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③
* 신라 말(진성여왕 대)의 농민 반란
9세기 말 신라 진성 여왕(887~897) 때에는 사회 전반에 걸쳐 모순이 증폭되었다. 중앙 정부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졌으며, 지방의 조세 납부 거부로 국가 재정도 바닥이 드러났다. 그리하여 한층 더 강압적으로 조세를 징수하자, 마침내 각지에서 농민들이 봉기하였다. 상주에서 일어난 원종과 애노의 난(889년)을 시작으로 농민의 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①, ④ 무신정변(1170)으로 고려 전기의 신분 제도가 동요되어 하층민에서 권력층이 된 자가 많았다(예: 이의민). 한편, 무신들 간의 대립과 지배 체제의 붕괴로 백성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었으며, 무신들의 농장 확대로 인하여 수탈이 강화되었다. 가혹한 수탈을 견디지 못한 백성은 종래의 소극적 저항에서 벗어나 대규모의 봉기를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공주 명학소에서는 무거운 조세 부담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망이, 망소이 형제를 중심으로 봉기하였다(1176). 이들은 한때 충청도 일대를 점령했으며, 개경까지 공격하려고 하였다. 주현군의 병사인 죽동이 중심이 되고 여기에 관노 및 지역의 주민이 가세해 일어나 항쟁한 전주 관노의 난(1182)이 있었고, 경주 주변 지역인 운문(청도), 초전(울산)에서는 김사미와 효심이 신라 부흥 운동을 부르짖으며 봉기하였다(1193).
최충헌(1196~1219)이 정권을 장악한 뒤에는 회유와 탄압으로 약간 수그러들었다가 만적 등 천민의 신분 해방 운동이 다시 발생하였다. 만적은 사람이면 누구나 공경대부가 될 수 있다고(王侯將相 寧有種乎: 왕후장상이 어찌 따로 씨앗이 있겠느냐?) 주장하며 신분 차별에 항거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1198).
② 조선 중기 16세기 수취 체제의 문란으로 농민 생활이 악화되자 각 지방에서 유민이 증가하였다. 유민 중 일부는 도적이 되어 양반과 중앙 정부로 바치는 물품을 빼앗기도 하였으며, 이들이 도성에까지 출현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 명종 때 황해도(구월산)와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한 백정 출신의 임꺽정(1562년 처형)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