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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진공청소기
이 완 형*
"위이이이잉~"
아내가 또 청소기를 튼다.
"위이이이잉~"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숨넘어갈 듯 갉아대는 소리에 반응하는 나는 소름이 끼치도록 무감각하다. 이곳저곳을 흡입하던 진공청소기는 내 다리 사이를 흩는가싶더니 이내 배를 지나 머리위에서 뱅뱅 돈다. 그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럴수록 청소기는 더 길게 요동을 친다. 그러다가 이내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할딱거린다. 아내는 진공청소기를 본래 있던 곳에 놓는다. 진공청소기는 그제야 숨을 거둔다. 그렇게 새벽은 반복된다. 나는 늘 눈을 감은 채였고 아내의 손에는 언제나 진공청소기가 들려 있다. 다시 새벽이 오고, 그 새벽 끝의 진공청소기는 매번 숨을 할딱거린다. 숨을 할딱이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나는 점점 그것과 밀착되어 감을 느낀다. 그럴라치면 나는 그 밀착되는 농도를 견디지 못하고 탐욕으로 일그러진다. 그런 나를 흡입구는 용서치 않는다.
나는 재빠르게 사각 빨판의 흡입구 안으로 빨려든다. 왜 하필 비스듬한 사각 흡입구일까. 누군가가 오랫동안 그렇게 힘들여 만들지 않았다면 그런 모양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사각 모양을 몹시도 싫어했는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비틀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 사이에도 가파르고 좁은 대각선 연장관을 통해 사정없이 빨려 올라가서는 타원형의 통 입구에 부착되어 있는 고운 먼지봉투 입구에 사정없이 비틀려 끼어든다. 이미 돌만큼 돌아서 정신이 혼미한 상태인데도 먼지봉투는 지저분한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포근하다. 먼지봉투의 부드러움과 맞닿으면서 분쇄기를 빠져나오는 밀가루가 생각났다. 얼마나 많은 회전을 해야만 저렇게 고운 가루가 될까. 그곳에 꼭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었다. 타원형의 통 속에선 소리가 멈춘 지 오래다. 아내가 별 의미 없이 이용하는 ON-STOP스위치도 그곳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먼지봉투의 포근함도 잠시, 나는 산통과도 같은 통증을 느끼며 먼지봉투 안으로 끌려들어간다. 먼지봉투 안은 혼동의 도가니다. 미세한 먼지가 솜털, 머리카락, 피부부스러기, 옷 티끌, 개미사체, 바퀴벌레 머리, 음식물 찌꺼기와 함께 온통 야단이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부피가 나간다. 부피가 가장 크니까 타원형의 진공청소기 통을 다 채울 줄 알았는데 아직도 공간은 넓다. 누군가를 더 끌어들여야 흡입을 멈출 것이라는 기대가 점점 크게 다가온다. 점점 크게. 점점......
‘위~이이~이~잉’
나의 기대와는 달리 아내의 진공청소기는 이미 숨이 다한 듯 쿨럭 거린다. 매번 그 모양이다. 무엇인가를(또는 누군가를) 더 빨아들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내의 진공청소기는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그래도 아내는 아무 말이 없다. 먼지봉투 안에서도 혼자였던 나는 그곳을 나온 상태에서도 혼자다. 아내가 사정없이 타원형의 통을 비웠기 때문이다. 아내가 진공청소기를 틀 때까지 나는 혼자여야 한다.
집밖에서도 나는 혼자다. 아내의 진공청소가 없으면 혼자라는 것이 더욱 실감난다. 내가 지하철 전동차를 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현금이나 카드가 없어도 나는 전동차를 마음대로 탈 수 있다. 공짜토큰이 필요한 나이는 아니지만 내가 전동차를 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의외로 아주 쉽다. 창구 앞으로 가서 서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역 직원은 별 대꾸 없이 반원형의 틈 밑으로 토큰을 밀어낸다. 그것을 집어 들고는 디지털음성시스템보다도 빠르게 삼켰다가 이내 토해내는 개찰구를 유유히 빠져나오면 된다. 정신장애자처럼 안면 근육을 제멋대로 늘릴 필요가 없다. 다리를 비틀거나 엉덩이를 쭉 빼지 않아도 된다. 공익 따위의 눈치를 볼 것도 없다. 저러니까 국민세금이 줄줄 새는 것이 아니냐고 저들을 탓할 것도 못 된다. 개찰구를 빠져 나올 때 흘러나오는 ‘즐거운 여행 되세요.’만 귓등으로 흘려버리면 그만이다.
