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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회사 개편문제로 연일 계속되는 회의와 술자리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신경써서 읽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일단 그를 알기 위해 그의 약력을 보겠습니다.
그는 19세기의 보르헤스라고 불리며
보르헤스가 자신의 소설에서 그를 이렇게 언급하기도 합니다.
언윈이 당황해서 그의 말을 막았다. "미스터리를 늘릴 필요는 없네." 언윈이 말했다. "미스터리는 단순할 거야.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생각해봐. 쟁월의 '밀실'을 생각해봐.""아니, 복잡할 수도 있어." 던래번이 대꾸했다. "우주를 생각해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벤하칸 엘 보하리, 자신의 미로에서 죽다> 중에서
애드거 앨런 포
포는 1809년 1월 19일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순회극단 배우 데이비드 포와
베테 포 사이에서 태어나 세 살이 되어 고아가 될 때까지 초라한 분장실에서 자라났다.
이 후 리치먼드에 사는 존 앨런과 프란시스 앨런에 입적되어 앨런 부인과 하녀 낸시가
그를 돌보게 된다. 1815년 양부 존 앨런은 가족을 이끌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이주한다.
1816년 포는 런던에 있는 한 기숙학교에 등록한다.
그러나 앨런 부인이 결핵에 걸리고 존 앨런의 사업이 실패하여 그들 가족은 1820년 다시
리치먼드로 되돌아온다.
그후 포는 조세프 W. 클라크 학교에 다니다가, 윌리엄 버크가 운영하는 학교로 전학한다.
당시 그는 머리가 총명하여 미래가 총망되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늘 생각에 잠겨 있는 청년이었다. 그는 시를 좋아하는 형인 윌리엄 헨리와
오랫동안 산보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맥켄지 여학교의 여학생들에게 연애시를 써
누이동생인 로잘리에게 전하도록 했다. 그는 운동에도 재능이 있었는데 넓이뛰기 기록은
21피트 6인치이다. 양부와의 관계는 늘 나빴으며 양부의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할 때도
그 관계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1826년 포는 버지니아 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 양부로부터는 최소한의 재정적 지원만
받았다. 대학에 다니면서 겪은 궁핍한 생활로 그는 주벽에 빠졌고 도박에도 손을 댔다.
입학 후 일 년이 끝나갈 무렵 2,000달러의 빚을 지고 학교를 떠났는데, 성적은 최상위권이었다.
포는 다시 리치먼드로 돌아오지만 심한 절망에 빠진다. 엘미라 로이스터라는 리치먼드에 사는
소녀와 사랑에 빠져 그는 많은 편지를 써보냈다.
러나 엘미라의 부모는 편지를 중간에서 가로채고, 엘미라는 그가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하여
다른 남자와 약혼한다. 포는 크게 상심하여 장시「태머레인(Tamerlane)」을 썼는데,
그가 발표한 최초의 글이 된다.
양부와의 갈등은 극에 달했으며, 심한 언쟁 이후 포는 집을 떠나게 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곳 보스턴으로 향한다. 6주 동안 직업을 구하러 다니지만 실패한 뒤,
1827년 5월 26일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이름으로 군에 입대한다.
지원서에 적은 바에 의하면: 보스턴 태생, 나이 22살, 키 5피트 8인치, 회색 눈동자,
브라운색 머리칼, 잘생긴 용모, 직업은 사환이라고 적었다. 그는 보스턴 항에서 훈련을 받은 뒤
장교 사무실로 옯겨간다.
그 사이 1827년 여름에 보스턴에서 그의 첫 번째 책 『태머레인 외(Tamerland, and Other Poems)』가 인쇄된다.
팜플렛 같은 이 책은 가죽 커버에 약 40페이지 정도였는데, 「태머레인」과 다른 시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작가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고, 단지 보스턴 사람이 썼다고 되어 있었다.
1827년 11월 8일, 포가 소속된 부대는 보스턴 항을 떠나 10일 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
조금 떨어진 물트리 요새에 도착한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는 「태머레인」보다 더 길고
주제도 더 대담한 초기의 상징적인 시를 쓰고 「알 아라프(Al Aaraaf)라는 제목을 단다.
