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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된 나무의자
정희경
“덜커덕. 쿵.”
삐그덕거리는 나무의자는 아무렇게나 던져졌다.
“별로 쓸 만한 게 없네. 쯧.”
고물상 할아버지는 트럭에서 옮겨온 물건들을 집 뒤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툭툭 던져 놓고는 내려갔다. 고물상 할아버지가 사는 집 뒷산 공터는 이렇게 온 동네에서 가져온 여러 가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나무의자는 얼마 전 좁은 골목길 구석에 버려졌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한 아이의 집이 이사를 갔기 때문이다. 그 집의 다른 가구들과 함께 새 집으로 가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더 이상 쓸모가 없기 때문이야.”
나무의자는 며칠 동안 골목길에서 밤이슬을 맞고, 비를 맞았다. 삐그덕거리는 다리 틈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자 곧 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멀쩡한 걸 왜 버렸대?”
몇 몇 사람들이 나무의자를 들었다가, 삐그덕거리는 그 다리 때문에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결국 나무의자는 고물상 할아버지의 트럭에 실려 왔다.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긴. 뻔하잖아. 나무의 최후는 장작더미라고.”
나무의자는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랐다.
“누..누구세요?”
“나? 내가 뭘로 보여?”
오래되어서 껍질이 벗겨진 나무탁자였다. 여기저기 흠도 많고, 다리 하나는 아예 부러져 있다. 나무의자와 비슷한 신세였다.
“우리 같은 나무는 별로 인기가 없거든. 고철 정도는 돼야 값을 쳐주니까 말야.”
고물상에 제법 오래 있었는지, 아는 체를 한다.
“뭐, 그래도 장작 정도도 괜찮아.”
“장작이라뇨?”
“장작, 몰라? 불 태우는 장작 말이야.”
나무의자는 ‘불’이라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제 몸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건 고철 정도야. 유리 같은 것들은 산산조 각 나서 버려지지. 종이도, 비닐도 요즘은 제 몸을 다 바꿔야 해. 나는 그럴 바에야 마지막까지 나무로서 내 몫을 하는 게 좋아.”
“여기에 있으면 불 태워진단 말인가요?”
“그럼, 우리처럼 쓸모없어진 것을 어디에 쓰겠니? 나는 다리가 하나 부러진 데다, 껍질도 다 벗겨졌고, 너도 한쪽 다리가 삐그덕거리는데. 비를 맞아 아 예 못 쓰게 되어 버렸군.”
나무의자는 며칠동안 골목길에서 비를 맞았던게 원망스러웠다.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쓸모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 주워서 다리를 고쳐 주었을 것이다.
“나는 장작이 되길 기다릴 거야. 난 빨간 불꽃을 피우며 마지막을 태우고 싶어.”
나무의자는 울고 싶었다.
다리 끝에 닿는 흙이 부드러웠다. 어딘가에서 느꼈던 부드러움이다.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그래, 기억났어. 내가 태어났던 숲이야!”
나무의자는 의자가 되기 전,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한 그루의 나무였다.
“내가 왜 그걸 잊고 있었을까? 나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나무였어.”
거칠거칠한 껍질에 둘러싸이고, 가지마다 푸른 잎이 춤을 추는 아름드리 나무.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가지 끝이 흔들거렸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던 시원스런 가지, 포근한 땅 속 깊이 단단히 서 있던 뿌리.
“다시 나무가 될 수 없을까?”
의자로 쓸 수 없다면, 다시 나무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탁자의 말처럼 장작으로 쓰이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래요! 나는 나무가 될 거예요!”
“뭐? 허허허!”
탁자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이 곳에 다시 뿌리를 내릴 거라고요.”
“그래,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 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나무의자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햇빛이 온 몸을 비추어 주었다. 좋은 나무가 되려면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한다. 그래야 길고 튼튼한 가지를 뻗고, 뿌리를 자라게 할 수 있으니까.
나무의자는 그 날부터 밤마다 꿈을 꾸었다. 초록숲의 꿈이었다. 꿈 속에서 나무의자는 바람에 춤추는 한 그루의 나무였다. 나뭇잎이 무성해서 깊고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새가 날아왔다. 튼튼한 가지 위에 둥지를 짓고 예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 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생생했다.