전동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덜 복잡하다. 출근시간을 한참 비켜 가서도 그렇겠지만 맨 앞 칸에 타서 그럴 것이다. 나는 늘 앞 칸에만 탄다. 중간에 타면 뭔가에 꼭 낀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불쾌해서다. 한 칸 건너 옆 자리에선 벌써부터 조잘대는 소리가 전동차 한 칸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대동역에 도착해서부터다. 배시시 열리는 전동차의 자동문을 들어서기도 전인데 조잘대는 소리가 앞서서 얹히어진다. 도토리머리를 한 계집애 둘이 조잘대는 소리는 전동차의 치렁거리는 소음을 뚫고 쇄쇄 거린다. 중앙로역을 통과하면서부터 그 조잘대는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 나를 발견한다. 빨려 들어가면서도 저것들은, 그 짓 할 때도 저렇게 조잘댈 것이라고 단정한다. 주변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도토리머리들에서 나는 또 다른 세상을 엿본다. 도토리머리 부모는 얼마나 대견스러울까. 도토리머리 부모들이 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전동차가 시청역을 통과하고 있는데도 도토리머리들의 입 속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쉴 새 없이 조잘대는 것들은 쉬이 내리지도 않는다는 내 통념이 아직도 깨지지 않는 것에 의아할 따름이다. 이번엔 이동전화다. 조잘대는 양이 좀 수그러들었다 싶으면 여지없이 이동전화를 꺼내든다. 지치고 무의미한 언어들이 전동차 칸을 메우기 시작한다. 대구 지하철 화재 때의 매연보다도 더 고약하고 퀴퀴한 언어들이 한 칸을 가득 채우고 옆 칸으로 마구 번져간다.
나는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별 다른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아내의 체위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버틸 힘도 없었거니와 아내 역시 그런 나를 좋아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여자는 행위보다 스킨십이나 분위기에 좌우된다는 조언도 한갓 수다스러울 뿐이다. 그런 나에게 조잘대는 도토리머리들의 수다는 다른 세계로 이행하는 해법 같은 것이다. 영화나 소설 속의 인물들이 모함에 빠졌을 때 제대로 변명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운명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하철 전동차에 오른다.
‘여보쇼?’ 지껄한 소리에 나도 모르게 도토리머리 입 속에서 재빨리 빠져 나온다. 전동차가 밀어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추근추근 찧는 소리는 분명 아니다. 빈자리를 찾는 눈보다도 빠르게 비좁은 틈으로 엉덩이를 밀어 넣은 중년 사내의 이동전화 받는 소리다. 크렁크렁한 그 소리는 조잘대는 도토리머리들보다 훨씬 빠르게 내 귀청을 파고든다. 아내의 진공청소기보다 진동속도가 강한 쇠 소리가 난다.
맞은편에서는 벌써부터 동영상을 찍고 있다. UCC. 저걸 UCC라고 하는 건가. 언젠가 아내가 켜놓은 컴퓨터에서 본 UCC와는 좀 달랐지만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저들의 UCC는 어제 저들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확한 영상이다. 아니면 적어도 저들 사이에 있었던 그간의 행위들을 말해주는 표적이다. 여자는 순결을 잃으면 화장부터 한단다. 화장부터…… 친구 녀석이 우연히 들려준 그 말이 사실일까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미지수다.
아내는 나와 만난 것이 불행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어떻게 지켜온 삶인데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 수가 있어? 아내는 눈도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나에게 자신의 생각을 옮겨놓았다.
13년 전, IMF라는 말이 누구에게나 생소하게 들릴 때였다. 결코 떠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래서 더욱 애착을 가졌던, 농협에 팽개치듯 사표를 제출하고 나온 것도 그때였다. 인사담당이었던 나는 동료직원들을 차마 자를 수가 없었다. 그들과 같이 한 끼니 수나 이유 없이 마신 소주병들을 놓고 보더라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내가 진공청소기를 손에서 떼지 못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때만해도 나는 복직에 자신이 있었다. 자신들을 자르지 않고 내 스스로 사표를 제출했으니 누가 봐도 괜찮은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지점장한테서 곧 연락이 온다고 아내에게 다짐했었다.
회사에 가지 않는 시간은, 거짓 조퇴를 하고 시내를 배회하던 고등학교 때의 행복과 맞먹는 것이었다. 친구들을 불러내 며칠씩 술에 취했고 낚시와 등산으로 들떠 있었고 단란주점 아가씨나 묻지마 관광에서 만난 여자들과 낯선 밤도 보냈다. 아내의 진공청소기를 염두에 둘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나름대로 아내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아내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설거지며 빨래며 집 안 청소들을 노래까지 부르며 했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그것은 또 다른 변명으로 다가왔다. 농협을 나온 지 한 달이 되면서부터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진공청소기를 드는 횟수도 점점 늘어만 갔다. 귀찮게만 여겨지던 친구들의 전화가 차츰 뜸해지는가 싶더니 아예 받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장모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도 좀처럼 살갑지가 않았다. 형들은 말할 것도 없이…….