포는 승진에도 불구하고 군대는 자기 적성에 맞지 않다며 자신의 실제 이름과 신분을 밝힌 뒤
제대를 신청한다. 상사는 양부와 화해하겠다는 조건으로 그 신청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양부가 이를 거부하자 그는 정신발작으로 고통스러워하다 심한 열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한다.
1829년 2월 28일, 양모인 프란시스 앨런이 죽자 존 앨런은 앨런 부인의 마지막 부탁에 따라
다시 에드거를 보게 된다. 제대 신청은 받아들여졌고,
두 사람은 휴전 상태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5월에 포는
집을 떠나 남편을 여의고 딸 버지니아와 살고 있는 마리아 클렘 이모에게 간다.
그 사이 볼티모어 출판사에서 『Al Aaraaf』가 간행되어 주목할 만한 평을 받는다.
1830년 여름, 젊은 시인은 다시 한 번 군대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웨스트포인트에 원서를 내고 허가서를 받았으나 그는 곧 이를 후회한다.
그는 버지니아 대학에서처럼 다시 주벽과 도박에 빠진다. 양부는 재혼한 뒤, 양자인 그에게
모든 재정적 지원을 중단한다.
1831년 초에 제대한 포는 뉴욕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시집을 간행하는 데
성공한 뒤 볼티모어에 있는 클렘 이모에게로 돌아간다. 형인 윌리엄 헨리가 죽자
그는 더욱 클렘 이모에게 의지한다. 메리 스타라는 볼티모어의 아름다운 여인과의 연애는
포의 주벽으로 파국을 맞는다. 양부가 그를 상속자에서 제외시키자 클렘 이모와
버지니아와 포는 매우 궁핍한 처지가 된다.
그러나 1833년 새로운 희망이 빛이 갑자기 빛난다.
10월 12일 소설「병 속에서 발견된 수기(MS. Found in a Bottle)」가 『볼티모어 위클리』지의
공모에 당선되어 그는 50달러의 상금을 받는다. 상금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24세의 청년이 문학적 명성을 얻은 것이었다. 이후 포는 글을 써서 돈을 벌게 된다.
『서든 리터러리 메신저』지는 「베레니스(Berenice)」, 「그림자(Shadow)」와
여러 단편소설들을 출간한다. 그의 문학이 크게 주목받기 시작할 무렵,
포는 영국의 시인 엘리자베스 바레트와 사무엘 테일러 콜레리지의 영향을 받아
아편에 중독된다. 『서든 리터러리 메신저』의 발행인인 토마스 윌리스 화이트는 포에게
편집자 자리를 권했으나, 젊은 시인에서 이제는 소설가가 된 포는 이를 거절하고
볼티모어를 떠나 리치먼드로 간다.
당시 포는 자신의 사촌인 버지니아와 깊은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는 14살의 아름다운 소녀로
빛나는 문학청년인 포를 가슴 깊이 숭배하고 있었다. 포는 리치먼드에서 처음 몇 주 동안은
흥분과 절망의 극단을 오가며 보낸다. 9월에 그는 마침내 볼티모어로 돌아왔으며
결혼 승낙을 받는다.
포와 버지니아 클렘은 1836년 5월 16일에 결혼했으며 러시아의 페테스부르크에서
두 주간의 신혼여행을 보낸다. 다시 한 번 밝고 행복한 미래가 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그러나 안정된 삶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포는 늘 밖에서 밤을 보내며
어린 아내를 홀로 놓아 둔다.
그런 한편 다른 여인들과의 추문 스캔들이 리치먼드 시를 떠들썩하게 한다.
1836년 말, 그의 방종한 습관이 일에도 영향을 미치자 발행인 화이트는 포에게 환멸을 느낀다.
1837년 1월 3일, 포는 발행인과 결별하고 클렘 부인과 버지니아와 함께 뉴욕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생계를 해결할 일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사정은 그렇지 못했으므로, 다시 클렘 부인이 가계를 꾸려나가게 되어
셋은 기숙사에서 궁핍하게 생활한다.
1837년 1월, 하퍼 출판사는 포의 장편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
(The Narative of Arthur Gordon Pym)』를 출판하기로 결정한다.