나무의자는 나무가 되기 위해 밤이슬도 깊이 받아들였다. 비가 오자, 빗방울도 한껏 머금었다.
“그래야만 나무가 될 수 있어. 나는 나무가 될 거야.”
“쯧쯧, 그러다 썩어서 비틀리면 장작으로도 쓸모가 없어질 텐데.”
탁자의 그런 말도 나무의자에겐 소용이 없었다. 나무의자는 다리에 힘을 주어 땅 속 깊이 박았다.
탁자가 떠났다. 나무의자는 탁자가 잘게 부서지는 걸 보았다.
“이제 장작이 되는 준비를 하는 거야.”
탁자는 기뻐했지만, 나무의자는 왠지 슬펐다.
“불에 타면 사라질 거예요.”
“재가 되겠지. 하지만, 그게 나무의 마지막이야. 재가 되기 전에 아름답게 타오르는 거라고.”
“그래도 나는 싫어요.”
고물상 할아버지는 조각조각 부서진 탁자를 모아 다시 그 곳을 내려갔다.
“네가 얘기해 준 그 초록숲, 어제 꿈에 나도 보았어. 나도 그 곳에서 태어 났는데. 네가 나무가 되는 걸 못 봐서 아쉽구나.”
탁자는 그렇게 떠났다. 장작이 되기 위해서. 빨간 불꽃을 피우기 위해서.
나무의자는 더 간절히 나무가 되길 바랐다. 불꽃이 아니라, 초록잎을 틔우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다시 나무가 될 수 있죠?”
고물상 할아버지의 야트막한 언덕에도 나무들은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동네 뒷산에 흔히 있는 그런 나무들이다. 나무의자는 무심한 듯 서있는 자작나무에게 물었다.
“너는 나무가 아니라 의자처럼 보인다만.”
“맞아요. 전 의자예요. 하지만 전 나무였거든요.”
“나는 이곳에 꽤 오랫동안 있었지만 말이다.”
자작나무는 옛 생각을 하는지 잠깐동안 말이 없었다. 나무의자는 혹시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한 번도 그런 걸 본 적이 없어.”
“그런 거라뇨?”
“너 같은 나무의자가 나무가 되는 걸 본 적이 없단 말이다. 고작해야 거기 있던 탁자처럼 부서져서 장작이 되었지. 너도 그런 헛된 꿈 따위는 버리는 게 좋아. 그런 건 의자가 되기 전의 옛날 일일 뿐이야.”
나무의자는 실망했다. 하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이지만 나무의자의 등받이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가는 새들도 있었다. 흙 속을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들이 나무의자의 다리를 타고 올라오기도 했다. 그건 정말 초록숲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나에게 와서 자주 노래를 불러줘.”
나무의자는 등받이에 앉아 있는 새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꼭 나무처럼 말하는 구나. 다 썩어가는 의자면서.”
“난 ‘나무’였던 의자야. 그리고 꼭 다시 나무가 될 거야.”
새는 노래 대신 코웃음을 쳤다.
“네 노래를 들으면, 나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넌 초록숲의 새들을 닮았 어. 노래소리가 똑같아.”
“내 노래를 들어도, 너는 나무가 될 수 없어. 너는 고작해야 의자잖아.”
나무의자는 왜 자작나무도, 새도 ‘나무가 될 수 없다’고만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무의자는 처음부터 나무였고, 지금도 나무였다. 장작이 되길 기다리는 것보다, 뿌리를 내리고 나뭇잎 틔우기를 꿈꾸는 것이 훨씬 더 행복했다. 그래서 나무의자는 행복한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몸이 힘들어서 이 일도 못하겠네.”
고물상 할아버지는 큰 숨을 몰아쉬면서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나무의자는 ‘삐그덕’ 소리를 내며 휘청거렸다.
“어이쿠!”
겨우 몸을 바로 잡은 고물상 할아버지는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모자를 벗고 땀을 닦아냈다.
“세월은 못 비켜가지. 비가 오려나? 온 몸이 쑤시네, 거참.”
