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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론
치열한 삶의 문학, 그리고 빛나는 진주
박 진 용(pajiyoo@hanmail.net)
나는 지난해 9월부터 한 달이 넘게 대전에 위치한 모 대학교 입학사정관으로 근무하면서 아름다운 청춘들의 꿈과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3년간의 땀방울이 생생하게 맺혀있는 학교생활기록부와 자신의 꿈을 그려놓은 자기소개서와 뜨거운 열정이 담겨있는 포트폴리오를 보고 이를 평가하는 동안 내내 긴장되었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놓치는 것이 있어서 누군가의 꿈이 부당하게 꺾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중압감 때문이었다. 내가 관심 있게 읽은 것은 자기소개서, 특히 부모의 사망이나 이혼 등 뜻밖에 닥친 불행과 고난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일어선 사례를 볼 때마다 힘찬 응원을 보냈다.
젊은 시절의 꿈과 열정은 삶을 치열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가난과 고난을 극복하게 만드는 것도 역시 꿈과 열정이다. 작년에 솔뫼 김영훈 선생이 습작 20년 등단 30주년을 맞아 세상에 내놓은「솔뫼의 삶과 문학이야기」를 읽고 40여년 전의 청년 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놓고 보니 문학에 대한 꿈과 열정으로 때로는 찢어질 듯한 고통을 인내하며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하나하나 빚어놓은 작품들이 진주처럼 아름답고 눈부실 따름이다.
솔뫼 김영훈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보는 교육잡지 ‘새교실’과 ‘교육자료’라는 월간지였는데 이 지면에 실린 소년소설을 보고 나서 이웃 학교에 글을 잘 쓰는 선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1972년 9월에 예산에 있는 예덕초등학교에 초임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고 있었는데 전기도 전화도 없는 시골에서 촛불을 켜놓고 쓴 소년소설이 이원수선생님의 추천으로 1974년 3월호 ‘새교실’에 실리게 되었다. 나와 같은 시기에 솔뫼 선생도 홍성의 작은 시골학교에서 문학도의 꿈을 키우며 습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본격적인 만남과 교류는 내가 대전 대신초등학교로 전입했다가 중등학교로 나가고 솔뫼 선생이 1981년에 대전에 전입하여 이듬해 충남아동문학회에 가입하면서 시작되었으니 대학 선배님이기도 하지만 나는 친형처럼 따르고 존경하면서 30년 넘는 세월 동안 고락을 함께했다.
충남아동문학회에서 처음 만난 솔뫼 김영훈 선생의 첫인상은 다부지면서도 웃을 때는 이웃 형같은 친근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금방 친해져서 형이라는 호칭이 스스럼없이 나왔다. 그 후, 게으름을 피우던 나는 항상 솔뫼 선생의 활동에 자극을 받고 그 뒤를 따르려고 노력했지만 대전으로 전입하면서 양 날개를 달고 내달리는 선생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1983년 3월에 월간 ‘아동문예’에 「꿈을 파는 가게」가 당선되더니 그 해에 충남아동문학회 사무국장이라는 중책을 맡았고, 이듬해 동화집「꿈을 파는 가게」로 해강아동문학상을 받아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과 문단 활동을 펼치게 된다. 한편으로는 교육자로서 꿈을 펼치게 되는데 수업연구를 비롯한 교육연구 활동과 각종 글쓰기 대회 심사와 글짓기 지도교사, 그리고 독서지도교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교육자로서의 독보적인 전문성을 확보하게 된다. 솔뫼 김영훈 선생은 문학과 교육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돌진하여 자강불식의 열정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다.
솔뫼 선생의 문학에 대한 엄청난 잠재력과 교육자로서의 업무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본인이 밝힌 것처럼 유년기와 소년기의 남다른 환경과 독서 경험, 20년이라는 습작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학교 시절에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소설을 읽고 친구에게 작가가 되겠노라고 고백할 정도로 사춘기 소년의 가슴 속에 꿈을 키우게 된 것은 독서의 힘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독서야말로 진로라는 미래의 꿈과 창의력을 동시에 길러주는 가장 좋은 도구이기에 대학입학사정관이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으로 독서 경험을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경험으로 봐도 내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유·소년 시절의 가정과 자연 환경, 그리고 사춘기에 읽은 독서 체험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가정과 사회 환경 속에서 자연과 사귀면서 독서로 꿈을 키우던 야무진 소년의 모습은 후일 솔뫼 선생의 작품 곳곳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게 되고 그의 문학에 지속적으로 동력을 제공하게 된다.