또 다시 진공청소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비좁은 통로로 거침없이 빨려 들어간 나는 아내가 흡입구를 이곳저곳으로 옮길 때마다 심하게 요동치며 먼지봉투 속으로 흡입된다. 먼지봉투 안은 여전히 넓었고 그 공간이 다 차기도 전에 아내의 진공청소기는 숨을 할딱거린다. 아내는 진공청소기를 거칠게 껐고 끄기가 무섭게 먼지봉투를 사정없이 비운다. 그 틈에 나는 또 다시 밖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숨이 다한 진공청소기 옆을 맴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눌 만큼 가벼워진 나를 발견하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내의 진공청소기 속으로 처음 빨려 들어갈 때만해도 힘에 부쳤었다. 176㎝, 80㎏의 물체를 흡입하는 진공청소기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것은 전혀 걱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이미 내 몸은 아내의 진공청소기에 흡입되기 좋은 상태로 맞춰져 갔고, 진공청소기를 드는 횟수만큼 아내의 말 수는 줄어 있었다. 위이이이잉~ 몸을 털어대는 진공청소기 소리에 묻혀 그럴 것이라고 단정했었다. 내가 지하철 전동차를 타기 시작했을 때에도 아내는 아무 내색 없이 진공청소기를 꺼내들었다. 위이이이잉~ 아내는 그렇게 말을 잃어 갔고 나는 진공청소기와 더욱 가까워져 있었다.
아내에게서 진공청소기를 볼 수 없는 날은 몇 번 되지 않는 멋쩍은 사랑을 하고 난 다음 날뿐이다. 아내의 진공청소기 소리에 일어나, 전동차에 잡혀서 하루를 보내고, 낯선 잠에 빠져야 하는 내가 가장 감당하기 힘든 때도 그때다. 그렇지만 그 시간 내내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모든 에너지를 발산해야만 한다. 쾌락이나 만족의 차원에서가 아니다.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아내에게는 불만족만 안겨준다. 그런 나를 아내는 더욱 옥죈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다음 행위로의 이행이 불가능할 정도다. 정액이 휴지에 묻어나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야 나는 아내에게서 벗어날 수가 있다. 아내는 집착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의미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다. 그것은 분명 무엇인가에 대한 지나친 집념처럼 보였다. 다만 나는 그것이 두려워 선뜻 감지해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내의 말이 점점 지쳐가고 진공청소기를 드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아내가 나를 요구하는 횟수도 비례 수처럼 증가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뭇거렸다. 농협을 그만 두었다는 죄책감 때문에도 더욱 그런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도 피할 수는 없었다. 아내의 진공청소기 안으로 들어가는 횟수를 줄이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내의 환한 미소를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뒤였다. 결혼 한 지 꼭 10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처녀 때 아내는 참 청순해보였다. 내가 농협에 근무한 지 만 5년째 선으로 만난 여자였다. 일에 치여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친구들이나 직원들과의 잦은 술자리로 시간이 부족했던 나에게 선이라도 보라는 주변의 권유는 정말로 귀찮은 존재였다. 선이 아니더라도 나는 여자가 필요 없을 만큼 충분한 관계를 하고 있었다. 매번 가는 곳이 단란주점이었으니까. 그것을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집요하게 휘말려 들어갔다. 아버지 제사라도 있어서 일찍 퇴근하려고 하면 이미 문 앞에서 거래처 직원이 차까지 들이대며 나를 에워쌌다. 그러다 보니 의사는 아이를 갖기 어렵다는 말도 했었다. 대수롭지 않게 이미 갈천이 될 정도로 너무 소비가 심했다는 신소리까지 하면서 경고를 한 것이 그때였다.