그 해 『어메리칸 먼슬리』지는 포의 「폰융(Von Jung)」을 발표한다.
그러나 포에게는 여전히 돈이 없었다. 1838년 8월, 그는 필라델피아에 가 자신의
행운을 걸어보기로 결심한다. 그의 가족은 페어마운트 공원 근처 코우츠 스트리트의 작은 집에
정착한다. 수 개월 동안 정규 고용직을 구하러 다닌 뒤, 포는 닥치는 대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1839년 1월 그는 조개류에 관한 책인 『패류학자의 첫 번째 책』이라는 책을 내는데,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큰 금전적인 수입은 얻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버지나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다.
1839년 7월, 포는 필라델피아에서 발행되는 『젠틀맨즈 매거진』의 윌리엄 E. 버튼에게
편지를 써 일자리를 부탁한다. 그는 하루에 두 시간씩 편집일을 하면서 주당 10달러의
주급을 제안 받는다. 이곳에서 그는 여러 서평을 쓰는 일 외에
「어셔 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같은 작품을 발표한다.
그 해 12월 말, 그는 진정한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는데, 리앤 블랜차드 출판사에서
『그로테스크와 아라베스크에 관한 이야기(Tales of the Grotesque and Arabesque)』라는
제목으로 25편의 작품이 실린 두 권의 책을 간행한다. 이와 함께 포는 자기 자신의 잡지를
창간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추진한다.
1841년 1월 그는 『펜 매거진』이라는 잡지를 창간한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실패하여 포는
『젠틀맨즈 매거진』을 새로 인수한 조지 렉스 그라함이 권하는 편집인 자리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해 4월 초에 포는 세계 최초의 추리 소설
「모르그 가의 살인(The Murders in the Rue Morgue)」을 발표한다.
포의 편집인으로서의 능력으로 『젠틀맨즈 매거진』의 발행 부수는 크게 증가하며,
그로 인해 포는 연간 800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경제적인 압박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자신의 소설과 시로도 더 많은 원고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1842년 1월 자정 무렵 버지니아는 결핵으로 인해 위독해진다.
포는 다시 절망에 빠져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결국 동료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편집일을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포는 1842년 5월에 해고되지만,
그 잡지에 글은 계속 발표한다. 절망에 극복한 뒤 포는 다시 자신의 잡지였던
『펜 매거진』을 출간하려고 노력하는데, 잡지 이름을 『스타일러스』로 바꾼다.
그러나 그는 병에 걸려 7주 동안 침대에 누워 있게 된다.
1843년 초에 「고자질하는 심장(The Tell-Tale Heart)」과 「레노레(Lenore)」,
그리고 중요한 비평작품인 「시의 원리」를 『파이어니어』라는 신생 잡지에 발표한다.
동시에 「황금 곤충(The Gold Bug)」을 『달러 뉴스페이퍼』에 투고해 100달러의 상금을 받는다.
잠시나마 그는 『스타일러스』에 대한 열정을 되찾았으나 다시 주벽에 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뛰어난 감각으로 「갈가마귀(The Raven)」를
1844년 초에 마치는데, 그 당시 포의 자기 분열은 극에 달한다.
1844년 4월 6일, 포는 다시 뉴욕에서 자신에게 행운을 걸어보기로 결심한다.
클렘 이모를 남겨둔 채 포는 버지나아와 함께 뉴욕으로 떠난다. 그들은 그리니치 가
130번지의 아파트에 세를 얻는다. 그는 『뉴욕 선』지에 유명한
「열기구 보고서(Balloon Hoax)」를 발표한다. 작품을 출판하고 돈을 받자
포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클렘 이모를 뉴욕으로 부른다. 뉴욕에서의 생활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버지나아의 건강도 좋아지고, 포는 술을 끊고 계속해서 작품을 발표한다.
1845년 1월 29일, 「갈가마귀」가 『뉴욕 미러』지에 발표되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3개월 동안 일한다), 하룻밤 사이에 그는 소설가와 비평가로서 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의 명성도 얻었다. 2월 22일 그는 『뉴욕 미러』지를 떠나 새로 창간한
『브로드웨이 저널』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칼럼 한편에 1달러를 받았고 잡지사와
더 가까운 브로드웨이 195번지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
그 해 여름 윌리 앤 푸트남이라는 출판사에서 포의 『이야기들(Tales)』이라는 책이 출간된다.
