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 사
왕립 태국군의 역사에 따르면, "타한 마린"(Thahan Ma-Rine: 마린 군인)은 1833년 라마 3세 국왕의 재위 시에 창설됐다. "마린"은 영어 단어 "머린"(Marine)의 직역이었다. 태국 해병대의 발전과정은 3기로 구분된다.
1.1. 초창기
"해병대" 혹은 "마린 군인들"은 초창기에 "왕실근위대"(Royal Honor Guard) 역할을 하여, 국왕의 경호를 맡아 전국을 순회했다. 하지만 1913년 3월 2일 "해군부"(Ministry of the Navy)는 해병대를 다음과 같이 구성했다.
- "마린 규정군"(Marine Canon Platoon)을 "함선 및 요새 작전사령부"(Operation Command Department of Ships and Fortresses)로 배속한다.
- 방콕에 주둔 중인 "마린 군인 보병소대"(Marine Soldiers Infantry Platoon)는 "해군 수륙양용 공격병력부"(Department of the Navy Amphibious Assault Group) 예하의 "기동사단"(Vehicle Division)으로 이동시켜 배속한다. |
따라서 마린 군대를 포괄하게 된 "기동사단"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태국의 절대왕정을 붕괴시키고 입헌체제를 시작시킨 "1932년 혁명"이 발생하자, 해군 역시 새롭게 조직을 개편했다. 이러한 개편의 일환으로, "기동대대"가 "방콕 해군청"(Bangkok Navy Station) 산하의 "해병대대"(Marine Corps Battalion)로 개편되었다. 이 "해병대대"가 바로 태국 해병대 최초의 부대로 간주되고 있다.
1.2. 혁명 후 시대 : 1932-1955
1937년에는 "제2 해병대대"(The 2nd Marine Corps Battalion)가 사따힙(Sattahip)에서 창설됐다. 이 부대는 1939년 사따힙에 설치된 "해병대부"(Marine Corps Department)의 주력 부대가 되도록 했다.
1940년까지 태국의 동쪽 국경에서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국경분쟁이 있었기 때문에, "해병대부"의 "짠타부리 주둔 사단"(Chanthaburi Division)이 오늘날의 캄보디아 국경선을 따라가며 몇차례 전투를 치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해병대는 촌부리(Chonburi) 도를 근거지로 싸우면서, 태국 남부의 "말라유 공국 지역"(Malayu State Region) 및 푸켓(Phuket) 지역 방어를 위해 병력을 파견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해병대는 라차부리(Ratchaburi) 도의 반뽕(Ban Pong, บ้านโป่ง) 군에서 일본군 병력의 무장해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1950년에는 태국 남부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하여, "해병대 제6병단"(Marine Corps Troop 6)이 파견되어 나라티왓(Narathiwat) 도의 질서회복을 지원하기도 했다.
1951년 6월 29일, 태국 정부는 "해병국"(Marine Corps Bureau)을 폐쇄시키고 이후 4년간 해병 병력들을 여러 부서들로 분산 배속시켰다.(역주) 하지만 이 시기는 서구 민주주의 진영과 동구 공산주의 진영 사이에 냉전체제가 형성되어 더욱 심각한 우려를 형성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해병대는 운이 좋게도 미군 및 "왕립 태국해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역주) 1951년 6월 29일에, 당시 정권을 잡고있던 쁠랙 피분송크람(Plaek Pibulsonggram) 총리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3번째 쿠테타 시도이자, 해군에 의한 2번째 음모가 있었다. 피분송크람 총리는 "USS 맨하탄"(USS Manhattan) 호에서 개최된 함상 행사에 참여했는데, 여기서 해군이 그를 볼모로 잡고 육군과의 교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피분송크람이 간신히 헤엄쳐 도망나오면서 쿠테타는 실패로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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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ORY YENTER / MARINE CORPS TIMES) 2009년 2월 태국에서 진행된 연례 합동훈련인 "코브라 골드"(Cobra Gold) 훈련에참가한 미 해병대 병력(좌측)과 태국 해병대 병력(우측)이 상륙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
1.3. 새로운 시대 : 1955-현재
냉전체제가 무르익으면서, 태국 정부와 해군에서는 해병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1955년 7월 30일에 다시금 "해병부"(Marine Corps Department)를 창설하여 해병대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1961년, 캄보디아 국경에 위치한 "쁘레아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에서 긴장이 고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짠타부리 도와 땃(Trat, 뜨랏) 도의 국경 관할이 해병대에 대한 첫번째 임무로 할당됐다. 태국 해병대의 "짠타부리-땃 태스크포스 팀"(Chanthaburi-Trat Task Force)은 1970년부터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을 공식적으로 관할하게 되었다.
