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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總論)
此五品者는 天서之典而人理之所固有者라
人之行이 不外乎五者 而唯孝가 爲百行之源이라
而是로 孝子之事親也엔 鷄初鳴이어든 咸관漱하고
適父母之所하여 不氣怡聲하여 問衣욱寒하며
問何食飮하며 冬溫而夏淸하며 昏定而晨省하며
出必面하며 反必面하며 不遠遊하며 遊必有方하며
不敢有其身하며 不敢私其財라.
(차오품자는 천서지전이인리지소고유자라
인지행이 불외호오자 이유효가 위백행지원이라
이시로 효자지사친야엔 계초명이어든 함관수하고
적부모지소하여 불기이성하여 문의욱한하며
문하식음하며 동온이 하청하며 혼정이신성하며
출필고하며 반필면하며 불원유하며 유필유방하며
불감유기신하며 불감사기재라.)
이 다섯 가지 윤리는 하늘이 편 법전이요 사람의 도리로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바다. 사람의 행실은 이 다섯 가지를 벗어나지 않으나 오직 효도가 모든 행실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효자가 어버이를 섬김엔 닭이 처음 울거든 세수와 양치질을 다 하고, 부모님의 처소로 가서 기운을 나직히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옷이 더운가 추운가 묻자오며, 무엇을 잡숫고 싶으신가를 묻자오며,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잠자리를 정해드리고 새벽에는 문안드리며, 외출할 때는 반드시 고하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뵈오며, 멀리 나돌아다니지 않고 나돌아다니는 데는 반드시 행방을 알리며, 감히 마음대로 몸가짐을 하지 않고 감히 재물을 멋대로 처리하지 않는다.
父母가 愛之어든 喜而不忘하며 오之어든 懼而無怨하며
有過어든 諫而不逆하고 三諫而不聽이어든 號泣而隨之하며
怒而撻之流血이라도 不敢疾怨하며 居즉致其敬하고 養즉致其樂하고
病즉致其憂하고 喪즉致其哀하고 祭즉致其嚴이니라.
(부모가 애지어든 희이불망하며 오지어든 구이무원하며
유과어든 간이불역하고 삼간이불청이어든 즉호읍이수지하며
노이달지유혈이라도 불감질원하며 거즉치기경하고 양즉치기락하고
병즉치기우하고 상즉치기애하고 제즉치기엄이니라.)
부모가 사랑하거든 기뻐하여 잊지 말며 미워하면 두려워하면서도 원망하지 말며, 부모가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간하되 거슬리지 말며, 세 번 간해도 듣지 않으시거든 울면서 따른다. 또 부모가 노하여 때려 피가 나더라도 감히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계실땐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는 즐거움을 다하며, 병환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시면 슬픔을 다하며 제사에는 엄숙함을 다해야 한다.
若夫人子之不孝也는 不愛其親이요 而愛他人하며
不敬其親이요 而敬他人하며 他其四肢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博奕好飮酒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好환財하며 私妻子하여
不顧父母之養하며 從耳目之好하여 以爲父母戮하며
好勇鬪완하여 以危父母하느니라.
(약부인자지불효야는 불애기친이요 이애타인하며
불경기친이요 이경타인하며 타기사지하여 불고부모지양하며
박혁호음주하여 불고부모지양하며 호환재하며 사처자하여
불고부모지양하며 종이목지호하여이위부모육하며
호용투완하여 이위부모하느니라.)
만일 사람의 자식으로서 불효를 하는 자는 그 어버이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그 어버이를 공경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공경하며, 그 사지를 게을리 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아니하며,장기, 바둑이나 두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으며, 보화와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를 사사로이 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으며, 이목의 좋아함만 따라 부모를 욕되게 하며, 용기를 좋아하여 싸움을 사납게 하여 부모를 위태롭게 한다.