11월에는 시집 『갈가마귀와 여러 시(The Raven and Other Poems)』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는데,
3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었고 한 권당 31센트에 판매되었다. 포는 이제 생애 최초로
저작권을 가졌으며, 1845년 10월에는 자신의 잡지를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성공 궤도에 오를 무렵, 버지니아의 건강이 악화되어 포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그 당시 그는 여류 시인 프란시스 S. 오스굿 부인을 알게 되는데,
늦여름에 두 사람 사이의 염문설이 파다하게 퍼진다.
잡지는 1846년 1월 3일자 발행을 끝으로 폐간된다. 그러나 포는 뉴욕 인물에 대한 일련의 글인
「뉴욕의 지식인들」을 『고디스 레이디스북』에 발표하는 등 바쁘게 글을 쓴다.
이 글로 그는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기도 한다. 버지니아의 건강을 위해 가족들은 1846년
한여름 터틀 만을 떠나 시에서 북쪽으로 13마일 떨어진 포드햄으로 이주한다.
그 당시 포는 프랑스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젊은 시인 샤를르 보들레르는 파리 신문에
번역된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고 매혹되어 직접 번역한다.
이후 보들레르는 포를 프랑스의 저명한 외국 작가군 반열에 올려 놓는다.
포는 시인 보들레르와 스테판 말라르메,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등에 의해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받고 해외에 널리 소개된다.
1847년 1월 30일, 길었던 버지나아 포의 비극이 종말을 맞는다.
스물넷의 나이에 버지니아는 눈을 감는다. 포는 완전히 절망에 빠진다.
버지니아를 간호했던 미망인 슈 부인이 그 집에 계속 머물면서 포를 간호한다.
점차적으로 그는 글쓰기 작업을 해나갈 수 있게 된다.
1848년 5월 23일, 윌리 앤 푸트남에서 조지 P. 푸트남으로 이름을 바꾼 출판사가
포의 우주 이론에 대한 강의집 『유레카(Eureka)』 500부를 출판하는 모험을 한다.
그 책으로 포는 14달러를 선불로 받는다. 이 책은 폭넓은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250부를 추가로 출간할 수 있었다. 포의 가장 훌륭한 시로 평가되는
「울라루메(Ulalume)」는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제 홈페이지에서는 울라리움이라는
제목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당시 39살이던 포는 메사추세츠에서 온 헬렌 위트남 부인과 만나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45살의 과부로, 젊은 변호사인 남편을 여의었다.
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시를 주고받는다. 1848년 9월 21일,
포는 그녀의 집에 가 청혼한다. 12월 23일 청첩장을 만들었으나, 결혼식은 거행되지 않았다.
위트남 부인은 포가 지난 가을 리치먼드에서 『스타일러스』잡지를 간행하는 동안
애니 리치먼드 부인과도 염문을 뿌린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리치먼드 부인이 포를
동정하는 동안 주벽에도 빠진 사실을 알게 된다. 위트남 부인은 파혼을 선언한다.
위트남 부인을 만나고 돌아온 포는 심한 두통에 시달렸지만 다시 글로 돌아온다.
그리고 당분간 글은 잘 되어간다. 1849년 2월 7일 「절름발이 개구리」가 보스턴의
주간지에 실린다. 그 주간지는 포에게 페이지 당 5달러를 주었으며
이후에도 규칙적으로 포의 글을 싣는다. 4월에 단편 「폰 켐펠렌과 그의 발견」이 실리고,
2주 후에는 「애니를 위하여」라는 시가 발표된다. 7월 7일 클렘 이모에게 바친
「나의 어머니에게」가 발표된다. 그러나 과로와 애니와 자신 사이의 염문으로 다시
발작을 일으켜 클렘 이모가 다시 그를 간호한다.
