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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게시판 스크랩 이승철 vs 김태원
Michael 추천 0 조회 516 09.06.16 21: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Special | 록밴드 '부활'의 명콤비, 김태원 vs. 이승철_ 글 : 권오경 (음악인) / 구성 : 네이버 뮤직

부활의 김태원은 요즘 '예능 늦둥이'로 불린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면서 '국민 약골' 이윤석보다 부실한 체력, '응~?'을 반복하는 독특한 화법으로 안방에 웃음을 선사한다. 80년대 중반의 김태원을 떠올리면 엄청난 변화다. 기타 좀 잡아보고, 머리 좀 길러봤다는 이들에게 그는 손을 뻗어도 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존재였다. 요즘 TV에서 "난 로커야" 혹은 "난 음악 하는 사람이니까"라고 얘기하는 것이 절대 허풍이 아니라는 뜻이다.

시나위, 백두산 등의 그룹과 함께 부활은 우리 록의 중심에 있었고, 그 부활의 중심에 김태원이 있었다. 또 부활엔 보컬 이승철이 있었다. 김태원과 이승철은 부활이라는 이름 아래 서정적이면서도 록의 기본에 충실한 음악을 선보이며 록의 ‘부활’을 일으킨 주인공들이었다. 현재 시점에선 '김태원 vs. 이승철'이지만, 과거 둘 사이엔 '+'라는 기호가 들어있었다. 부활 시절의 김태원과 이승철, 부활 이후의 김태원과 이승철을 조명해본다.

Round .1 | 김태원과 이승철의 만남

두 뮤지션의 만남, 우연이 아닌 숙명.
부활의 첫 보컬이었던 김종서가 탈퇴한 뒤, 김태원은 팀 색깔에 맞는 새로운 보컬을 찾고 있었다. 당시 고교 스쿨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승철은 이 소식을 듣고 부활의 연습실을 찾는다. 음악 하는 이들 사이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팀이었기에 이승철은 당장 싱어로서 활동은 하진 못했지만, 심부름을 하면서도 연습실을 꾸준히 들락날락거렸다. 김태원은 이승철에게 "마땅한 보컬 좀 찾아보라"고까지 말했다니 처음엔 멤버로서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듯 싶다.

 

어느 날 우연히 매니저가 이승철에게 오디션 기회를 주게 되고, 그는 드디어 부활의 새 보컬이 된다.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승철에 따르면 신해철은 당시 부활 팬클럽의 부회장이었다고 한다. 서정적이고 대중적인 록을 추구하던 김태원과 감미로움과 에너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던 이승철은 만남과 동시에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986년 '희야'가 들어있는 부활 정규 1집을 발매한다. 부활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Round .2 | 김태원의 기타 vs 이승철의 보이스

거침과 부드러움의 상충 속에서 태어난 음악들
김태원은 신대철, 김도균과 함께 80년대 중후반, 국내 3대 록 기타리스트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의 기타는 뛰어난 속주 테크닉뿐 아니라 가슴 후벼 파는 감성으로도 유명했다. '희야' 인트로의 종소리를 따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중고생들이 기타를 두드렸던가. 서정성 짙은 록을 추구한 까닭에 그의 오리지널 가운데는 팝 지향적인 곡들도 있었지만, 1?2집 시절 그의 기타는 하드록이나 헤비메탈 성향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이승철의 보이스 컬러는 록에도 어울렸지만, 팝 성향의 곡들에 보다 어울렸다. 기타를 치면서 간혹 마이크를 잡았던 김태원은 이승철과는 다른 거친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부활의 1?2집은 김태원의 기타와 거친 목소리, 이승철의 감미로운 보이스가 서로 상충되면서 탄생한 앨범들이다.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았기에 부활만의 고유한 사운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멜로디, 다양하게 변하는 리듬! 이승철은 소녀 팬들을 거느리기 시작했고, 김태원은 남성 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Round .3 | 이승철의 부활 vs 포스트 이승철의 부활

대중과 음악 사이에서 고민했던 시간들
20년 넘게 활동한 부활은 보컬의 교체가 잦은 밴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승철 이후 김재기, 박완규, 이성욱 등의 싱어들이 부활을 거쳐 갔으며, 현재는 정동하가 마이크를 잡고 있다. 부활의 초기 모습부터 함께 했던 팬이라면 이승철이 있었던 부활과 이승철이 떠나고 난 뒤의 부활의 음악을 쉽게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환경의 변화 때문이지 싱어의 교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리더였던 김태원은 1988년 대마초 흡연으로 투옥되면서 오랜 공백기를 갖는다. 이승철은 음악 견해차 등 여러 이유로 이 시기 부활을 떠났다. 그 사이 음악시장에 변화가 일어났다. 김종서는 '대답 없는 너'를, 임재범은 '이 밤이 지나면'을 불렀다. 김태원의 선택도 같았다. '사랑할수록'이 들어있는 3집을 내면서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갔다. 이승철 시절의 부활은 록의 색깔이 더 강했다면, 이승철 이후의 부활은 록을 기반으로 했지만 대중을 안으려는 노력이 읽히는 음악을 지향했다. 하지만 소녀 팬들은 이승철이 있던 시절에 더 많았다.