噫라 欲觀其人이 行之善不善이댄 必先觀其人之孝不孝니
可不愼哉며 可不懼哉아 苟能孝於其親즉推之於君臣也와 夫婦也와 長幼也와 朋友也에 何往而不可哉리요.
然즉孝之於人에 大矣而亦非高遠難行之事也라硏이나
自非生知者면 必資學問而知之니 學問之道는 無也라
將欲通古今하며 達事理하여 存之於心하며 體之於身이니
可不勉其學問之力哉아 玆用차其歷代要義하여 書之于左하노라.
(희라 욕관기인이 행지선불선이댄 필선관기인지효불효니
가불신재며 가불구재아 구능효어기친즉추지어군신야와 부부야와 장유야와 붕우야에 하왕이불가재리요.
연즉효지어인에 대의이역비고원난행지사야 라연이나
자비생지자면 필자학문이지지니 학문지도는 무야라
장욕통 고금하며 달사리하여 존지어심하며 체지어신이니
가불면기학문지력재아 자용차기역대요의하여 서지우좌하노라.)
슬프다! 그 사람의 행실이 착하고 착하지 못함을 보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효성스러움과 효성스럽지 아니함을 볼 것이니, 가히 삼가지 않으며 가히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진실로 그 어버이에게 효도를 할 수 있으면, 임금과 신하 사이에서나,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나,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서나, 벗과 벗 사이에서도 미루어 어디를 가나 옳지 않겠는가? 그러니 효도란 사람에게 중대한 일이지만 또 높고 멀어서 행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학문에 의하여 알아야 하나니, 학문의 길은 다름이 아니라, 장차 옛날과 오늘의 일에 통하며,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여 이를 마음에 간직하고 이를 몸에 몸받는 것이니, 가히 그 학문을 기르는데 힘쓰지 않겠는가? 이에 그 역대의 요점을 모아서 다음에 적는다.
蓋自太極肇判하여 陰陽始分으로 五行이 相生에 先有理氣이기 人物之生이 林林總總하더니
於是에 聖人이 首出하여 繼天立極하시니
天皇氏와 地皇氏와 人皇氏와 有巢氏와 燧人氏가 是爲太古니 在書契以前이라 不可考라.
(개자태극조판하여 음양시분으로 오행이 상생에 선유이기이기 인물지생이 임림총총하더니
어시에 성인이 수출하여 계천입극하시니
천황씨와 지황씨와 인황씨와 유소씨와 수인씨가 시위태고니 재서계이전이라
불가고라.)
대체로 태극이 처음으로 갈라져 음양이 비로소 나뉨으로부터 요행이 서로 생기고, 먼저 이기가 있었으므로 사람과 물건이 많아졌다. 이에 성인이 먼저 나타나 하늘의 뜻을 이어 등극하니 천황씨, 지황씨, 인왕씨, 유소씨, 수인씨가 곧 그들이다. 이 때는 태고적으로 서계가 있기 이전이라 가히 참고할 수 없다.
伏羲氏가 始劃八卦하며 造書契하여 以代結繩之政하고
神農氏가 作뢰사하며 制醫藥하고
黃帝氏가 用干戈하며 作舟車하며 造曆算하며 制音律하시니
是爲三皇이니 至德之世라 無爲面治하니라.
少昊와 전頊과 帝곡과 帝堯와 帝舜이 是爲五帝라
皐夔稷楔이 佐堯舜而堯舜之治는 卓冠百王이라 孔子가 定書에 斷自唐虞하시니라.
(복희씨가 시획팔괘하며 조서계하여 이대결승지정하고
신농씨가 작뢰사하며 제의약하고
황제씨가 용간과하며 작주거하며 조력산하며 제음율하시니
시위삼황이니 지덕지세라 무위면치하니라.
소호와 전욱과 제곡과 제요와 제순이 시위오제라
고기직설이 좌요순이요순지치는 탁관백왕이라 공자가 정서에 단자당우하시니라.)
