이 남동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구전에 따르면 옛날에 냇물로 부터 큰 물
꼬를 내서 땅을 기름지게 한 마을이라 물꼬를 낸 마을 고내골아라고 부른다. (민복기)
* 밤나무정이 - 느러리마을 남쪽 들 건너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밤나무 정자가 많이 있다 해
서 율정(栗亭), 율촌이라고 부른다. (민경명)
* 호박골 - 밤나무정이 북쪽에 새로된 마을로 호박을 키우는 호박밭이 많은 마을이라 호박골
또는 오봉춧골이라고도 부른다.
* 새뜸 - 느러리마을 남쪽에 새로 생겼다 해서 붙여진 작은 마을이다.
(류경철. 이경옥. 이무열. 하헌병)
3. 산 : * 안산 - 느러리마을 앞에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 안산(案山)이라고 부른다.
* 칼날봉 - 고내골 마을 뒤에 산의 모양이 칼날같이 날카롭게 생겼다 해서 칼날봉이라고 부른
다.
4. 골짜기 : * 가장골 - 느러리마을 앞 안산 옆의 골짜기로 안산가에 있는 골짜기라 가장골이라고 부른
다.
5. 들 : * 삼현 - 느러리마을 앞에 펼처진 들인데 옛날에 마을이 있을때 세 사람의 현인(賢人)이 나온 마
이라 해서 삼현이라 불렀다. 지금은 마을은 없어지고 들만 남아있다.
* 접다랑이 - 오봉촛골마을 앞에 있는 들이다. 다랑이논이 많다해서 부르는 들이다.
* 물둠벙 - 느러리마을 앞에 넓게 펼처진 들인데 큰 둠벙이 있어서 물이 많아 땅이 비옥하기로
유명 한 들로 물둠벙 또는 동안이라고도 부른다.
6. 민속 : * 느러리산신제 - 느러리마을 뒷산에 있는 산신당에서 매년 음력 10월초 마을에 부정이 없는
남여를 제관으로 선정하여 산신제를 지낸다.
* 느러리돌성제 - 느러리마을 앞에 높이가 10자 정도되는 갓을 쓴 선돌에서 매년 음력 정월 보
름날 돌성제를 지낸다. 이곳에 선돌이 세운 것은 고냇골 뒤 칼날봉이 있어서마을을 해친다
해서 세웠다. 돌성제는 마을에서 선출한 유사와 축관이 조관 한다.
* 느러리팽나무 -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이 200여년이고 높이가 20m, 둘레가 4m인 팽나무가
있다.
7. 고적 : * 민삼석효자정려 - 숙종때 효성이 지극한 민삼석에게 효자정려를 내려 영조 12년(1726)에
목조로 정문이 세워졌다.
* 이세구묘 - 새뜸마을 뒷산에 이세구의 묘가 있었다. 인조 24년(1646)에 태어나 진사시에 합격
하여 예산현감, 홍주목사를 지냈다. 벼슬보다 학문에적으로 명성이 높아 저서로 "양와집"
13권이 있다.
8. 현제 : 옛날에는 부유한 농촌지대가 오늘에 이르러 대덕연구단지의 지역 또는 군사적 시설로 변화하
고 있다.
2006년 자운동(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