그런데 아내에게 환한 미소를 갖게 한 것은 임신 테스트기의 적색 두 줄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아내는 진공청소기를 들지 않았다. 대신 식단을 짠다, 태교음악을 듣는다 하면서 부산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의아해 하는 나에게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배만을 정성껏 돌아다보았다. 나는 조금도 신기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전혀 기대감이 앞서지도 않았다. 내가 아빠가 된다는 그 분명한 사실에도 나는 즐겁지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진공청소기를 들어갈 때의 그 모습, 지하철 전동차를 탈 때의 그 모양 그대로였다. 다만 아파트 거실에는 피아노 소리가 예전과는 다르게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태교를 위한 아내의 선곡 때문이었다. 아내의 그런 행동과는 다르게 나는 여전히 술과 친구들 그리고 그 사이에 주점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그 자리를 뜨려고 하면 할수록 나를 더욱 더 자기들의 품속에 꼬깃꼬깃 채워 넣었다. 내가 겨우 펴졌을 때는 아파트 문 앞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그것에서 벗어나려 애썼었다. 하지만 애를 쓰면 쓸수록 아내의 진공청소기가 겹쳐지면서 더욱 탐욕스럽게 나를 잡아채고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내가 그들로부터 꼬깃꼬깃 접혀져 있던 나를 폈을 때 나는 아파트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벌써 몇 번째 헛구역질을 한 터라 몸을 지탱할 힘조차 없었다. 겨우 몸을 추슬러 아파트 문의 비밀번호를 겨우 눌렀다.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기 때문에 거실까지 만큼은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현관문을 힘겹게 열고 막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윽!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헛구역질이 또 나와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그런 내음이 아니었다. 이미 거실 안을 가득 채운 섬뜩하고 비릿한 기운이 거침없이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윽! 격한 헛구역질이 계속해서 나왔다. 겨우 진정을 하고 돌아섰을 때 아내는 거실 한 구석에 축 늘어져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르며 불을 켜자 아내는 눈을 하얗게 뜬 채 그 진공청소기 흡입 연장관을 두 손으로 비틀고 있었다. 검붉고 걸쭉한 액체 사이에서 아내의 하얀 눈초리가 매섭게 나를 쏘아붙이고 있었다. 검붉은 속에서 하얀 눈초리가 그렇게 매정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아내는 완강했다. 아무리 손을 떼려고 해도 아내는 눈을 더욱 하얗게 뜰뿐 좀처럼 놓질 않았다. 장모를 부르고 나서야 아내는 힘에 부쳤는지 진공청소기에서 손을 떼었다.
결국 아내가 아이를 잃었다. 내가 술과 친구들, 그리고 주점 그녀들 사이에서 꼬깃꼬깃 접혀지고 있을 때 아내는 아이를 잃고 말았다. 태교음악을 들으며 아이와 대화를 하던 아내는 갑자기 카세트가 고장 나자 결혼하기 전에 영어회화를 들으려고 샀던 카세트를 생각해냈고 그것이 건넛방 수납장 위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의자를 놓고 그곳에 올라갔던 모양이다. 순간 의자가 기울면서 아내는 방바닥에 나동그라졌고 그때 내가 사놓은 골프가방 쪽으로 쓰러지면서 그것을 피하려다 진공청소기의 흡입호스와 흡입기 연장관에 배를 심하게 부딪쳤다. 아내가 늘 아침부터 틀었던 그 진공청소기였다.
그로부터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퇴원해서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는 모든 것에 무표정했다. 그 진공청소기를 늘 손에 쥐는 것 말고는. 진공청소기를 드는 횟수가 더욱 많아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아내는 이제 거의 매 시간을 진공청소기 트는 것과 함께 했다. 그 소리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나는 진공청소기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다시 아내의 진공청소기 안이다. 먼지봉투 안에서 나는 이제 더 이상 가장 부피가 크지 않다. 나보다 부피가 큰 물체들이 사방에 떠 있다. 그 큰 물체들에게 밀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나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아내가 진공청소기를 끄기만을 기다린다. 어찌된 일인지 아내의 진공청소기는 헐떡거리지도 않는다. 아니 숨을 거둘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벌써 숨을 거뒀어야 한다. 하지만 아내의 진공청소기는 멀쩡하다. 부피가 큰 물체들은 더욱 나를 거세게 밀어붙인다. 무엇인가 아니 누군가를 더 흡입할 것 같이 넓던 공간도 좀처럼 넓어 보이질 않는다. 숨이 막힌다. 갑자기 커다란 물체가 내 쪽으로 밀려온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더욱 숨이 막히는 것은 그 빛 때문이다. 그 커다란 물체가 내 쪽으로 밀려오면서 생긴 틈 사이로 날카롭고 섬뜩한 빛 하나가 쫓아왔다. 그 빛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내 전신을 덮어버렸다. 나는 이제 빛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조용히 그 빛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 갑자기 그 빛 속이 점점 넓어지면서 하얀 빛 하나가 새어나온다. 더욱 날카롭고 섬뜩한 그 하얀 빛은 내 전신을 핥기 시작한다. 어찌나 뜨겁고 따가운지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인다. 하지만 나는 소리를 지를 수가 없다. 악!
나는 분명히 그 빛에서 아내를 보았다. 아내는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나에게 쏘아붙였다. 내 인생 책임져! 그 외마디를 지르고는 아내는 곧장 집을 나갔다. 나는 아내가 왜 저러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나는 그런 아내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아내가 강아지를 데리고 올 때까지만 해도.