복희씨가 비로소 팔괘를 만들고 서계를 만들어 결승의 정치를 대신하고, 신농씨가 농기구를 만들고 의술과 약을 만들었으며, 황제씨가 방패와 창을 만들고 배와 수레를 만들며 달력과 산수를 만들고 음률을 제정하니 이들이 삼황이다. 이 때는 지덕의 세상이라 무위로 다스렸다.
소호,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이 오제요, 고, 기, 직, 설이 요순을 도우니, 그 정치는 모든 왕의 으뜸이 되었다. 그래서 공자께서 <서경>을 정리할 때 당우로부터 잘랐다.
夏禹와 商湯과 周文王武王이 是爲三王이니
歷年이 或四百하며 或六百하며 或八百하니
三代之隆을 後世莫及而商之伊尹傅說과 周之周公召公이 皆賢臣也라
周公이 制禮作樂하시니 典章法度가 粲然極備하더니
及其衰也하여 五覇樓諸候하며 以匡王室하느니라.
(하우와 상탕과 주문왕무왕이 시위삼왕이니
역년이 혹사백하며 혹육백하며 혹팔백하니
삼대지륭을 후세막급이상지이윤부열과 주지주공소공이 개현신야라
주공이 제례작악하시니 전장법도가 찬연극비하더니
급기쇠야하여 오패누제후하며 이광왕실하느니라.)
하나라 우왕과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문왕, 무왕이 삼왕이 되니, 그 지낸 햇수가 혹은 4백년이요 혹은 6백년이며 혹은 8백년이 되니 이 삼대의 융성함을 후세에는 미칠 이가 없었다. 상나라의 이윤, 부열과 주나라의 주공, 소공은 모두 어진 신하다. 주공이 예법을 만들고 음악을 만드니 온갖 전장과 법도가 찬연히 모두 갖추어졌었는데, 그 나라가 쇠진하자 오패가 제후를 이끌고 왕실을 바로잡으니 제환공과 진문공과 송양공과 진목공과 초장왕이 서로 하의 맹서를 주장했으므로 왕의 위령이 떨치니 못했다.
孔子는 以天縱之聖으로 轍環天下하여 道不得行于世하여 刪詩書하고
定禮樂하며 贊周易하고 修春秋하여 繼往聖開來學하고
而傳其道者는 顔子曾子라 事在論語라 曾子之門人이 述大學하니라.
(공자는 이천종지성으로 철환천하하여 도불득행우세하여 산시서하고
정례악하며 찬주역하고 수춘추하여 계왕성개래학하고
이전기도자는 안자증자라 사재논어라 증자지문인이 술대학하니라.)
공자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 천하를 철환하였으나 도를 천하에 펼수가 없어 <시경>과 <서경>을 정리하고, 예악을 정하고 <주역>을 해석하고, <춘추>를 지어 기왕의 성현을 계승하고 후세의 학자를 열어 놓았으니 그 도를 전한 자는 안자와 증자인데, 사적은 <논어>에 실려 있다. 증자의 문인이 <대학>을 지었다.
列國則曰魯와 曰衛와 曰晉과 曰鄭과 曰趙와 曰蔡와 曰燕과 曰吳와 曰齊와 曰宋과 曰陳과 曰楚와 曰秦이니
干戈日尋하여 戰爭不息하여 遂爲戰國하니 秦楚燕齊韓魏趙 是爲七雄이라.
孔子之孫子思 生斯時하사 作中庸하시고 其門人之弟孟軻 陳王道於齊梁하사
道又不行하여 作孟子七篇하시되 而異端縱橫功利之說이 盛行이라 吾道不傳하니라.
及秦始皇하여 呑二周 滅六國하며 廢封建爲郡縣하며 焚詩書, 坑儒生하니 二世而亡하니라.