1849년 4월 말, 포는 일리노이 오콰카에서 사는 에드워드 H.N. 패터슨으로부터 온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포가 전혀 모르던 사람으로, 그는 포가 전적으로 편집을 맡는 잡지를
재정적으로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잡지를 창간하는 기념으로 패터슨 씨는
포에게 3개월 간의 강연을 제안한다. 포는 강연을 시작하지만, 다시 발작을 일으켜
자살 소동을 하는 것으로 끝을 낸다. 그는 다시 회복하여 리치먼드로 돌아오는데,
8월 17일 그곳의 익스체인지 호텔에서 시의 원리에 대한 아주 인상적인 강연을 한다.
리치먼드에 돌아와 포는 엘미라 로이스터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는 부유한 과부가 되어 있었다. 포는 다시 그녀에게 강하게 끌린다.
이후 그들의 약혼이 발표된다. 그러나 엘미라는 포가 자신의 돈에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의심하여 약혼을 취소한다. 그러나 모든 의혹에도 불구하고 엘미라는 구애를 받아들여
마침내 결혼에 동의한다. 결혼식은 10월로 잡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운명이
그것을 방해한다. 당시 상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포는 9월 28일 아침 기차는 타고
볼티모어에 도착했는데 몹시 취하고 열이 높은 상태였다. 그는 친구이자 의사인
나탄 C. 브룩의 집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한다. 이후 5일 동안 포는 거리를 헤매고
다니지만, 누구도 그 기간 포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
10월 3일, 지나가던 행인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포를 발견한다.
포는 워싱턴 대학 병원의 J. J. 모란 박사에게 맡겨진다. 정신 착란과 흥분상태에 이어
포는 혼수 상태에 빠진다. 그 다음날 아침 그는 다소 안정을 회복했으나
다음주 토요일 밤까지 계속 불안정한 상태로 빠져 든다.
1849년 10월 7일, 포는 고뇌에서 벗어나 잠시 평안을 찾았으나 새벽 5시,
의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신이여, 내 불쌍한 영혼을 구하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지켜보는 이 없는 외로운 죽음이었다.
엘미라 로이스터도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몰랐으며, 클렘 이모도 알지 못했다.
10월 9일 포는 파예트 앤 그린 가에 있는 프레스바이테리언 묘지에 그의 할아버지인
데이비드 포 옆에 묻힌다. 1875년 묘지의 남동쪽으로 옮겨지고 그곳에 묘비가 세워진다.
그의 연보를 보며 그의 작품을 대비해서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게 작품을 대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 모르그가의 살인
1841년 발간. 그의 최초의 추리소설이자 세계 최초의 추리소설로 알고 있다.
셜록 홈즈의 효시격인 뒤팡이 나오는 추리소설이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그 영화는 거의 킹콩의 효시격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추리 소설의 구성요소
◇ 밀실 미스터리
범죄가 일어나기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장소에서 사건이 발생되는 설정이다. 사건은 Morgue가의 건물 4층에서 발생하는데 창문은 안에서 못질되어 있었고 출입문도 안에서 잠겨 있었다. 경찰은 집을 수색했지만 단서는 발견되지 않고, 창문이 단단하게 못질되어 있어 범인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고 단정 짓고, 문도 안에서 잠겨 있어 어떠한 방법으로도 사건이 일어나기 불가능한 상황이 제시된다.
◇ 서투른 경찰
이 작품에서 경찰들은 살인 사건이 일어난 후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현장 감식까지 하지만 특정한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찾지 못한 채 사건 해결을 포기하게 된다.
◇ 총명한 수사관
과학적인 분석과 추리력을 통해 사건현장을 분석하면서 해결하는 명석한 두뇌의 탐정인 Dupin이 등장한다.
◇ 잘못 짚은 용의자
범인으로 단정할 어떤 단서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금품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추측만으로 Le Bon을 체포한다.
2. 황금 곤충
예전에 황금벌레라고 나오고 아이들 문고판으로 나오고 보물섬의 다른 형태로 많이 읽히던 이야기
추리소설이라기 보단 환상과 모험소설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궁핍함과 사람들에게 신경쇠약이라 불리던 그의 경제적인 탈출 욕망이 드러난 건 아닐까
생각되는 글입니다
숲은 자연, 본능, 무의식을 뜻하는 듯 보여집니다.
주피터와 화자는 일반적인 눈으로 황금을 찾는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지요.