“해비야! 네 아빠야! 네 아빠!” 아내는 낯익은 강아지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날따라 밝게 말하는 아내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묻어났다. 아내가 말하는 해비는 시추라고 불리는 강아지였다. 언제가 동물농장인가 뭔가 하는 TV프로그램에서 배가 터질 듯한 모습으로 비춰졌던 그 강아지였다. 그때의 그 혐오스런 모습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 시추라는 강아지를 정말로 싫어했었다. 근데 아내가 해비라고 하면서 건넨 강아지가 시추였을 때 나는 옥좨오는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베란다로 달려갔다.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도 좀처럼 열리지가 않는다. 그런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는 해비를 내 턱 밑까지 들이댔다. 나는 소리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나동그라지면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아내와 해비의 관계는 이미 도를 훨씬 넘어섰다. 매일 목욕을 시킨다, 치장을 해준다, 옷을 만들어 입힌다, 쇠고기로 스테이크를 해준다 하면서 부산하게 하루를 보냈다. 늘 끼고 있는 것도 모자라 아기처럼 보낭에 싸안고 외출을 했고 잠잘 때도 그 옆은 내가 아니라 해비였다. “해비야 네 아빠야! 네 아빠!” 아내가 나에게 관심을 기울일 때는 이렇게 말할 때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해비 근처에는 갈 수가 없었다. 아내의 하얀 눈초리를 감당할 수도 없었거니와 해비도 좀처럼 나를 용납하지 않았다. 곁에라도 갈라치면 눈을 하얗게 치켜뜨고 짖어댔다. 아내의 그 하얀 눈을 하고서 달려들었다. 내가 뭘 주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니 아내가 기겁을 하며 그것을 채뜨리는 바람에 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해비가 싫다. 이제는 그 TV프로그램에서 본 혐오스런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지하철 전동차를 타는 횟수가 잦을수록 해비를 싫어하는 마음도 점점 커져갔다. 아내라도 없으면 어떻게 하고 싶었다. 흠씬 패주고, 그냥 수납장에 가둬버리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사정없이 내던지고, 지하철 타러 갈 때 슬그머니 선로에 내려놓고 싶었다. 요즘 들어 무심히 케이블 TV에서 봤던 ‘플란다스의 개’가 자꾸 동영상처럼 떠오른다. 아파트 지하실에서 냄비에 끓고 있는 그 장면도 해비의 뭉툭한 얼굴과 매번 겹쳐진다. 그럴 때면 아내는 내 얼굴을 그 하얀 눈으로 매섭게 쏘아본다. 내가 해비를 어떻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마구 쏘아붙인다. 나는 제풀에 꺾여 멋쩍게 화장실로 피해버린다. 그렇지만 ‘플란다스의 개’가 좀처럼 지워지질 않는다. 그 지하실 장면도.
아내는 해비와 있는 동안만큼은 진공청소기를 틀지 않았다. 해비를 돌보느라고 그러는지 해비가 놀랄까봐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비로소 자유를 만끽한다. 그 자유라는 것도 나와 아내와 해비가 같이 있는 공간에서는 전혀 무의미하다. 오로지 지하철 전동차에 탔을 때만이 나의 자유는 최상이 된다. 나는 거기서 어떤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된다. 굳이 생각에 빠진 척할 필요도 없고, 이동전화를 꺼내 맥없이 자판을 두드리지 않아도 되고, 오지도 않는 잠을 일부러 자는 것처럼 꾸밀 것도 없고, 허공에다 공허하게 눈을 붙들어 매지 않아도 되고, 신문이나 책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도토리머리들의 조잘대는 소리나 지껄한 중년의 이동전화 거는 잡음이나 동영상을 찍고 있는 UCC 따위들을 염두에 둘 필요도 없다.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아도 그것들은 저절로 들리고 보여진다. 아니 그들이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으니 더 다행이다. 불필요하게 신경전을 피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아내와 해비와 그 하얀 눈초리는 도무지 잊을 수가 없다. 아무리 도토리머리와 지껄한 중년과 UCC들이 시선을 붙잡아매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잊. 혀. 지. 지. 않. 는. 다. 순간 움찔하면서 소름이 돋는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전동차가 서자마자 뛰다시피 내렸다. 어딘지도 모르는 역이 온통 하얗다. 선로 옆에 있는 기둥에 기대어 한 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사람들이 힐끔거린다. 그래도 그 하얀 눈초리는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다시 전동차에 올라탔다. 아직 집에 들어갈 시간은 안됐지만 힘이 부친다. 내 작아진 체구 때문에 그런 것도 같다. 걷는 것조차 힘겨운 나를 발견할수록 나는 그만큼씩 더 작아져 갔다. 아파트 동 앞에 왔을 때 흘끔 내가 살고 있는 층을 올려다보았다. 아내와 해비가 있는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불이 꺼져 있다. 안도감과 함께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막 아파트 현관 입구 쪽 복도에 들어서려는 순간 그 하얀 눈초리가 다시 나를 매몰차게 쏘아붙인다. 헉! 잠시 아파트 현관에 몸을 기댄 채 그 하얀 눈초리를 피하려고 애를 써본다. 그 하얀 빛을 쫓아내려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머리만 어지러울 뿐 그 하얀 빛은 이미 내 머릿속에 어지럽게 박혀 있다. 다시 집밖으로 나오려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힘겹게 눌렸다.
