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하 23장 5절, 시편 119편 116절, 히브리서 6장 17~18절
진실로 나의 왕실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지 아니한가?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고, 만사에 아쉬움 없이 잘 갖추어 주시고 견고하게 하셨으니, 어찌 나의 구원을 이루지 않으시며, 어찌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랴? <사무엘하 23장 5절, 새번역>
약속하신 대로 나를 붙들어주시고 살려주소서. 나의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지 마옵소서. <시편 119편 116절, 공동번역>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약속을 물려받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과 계획이 절대로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나타내 보이시려고, 맹세로써 그 약속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하신 까닭은, 그분께서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사실 곧 하나님께서 발하신 그 약속과 맹세는 결코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그 약속과 맹세에 의지하여 앞에 놓인 구원의 소망을 붙잡으려고, 세상에서 피하여 나온 우리로 하여금 큰 위로와 격려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히브리서 6장 17~18절, 쉬운말성경>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다윗의 삶은 사무엘하 11장으로부터 시작하여 너무도 긴 시간동안 암흑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가정은 붕괴되고, 아들에게 쫓기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인생의 후반전을 겪은 다윗입니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평소 가졌던 다윗에 대한 시선은 어쩌면 사실이 아닌 '환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믿음의 사람, 이스라엘의 영웅, 하나님의 마음에 속한 자 등등의 수식어가 아니라 그저 나와 동일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저 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윗은 자신의 마지막 말을 기록할 때 자신에게 대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한다.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용사, 야곱의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 이스라엘에서 아름다운 시를 읊는 사람이 말한다. <사무엘하 23장 1절, 새번역>
자신을 높이 일으켜 세움을 받은 용사로, 야곱의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으로, 이스라엘에서 아름다운 시를 읊는 사람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가장 먼저 '이새의 아들 다윗'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하나님만으로 만족했던 그 날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소개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어떤 수식어에 빠져 마치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인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다윗 역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너무 큰 기대를 보내다보니 실망감도 컷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그저 이새의 아들 다윗일 뿐이었는데 말입니다.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인생이었습니다. 사울왕과 비교해 보아도 뒤지지 않을만큼 많은 죄악도 저질렀습니다.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다윗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모습을 좀처럼 발견하기가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왜 사울과 다른 삶의 종점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자신의 칼에 쓰러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울과는 다르게 다윗은 어떻게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 수 있었을까요? 자신의 연약함도, 자신의 부족함도, 자신의 죄악조차도, 자신의 모든 부끄러움조차도 다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우리들은 소위 '~답지' 못할 때 스스로 그 자리를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면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죄를 지었다고 신앙인답지 않다고 하며 하나님을 버립니다. 내가 성도답지 못하다고 세상으로 가버립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이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답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하나님을 버리고 교만해졌음을 성경을 통해 충분히 배웠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부족하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죄악을 저질러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결코 떠나거나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입니다. 이래서 다윗이 우리가 그토록 칭찬하는 다윗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나를 붙들어주시고 살려주소서. 나의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지 마옵소서. <시편 119편 116절, 공동번역>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 약속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하나님이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떠날 수 있고, 자신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할 수 있고,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운 한낱 죄인일 뿐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 '다윗을 더욱 다윗되게'하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기적이게도 보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 많은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겨우 그거 밖에 안되는 신앙인이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늘 들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그 약속만, 그 언약만, 그 하나님만 붙들고 있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확실히 붙들게 되는 순간부터는 사람들의 인정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러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이삭이,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있었기에 그들은 지치고 험난했던 인생이란 '순례길'을 기쁨으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때론 쓰러지고 넘어지기도 했었고, 때론 좌절하고 포기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주신 '약속'대로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에 결코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약속을 주신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구원부터 영원한 생명까지 하나님은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미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그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전하여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은 것은, 바로 나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서,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쳐 주었다. 나는 이제 네 이름을,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빛나게 해주겠다. 이제 내가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심어, 그들이 자기의 땅에서 자리잡고 살면서, 다시는 옮겨 다닐 필요가 없도록 하고, 이전과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받는 일도 없도록 하겠다.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 준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사무엘하 7장 8~14절A, 새번역>
다윗이 붙든 이 약속을 통하여 우리는 '메시아'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약속대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날에, 하나님의 때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약속을 물려받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과 계획이 절대로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나타내 보이시려고, 맹세로써 그 약속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하신 까닭은, 그분께서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사실 곧 하나님께서 발하신 그 약속과 맹세는 결코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그 약속과 맹세에 의지하여 앞에 놓인 구원의 소망을 붙잡으려고, 세상에서 피하여 나온 우리로 하여금 큰 위로와 격려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히브리서 6장 17~18절, 쉬운말성경>
이 약속을 붙드는 사람은 '사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안에 등장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바로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Old Testament'라고 영어로 표기합니다. 신약성경은 'New Testament'라고 표기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영어단어 'Testament'는 약속 또는 유언을 뜻하는 영어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전체를 통하여 우리와 약속하신 것입니다. 구약은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신약은 그 메시아가 오셨고 약속대로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으며 승천하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하는 그리스도인 동역자 여러분,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롤러코스터같았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진심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굳게 붙들고, 반드시 이루실 그 날까지 이 믿음을 더욱 굳세게 지켜 나가야 합니다. 흔들릴 수 있고, 쓰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에 쥔 그 약속은 결코 놓치지 마십시오. 버려진 것 같고, 잊혀진 것 같고, 외로움에 치를 떠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다윗에게 그러하셨것처럼, 나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살아 역사 하십니다.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나는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약속해 두신 영생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디도서 1장 2절, 새번역>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그 날까지 '약속'에 대한 소망을 품고 우리는 오늘도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해도, 한없이 부끄러워도, 하나님께 면목없어도, 얼굴이 너무 두꺼워 민망하여도 다윗처럼,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빌립보 감옥에서 빌립보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희망을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바울의 음성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감옥안에서 희망의 메세지를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 역시 다윗처럼 '약속'을 굳게 붙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다윗처럼, 바울처럼,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굳게 붙들며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장 6절,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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