나는 오복에 복 하나를 더하라면 선생님 복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스승의 가르침과 깨우침을 통하여 뜻을 세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 중 최고의 정점인 자아성취를 이루게 된다. 이런 면에서 솔뫼 선생은 참으로 행운아다. 서울이나 대전이 아니라 공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게 된 것도 어쩌면 그 유명한 시인 임강빈 선생님과 사제의 연을 맺게 되고 유병학 선생님의 지도 아래 ‘팔각정’ 문학 동인을 결성하여 소설을 쓰면서 소년 문사로 활동한 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의 축적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전영관, 리헌석, 엄기창 시인들과 현재 대전문협회장인 문희봉 수필가도 같은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니 훌륭한 스승 아래서 문학 동인을 결성하여 활동한 경험이 솔뫼 문학에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학에서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며 사제의 인연을 맺은 최상규 교수님은 소설가 최인호와 함께 연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이며 문학 이론에 밝은 분이셨다. 그 분의 번역서인 「수용 미학의 이론」은 지금도 문학 연구자들의 필독 도서로 꼽히고 있을 정도이다. 이런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대학에서 공모하는 문예작품에 소설을 응모하여 당선의 영광을 누린 것은 문학에 대한 열정과 잠재력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잠재력이 지금도 왕성하게 소설을 쓸 수 있게 만든 동력이 되고 있다. 솔뫼 선생이 교수님을 찾아가서 동화를 쓴다고 했을 때 ‘동화는 시’라고 말씀하신 것도 그냥 가볍게 나온 말이 아니다. 동화를 쓰는 사람 모두가 새겨 둘 말이 아닌가 싶다. 필자도 솔뫼 선생과 함께 90년대 초에 최교수님을 종종 뵙기도 했고 시문화상을 추천해 드리기 위해 동화작가 정만영 선생, 시인 전민 선생과 함께 교수님 댁으로 찾아 가서 자료를 찾아 정리하기도 했다. 최교수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급히 영정 사진을 만들어 모시고 밤늦게까지 조문객을 접대하면서 제자로서의 도리를 다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솔뫼 김영훈 선생이 대전에 정착하고 나는 홍성 광천여중으로 자리를 옮겨 시골 학교 국어 선생으로 가게 되지만 문학회 모임에서 만나고 서로 연락을 하여 마음은 늘 지근거리에 있었다. 1983년 아동문예 3월호에 신인상에 당선한 솔뫼 선생을 보고 자극을 받아서 나는 같은 해 6월에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 해 가을에 첫 동화집을 낸 솔뫼 선생한테 또 자극을 받아 이듬해 봄에 나도 첫 동화집을 내었으니 나는 습작기부터 늘 솔뫼 선생의 뒤를 따라 문학 활동을 했고 나중에 대전아동문학회 사무국장과 부회장을 거쳐서 회장을 역임하는 과정도 그랬고 한국아동문학회에 가입하여 활동한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솔뫼 선생과 5,6년 떨어져 있는 동안 가까운 마음과 달리 다소 소원한 적도 있었으나 내가 다시 대전으로 전입한 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믿음과 사랑으로 형과 아우의 정을 나누며 생활하고 있다.
대전에서 솔뫼 김영훈 선생과 더불어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어울린 선배는 신춘문예 출신 동화 작가인 정만영 선생과 역시 신춘문예 출신 동시 작가인 전영관 선생이었다. 아동문학회나 문학 단체 행사가 있는 날, 또는 각종 백일장이나 독후감 심사 등을 함께 하는 날은 술자리를 자주했다. 식당에 가면 주인은 술상과 함께 으레 화투와 담뇨를 내놓았는데 솔뫼 선생은 술도 한두 잔이면 족했고, 화투는 억지로 권하면 마지못해 조금 어울렸을 뿐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중간에 자리를 일어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화투를 치면 옆에 앉아서 흥을 돋우기도 하고 술판이 벌어지면 술에 취해 횡설수설 주절거리는 소리에도 공감하면서 훈훈하게 웃는 얼굴로 끝까지 들어주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솔뫼 김영훈 선생에게 잠재 되었던 엄청난 호기심과 창의력과 열정은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늦은 나이에 학구열을 불태우게 했다. 교육대학이 초급대학 과정이었기 때문에 대학원을 입학하기 위해서는 4년제 교육대학에 편입학을 해서 학사 학위를 받아야 했다.
학교에서 학생 지도에 시달리고 학습지도 방법, 독서지도 방법, 글쓰기 지도 등 각종 연구 활동을 하면서 2002년에 석사학위를 받게 되는데 학사 학위를 받은 지 10년이 넘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 번도 어렵다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선생의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일찍이 교감으로 승진하고 몇 년 후 교장이 되어서 학교 경영과 문단 활동, 강의와 학생지도에 바쁜데도 박사학위에 도전하게 된다.