 

 

Round .4 | 이별 그 후, 김태원 vs 이승철

헤어짐과 재회, 다시 헤어짐의 반복
이승철은 김태원의 투옥, 음악적 견해차 등 여러 이유로 부활을 떠나 솔로 가수의 길을 택한다. 이미 많은 팬을 확보한 상태였고, 가창력을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솔로 가수로서의 미래는 보장된 상태였다. 1989년 '안녕이라고 말하지마'가 실린 1집을 내고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당시 1백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고, 이에 힘입어 바로 1집 Part 2를 냈다. 여전히 그는 최고의 발라드 싱어로 활동하고 있다.

 

김태원은 투옥 이후 꽤 오랜 공백기를 보냈다. 어려움 속에서 1993년 부활 3집을 냈고, '사랑할수록'이 사랑을 얻으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이후 낸 음반들은 마니아들과 평단의 호평을 받지만 'Lonely Night' 등 일부의 곡을 제외하고는 흥행에 썩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다시 대중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이승철과의 재회 때문이었다. 8집에 실린 'Never Ending Story'로 부활이 부활한 것이다. 부활은 몇 안 되는 장수 록 밴드로서 지금도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Album | 부활 2집 [Remember]

어떤 음반이 부활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일까. 부활의 최고 걸작을 두고 꽤 망설였다. 결정은 의외로 간단하게 내릴 수 있었다. 90년대 이후 태어난 팬들이 혹 '예능인'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를 김태원의 진면목을 설명할 수 있는 음반을 선택하자. 2집 [Remember]였다. '회상Ⅰ' '회상Ⅱ' '회상Ⅲ' '천국에서' 등이 들어있는 2집은 혁명적인 음반이었다. 1집보다 가벼워질 부분은 더 가벼워졌고, 무거워질 부분은 더 무거워졌다. 김태원과 이승철 모두 자신의 장점을 찾았다. '회상Ⅱ'나 '천국에서'는 지금 들어도 전율이 느껴지는 곡들이다.

 

 

Album | 이승철 1집 [Part 1], [Part 2]

이승철의 음반 역시 그 가운데 백미를 고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1집 [Part1]과 [Part2]를 선택한 이유는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음악성 뛰어난 곡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승철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첫 음반들인 까닭이기도 하다. 과거 부활 시절의 음악이었던 '슬픈 사슴' '비와 당신의 이야기' '회상Ⅰ' '희야' '마지막 콘서트(회상Ⅲ)' 등의 곡들뿐 아니라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잠도 오지 않는 밤에' '마지막 콘서트' '사랑하고 싶어' '떠나야할 땐' '소녀시대' 등 새로운 곡들을 모두 히트시켰다. 세련된 편곡과 화려한 세션이 곁들여진 음악은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Epilogue | 두 뮤지션의 재회를 기다리며

김태원 + 이승철
부활 1집이 나온 지 20년이 넘게 흘렀다. KBS '남자의 자격'과 '샴페인'에 고정 출연 중인 김태원은 지금 줄넘기 한 번 못하는 부실 체력으로, 뜬금없는 대화를 툭 던지는 4차원 정신세계로 대중을 웃기고 있다. 얼마 전 MBC '놀러와'에 그룹 백두산의 유현상과 함께 출연한 적이 있다. 그 날의 테마는 '록의 전설'이 아니라 '기러기 아빠 특집'이었다. 이를 대중과의 타협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김태원이 부활과 함께 걸어온 20여 년의 여정이 너무 헛돼 보인다. 고난의 길을 걸었던 한 로커가 2009년 현재에 적응하고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승철도 마찬가지다. '오래 활동했던 최고의 발라드 가수다'라고만 치부하기엔 이승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너무 아깝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음에도 우리 음악 시장 환경이 낳은 한계 때문에 보다 대중적인 장르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80년대 부활의 음악들에서 보여준 김태원과 이승철의 호흡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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