예전 같으면 아내는 아예 내다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헌데 그날은 거실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두커니 아내가 나를 향해 앉아 있었다. 아무 말이 없다. 또 하얀 빛이 내 머리를 어지럽게 흔들며 쏘아붙인다. 도저히 어쩌지 못하고 머리를 쥐고는 세차게 흔들면서 허리를 굽혔다. 다시 일어서려는데 그 하얀 빛과 함께 전에도 맡아보았던 그 섬뜩하고 비릿한 기운이 나에게로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윽! 격한 헛구역질을 하고 돌아섰을 때 아내는 내 옆에서 나의 목을 죄고 있었다. 껄쭉하고 축축한 물질이 내 목을 타고 가슴으로 흘렀다. 소스라치게 놀라 아내를 사정없이 밀치며 거실의 전등스위치를 올렸다. 악! 아내는 시뻘건 손으로 나를 향해 재차 달려들었다. 머리는 이미 매만질 수조차 없이 뒤엉켜 있었고 하반신은 온톤 검붉은 피로 뒤덮여 옷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왜이래?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내 인생 책임져! 내 인생말야! 아내는 더욱 내 목을 죄고 달려들었다. 다행히 해비는 짖지 않았다. 숨이 막혀가면서도 해비가 짖지 않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내는 내가 잠이 깨기 전부터 진공청소기를 틀더니 며칠 뒤 다시 집을 나갔다. 내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아내의 진공청소기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였다. 그날따라 진공청소기는 수명을 다한 것처럼 쿨럭 대질 않았다. 거실 구석에 아내가 늘 그랬던 것처럼 세워져 있었다. 나는 아내가 늦잠을 자는 가 싶었다. 건너 방으로 가보았다.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세탁기 있는 쪽으로 가보았다. 보이지 않는다. 건넛방 옆에 붙은 화장실로 가보았다. 역시 보이질 않는다. 그제야 아내의 가방이며 이동전화며 아내가 평소 자주 이용하던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헉! 얼굴을 감싸 안으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장모한테 전화를 걸었다. 왜 그러나? 집에 안 왔는데. 장모는 버럭 화부터 낸다. 모든 게 나 때문이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눈치다. 장모가 화를 내고 있는데도 나는 전화를 끊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 중에 하나가 장모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장모가 아내와 한통속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아내가 해비에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서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장모에게 전화를 했었다. 집사람이 너무 심한 것 같다고. 큰 기대는 안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지 싶어서였다. 하지만 장모는 “자네가 잘 해봐 이 사람아! 그 애가 왜 저러는지 자네는 모르나? 그나저나 자네 왜 그 모양인가? 취직은 아예 안 할 생각인가? 어떡할 거야? 내 딸 책임지게, 책임져!” 볼멘소리만 해댔다.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은 ‘책임지라’는 그 말 때문이었다. 그 뒤로는 아예 장모한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고 나만 더 비참해진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그런 생각에 미쳐서는 장모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아내 찾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 일이 이미 아파트 전체에 다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장모가 편치 않다는 전화를 받았다. 화병이었다. 내가 이러고 있는데 화병이 안날 장모가 아니었다. 장모는 유난히 아내를 챙겼다. 5남매에 둘째인 아내는 어려서부터 순했다고 했다. 너무 무덤덤해서 그냥 놔두더라도 잘 클 것 같았다. 가게를 하는 장인 장모는 일도 바쁜데다 잘 보채는 첫째 아이만 챙기기도 벅찼다. 그래서 아내는 장모의 친정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큰 불행이었다. 그 뒤로도 동생들이 계속해서 태어나는 바람에 아내는 계속해서 외할머니 손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순하거나 무덤덤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민감했다. 그런데도 생존하기 위해 영악하게도 그것을 전혀 표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 번은 아이가 까무러친 뒤에야 병원에 실려 갔다. 의사는 아이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경고까지 했다. 그런 뒤부터는 장모는 미안했는지 아내를 다른 자식들보다 더 챙겼다. 그런 자식이 나와 결혼을 해서 고생을 하니 장모는 이미 여러 번 화병이 났던 터였다. 그날도 장모에게 다른 병이 생긴 것처럼 동생들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나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속셈이었다. 아내는 해비 때문에 망설였다. 하지만 자꾸 동생들이 전화를 하자 옆집에 해비를 맡기고는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비웠다. 나는 또 혼자였지만 아내와 해비가 보이지 않는다는 안도감 때문에 더욱 전동차에 매달릴 수 있었다. 아내는 내가 지하철 전동차를 타는 것에 대해 전혀 말이 없었다. 아니, 내가 아내에게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날마다 전동차를 타는 것을 알면 아내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 몰라서였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내의 진공청소기에 들어가지 않는 횟수만큼 내가 전동차에 오르는 시간은 늘어났다. 그날도 나는 전동차에서 거의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내가 정한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가기 위해 전동차에서 내렸다. 늘 하던 대로 내가 살고 있는 층수를 흘끔댔다. 거실에 불이 켜져 있다. 아내가 돌아온 모양이다. 내가 거실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이미 해비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못 나누었던 정을 한꺼번에 쏟을 모양이었다. 나를 본 아내는 그 예의 하얀 눈초리로 나를 쏘아붙였다. 덩달아 해비도 짖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하루는 저물었고 새벽에 아내가 진공청소기를 돌릴 때쯤 잠에서 깰 것이었다.