3. 고자질하는 심장
무의식의 세계
사이코패스
나로 설정된 인물이 평소 자신의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었던 노인을 일주일 동안의 사전준비 후 8일째 되는 날에 해치게 된다.
'나'는 시체를 토막 내고 방바닥에 숨긴다. 노인이 죽을때 낸 외마디의 비명소리를 들은 이웃이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고, 3명의 경찰이 주인공의 집에 들어오게 된다.
증거도 없고, 전혀 동요하는 마음도 가지지 않았던 주인공은 노인의 방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의자까지 가져다주는 매너를 보인다. 경찰들도 더이상 주인공을 의심하지 않게 되고 가벼운 담소를 나누기까지 한다. 하지만 원인모를 불안감과 불쾌함이 주인공을 불편하게 만들고 노인의 심장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오는듯하여 감정이 점점 격해져서 경찰들에게 모든 범행을 자백
4. 마리 로제 미스터리
그런데, “마리 로제 미스터리”에서는 우연과 확률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조엘 로즈는 이 소설을 모티브로 가장 검은 새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를 썼다
약간 미완성인 느낌
메리 시실리어 로저스라는 젊은 아가씨가 뉴욕 언저리에서 살해되었다. 그 죽음은 비상한 흥분을 불러일으켜 그 열기가 쉽게 식지 않았는데, 이 이야기가 씌어지고 또 발표된 시기(1842년 11월)에도 그 사건의 수수께끼는 아직 미해결인 상태였다. 그래서 작가는 파리 여점원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실제의 메리 시실리어 로저스 살인사건을 다루어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비슷이 써나가고 중요한 부분은 그대로 충실히 다루기로 했다. 그리하여 반쯤 가공적인 소설 위에 세워진 모든 추론을 실제에도 적용하여 진상을 밝혀보려는 게 그 목적이었다.
<마리 로제 수수께끼>는 사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씌어졌으므로 신문 기사 말고는 전혀 조사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그 현장에 있거나 그곳으로 직접 찾아갔더라면 충분히 참고될 만한 걸 얻었을 테지만 작가는 많은 것을 모르고 지나갔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발표된 훨씬 뒤에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두 사람-그 한 사람은 소설 속의 드뤼크 부인인데-의 고백으로, 이 소설의 결론뿐만 아니라 결론에 이르는 가정적 사실까지도 모든 게 완전히 확인되었다.
우연의 일치와 수학은 틀림
세상에는 현실 사건에 평행하는 어떤 관념상의 사건이 있다. 이들은 좀처럼 일치되지 않는다. 대개 인간과 주위환경이 관념상의 사건을 변질시키며,그 때문에 불완전해 보이는 그 결과도 역시 불완전한 것이 된다. 종교 개혁의 경우가 바로 그것으로, 프로테스탄티즘 대신 루터 교가 나타난 것이다.
-노발리스 <도덕론>
5. 도둑맞은 편지
라깡 때문에 유명해진 소설
<도둑맞은 편지(purloined letter)>의 주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리 경찰청이 탐정 뒤팽에게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고귀하신 분(왕비)이 어떤 편지를 받아 읽고 있을 때, 왕이 들어왔다. 그 편지는 왕이 봐선 안 될 것이었는데, 왕비는 읽던 편지를 대강 가린 채 아무것도 아닌 서류처럼 책상 위에 펼쳐둔다. 그때 D장관이 들어왔는데, 교활하고 눈치 빠른 그는 당황한 왕비의 표정을 통해 그 편지에 무슨 비밀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평상시처럼 왕과 일을 마친 그는 문제의 편지와 비슷하게 생긴 편지를 꺼내어 그 편지 옆에 놓는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이 둔 편지 대신 문제의 편지를 가지고 유유히 나가 버린다. 왕이 눈치 채선 안 될 것이었기에 왕비는 그를 저지할 수 없었다.