할아버지는 때 묻은 면장갑을 낀 손으로 무릎과 어깨를 두드렸다. 자작나무 그늘은 제법 시원하다. 그래서 고물상 할아버지는 종종 일을 하다말고, 이렇게 앉아서 쉬곤 했다. 고물상 할아버지는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고물더미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다들 갈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게, 나하고 꼭 같네. 10년만 딱 되돌릴 수 있 으면 좋겠구먼.”
나무의자는 할아버지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허허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나도 참 주책일세.”
고물상 할아버지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방금까지 앉아있었던 나무의자를 바라보았다.
“곧 부서지겠는 걸.”
‘이제 나도 장작이 되는 걸까?’
나무의자는 할아버지의 손끝만 바라보았다.
“뭐, 가끔 이렇게 쉬어가며 하는 것도 좋겠지. 꼭 쓸모가 없지는 않네.”
고물상 할아버지는 낡은 나무의자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나무의자는 마음을 놓았다. 아직은 나무가 될 수 있었다.
이슬을 머금은 흙은 촉촉하면서 따뜻했다. 그 부드러운 흙을 뚫고 올라온 푸른 줄기는 기댈 곳이 필요했다. 작은 씨앗에서 싹이 터 조금씩 자라난 푸른 줄기는 햇빛을 받기 위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바랐다. 하지만 스스로 버틸 힘이 없었다.
“기댈 수 있는 나무가 필요해.”
푸른 줄기는 나무를 찾아 조금씩 자라났다.
“나무야, 네 줄기와 가지를 타고 올라가도 될까? 난 혼자 올라갈 수가 없 어. 날 좀 도와줘.”
“미안하지만, 안 돼. 네가 날 감고 올라가면 난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을 거야. 다른 나무를 찾아봐.”
푸른 줄기는 실망했다. 감고 올라갈 나무를 빨리 찾지 못하면, 땅을 기어서 자라야만 한다.
“이름도 없는 나무가 나를 감고 올라가게 할 순 없어. 저리 가줄래?”
“혼자서 할 수 없다면 포기해. 스스로 힘을 길러야지.”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아서, 푸른 줄기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그때 연한 줄기 끝에 단단한 무언가가 닿았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푸른 줄기는 애원했다.
“나무야, 내가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어줄래? 내가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줘.”
“방금 나를 나무라고 불렀니?”
지금까지 만난 나무와 모양은 달랐지만, 분명 줄기 끝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따뜻하고 단단한 나무였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지?”
“널 감고 올라가도록 허락해줘. 그럼 나는 더 높이, 더 크게 자랄 수가 있 어. 나무가 될 수 있어.”
“너도 나무가 되고 싶은 거구나. 그래, 알았어. 나를 감고 올라가. 나라도 괜찮다면 말이야.”
푸른 줄기는 그 단단한 나무를 향해 힘차게 가지를 뻗었다.
“응? 이게 뭐지?”
고물상 할아버지는 꽤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나무의자를 발견했다. 나무의자의 네 다리는 그 동안 비에 조금씩 쓸려 내려온 흙에 반쯤 묻혀 있었다.
“이거 참,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고? 그럴 리가 없는데?”
나무의자에 잎이 돋아 있었다. 다리와 등받이는 꼭 나뭇가지 같았다.
고물상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무의자를 둘러보았다. 정체모를 푸른 줄기와 초록잎들이 나무의자를 감싸고 있었다.
“허허, 이건…….”
흙 속에서 올라온 부드러운 덩굴이 나무의자를 휘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언뜻 보면 꼭 나무의자에서 돋아나와 자란 것처럼 보였다. 고물상 할아버지는 나무의자를 덩굴에서 빼내려다 그만 두었다. 어차피 나무의자는 더이상 쓸 데도 없어 보였고, 덩굴줄기가 휘감고 있는 나무의자를 빼내는 게 힘들 것 같았다.
“허 참, 희한한 일이네. 나무의자가 나무를 키우다니.”
자작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로 새가 날아와 덩굴줄기에 앉았다.
“찌르르르 찌르르르.”
나무의자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초록숲의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