1972-1973년 사이의 해병대는 대 공산반군 작전에 참가하여, 페차분(Phetchabun) 도에서 진행된 "삼차이"(Sam-Chai) 작전과 치앙라이(Chiang Rai) 도에서 진행된 "파품"(Pha-Phum) 작전에 투입됐다. 그리고 1973-1974년 사이의 반공 작전으로 남부 3개도인 빳따니(Pattani), 얄라(Yala), 나라티왓 도 작전들에도 참가했다. 1975년 해병대는 나라티왓 도에서 남부지방 공산반군 섬멸을 위한 특수부대를 창설한 이래, 현재까지도 주둔을 하고 있다. 1977년 해병대는 나콘 시 탐마랏(Nakhon Si Thammarat) 도의 꿍칭(Krung-Ching)에 위치해 있던 공산반군 기지를 탈환하기도 했는데, 이 지역에서는 1981년 철수했다.
"왕립 태국군"은 방콕에서 발생한 여러 폭력시위 및 쿠테타 진압에도 해병대를 투입하곤 했다. 태국 해병대는 현재도 짠타부리 도와 땃 도의 국경방어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해병대는 동북부 지방에서 반핫렉(Baan Hard Lek), 반꼬앗사이(Baan Koat Sai), 반뇽꼭(Baan Nhong Kok), 반까둑창(Baan Kradook Chang), 반춤락(Baan Chumrark) 전투들과, 역시 동북부 나콘파놈(Nakhon Phanom) 도의 핫돈나이(Hard Don Nai) 전투에도 참전한 바 있다.
태국 해병대 병력은 과거 많은 수의 전사자들을 배출했고, 오늘날에도 적극적인 작전참여로 인해 죽거나 부상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극도의 희생은 후배 해병대원들 사이에서는 영웅적 행위로 칭송되며 기려지고 있기도 하다. 사따힙에는 태국 왕립 해병대의 충혼탑(위령비)이 서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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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uan D. Alfonso) 미군 및 동남아 각국들의 합동훈련인 "2007 CARAT 훈련"에 참가한 왕립 태국 해병대 소속 특수부대원들이 촌부리 도의 핫야오(Had Yao) 해변에서 상륙 침투작전 훈련을 수행하고 있다. |
2. 태국 왕립 해병대의 조직
RTMC 사단본부
총 6개 해병대대로 구성된 2개 보병여단 : 제1 여단 및 제2 여단
1개 방공포 연대
1개 기습공격대대
1개 정찰수색대대 : 1965년 창설되어 wardogs 및 V-150 장갑차 보유. |
3. 태국 해병대의 전투장비
훈련을 받고 있는 태국 해병대 병사들.
(사진: Jetjaras na Ranong/Bangkok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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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후라이"('Fried Eggs): 뜨거워진 함상 갑판에서 아침식사를 기다리는 훈련 중인 태국 해병대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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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상륙작전을 빌미로 또 완력 좀 다져놓고
웨이트트레이닝 해뒀다가
붉은 역적놈들 시위대가 덤비면
또 대갈빡에 총알을 몇발 박아주려고
애국심과 충정을 갖고 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어찌 동북아 어느 나라의 모 군대소속 마린들이랑
사고의 구조가 매우 유사할듯한데...
그 점에서는
이 친구들이 더 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 ^
위의 본문 문장들이 정제가 되어 있어서 그렇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양민학살(?) 경험이 좀 있는 군대라고 보이고
실전경험은 현재까지도 계속 지속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태국 해병대를 공부하면서
오히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캄보디아-태국 영토분쟁과 관련하여
어떤 긴장이 발생할 경우
태국측의 가능한 군사적 대응 방안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일 겁니다..
캄보디아 국경쪽 태국 해병대의 배치상황을 보면
캄보디아 육군의 제5군구(사령부: 밧덤벙)와
대치 전선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네요..
캄보디아의 경우 쁘레아위히어 사원 쪽은
총사령부 예하 제3사단하고...
안롱 웨잉(=태국: 청쩜) 쪽은
시엠립에 사령부가 있는 제4군구가 관여하는데..
이 쪽, 즉 태국의 땃 도나 짠타부리 도 쪽은
확실히 태국으로서도 더욱 정예 병력(해병대)이 막고 있어서
훈센 총리로서도
이쪽에서는 함부로 깝죽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만요..
그리고 해병대가 역시
말레이사아 국경 쪽과 남부 지방에서도
주둔을 하는구만요...
오히려 장기적인 전략적 고찰은
이런 점이 더 중요할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