그 후 편지를 갖고 있는 D장관은 자신이 권력을 키우는 데 왕비를 이용한다. 편지를 그가 갖고 있음을 아는 왕비는 할 수 없이 이용당하는 한편 경찰청장에게 몰래 그 편지를 찾아올 것을 부탇한다. 장관이 없는 사이에 그는 장관의 집을 샅샅이 뒤지지만 결국 편지를 찾지 못하고 뒤팽에게 도움을 청한다. 마침내 뒤팽은 장관을 방문하고, 색안경을 낀 두 눈으로 방 안을 샅샅이 살펴본다. 뒤팽은 구석의 편지함에 있는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더렵게 구겨진 편지를 보고서, 그것이 문제의 편지임을 알아챈다. 다음날 담배갑을 놓고 갔다는 핑계로 다시 장관을 방문한 뒤팽은, 미리 준비한 거리의 총격소동에 장관이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새 문제의 편지를 가짜 편지로 바꾼 뒤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집을 나온다.
라캉은 이 소설을 궁중과 장관의 집에서 벌어진 두 개의 장면으로 요약하면서, 그것이 두 개의 유사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세 가지 자리가 있다. 첫 째, 왕이나 경찰처럼, 중요한 편지가 있는데 눈이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자리. 둘 째, <장면1>의 왕비나 <장면2>의 장관은 모두 편지를 갖고 있는데, 왕이나 경찰이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자신이 자신이 숨겨 놓은 것이 드러나지 않으리라고 스스로 기만하는 자리. 셋 째, <장면1>의 장관이나 <장면2>의 뒤팽처럼, 누구나 볼 수 있게 방치하는 것이 진정으로 숨기는 것임을 알고, 숨기려는 편지를 찾아내는 자리.
두 장면 각각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동일한 관계가 반복되고 있다.(이런 의미에서 라캉은 이 소설을 ‘반복강박’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는다.) 상이한 사람들이 반복되는 그 동일한 관계 속에 배치된다. 누가 그 자리에 각각 배치되는가 하는 것은 편지에 의해서 정해진다. 즉 여기서 편지는 사람들의 관계를 구조화하는 요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자리바꿈을 야기하고 주체를 교체하는 것은 편지라는 것이다. 이때 편지가 letter이며, 이 말은 ‘문자’를 뜻하기도 한다는 점을 유의하자. 문자가 사람들의 관계를 구조화하는 요인임을 말하기 위해, 문자의 물질성을 말하기 위해 라캉은 의도적으로 이런 중의(重意)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소설 전체를 통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편지/문자의 ‘의미’는 그것을 가지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걸 갖고 있는 사람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이 왕비에게 갖는 의미는 그것이 왕이나 장관에게 갖는 의미와 전혀 다르며, 경찰이나 뒤팽에게 갖는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편지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 때문에 사고와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이것이 편지의 의미이기에, 편지는 계속 자리 바꾸기만을 할 뿐, 편지의 내용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편지의 자리 바꿈(치환)을 라캉은 환유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편지는 또한 욕망의 기표다. 편지가 어떤 탁월한 성능을 가진 탐나는 물건이 아니다. 거구로 그것은 왕비로서는 없어야만 했던, 그래서 없는 듯이 감추어야만 했던 문자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없어서 문제인 편지다. 이런 의미에서 결핍의 기표다.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찾아내고자 하는, 다시 말해 결핍으로 인해 욕망을 야기하는 기포다[objet(a)]. 그것이 장관은 물론 경찰이나 뒤팽이 갖고자 욕망했던 대상[이는 두번째 의미에서 objet(a)인데]이었다. 한편 장관으로선 왕비에게 그녀의 편지를 자신이 갖고 있음을 알림으로써, 왕비의 욕망의 대상을 자신이 갖고 있음을 알림으로써, 그녀의 ‘인정’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편지는 인정욕망의 기표이다.