(열국즉왈노와 왈위와 왈진과 왈정과 왈조와 왈채와 왈연와 왈오와 왈제와 왈송과 왈진과 왈초와 왈진이니
간과일심하여 전쟁 불식하여 수위전국하니 진초연제한위조가 시위칠웅이라
공자지손자사 생사시하 작중용하시고 기문인지제맹가가 진왕도어제량하나
도우불행하여 작맹자칠편이단이종횡공리지설이 성행이라. 오도가 부전이다.
급진시황하여 탄이주하고 멸육국폐봉건하고 위군현하며 분시서하고 갱유생하니 이세이망하다.)
열국은 노, 위, 진, 정, 조, 채, 연, 오, 제, 송, 진, 초, 진이니, 날마다 무기를 준비하여 전쟁이 그치지 않아 드디어 전국시대가 되었다. 그 가운데 진, 초, 연, 제, 한, 위, 조가 곧 칠웅이다. 공자의 손자 자사가 이 때에 태어나 <중용>을 짓고 그 문인의 제자인 맹가가 제나라와 양나라에 왕도를 펴려 했으나, 도가 또한 행하여지지 않아 <맹자>7편을 지었으나 이단, 종횡, 공리의 설들이 성행해서 우리의 도 곧 유교의 도는 전해지지 못했다.
진시황에 이르러서는 이주를 삼키고 육군을 멸하며 봉건제도를 폐하고 군현제도를 시시하며 시서를 불태우고 유생을 묻어 버리니 두 대에서 망했다.
漢高祖가 起布衣成帝業하여 歷年이 四百하되
在明帝時하여 西域佛法이 始通中國하여 惑世誣民하다
蜀漢과 吳와 魏의 三國이 鼎峙하니 而諸葛亮이 仗義扶漢하다가 病卒軍中하니 晉有天下에 歷年이 百餘라.
(한고조가 기포의성제업하여 역년이 사백하되
재명제시하여 서역불법이 시통중국하여 혹세무민하다
촉한과 오와 위의 삼국이 정치하니 이제갈양이 장의부한하다가
병졸군중하니 진유천하에 역년이 백여라.)
한고조가 포의로 일어나서 황제의 업을 이루어 역년이 4백년이었는데, 명제 때에 서역의 불교가 비로소 중국으로 들어와 세상을 현혹시키고 백성을 속였다. 촉한과 오와 위의 세 나라가 정립하여 대치할 때 제갈양이 정의를 위하여 한을 보전하려다가 군중에서 병으로 죽었다. 진이 천하를 차지하고 역년이 백여년이었다.
五胡가 亂華하니 宋齊梁陳에 南北分裂이러니 隋能混一하되 歷年이 三十이라.
(오호가 난화하니 송제양진에 남북분열이러니 수능혼일하되 역년이삼십이라.)
오호가 중화를 어지럽히니 송, 제, 양, 진에 남북이 분열되었다가 수나라가 능히 천하를 하나로 통일하였는데 겨우 역년이 30년이었다.
堂高祖와 太宗이 乘隋室亂하여 化家爲國하여 歷年三百하니라.
五季는 朝得暮失하여 大亂이 極의라.
(당고조와 태종이 승수실난하여 화가위국하여 역년삼백하니라.
오계는 조득모실하여 대란이 극의라.)
당나라 고조와 태종은 수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서 집을 만들고 국가를 이룩하여 역년이 3백이었다.
후량과 후당과 후진과 후한과 후주가 오계로 되니 아침에 얻었다가 저녁에 잃어 대란이 극했다.
宋太祖가 立國之初에 五星이 聚奎하여 염洛關민에 諸賢이 輩出하니
若周돈이와 程顥와 程이와 司馬光과 長載와 邵雍과 朱熹가 相繼而起하여 以闡明斯道로 爲己任하되
身且不得見容而朱子가 集諸家設하여 註四書五經하시니 其有功於學者가 大矣로다
然而國勢가 不競하여 歷年三百하니 契丹과 蒙古와 遼와 金이 迭爲侵질而及其垂亡하여 文天祥이 竭忠報宋하다가 竟死燕獄하니라.
