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김씨는 두 개의 본관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김선궁(金宣弓)의 일선김씨이고, 다른 하나는 |
김추(金錘)계의 선산김씨로 확실한 구분이 필요하며 원주 김씨는 추계 분파이다. |
선산 김씨 1 (善山金氏) |
1> 시조 : 김선궁[金宣弓] |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
선산(善山)은 경상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신라 눌지왕 때 일선으로 부르다가 |
경덕왕때 숭선,·병정현 등으로 개칭되었으며, 1413년 지금의 선산으로 개칭되었다. |
선산김씨(善山金氏)의 시조 김선궁(金宣弓)은 김알지의 30세손이며, 문성왕의 8세손이다. |
[선산김씨족보]에 의하면 그의 초휘는 김 선(金宣)이었는데,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하려 |
남행하던 중 숭선(선산의 옛지명)에 이르러 모병할 때 그가 함께 종군 할 것을 희망하니 |
태조가 기뻐하며 친히 활을 하사하고 선궁(宣弓)으로 사명(賜名)하였다고 한다. |
그로부터 그는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 하는데 공을 세우고, 개국벽상공신 |
영문하시중, 삼중대광 에 올랐다. |
그리하여 후손들이 본관을 일선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하여 왔으나, 조선 태종 때 |
지명이 선산으로 개칭됨에 따라 관향을 선산(善山)으로 하게 되었다. |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면 시조 선궁의 맏아들 봉술(奉術)이 문하시중(종1품)을 지내고, |
둘째 봉문(奉文)은 삼사우윤에 올라 크게 명성을 날리고 가문을 일으킨 중추적인 기틀을 |
다졌으며, 봉문의 아들 흥림(興林) 과 흥술[興述]은 이부판서와 호장을 각각 역임했다. |
조선조에서는 숙자[叔滋], 종직[宗直] 부자가 유명하다. |
숙자는 선산교수, 개령현감 등을 거쳐 성균관 사예을 역임했고, 아들 종직은 이조, 공조, |
형조참판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특히 학문이 뛰어나 영남 학구의 중심이되었고 |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일찍이 [조의제문]을 지은바 있는데 이것이 무오사화의 |
원인이 되어 그는 부관참시[죽은자의 시체를 다시 참수하여 길거리에 내다놓음]를 당하고 |
많은 문집이 불태워 졌으며 제자들은 모두 참화를 입었다. |
선산 김씨 2 (善山金氏) |
1> 시조 : 김추[金錘] |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
선산(善山)은 경상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신라 눌지왕 때 일선으로 부르다가 |
경덕왕때 숭선 또는 병정현이라 하였으며, 고려 성종때 선주로 고쳤고, 조선 태종때 와
서 지금의 선산으로 개칭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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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김씨(善山金氏)는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이자 고려
왕건의 외손인 김추(金錘)가 고려 때 일선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을 선산으 |
로 삼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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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선궁을 시조로 하는 또 하나의 선산김씨가 있어 이 계통은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
일선김씨(一善金氏)로 칭해왔으나, 최근에 와서 다시 선산김씨로 환원되었으므로 서로
본관을 구분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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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광좌(匡佐)의 아들 6형제가 유명했다. |
일찍이 박영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한 맏아들 취성(就成)은 김안국,·이언적 의 천거로 |
네 차례나 벼슬에 등용되었으나 모두사퇴했고, 의약(醫藥)에 능통하여 명성을 날렸다. |
광좌의 다섯째 아들인 취문(就文)은 사성(司成)이 되었으며, 선조가 즉위하자 강원도관
찰사를 역임하고 대사간에 올랐다.
특히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 청렴강직하기로 유명했으며, 명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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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김씨는 또한두 개의 본관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김심언으로 고려 중기 문신으로 경순대왕 |
의 넷째 아들 대안군 은열의 3세손있으며 , 다른 하나는 김추(金錘)계의 선산 김씨에서 분파한 |
(영광 김씨 배몰파라고 불린다.) 시조는이름은 후공 이지만 치공으로 하였다. 원주 김씨의
시조이신 거공 할아버지 형제분으로 6형제중 거공 할아버지는 3째이시고 다섯째로 동생 |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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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강김씨(鎭江金氏) 시조 : 김거공(金巨公) |
원주김씨와 같이 김 거공 할아버지를 시조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
원주김씨와 진강김씨는 동원이파라고 하는데 진강은 강화의 다른 이름이다. |
현 강화 김씨와는 확연히 틀리다. |
김씨분종보(金氏分宗譜)에 의하면 세원(世元, 부호군(副護軍))을 시조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사적(事蹟)이 없어서 그 세계(世系)를 상고할 수 없으며 본관을 진강(鎭江)이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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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강김씨에 대한 자료 거의 없는 상태이다. |
※참고로 위 내용은 본인이 모은 자료를 정리 한것으로 다소
틀린 부분이 있을 것으로 사료되며 틀린부분이 있으면 여려 |
총친분들이 지적 하여주시면 수정 보안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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