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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총회신학교 신학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총신
변증학
김길성교수
3월19일
개혁신앙과 교회; 41~70 읽기. para 퀴즈
강의안 7p ~ 44p
참조 - 박형룡 박사 전집 11권 변증학, 박아론 박사 “기독교 반증”, 메이천 “제자”
강의안
3p. 변증학이 무엇인가?
I. 변증학 개관
1. 변증학의 정의와 임무
1) 기독교의 진리와 사실을 학술적으로 변호하고 증명하는 학문이다.
2) 변증학과 험증학
변증학 - 기독교의 사실과 진리 증명. 철학적인 측면에 강조 Fundamental Apologetics
험증학 - 기독교의 교리를 증명. 과학적인 측면에 강조 Evidences of Christianity
3) 변증학의 임무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학 전체를 수호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석의신학, 성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플랭크(Y. J. Planck, 1751~1833) - 최초로 변증학을 석의신학과 연결.
슐라이엘마허(F. E. D. Schleiermacher, 1768~1834) - 자유주의의 아버지, 최초로 변증학을 철학적으로 신학에 연결. 칸트의 영향을 받음.
3월26일
2. 변증학의 연구의 역사적 고찰
a) 변증학의 연구의 시작에 대한 질문;
신약성경은 a.d 100년에 이미 다 완성.
칼 바르트 - 현대신학의 아버지. 신정통주의.
불트만 - 양식사학파.
변증학이 신학의 한 부분으로 취급된 것은 18세기 이후이다.
b) 역사적 고찰
예수님은 비유로 변증. 사도바울; 복음의 변증.
초대변증가들 -
순교자 저스틴의 세 논문, 등등 3세기 경에는 터툴리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등
※ 켈수스(Celsus)의 2가지 반박
1. 철학적인 편견 -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교훈은 너무 단순하고 소박해서 진리를 들어내는 것은 좋지 않다.
오리겐의 답변 - 철학자들의 화려한 글 보다도 단순하고 소박한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들어내는 데 훨씬 더 유익하다.
2. 주요변론 - 기독교의 진리를 건드림
예) 성육신반대. 3가지 이유; 하나님을 변화에 굴복시킴. 사람을 부당하게 높임. 사람의 구속, 도덕적 악의 제거는 도달할 수 없는 목적이다.
오리겐의 답변 -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지만, 그는 죄를 범치도 않으셨고 죄를 알지도 모르시는 분이시다. 그가 스스로 낮아졌지만, 복된 상태를 가졌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구속하거나 도덕적인 악을 제거하는데 충분하다.
4월2일
Christian Apologetics
헬.어근 ἀπολογ
1. 변호
2. 공식적 비난에 대한 답변
신약성경에 20회
[눅12:11, 21:14, 행19:33, 22:1, 24:10, 25:6, 26:1, 2, 24 롬1:20, 2:1,15 고전9:3 고후7:11, 12:10 빌1:7,16, 딤후4:16 벧전3:15]
ἀπολογίαν
예수님께서 자신의 메시야되심을 변증 (마22장) “비유의 말씀들; 천국비유, 세금문제, 일곱형제의 아내, 다윗의 시편인용 ‘주께서 내 주께...’”
바울의 사도권변증 (갈1~2장, 고전9장, 행22~26장)
베드로의 권고 (벧전3:15~16) “
※ 변증학의 위치
1. B.B. Warfield의 법칙; 변증학은 다른 신학(주경, 역사, 조직, 실천신학)보다 앞서며, 그것들로부터 독립된 독자적인 것이라고 한다.
Francis R. Beattie, Apologetics, 21~24
2. A. Kuyper, H. Bavinck, 발렌틴 헤프, 루이스 벌코프의 법칙; 변증학은 조직신학자의 작업 뒤에 와야 한다.
A. Kuyper. Encyclopedia of Sacred Theology
참고; 후자가 원칙적으로 옳다고 보는 코넬리우스 반틸 - 변증가가 기독교의 존재와 동시에 기독교의 내용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변증학의 당면과제
1. 특정한 반박에 대답하는 일
2. 기독교 신앙의 근거를 설명하는 것
3. 비기독교 사상 체계에 도전하는 것
4. 진리에로 설득하는 것
※ 방법론 (methodology)
1. 전제주의 또는 “Credo ut intelligam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 특별계시로부터 출발. 특별계시의 우위성; 어거스틴주의자들과 철저한 개혁파의 전통.
a. 세상과 사람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가 인식론적으로 신앙적으로 아주 충분하다는 것.
b. 그에 대한 반대가 불가능하다는 것.