(송태조가 입국지초에 오성이 취규하여 염낙관민에 제현이 배출하니
약주돈이와 정호와 정이와 사마광과 장재와 소옹과 주희가 상계이기하여 이천명사도로 위기임하되
신차부득견용이주자가 집제가설하여 주사서오경하시니 기유공어학자가 대의로다
연이국세가 불경하여 역년삼백하니 글단과 몽고와 요와 금이 질위침질이급기수망하여 문천상이 갈충보송하다가 경사연옥하니라.)
송나라 태조가 나라를 세운 처음에 다섯 개의 별이 모여 염, 낙, 관, 민에 여러 현인이 무리로 나타나니 주돈이와 정호와 정이와 사마광과 장재와 소옹과 주희가 서로 이어 일어나 도를 열어 밝힘으로써 자신의 임무로 삼되 몸이 용납함을 보지 못하더니, 주자가 제자의 설을 모아 사서와 오경에 주를다니, 그학자에게 공을 끼침이 컸다.
그러나 나라의 형세가 강하지 못하고 역년이 3백에 글안과 몽고와 요와 금이 번갈아 침노하고 마주 쳐서 나라가 거의 망하게 되자 문천상이 충성을 다하여 송나라에 보답하다가 마침내 연의 옥에서 죽었다.
大明이 中天하여 聖繼神承하니 於千萬年이로다
嗚呼라 三綱五常之道가 與天地로 相終始하니
三代以前에는 聖帝明王과 賢相良佐가 相與講明之故로 治日이 常多하고 亂日이 常少하더니.
(대명이 중천하여 성계신승하니 어천만년이로다
오호라 삼강오상지도 가 여천지로 상종시하니
삼대이전에는 성제명왕과 현상양좌가 상여강명지고로 치일이 상다하고 난일이 상소하더니.)
대명은 천은에 적중하여 성자신손이 뒤를 이어 계승하니 아! 천년 만년을 이으리라.
슬프다! 삼강과 오상의 도가 천지와 더불어 서로 종시를 같이하니, 삼대 이전에는 성스러운 황제와 밝은 군주와 어진 재상과 선량한 보좌인이 서로 이 삼강, 오상의 도를 강론하여 밝혔으므로 다스려진 날이 항상 많고, 어지러워진 날이 항상 적었다.
三代以後에는 庸君暗主와 亂臣賊子가 相與敗壞之故로 亂日이 常多하고 治日이 常少하니
其所以世之治亂安危와 國之興廢存亡이 皆由於人倫之明不明如耳라 可不察哉아.
(삼대이후에는 용군암주와 난신적자가 상여패괴지고로 난일이 상다하고 치일이 상소하니
기소이세지치란안위와 국지홍폐존망이 개유어인륜지명불명여이라 가불찰재아.)
임금과 어두운 군주와 문란한 신하와 역적이 서로 패배시키고 파괴하였으므로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고 다스려진 날이 항상 적었다. 그 세상이 다스려지거나 문란해지거나 편안하거나 위태하거나 나라가 흥하거나 패배하거나 존속하거나 망하는 까닭이 모두 인륜이 밝으냐 밝지 못하느냐 여하에 달린 것이니 가히 살피지 않겠는가?
東方에 初無君長이더니 有神人이 降于太白山檀木下하여 神靈明智어늘 國人이 立以爲君하니
與堯로 竝立하여 國號를 朝鮮이라하니 是爲檀君이라
殷太師箕子가 率中東래하여 敎民禮儀하고 設八條之敎하니 有人賢之化하더라.
(동방에 초무군장이더니 유신인이 강우태백산단목하하여 신령명지어늘 국인이 입이위군하니
여요로 병립하여 국호를 조선이라하니 시위단군이라
은태사기자가 솔중동래하여 교민예의하고 설팔조지교하니 유인현지화하더라.)
