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치
국도 2호선 창원-진주 사이 진동 부근에 위치하고 24시간 개방되어 있으며 무료관람. (아래 사진 참조)
2. 정의
1950년 8월 진동 초등학교 및 진동리 부근에서 부산을 향해 진격하던 북한군 제6사단에 맞서 미 제25사단 제27연대 및 한국 해병대가 치른 전투.
3. 내용
마산 서부지역 전투는 1950년 8월 2일부터 9월 14일까지 국군과 미군으로 증강된 미군 제25사단과 북한군이 진주∼마산지역에서 치열하게 싸운 공방전이다. 그 가운데 진동 초등학교 및 봉암리에서 이루어진 전투가 진동리지구 전투이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군 제6사단의 임무는 서해 방면의 국군을 추격하면서 목포와 여수항을 점령하고 마산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미 제8군은 북한군 제6사단의 우회기동이 마산을 거쳐 부산을 점령하려는 의도라는 점을 간파하고 상주 남쪽에서 방어 중인 미 제25사단을 마산 방면으로 이동시켰다. 미 제25사단은 8월 3일부터 북한군 제6사단 및 제7사단과 마산 서부지역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치렀다.
8월 3일 미 제25사단 제27연대 본부와 체크 대대가 야영하고 있던 진동초등학교를 북한군이 기습 공격하였다. 북한군의 기습공격에 대해 미 제27연대는 포병대대와 함께 반격하였다. 이에 북한군은 600여 명의 사망자를 남기고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6사단은 마산에는 전투 부대가 없는 것으로 오판하고 진동리를 기습한 것이다. 이에 북한군 제6사단은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어 국군 해병대의 김성은 부대 또한 마산으로 전진하는 적을 진동리에서 저지하라는 임무를 받고 이곳에 진출하였다. 김성은 부대는 전차를 앞세우고 진출하는 북한군 제6사단과 봉암리에서 맞붙었다. 이때 김성은 부대는 미 제25사단 제27연대에 배속되어 있었다. 8월 6일 김성은 부대는 적에게 점령당한 진동리의 야반산을 공격하여 탈취하였다. 이로써 김성은 부대는 전 장병이 일계급씩 특진하였다.
4. 결과
진동리 전투는 부산을 점령하려는 북한군의 기도를 좌절시켰으며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총 반격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참고문헌
『6·25전쟁사 5 -낙동강선 방어작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8)
『한국전쟁』中(국방군사연구소, 1996)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