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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장편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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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발표시기 | 1929년 |
국가 | 미국 |
간행/발행 | Scribner |
작가 |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
참혹한 전쟁터 속에서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얻었다가 잃어버리는 청년의 이야기로, 삶의 허무함 속에 인간에 대한 통찰이 펼쳐지며 반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설이다.
《무기여 잘 있어라》는 대표적인 20세기 전쟁소설이자 실제로 헤밍웨이가 청년 시절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출간 당시 초판 4만 부가 단숨에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어 두 번째 장편소설을 낸 헤밍웨이에게 대중적 인기와 명성, 부를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하게 만들었다.
헤밍웨이 특유의 문체로 직접 체험한 전쟁터의 정경을 실감나게 묘사한 예술성과 더불어 인간 존재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장과 후방의 상황과 인물들의 생각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전쟁의 참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치부와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반전의 메시지를 보낸다.
또한 참혹한 전장에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는 인간 존재의 조건을 그림으로써 삶에 대한 통찰을 전하고 있다. 원제인 ‘A Farewell to Arms’의 ‘Arms’는 ‘무기’와 ‘두 팔’을 중의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으로, 주인공이 전쟁에 작별을 고하는 동시에 연인의 두 팔과도 작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상징한다.
미국인 건축학도인 프레더릭 헨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군에 입대해 앰뷸런스 부대의 장교로 참전한다. 참전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전투는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프레더릭은 영국인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를 만난다. 얼마 후 프레데릭은 임무 도중 부상을 입고 밀라노의 후방 병원에 입원해 캐서린의 간호를 받게 된다. 깊이 사랑하는 사이가 된 두 사람은 캐서린이 임신하자 3주간 휴가를 떠나려 했으나, 프레더릭에게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전투에서 대패해 퇴각하던 중 이탈리아 병사들을 아군의 장교가 총살하는 참극이 생기자, 프레더릭은 강물에 뛰어들어 도주한다. 밀라노로 돌아온 그는 캐서린과 재회하고, 함께 도망쳐 스위스에서 출산을 기다리며 짧은 행복을 누리지만 난산 끝에 아이는 죽고 캐서린 역시 출혈로 죽고 만다.
“비겁한 자는 1천 번을 죽고, 용감한 자는 한 번밖에 죽지 않는대.” (...)《무기여 잘 있거라》, 열린책들
“그 말을 한 사람은 어쩌면 비겁한 인간이었을 거예요.”
그녀는 말했다.
“겁쟁이에 대해서는 많이 알았지만 용감한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거죠. 용감하고 총명한 사람이라면 2천 번은 죽을 거예요. 단지 그 무수한 죽음을 말하지 않을 뿐이죠.”
캐서린의 출혈이 계속되는 것 같았다. 의료진은 출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병실로 들어가 캐서린이 숨을 거둘 때까지 곁을 지켰다. 그녀는 내내 의식을 찾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멈추었다.《무기여 잘 있거라》, 열린책들
사람은 누구나 죽어. 죽는다고.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어 가지. 결코 그 의미를 깨우칠 시간의 여유도 없이. 인간은 이 세상에 내던져진 다음, 세상의 규칙을 일방적으로 통지받는 거야.《무기여 잘 있거라》, 열린책들
오스트리아군과 대치 중인 이탈리아 고라치아에서 중위로 복역하고 있다. 이후 전쟁의 모순을 견디다 못해 탈영병이 된다.
영국인 간호사로 전쟁 중에 약혼자가 전사한 후 프레더릭을 만나게 된다.
프레더릭과 함께 복역 중인 이탈리아인 군의관 중위. 날마다 사창가를 찾으며 매독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순간적인 쾌락만을 추구한다.
부대에 소속된 군종 사제로 현실에 염증을 느끼는 프레더릭과는 달리 어떤 희생도 아깝지 않은 보람찬 사랑을 찾을 수 있으며 어떤 ‘획기적인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1899년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파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기자가 되어 특파원으로 유럽 각지를 방문했다.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의 유명 작가와 교분을 맺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로 데뷔하여,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 미국문학사를 수놓는 걸작들을 발표했다. 작품을 발표하는 동시에 언론인이자 첩보원으로서 스페인과 쿠바, 중국, 독일 등지에서 활약했다.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노인과 바다》를 마지막으로 1961년 자살로 추정되는 엽총 사고로 사망했다. 직접 체험한 것을 토대로 창작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영감으로 창작 생활을 영위했던 헤밍웨이는 미국 문학의 전설인 동시에 제1차 세계대전 후 삶의 좌표를 잃은 소위 ‘길 잃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