동방에 처음에는 임금이 없더니 신인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자 나라 사람들이 이를 임금으로 세웠다. 그래서 중국의 요임금과 병립하여 국호를 조선이라 하니 이가 곧 단군이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여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치고 팔조의 교법을 베풀자 인현의 교화가 있게 되었다.
燕人衛滿이 因盧관亂하여 亡命來하여 誘逐箕準하고 據王儉城하더니
至孫右渠하여 漢武帝가 討滅之하시고 分其地하여 置樂浪臨屯玄도眞蕃四郡하다
昭宰가 以平那현도로 爲平州하고 臨屯樂浪으로 爲東府二都督府하다.
(연인위만이 인노관란하여 망명래하여 유축기준하고 거왕검성하더니
지손우거하여 한무제가 토멸지하시고 분기지하여 치낙랑임둔현도진번사군하다
소재가 이평나현도로 위평주하고 임둔낙랑으로 위동부이도독부하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망명하여 와서 기준을 꾀어 내쫓고 왕검성에 웅거하더니 손자 우거에 이르러 한나라 무제가 쳐서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낙랑, 임둔, 현도, 진번의 네 군을 두었다. 소제는 평나라 현도로써 평주로 삼고, 임둔과 낙랑으로 동부의 두 도독부를 삼았다.
箕準이 避衛滿하여 浮海而南하여 居金馬郡하니 是爲馬韓이라
秦亡人이 避人韓이어늘 韓이 割東界하여 以與하니 是爲辰韓이라.
弁韓卽立國於韓地하니 不知其始祖年代라 是爲三韓이라.
(기준이 피위만하여 부해이남하여 거금마군하니 시위마한이라
진망인이 피입한이어늘 한이 할동계하여 이여하니 시위진한이라.
변한즉입국어한지하니 부지기시조연대라 시위삼한이라.)
기준이 위만을 피하여 바다로 해서 남쪽으로 가 금마군에 기처하니 이것이 마한이다. 진나라에서 망명하여 온 사람이 진나라를 피하여 한으로 들어오므로 한이 동쪽 경계를 쪼개어 주니 이것이 진한이 되었다. 변한은 한나라 땅에 나라를 세웠으나 그 시조와 연대를 알지 못한다. 이를 삼한이라 한다.
新羅始組赫居世는 都辰韓地하여 以朴으로 爲姓하고
高句麗始祖朱蒙은 至卒本하여 自稱高辛氏之後라하여 因姓高하고
百濟始祖溫祚는 都河南慰禮城하여 以扶餘로 爲氏하여
三國이 各保一隅하여 互相侵伐하더니
其後에 唐高宗이 滅百濟高句麗하고 分其地하여 置都督府하여 以劉仁願薛仁貴로 留鎭撫之하니
百濟는 歷年이 六百七十八年이요 高句麗는 七百五年이라.
(신라시조혁거세는 도진한지하여 이박으로 위성하고
고구려시조주몽은 지졸본하여 자칭고신씨지후라하여 인성고하고
백제시조온조는 도하남위례성하여 이부여로 위씨하여
삼국이 각보일우하여 호상침벌하더니
기후에 당고종이 멸백제고구려하고 분기지하여 치도독부하여 이유인원설인귀로 유진무지하니
백제는 역년이 육백칠십팔년이요 고구려는 칠백오년이라.)
신라의 시조 혁거세는 진한 땅에 도읍하고 박으로써 성을 삼았다. 고구려 시조 주몽은 졸본에 이르러 고신씨의 후손이라고 스스로 칭하고 성을 고라 하였다. 백제 시조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도읍하여 부여로 성씨를 삼았다. 그리하여 삼국이 각기 한 귀퉁이씩을 차지하면서 서로 침략하고 정벌하더니 그 뒤에 당나라 고종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도독부를 두고 유인원과 설인귀로써 머물러 있으면서 진무하게 했다. 그래서 백제는 역년이 678년이요, 고구려는 705년이었다.