그는 공주교육대학교에 강사로 출강을 시작한 이후 중부대학에도 겸임교수로 출강하여 아동문학 강의를 하던 중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초등학교 교장으로서, 대학 교수로서, 아동문학 연구자로서 맡은 역할을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마침내 2008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인간에게 잠재된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굳은 의지와 열정, 그리고 실천궁행하는 노력의 결과로 발현될 수 있음을 후학들에게 몸소 보여주는 좋은 성공 사례라 하겠다.
박사 학위를 받고 나면 기력이 소진되어 한동안 쉬고 싶기도 할 텐데 오히려 더욱 치열하게 활동하는데 문인으로서 동화와 소설을 창작하는 일과 문학 평론 등에 솔뫼 선생의 왕성한 활동은 지칠 줄 모르고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공주교육대학에 출강하면서 2008년에는 소설 ‘화해론’으로 호서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09년에는 아동문학 평론집「동화를 만나러 동화 숲에 가다」를 출간하게 된다. 그리고 한 달 후, 그동안 창작한 동화와 소년소설을 묶어서「우리들의 산타클로스」와 「밀짚모자는 비밀을 알고 있다」두 권을 동시에 출간하여 문단을 놀라게 했다.
갈수록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주제가 다양해지고 아동생활 중심의 소년 소설에서 판타지 동화로 확장하는 등 소재도 풍성해지고 있다. 물은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썩고 말듯이 사람의 상상력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면 기존의 상식이나 관념을 넘어서 호기심 많은 소년처럼 늘 새로운 것을 찾아 신선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선생의 삶의 모습과 생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작가들의 작품론도 여러 편 썼는데 그 중에서 보잘 것 없는 필자의 동화에 대한 작품론도 애정을 가지고 써 주셨다. 작품에 대한 세세한 분석, 과분한 작품평과 칭찬에 이어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본인에 대한 애정 어린 질타와 충고는 마음 깊이 늘 간직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고마운 약이 되고 있다.
솔뫼 김영훈 선생과 나는 문학에 입문한 시기는 비슷했으나 30여년이 지난 지금, 문학박사 학위까지 받았고 소설과 수필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하고 큰 산으로 우뚝 선 선생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시샘이나 질투심보다는 가슴 뿌듯하게 솟아오르는 자부심과 그 분의 어깨에 기대고 싶은 푸근한 마음이 앞선다.
내가 옆에서 지켜본 솔뫼 선생의 삶은 그야말로 지칠 줄 모르고 노력하며 성취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쉴 새 없이 실을 뽑아내듯 솔뫼 선생은 소년 시절의 꿈을 버리지 않고 그 꿈을 먹으며 줄기차게 주옥같은 창작물을 쏟아냈다. 동화, 소년소설, 수필, 소설, 평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뿐만 아니라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학구열로 끝내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문학 단체 일에도 헌신적이었다. 대전아동문학회를 반석에 올려놓은 분도 솔뫼 선생임을 부인할 수 없다. 대전아동문학회의 전신인 충남아동문학회 사무국장과 회장을 맡으면서 회지인 ‘푸른메아리’를 현대 감각에 맞게 출판하였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대전아동문학회의 기금을 조성하여 후배 회장단에게 물려주어 다른 문학단체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선례를 남겼다. 대전문인협회, 대전문인총연합회, 한국아동문학회, 동인활동 등에서 주요 직책을 맡아 왕성하게 활동했다.
솔뫼 김영훈 선생의 삶을 빛나게 하는 또 하나의 면모는 성공한 교육자로서 묵묵히 걸어온 길이다. 글짓기지도, 독서지도, 국어교육연구회, 교육관련 각종 연구활동, 교장으로서의 학교경영 등 그 분이 걸어온 교육자로서의 발자취는 아직도 제자들과 후배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솔뫼 김영훈 선생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뚜렷한 주관과 변함없는 의리가 아닐까. 자신의 영달을 위해 수십 년 쌓아 온 의리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영악한 세상에 뜻을 세우고 의지를 불태우며 곧은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솔뫼 선생의 뒷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믿음직스럽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열정적인 창작 활동과 문단 활동,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폭넓은 활동을 기대하면서 날마다 건강하고 새로워지는 솔뫼 김영훈 선생의 모습을 그리며 졸고를 마친다. (*)
첫댓글 자세하고 긴글에 솔뫼 선생님 큰 발자국이 느껴집니다^*^
박진용 작가님의 인물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