마지막으로 라캉은, 뒤팽이 그것을 성공적으로- 눈치채지 않게-훔치지만, 사실은 장관에게 그가 편지를 갖고 있지 않음을 알려주었을 것이라고 본다. 즉, 장관에게 욕망의 대상을 잦고 있지 않음을,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편지임을 알림으로써 그의 욕망을 좌절시켜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서 보듯이 편지는 사람들을 특정한 관계 속에서 주체화하는 문자요, 그들로 하여금 그 관계 속에서 행동하게 하는 욕망의 기표다. 이를 라캉이 무의식과 연결짓고 있음을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하나 추가할 것이 있다면, ‘도둑맞은 편지’라는 제목에 관한 것이다. 라캉은 포의 원제(purloined letter)를 보들레르가 La Letter volèe(도둑맞은 편지)라고 번역한 것에 대해 불평한다. Purloined의 pur은 라틴어의 pro에 해당하는 것으로, 근거나 징표, 담보나 보증을 뜻하며 항상 배후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며, loin은 고대 프랑스어 loigner에서 나온 것으로 ‘~와 나란히 있다’, ‘제쳐놓다’는 뜻이라고 한다. 즉 포의 원제purloined letter은 어떤 현상의 근거나 담보로서 배후에 숨어 있지만,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 오히려 그것과 나란히 있는, 하지만 그것을 제쳐놓은 letter인 셈이다. 편지는 쉽게 눈에 뛰는,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오히려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은폐되는 동시에 드러난다. 결국 라캉은 포의 원래 제목을 통해 무의식과 징후의 관계를 요약하고자 하는 것이다. “진리는 스스로를 숨길 때 가장 진실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둑맞은(Purloined) 편지’는 스스로를 숨김으로써 오히려 진실하게 드러나는 무의식의 편지요, 정확히 그런 의미에서 ‘도둑맞은(Purloined) 무의식’인 셈이다
6. 병 속에서 발견된 수기
불안한 심리 상태
그는 그 배를 떠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혹성 탈출이 생각남
문학상 공모에 당선된 소설로 그가 소설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소설이며
사람들 속에서 따로 난파된 듯한 심리상태의 반영이 아닐까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이 안됨
7. 누더기 산 이야기
인디언 여름
몰핀 중독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6,7은 추리쪽보다는 공포쪽
환상을 보는 인간에 대하여
베들로 > 올뎁 > 베드로
나머지는 느낌을 적기에도 부족했습니다
그날은 모르그가의 살인과 황금곤충을 1시간 반 정도 얘기하고 나머지 30분은 도둑맞은 편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와주셨습니다.
바쁘고 심적으로도 여유가 없을텐데도 와준 선재동자 일도 바쁜데다 어머니 병간호에 정신이 없는 까를로스 조(조동현)
더 예뻐진 모습으로 친구까지 모시고 온 덕범형제 늘 선한 웃음과 유쾌한 달변의 소유자 재욱씨
언제나 지치지 않는 뜨거움을 가지고 있는 섹시한 형님 유민 선생님
초대에 응해주고 같이 잘 놀아준 내친구 백석호
그리고 이 모든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빛내주시는 풀벌레 은사장님
모두모두 너무 반가웠고 감사했습니다
덧붙이는 말- 참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많은 인원이 모이고 모두 따스하고 멋진 분들이라 좋았지만
여성 동지가 한명도 없는 건 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다른 여성분들도 초대해서 다시 모임을 함께 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뭐 분위기가 좀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바램도 있지만
다시 모임에서 남자의 시각이 아닌 여성분들의 다양한 시각이 꼭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머리도 크고 목소리고 크고 악센트도 세서 그런지
제 의견이 너무 세게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합니다
그래도 선재야 나 이상한 사람 아니다 ㅋㅋ
첫댓글 토론 발제의 글에 이어 정리의 글까지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정말 수고 많았어요. 잘 읽었어요. 용순씨, 잠깐 할 말이 있어요, 은종복 씨 한테는 이미 얘길 했는데, 이 사람이 우리 <다시>모임에 계속 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다른 모임도 그렇고요. 본 카페로 부터 부여받은 게시판, 거기에 올릴 소설쓰기(창작)에 전념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이곳 서울을 떠나 있게 될지도...(그렇긴 하지만 일정이 허락되는 대로 참여해 만날 수 있도록 해 볼게요.) 용순 씨의, 그 소중한 글벗 박선씨을 향한 간절한 참여독려의 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참 속이 깊은, 넓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다음에 또...
헉...이 모임을 만드신 분이 빠지시는 건 안될 말씀 같습니다.
다시 숙고해주시길 간청합니다.
다른 모임은 모르겠지만 다시 모임만큼은 좀 더 튼튼해질 때까지 나와주시면 좋겠습니다.
ㅠㅠ 어이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