新羅之末에 弓裔가 叛于北京하여 國號를 太封이라하고
甄萱은 叛據完山하여 自稱後百濟라하다.
新羅가 亡하니 朴昔金三姓이 相傳하여 歷年이 九百九十二年이라.
(신라지말에 궁예가 반우북경하여 국호를 태봉이라하고
견훤은 반거완산하여 자칭후백제라하다.
신라가 망하니 박석김삼성이 상전하여 역년이 구백구십이년이라.)
신라 말기에 궁예는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태봉이라 하였고 견원은 반란을 일으켜 완산에 웅거하면서 자칭 후백제라 하였다. 신라는 망하니 박, 석, 김 세 성이 서로 전위하여 역년이 992년이었다.
太封諸將이 立王建하여 爲王하니 國號를 高麗라하여
剋잔郡兇하고 統合三韓하여 移都松嶽하다
至于季世하여 恭愍이 無嗣하고 僞主辛禑가 昏暴自恣而王瑤가 不君하여 遂至於亡하니 歷年이 四百七十五年이라.
(태봉제장이 입왕건하여 위왕하니 국호를 고려라하여
극잔군흉하고 통합삼한하여 이도송악하다
지우계세하여 공민이 무사하고 위주신우가 혼포자자이왕요가 불군하여 수지어망하니 역년이 사백칠십오년이라.)
태봉의 여러 장수가 왕건을 세워 왕을 삼으니 국호를 고려라 했다. 그리고 모든 흉적을 쳐 죽이고 삼한을 통일하여 송악으로 도읍을 옯겼다. 그러나 말세에 이르러 공민왕이 아들이 없고, 가짜 임금 신우가 어둡고 사나우며 스스로 방자했으며, 왕요도 임금 노릇을 못하여 드디어 망하게 되니 역년이 475년이었다.
天命이 歸于眞主하니 大明太祖高皇帝가 賜改國號曰朝鮮이라하니
定鼎于漢陽하여 聖子神孫이 繼계繩繩하여 重熙累洽하여 歷年五百十九年이라. 式至于今하시니.
實萬世無彊之休로다.
(천명이 귀우진주하니 대명태조고황제가 사개국호왈조선이라하니
정정우한양하여 성자신손이 계계승승하여 중희누흡하여 력년오백십구년이라. 식지우금하시니.
실만세무강지휴로다.)
천명이 참된 임금(이성계를 말함)에게로 돌아오니, 명나라 태조 고황제가 나라 이름을 고쳐 주어 조선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한양에다 도읍을 정하고 신성한 자손들이 끊임없이 계승하여 거듭 밝고 더욱 흡족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래서 실로 만세에 끝이 없는 아름다움이 되었도다.
於戱라 我國이 雖僻在海隅하며 壤地編小하나 禮樂法度와 衣冠文物을 悉존華制하여 人倫이 明於上하고 敎化가 行於下하여 風俗之美가 모擬中華하니 華人 稱之曰小中華라하니
玆豈非箕子之遺化耶리요 嗟爾小子는 宜其感而興起哉인저 必讀此書하라.
(오희라 아국이 수벽재해우하며 양지편소하나 예악법도와 의관문물을 실존화제하여 인륜이 명어상하고 교화가 행어하하여 풍속지미가 모의중화하니 화인 칭지왈소중화라하니
자기비기자지유화야리요 차이소자는 의기감이흥기재인저 필독차서하라.)
아! 우리 나라가 비록 바다 귀퉁이에 치우쳐 있어 땅이 좁고 작으나 예악과 법도와 의관과 문물이 모두 중국의 제도를 준수하여 인륜이 위에서 밝고 교화가 아래에서 행해져서 풍속의 아름다움이 중국과 같아, 중국인이 작은 중화라 칭한다.
이것이 어찌 기자가 끼친 교화가 아니겠는가? 아! 여러 어린이들은 마땅히 이것을 보고 느끼어, 떨쳐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