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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형제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심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아버지시요 모든 인간은 형제'라는 가르침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요점은 혈과 육을 지닌 우리 모든 사람이 양과 염소 오른편과 왼편,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거룩하게 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로 구분되고 나뉜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지금 곤경에 빠져 사방에서 필요한 해답을 찾지만 찾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나한테 기독교회가 과연 해줄 말이 있을지 의문이에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아야 할 사실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해답이시요 여러분의 형제시요. 여러분에게 필요한 전부십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는 이런 분입니까?
성경은 이 점을 아주 명확히 밝히며, 매번 사람들을 구분합니다. 주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큰 무리를 가르치고 계시는데, 사람들이 찾아와 잠깐만요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기다리는데요"라고 알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49-50). 모든 사람이 아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주님의 형제라는 것입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세상을 향해 '그
리스도는 내 형제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 큰 잘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 임금으로서 보좌에 앉아 모든 민족을 오른편과 왼편으로 나누시며 양과 염소로 구분하겠다고 하시면서 언급하신 종말론적인 말씀도 들어 보십시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한 자들만 형제라고 부르시며, 그들에게 한 일이 곧 자신에게 한일이라고 하십니다. 부활 이후에 사용하신 단어들도 살펴보십시오 "예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 놀라 주님을 붙든 마리아에게 이르시되 나를 분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요 20:17). 주님이 어떻게 단어들을 연결하시는지 주목해서 보십시오. "내 형제들에게 가서"라고 말씀하신 후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라고 하십니다. 그는 우리와 하나이시면서도 영원히 구별되시는 분입니다.
복음 메시지는 그가 '형제"라고 부르시는 이 특정한 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 호칭을 들으려면 일정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일정한 조건에 부합해야 복음의 놀라운 약속을 적용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든 필요의 해답과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이처럼 주님이 자신을 믿는 자들을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히 2:11).
이세이 진술과 관련된 사실들을 살펴봅시다. 우리를 형제자매라 부르시기 위해 그가 당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이번에도 우리는 가장 위대한 비밀 앞에 서게 됩니다. 이 비밀을 살펴본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딤전 3:16). 이분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이 이 모든 난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분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1-3).
예수는 이런 분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그는 하나님이시요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십니다.
말은 이 일을 묘사하기에 적합지 못한 도구입니다. 이것은 우리 정신과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요 이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진실입니다. 이 진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처럼 영화로우신 분,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신 독생자께서 우리를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기 위해 감수하신 일들이 있습니다. 그 일들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성경 전체의 주제로서 전부 다루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지금은 믿음의 골자만 일깨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분이 자신에게 관심을 쏟고 계신다는 사실만 깨달아도 개인적인 문제는 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개인의 특징 문제는 다루지 않고, 예수만 가리켜 보여드리겠습니다. 예수께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를 바로 알고 예수와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가 당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며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분입니다. 만물이 그를 통해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온 우주와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 분이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으셨습니다. 그는 천사들을 만든 장본인이심을 기억하십시오 천사들은 한때 존재하지 않았던 피조된 대상이요 피조된 영입니다. 그러나 아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한순간도 없는 분, 천사들을 직접 만드신 분, 천사들보다 무한히 크고 뛰어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잠시 동안 그들보다 못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가슴 떨리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천사들을 만드신 장본인이 그들보다 조금 못하게 되셨습니다. 여러분은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기 위해 그렇게 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빌 2:6). 하나님과 동일하시며 성부, 성령과 동등하신 하나님의 본체이심에도 그 높은 이름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 영광을 일부 내려놓으시고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되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더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천사들은 그나마 인간보다 큰 존재입니다. 우리를 '섬기는 영'이기는 하지만,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히 1:14). 주님은 그런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되시는 것도 모자라 우리 인간과 같이 되는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으셨습니다( 롬8:3).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며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현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히 2:14). 이 말씀의 의미만 깨달아도 주님께 이 일이 의미하는 바와 그가 이 일을 하신 이유 및 그 사랑의 결과만 깨달아도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칠 것이요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문제들이 절로 처리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그는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셨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이셨음에도 한낱 인간처럼 땅 위에서 사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가 기도하셔야 했던 이유. 때로 밤을 새우면서까지 기도하셔야 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신적인 속성을 여전히 지니고 계셨지만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신성을 비우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높은 이름은 내려놓으셨습니다. 이것은 한낱 인간처럼 살면서 우리의 연약함- 피곤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는 연약함에 종속되셨다는 뜻입니다.
