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는 “삼복 기간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삼복더위에 지치면 갱신하기조차 쉽지 않은 일이니, 입술에 묻은 밥알까지도 무겁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말이겠지요. 초복은 물론 중복, 말복에 이르기까지 복날만 되면 ‘삼계탕’이나 ‘닭백숙’ 집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것도 바로 그러한 까닭에서라고 할 것입니다.
삼복더위가 아니더라도 여름철만 되면 여러 가지 보양식을 찾게 되는 것이 우리네의 여름나기 비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보양식으로는 ‘삼계탕’이나 ‘닭백숙’ 외에도 각종 ‘수육’ 또는 ‘제육볶음’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보양식들의 명칭입니다. ‘삼계탕’만 하더라도 어린 햇닭의 내장을 빼고 인삼이나 대추, 찹쌀 등등을 넣어서 고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닭백숙’은 ‘닭+백숙(白熟)’의 구조를 가진 것으로서 닭을 푹 삶되, 양념을 하지 않고 맹물에 푹 삶아 익히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닭 대신 오리를 삶으면 ‘오리백숙’이 탄생하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수육’이나 ‘제육볶음’이라는 명칭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요? 이 두 가지 음식명은 한자음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합니다. 우선 ‘수육’은 “삶아 내어 물기를 뺀 고기.”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숙(熟)+육(肉)’의 구조에서 선행어 ‘숙’의 말음 ‘ㄱ’이 탈락함으로써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따라서 ‘수육’은 ‘숙육>수육’의 변화를 겪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⑴ㄱ. 식약처가 발표한 외식 영양 성분에 따르면 나트륨이 가장 많이 함유된 음식은 짬뽕, 열량이 가장 높은 음식은 돼지고기 수육으로 조사됐다.
ㄴ. 대전 동구 맛집으로 이름난 이곳에서는 흑염소 수육과 전골, 무침 등을 맛볼 수 있다.
‘수육’이라는 음식명은 한자음의 변화뿐만 아니라 의미 변화까지를 겪은 것이라는 점에서 별도의 언급을 필요로 합니다. 1999년 종이사전으로 간행된《표준국어대사전》에서만 하더라도 ‘수육’은 ‘삶아 익힌 쇠고기’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현재의 전자사전에서는 “삶아 내어 물기를 뺀 고기.”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으니 원래의 의미가 확대되어 고기의 종류를 불문하고 삶아 낸 고기는 모두 ‘수육’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음 문장들에서 쓰이고 있는 ‘수육’이 그러한 언어적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한편, ‘제육볶음’의 ‘제육’은 ‘돼지고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한자어 ‘豬肉(저육)’이 수행한 발음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즉, 17세기 후반에 간행된 문헌인《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 ‘豬肉’이 ‘뎨육’으로 반영되어 있는바, ‘뎨육>졔육(구개음화)>제육(단모음화)’이라는 통시적 변화의 결과 ‘제육’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상을 통해 확인한 바와 같이, 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선택하는 보양식 명칭 가운데는 ‘수육’이나 ‘제육’의 경우처럼 우리말에 유입된 한자음의 변화와 관련된 것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식의 맛도 그 명칭의 어원이나 의미를 정확히 하고 나면 더 선명해질 수 있을 터, 이러한 언어적 사실에 대해서도 잠시 눈길을 주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다만 ‘제육’은 순화 대상이어서 ‘돼지고기’로 쓰자는 움직임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