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을 분양하며 청정한 마음 세상에 나누고
백련(白蓮)으로 지역농업 살길을 찾는 “나눔의 수도자”
처렴상정(處染常淨). 진흙 속에 자라면서도 자신의 꽃과 잎에는 조금도 그것을 묻히지 않고 살아가는 연꽃을 일러 하는 말이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며 세속에 살면서도 그 오욕에 물들지 않는 군자중에 군자를 일컬을 때 인용되기도 한다.
웰빙시대로 접어든 요즘에는 각 부위마다 가지고 있는 약효로 인해 연꽃은 가장 각광받는 자연치료약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밑반찬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는 연뿌리, 연근(약명:우절)은 각혈과 토혈, 코피, 치질, 대변출혈 등이 있을 때 지혈효과가 뛰어나며 열매와 종자는 콩팥의 기능을 보강하는 한편 잘 놀라고 불면증이 있거나 신경이 예민한 사람에게 좋다. 연잎도 설사와 두통, 어지럼증에 좋고 어혈치료와 해독작용에 효과가 있다.
“연꽃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꽃입니다. 게다가 연꽃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 이파리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한번 들어보세요.”
연꽃의 약리적인 효능에서부터 그 철학적, 문학적 가치에 이르기까지 선오(善悟)스님의 연꽃예찬은 끝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스님은 요즘 연꽃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당진에서 듣도보도 못한 연꽃축제. 해서 그냥 마당 자투리에 심어놓고 불교정신을 포교하기 위해 연꽃축제라는 이름을 붙였는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스님은 이미 몇 년전부터 연꽃을 키우고 불려나가며 오늘 이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5~6년 전부터인가 봅니다. 조금씩 연꽃 종묘를 사들이기 시작했어요. 자라는 대로 통에 나누어 분양하고 또 필요하다는 곳이 있으면 일부 팔기도 하고, 판 돈으로 다시 종묘를 사들이곤 했어요.”
그렇게 수년동안 키우고 불려온 것이 지금은 종묘 6~7개씩 들어있는 통이 3천7백개에 이른다니 대략 2만5천뿌리의 연꽃이 이곳 사찰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처렴상정((處染常淨) 연꽃의 정토(淨土)가 바로 이곳이다. 아직 연꽃개화가 절정에 이르지 않은 터여서 대장관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스님이 준비하고 있는 제1회 연꽃축제가 그저 이름뿐인 연꽃축제가 아니라 이토록 오래 알차게 준비되어온 축제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였다.
선오스님은 지난 2000년 지금의 자리 아미산 아랫자락에 정토사를 세우면서부터 과연 이 지역을 위해, 이 지역의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많이 공부하고 연구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에 절터를 정하던 1995년부터라고 해야 옳겠다.
한국농업일반에 대한 연구, 벤처형 지역특화상품 개발에 관한 연구... 심지어 아직 아무도 ‘허브’에 대해 말하지 않던 시절에 직접 재배하고 가공하여 시판직전까지 간 일도 있었다. 물론 대중적인 인지도가 너무 낮아 당시 시판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과 대중의 생활 깊숙이 함께하려는 노력은 스님 자신으로 하여금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고 연구하게 만든 힘이었다.
스님이 연꽃재배를 시작한 것도, 지금 연꽃축제를 준비하는 것도 세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는 수도자의 사명 때문이다.
대중의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 늘 노동 속에서 생활하였고, 실제로 연(蓮)농사를 지으면서 농민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게 된 스님. 그래서 농업의 살길을 찾는 농민의 마음을 익히 안다.
연꽃축제는 연꽃이 만발한 곳에서 먹고즐기자는 것이 아니라 연꽃을 알고 그 정신을 되새기며 한편으로는 지역농업의 활로를 찾자는 축제다. 연꽃 가공품을 생산해 자연친화적인 대안농업의 길을 열어 보이는게 스님의 뜻. 수도자의 역할과 사찰의 역할에 대해 스님은 남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절은 물론 수행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수행만을 위한 곳은 아닙니다. 사찰도 사회를 위해 참여하고 생산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혼자 깨달을 것이 아니라 공유하고 환원하는 곳이라야 합니다. 수도자 역시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수행의 방식도 여러 가지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옳게 살아가는 철학을 제공했으면 그것을 현실에서 응용하는 방법도 수도자들이 선구자가 되어 보여주어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당장 빵이 필요하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혼자 깨달은 것, 공유할 수 없는 것은 진정한 수행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런 가치관은 스님으로 하여금 108평짜리 넓은 대중수련관 역할을 하는 법당을 짓도록 하였으며 적어도 1년에 한번은 지역노인들을 위한 효도잔치를 열도록 하였다.
그래서 정토사의 법당은 외관의 아름다움과 고매함을 포기한 대신 실용성과 대중성을 얻었다. 건축비를 아껴 생산적인 일에 투자한 것이다.
이곳은 마땅한 교육장소가 없는 이들의 교육장이고, 축제의 마당이 없는 어르신들의 축제마당이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은 효도잔치는 해마다 참석자가 늘고 참석자의 범위가 커져 올해는 당진군 안팎 여기저기서 무려 2천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신나게 놀다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중에는 잔치때 녹화한 공연이나 놀이장면을 노인정에서 다시보며 노시는 분들도 있단다.
“농촌에 젊은이도 없고 노인을 위한 놀이문화도 없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그분들 손을 잡아드릴 수도 없구요. 그래서 4월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에 잠시라도 어르신들 의욕을 충전시켜 드리자는 취지에서 효도잔치를 시작했어요. 하루를 웃으면 며칠은 행복하니까 건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농사를 지으시라고요. 저야 그분들이 늘 행복했으면 좋겠죠.”
스님이 지금 연꽃축제를 준비하는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다. 지역의 어르신을 걱정하듯이 지역의 농업을 걱정하고 농민의 처지를 걱정하고 과학적으로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올해는 거기에 수재민돕기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었다. 물론 진흙탕물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처렴상정 연꽃의 기상을 보여주고 나누는 것이 그 첫째마음이다.
오는 8월5일 아미산 아래 정토사에 가면 스님이 정성들여 키운 2만여뿌리 연꽃밭도 보고, 연차와 연꽃차의 향기를 맡으며 연밥과 연국수, 연두부, 연떡, 연김치, 연미숫가루 등등 연꽃으로 만든 갖가지 요리들을 맛보고 체험할 수 있다. 다(茶)도구와 연꽃그림 전시도 보고, 연비누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덤으로 산사음악회와 수덕사 주지 법정스님의 법문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한다면 선오스님의 생각, <생산(生産)>과 <공유(共有)>의 정신도 어쩌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