그뿐 아니라 법 아래로 들어가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갈 4:4).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며 율법을 제정하신 장본인이 인간이 되어 율법에 종속되셨으며, 율법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종의 형체까지 가지셨습니다(빌 2:7). 왕궁이 아닌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심한 가난과 허기와 갈증을 경험하셨으며, 평범한 자들과 어울려 사셨습니다. 그처럼 복되신 분이 이 모든 일을 감수하셨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기 위해 이 모든 일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를 형제자매라 부르시기 위해 인간이 되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2장의 전적인 주장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로삼으시기 위해 혈과 육을 지니셔야 했고, 그래서 혈과 육을 지니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모든 일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요? 왜 거의 묵상하지 않는 것일까요? 왜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주관적 기분과 상태와 형편에만 그토록 몰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신 이 일을 세상은 알 필요가 있습니다(딤전 3:16).
이처럼 그가 육신으로 나타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처럼 사신 것입니다. 그는 무력한 아기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며 어린 소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구약 율법을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며, 한 성인이자 목수로서 육체노동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평범한 삶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그는 뜬소문과 질투심과 경쟁심과 시기심에 항상 둘러싸여 지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상과 똑같은 세상에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는 끝까지 우리와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진정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2장 뒷부분에 나오듯이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이 일이 그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 그는 모든 시험 위에 계시며 시험 밖에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복되신 삼위의 제2위께서 사람이 되고 육신이 되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광야에서 40일 밤낮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가 직접 나서서 그를 시험하고 공격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
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7-18). 그가 이처럼 시험을 당하신 것은 우리를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우리의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형제들을 도우시기 위해 이 모든 일을 자청해서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시험을 받으셨고 마귀 안에 있는 모든 악과 지옥의 폭격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고난이 무엇인지도 아십니다.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저와 여러분이 아는 고난 중에 그가 모르시는 것은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죄도 자기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그가 세례 받길 청하셨을 때 세례 요한은 이렇게 만류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그러자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4-15). 그가 이처럼 세례를 받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형제들과 나란히 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형제들을 돕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마치 자신도 죄인인 양 그들과 함께 서셨습니다. 그들과 한자리에 서서 그들의 짐을 지셨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이 모든 일의 의미가 여기 있습니다. 그가 오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형제들을 위해 죽음을 맛보고자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들을 형제자매라 부르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죽음의 고통을 겪고자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가 이 모든 일을 하신 것은 바로 우리를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것으로 구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성전에 있는 그릇은 거룩한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산도 오직 그 목적을 위해 구별된 거룩한 산이었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맥락상 명확히 다른 의미를 지닌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하나님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뜻이며,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악하고 속된 모든 것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바쳐지고 드려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주님은 죽임을 당하신 후 다시 살아나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원 전체 - 칭의와 성화와 영화-를 포괄하는 말입니다. 이 말에는 죄로 가득한 인간의 자식들인 우리를 취하여 하나님을 위해 구별하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되신 예수는 우리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세상에 오신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제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지 못한 채 불행하고 비참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며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케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놓는 이 죄를 제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죽임을 당하셨고 십자가로 나아가셨습니다. 