나는 밤새 그 하얀 눈초리에 시달리면서 눈을 떴다. 창밖으로 하얀 빛들이 사정없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눈이 부셔 아무 것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한 참 후에야 이불 밖으로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이미 밖은 하얗게 새 있었다. 이상했다. 아내의 진공청소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해비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아니 밥을 먹는다기 보다는 해비에게 아이처럼 정성스럽게 밥을 먹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식탁도 해배에게 맞게 갈아치워 버렸다. 전에 있던 식탁은 애써 딱지값까지 지불하면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버렸다. 그런 생각에 미쳐서야 해비 때문에 진공청소기를 돌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아파트를 나왔다. 무척 줄어든 체구 때문에 발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최상의 공간인 지하철 전동차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밖은 이미 점심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너무 늦게 나와서 인지 도리어 사람들이 전동차에 많았다. 여전히 그들은 조잘댔고 지껄한 소음을 냈고 UCC를 찍어댔다. 그들에게 벗어나게 된 것은 8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대개 이 시간은 내가 아파트로 돌아오는 때였다. 나는 전처럼 내가 살고 있는 층을 흘끔 거리며 아파트 입구를 들어섰다. 전에 없이 경비실이 부산하다. 의아에 하는 나에게 경비실 아저씨가 종이 한 장을 건넨다. 거기에는 개 주인을 찾는다는 글과 함께 참혹하게 죽은 개 사진이 실려 있었다. 배가 갈려 창자가 뒤엉킨 그 사진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윽! 또 헛구역질이 났다. 경비원은 묻지도 않는 나에게 퉁명스럽게 사건에 대해 늘어놓았다. 오늘 오후 5시쯤에 우리 동 화단에 이 개가 떨어져 있지 뭐요. 누군지 참! 내 평생 이렇게 참혹스런 것은 처음이우. 이런 인간은 저 개처럼 당해야 봐야 한다니까. 나 참 기가 막혀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아파트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게 아내의 손으로 저질러진 일이었다는 것을 나는 거실에 들어와서야 알게 되었다. 아내가 걸쭉한 손으로 내 목을 죄어 올 때, 그리고 해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내가 해비와 헤어진 시간은 불과 3일도 채 되질 않았다. 근데 그 3일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사건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내가 해비를 이웃집에 맡기고 장모 문병을 간 것이 화근이었다. 이웃집에는 해비 또래의 시추가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가끔 이웃집에 가서 강아지에 대해 이것저것 조언을 들고 왔었다. 그런데 아내는 해비가 암컷이었던 것과 암컷 강아지를 아파트에서 키우려면 불임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깜박 잊었던 모양이었다. 아내가 해비를 이웃집에 맡길 당시 하필이면 해비가 발정이 났을 때였고 더욱이나 이웃집 개는 수캐였다. 그런 사실은 이웃집 사람도 몰랐었다. 해비에게서 이상한 징후를 알아차린 아내는 그길로 애견센터로 달려갔다. 축하합니다. 해비가 아기를 가졌네요. 애견센터 수의사의 말을 들은 아내는 기겁을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해비를 내동댕이쳤다. 해비는 있는 힘을 다해 짖어대기 시작했고 아내는 그런 해비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그리고서는 그 일을 시작했다. 해비의 배를 가르고 자궁을 들춰……
그것은 거실에 매달아 놓은 CCTV에 고스란히 얹혀 있었다. 해비가 노는 모습을 담기 위해 아내는 디지털 카메라에 캠코더까지 사들였다. 그렇게 해서도 잡지 못하는 것을 담기 위해 CCTV까지 설치했었다. 그것은 내가 해비를 어쩔까봐 서둘러 장만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아내가 남긴 CCTV 필름을 보면서 한없이 구역질을 했다. 이미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구역질을 해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밖이 하얗게 밝아 있었다.
