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전 사물 - 범종
지옥중생 번뇌 날려보내는
‘범음’
불전사물은 범종.법고.운판.목어를 일컫는데, 이 중에서 사물을 대표하는 것이 범종이다. 종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악기로서의 악종(樂鐘)이 있고, 위급함을 알리는 경종(警鐘)이 있으며, 시와 때를 알리는 시종(時鍾)이 있고, 불법 진리를 전파하는 사찰의 범종이 있다.
절에서는 불사 의식인 법요와 포교가 있을 때 그 개시를 알리기 위해 범종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범종을 아침저녁으로 치는 큰 뜻은 지옥 중생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동시에 불법의 장엄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데
있다. 사찰에서 범종을 달아 두는 범종각의 위치 설정에 있어서는 법당에서 볼 때 오른쪽에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의 체용설(體用說)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서, 체용설에서 체는 본질을 말하는
것이고 용은 작용을 말하는 것인데, 위치로 볼 때 체는 왼쪽에 해당하고 용은 오른쪽에 해당한다. 소리 공양구인 사물은 용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것을 안치하는 범종각을 법당의 오른쪽 편에 두는 것이다.
범종을 치는 횟수는 예불에 따라 다른데, 새벽에는 28회, 저녁에는 33회를 타종한다.
아침 범종은 욕계, 색계, 무색계의 28곳의 하늘에 종소리를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는 것이고, 저녁 범종은 제석천왕이 머무는 선견궁을 포함한
도리천 33천에 각각의 종소리를 울려 퍼지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포뢰는 동해에 사는 고래를 가장 무서워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래 모양으로 만든 당(撞)으로 종을 치면 포뢰 용이 놀라 큰 소리를 지르게 되고, 그 때문에 종소리가 커진다고 옛 사람들은 믿었다. 삼국유사〉에서도, “…자금종(紫金鐘) 셋을 벌여 놓았는데, 모두 종각이 있고 포뢰(蒲牢)가 있으며 고래 모양으로 종치는 방망이를 만들었다(탑상 제4, 사불산.굴불산.만불산 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범종은 종교적 의기(儀器)로서 뿐만 아니라 금속공예사(金屬工藝史)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종’이라는 학명(學名)을 가지고 있을 만큼 독자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종의 정상에 용뉴가 있고 그 옆에 용통(甬筒)이 첨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유곽(乳廓)이 종어깨 밑 네 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과, 종 몸의 넓은 여백에 비천상과 당좌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도 다른
나라 종과 다른 점이다.
상원사동종이 만들어진 46년 뒤인 혜공왕 7년(771년)에 사상 최대의 걸작인 성덕대왕신종이 탄생한다.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한 종이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 따서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이 있다. 몸에는 위로부터 보상당초무늬를 새긴
상대와 연꽃으로 장식된 4개의 유곽, 무릎을 꿇은 채 날아 내려오는 4개의 공양천인상, 2개의 연꽃 모양의 당좌.보상당초무늬와 연꽃으로 이루어진
하대가 양각되어 있다. 또한 모두 1037자의 글이 대칭으로 새겨져 있다. “지극한 도는 형상 밖에 포함되어 있어 그것을 보려하여도 그 대원(大原)을 볼 수 없고,
진리의 소리[大音]은 천지에 진동하나 그것을 들으려 하여도 들을 수가 없다. 그러한 까닭에 가설(假說)을 의지하여 삼진(三眞)의 오묘함을
관하고, 신종을 걸어서 일승(一乘)의 원음을 깨닫는다(夫至道包含於形象之外 視之不能見其原 大音震動於天地之間 聽之不能聞其響 是故 憑開假說
觀三眞之奧義 懸擧神鍾 悟一乘之圓音)”고 하였다. 범종은 지극한 도(道)와 대음을 깨닫게 하는 예기(禮器)라는 것을 이 명문은 깨우쳐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조건들을 성덕대왕신종은 모두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덕대왕신종 소리의 특색을
조규동은 “태산이 무너질 듯 장중하며 호연히 천지에 후(吼)하듯 굵고 낮은 매듭 속에, 또한 못내 자비로운 높은 여운은 그칠 줄 모르고 또 깊게
사바(娑婆) 속으로 스며들기만 한다. 실로 이 세계적 거종의 생명은 그 종소리와 더불어 영원하기만 하다.”라고 평했다
글 /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 [불교신문 2143호/ 7월6일자] |
출처: 토함산솔이파리 원문보기 글쓴이: 솔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