자신을 믿는 백성이자 형제인 우리를 위해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주님은 이 모든 일을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신과 같은 신분과 지위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그와 함께 장차 올 영광의 상속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2은 말합니다. "이 모든 난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민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런데 하브리서 2장은 이 상속자가 우리 형제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상속자와 사이가 돈독한 것은 좋은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가 물려받은 유산을 나누어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유의 상속자가 우리를 형제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의지할 데 없이 약하고 가난한 빈털터리로 느껴집니까? 가진 것 하나 없는 하찮은 존재로 느껴집니까? 여기 여러분에게 주는 대답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거룩해지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이라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는 만유의 상속자십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왜 우리 것일까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3:21,23)
이 모든 사실이 알려 주는 바는 주님이 우리에게 큰 관심을 쏟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니라 하셨으니'(히 2:12-13). 천사들에게 하신 이 말씀의 요지는 "이들은 내 형제들이다. 내게 속한 내 특별한 백성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특별한 관심대상입니다. 절대 외롭다거나 버림받았다거나 의지할 데 없다고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이제껏 설명한 모든 일을 당하신 것은 바로 여러분과 하나가 되시기 위함이며 여러분을 형제 자매라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그가 우리를 동정하신다는 사실도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같이 되심이 마땅하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상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7-18) 어떤 이는 말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시험을 주님이 아실 리가 없어요. 마귀의 공격이 어찌나 심한지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 지조차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그 시험도 아십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겪는 주님이 겪으신 일에는 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최악의 죄를 경험하셨습니다. 죄로 물든 인간의 증오와 원한과 앙심을 목도하셨습니다. 그는 보는 시험 아십니다
가슴을 찢는 온갖 고통
그 슬픔의 사람 당하셨네
우리의 큰 슬픔 함께하며
고통받는 자에게 안식을 주시네.
"전에는 땅에 계셨지만 지금은 영광스러운 곳으로 돌아가셨으니 땅의 삶을 아실 리가 없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아십니다!
우리 고통의 동반자
지금도 우리 아픔 느끼시며,
친히 흘리셨던 눈물과 번민과 외침
하늘에서 기억하고 계시네.
-마이클 브루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히 4:15).
주님은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신 분입니다. 형제자매를 동정하시는 이 복되신 구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가 능히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도움, 곧 "때를 따라 돕는 은혜도 살펴보기 바랍니다(히 4:16). 그는 모든 시험을 겪으셨고, 모든 시험의 의미를 아십니다. 그의 손발에는 여전히 못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동시에 죽임당한 어린양이십니다.
그가 마귀를 정복하셨다는 사실도 기억하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점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시험하는 마귀를 패배시키셨고, 죽음과 부활로 패배시키셨습니다. 이 주님이 항상 살아계시면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도 간구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항상 간구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7장에서 이 점을 충분히 논증하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의 놀라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너희가 지금 회귀하고 싶어 하는 이 땅의 제사장들은 죽게 되어 있고, 그러면 또 새 제사장을 세워야 한다. 이처럼 그들은 왔다가 사라지지만, 예수는 영원한 제사장으로 영영히 계신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이 모든 일의 영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위대한 중보자요 대언자로서 하나님의 영광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늘 천군 앞에서 우리를 가리키시며 "이는 내 형제라"라고 말씀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그가 저와 여러분의 미약한 기도에 자기 영광의 향을 더하여 아버지께 올리고 계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든 시험과 환난을 겪고 마침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는 계속 이 일을 하실 것이며, 마침내 '그[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것입니다(유 24절). 이언마나 큰 위안입니까!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는 우리와 확연히 다른 분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세상에는 자기 친척과 가족을 부끄러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인생에서 성공을 거둔 후 가난한 부모의 억양을 부끄러워하며 그들의 자식이 아닌 척 위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 세계를 지으신 만유의 상속자"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분.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신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히 1:2-3).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입니다. 천군이 그를 찬양하며 성부와 성자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형제자매라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이 진리를 깨달으십시오. 이 진리를 따라 행하십시오. 그의 임재 안에 들어가십시오. 그를 통해,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여러분의 기업으로 받은 땅에 들어가십시오(히12:2). 넉넉히 이김으로 기쁨이 넘치는 자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