그날도 나는 지하철 전동차를 타러 판암역으로 내달렸다. 아내의 CCTV 필름에서 겨우 빠져 나와서 그런지 속이 메스껍고 숨도 가빠왔다. 체중도 나를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힘에 부쳤다. 아내의 진공청소기를 빠져 나올 때마다 점점 주는 체중이 이제는 눈에 띄게 부쩍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줄줄은 전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내의 진공청소기에 몇 번씩 흡입되어서도 나는 내 몸이 줄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뒤부터는 내가 봐도 내 몸이 무쩍 줄어 있었다.
오늘 따라 지하철역은 더욱 한산했다. 시간이 10시 반을 지나고 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30분 정도 일찍 나온 것 같았다. 토큰을 받기 위해 직원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직원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기 있다고 손까지 흔들어보였지만 직원의 반응은 전혀 없었다. 나는 소리도 질러 보았다. 하지만 직원은 여전히 본체 만체다. 몇 번 더 소리를 내다 그만 두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이미 그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
나는 오늘만 벌써 열한 번째 전동차를 탄다. 전동차를 옮겨 탈 때면 매 번 장소를 바꾼다. 같은 역에서 타고 내리기를 반복할 때 살지도 모를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다. 아내의 진공청소기와 달리 전동차 안은 너무나 단조롭다. 조잘대는 도토리머리들, UCC 그룹, 이동전화에 꽂힌 얼굴들, 마지못해 읽을거리에 붙잡혀 있는 시선들을 빼면 허공에 떠 있는 것은 눈동자들뿐이다. 공허한 눈동자의 움직임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들은 전동차 초자다.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시선의 공백은 그들의 집이 여기가 아니거나 적어도 전동차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내공이 쌓인 자들은 눈동자에 초점조차 찾기 어렵다. 응시하는 대상이 없어도 시선은 늘 고정적이다. 내부 간격이 유달리 좁은 전동차 안에서의 내공꾼들의 시선은 교묘히도 붙박여 있다. 그런데도 그들 시야에서 나는 찾을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의 발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작아져 있어서다. 그들은 절대 발밑을 조심하지 않는다. 다리 아래도 자신의 신체 일부라는 것을 잊은 것 같다. 사정없이 다리를 꼬는 바람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것에 채이게 되면 나의 존재는 너무도 무의미하게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전동차를 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숨이 막힌다. 숨이 막. 힌. 다. 나는 이제 아내의 진공청소기 밖에 나를 감싸줄 공간이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숨이 또 막. 힌. 다.
나는 다시 먼지봉투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아내의 하얀 눈초리를 지울 수가 없다. 먼지봉투에 흡입되면서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내의 그 하얀 눈초리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먼지봉투의 부드러움보다도 빨려 들어가는 고통이 훨씬 더 컸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고통 따윈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진공청소기 안은 여전히 넓다. 그 많은 시간을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먼지봉투에는 나와 많은 공간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전처럼 포근하지 않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전에는 몸이 비틀리고 뒤틀려서 어지럽고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어도 불편하지는 않았었다. 헌데 지금은 어지럽거나 구역질이 나오질 않는데도 좀처럼 포근하지가 않다. 왜……? 그럴까. 그런데 아까부터 물컹한 것이 자꾸 내 곁을 채우고 들어온다. 이 공간에서는 내가 제일 부피가 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믿기지 않게 내 주위는 그 물컹한 물체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내의 눈초리를 피하면서 얼른 그것을 바라다보았다. 악! 눈이 움푹 파인 해비의 사체가 내 옆을 교묘히 밀치고 들어오고 있었다. 아내의 진공청소기는 더욱 악악대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나와 해피는 점점 밀착되어 갔다. 아내의 진공청소기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나와 해피는 계속 밀착 되어 갈지 모른다. 이유 없는 한 숨이 길게 나왔다. 해비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늘 나만 보면 짖던 녀석이 오늘은 유난히 낯을 가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나와 점점 밀착되어 가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니 도대체 녀석의 속을 알 수가 없다.
이제 아내의 진공청소기를 꺼줄 사람은 없다. 먼지봉투를 비워줄 사람도 없다. 아내는 이미 내 집 사람이 아니다. 진공청소기가 스스로 수명을 다하거나 저절로 전기가 나갈 때까지 나는 해비와 이 먼지봉투 안에서 밀착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