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가요계에는 하나의 각성운동이 일어난다.
노래를 통한 민족정서를 살려내는 운동으로 이른바 [신민요운동]이 그것이라 할수 있었다.
[신민요] 속에는 우리민족의 고유 정서가 여러가지 형태로 담겨있게 되었다.
1926년 이동백이 "춘향가"를 발표 하였고 그해에 김창룡이 제비표 일동 축음기 회사에서 "춘향가"중 <광한루 구경><기생점고>와 적벽가중 <새타령>을 발표하여 대단한 인기를 모았으며 그후로 폴리돌.콜럼비아.빅터.리갈 ,시에론.다이헤이 등 축음기 회사들의 손짓에 의해 수많은 판소리 앨범들이 발표가 된다.
이들과 더불어 기생출신인 이영산홍,백목단등이 1920년대 말쯤 <노래가락><수심가><역금수심가>등을 불러 기생 가수들이 신민요 분야에서 대두하게 괴는 초석을 다졌다..
1926년 나운규의 유명한 영화 '아리랑'에 대한 대중들의 인기가 높아지자 그 영화 주제가 격인<아리랑>이 성창된것도 도움이 되엇다....
신민요는 사회적 시대의 흐름과 음악계에 폭 넓게 확산된 민속요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창가에 도입되어 가요의 든든한 분야로 자리 하기 시작한다....
1930년대로 접어 들면서 전래민요가 개작한 <돈노래(가수미상)>와 채동원 <세동무>가 신민요 타입의 노래로 관심을 끌었다.
다음은 <세동무>의 가사내용이다
지금 흘러 나오는 이곡이 채동원님 음성의 [세동무]이다
지나간 그 옛날의 푸른 잔듸에
꿈을 꾸든 그 시절이 언제이든가
저녁 하날 해지고 날은 점으러
나그네의 갈 길으 아득 하여요
장미 갓흔 내 마음에 가시가 돗처
이다지도 어린 넉 시드러 젓네
사랑과 구든 맹세 사라진 자취
두번 다시 피지 못할 고흔 내모양
즐거움도 그 노래도 서른 눈물도
저 바다의 물결에 씌워 버리고
옛날 의 푸른 잔듸 다시 그리워
화혼의 길이나마 도라가오리
1930년 김서정 작사,김영환 작곡..채동원 노래
이 노래는 1928년 [세 걸인]이라는 김영환 감독의 이원용 김연실 주연으로 나온 영화 주제가 였다.
일제의 심의 과정에 의해 [세 동무]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이곡의 작사작곡. 감독 모두 동일 인물이라 하는데 김영환은 또한 변사로 유명 햇으며 그의 재능이 참으로 대단함을 말해 주고 있는듯 하다...
이곡은 겨레의 나그네 설움이 잘 나타나 있는 곡으로 그 후로 수많은 가수들이 애창 하였다고 한다...
1931년 말쯤 강석연이 노래한 <강남제비>가 이글레코드에서 발매 되어 따뜻한 시대를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 주었으며 1932년 3월에는 연극배우출신 이애리수가 명창 박녹주등과 함께 창극 <춘향가>을 출반 하였고 4월엔 <아리랑><이팔청춘가>등을 출반 하였고 그해 7월엔 <에라 좋구나>를 내 놓았다.
같은해 '세 걸인'의 배우였던 김연실은 시에론 레코드에서 <강남제비>를 재 취입해 내놓았고..
그해 최남용이 이애리수와 듀엣으로 <마음의 거문고><상사타령>을 발표 하였다...
다음의 가사 내용은 1930년에 이애리수가 취입한 <강남제비>이다. 후에 김연실이 재 취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