2. 증거주의(험증주의) 또는 역사적 변증학 “ Intelligo et credo 나는 이해하고, 믿는다” - 특별계시를 가정하지 않고서 신앙의 근거를 드러내려고 한다. 자연신학(일반계시)이 변증학의 출발점; 신존재 증명, 기독교계시의 사실을 수립해 보려고 애씀. 토마스주의적 로마 카톨릭 전통과 개혁파 험증주의적 전통, 알미니우스 전통.
a. 종교적 지식을 찾는데 있어서 인간 이성의 능력과 신뢰속에 깊은 신뢰.
b. 신앙을 검증 가능한 사실들에 근거 시키는 노력.
3. 경험주의 또는 “Credo quia absurdum est 불합리하므로 나는 믿는다” - 내면적 종교경험을 신학적 구조의 근거로 여김; 반틸이 말하길 “신현대주의”라 했음. 바르트주의적 전통.
a. 계시를 실존적 만남(encounter)으로 본다.
b. 주관적 종교 경험을 진리의 근거로 본다.
c. 기독교 가르침의 역설적 성격을 강조한다.
우리는 주로 전제주의 방법에 치중을 한다.
4월 9일
강의안 28p ~
제1장 하나님 관념의 기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에 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근거는? 세가지 3대답
C. Hodge; "ST 조직신학"
1. 본유적 (innate idea) - 사전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지식”
그러나 C.H가 말하는 “본유적”이란? 감각적, 합리적 도덕적존재로서 우리 구조에 돌려진 지식. 경험에 의한 지식이 아님. 외부로부터의 교육으로도 아님. ni 연구, ni 추론. 태어날 때 갖고 태어나는 지식도 아니다. 사람의 깊은 내면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깨어나는 그러나 이것 또한 본유적지식이 아니다. 사전적인 철학적인 개념이 아니다. 본유적 지식 = 지식의 근원. 오직 어떤 사물이 참인 것을 증명과 교훈없이도 알도록 정신이 알도록 구성된 것을 의미한다. 예) 우리 어머니가 어머니인 것을 아는 지식.
2. 이성의 연역 - 이성의 추론. C.H는 동의하지 않음.
3. 전통 - 초자연계시를 통해. 41p 찰스하지는 극단적이라고 생각함.
H. Bavinck; "The Doctrine of God"
기독교 신학은 본유 관념을 부인한다. 이유들;
a. 그것은 사람을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분리시켜 합리주의로 인도한다. - 자기것을 계발하면 되기 때문에 계시가 필요없게 된다. 찰스하지의 본유적인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함.
본유적인 것보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해서 먼저 인정한다(Bavinck의 장점).
☞ 하나님의 관념의 기원은 먼저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부터 출발.
☞ 본유적. 32p 사전적 의미만 삭제한다면 사용가능. 하나님의 형상으로 된 사람. 이 말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의미다. 인간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하나님의 계시에 접하게 되면 자연발생적으로 응답할 수 밖에 없는. 칼빈은 모든 인간은 “종교의 씨” 또는 “신의식”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찰스하지는 “본유적”이라고 말함.
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 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 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L. Berkhof;
4월 16일
발표 - Herman Dooyeweerd “복사본 참고” 화란 신학자
도이빌드의 업적;
a. 도이빌드는 그 당시까지 철학을 이루었던 칸트의 철학 “이성철학-학리사상”을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비판했다. 모든 학리사상 그 밑바탕에는 종교성이 있다고 주장.
b. 우주법 개념철학 주장 - 창조된 만물은 신의 법칙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는 개념. 피조계를 15법계로 구분.
도이빌드는 인간을 자아로 마음으로 비물질적인 것으로 표현.
92p 찰스하지의 글
하나님에 관한 지식
1. Incomprehensible, but knowable God - 완해불가하지만 알 수 있는 하나님
2. Innate/Acquired Knowledge - 본유적/획득된 지식
3. General/Special revelation -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100p 반틸의 글
4월 23일
반틸의 발표 - 복사본 참조
Indicative / Imperative -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직설법적인 말은 우리가 “우리의 남은 삶을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된다”는 명령법을 또한 말하고 있다.
반틸이 말하는 전제? point of contact 접촉점 - “칼빈은 말하길 종교의 씨, 신의식이라 한다.” 불신자와 신자사이에는 신의식이 다 있다는 말이다. (롬1:18~20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 셨느니라 ...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기독교의 전제 final(ultimate) reference point 최종 준거점-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 계시다라는 것.
그러나 서양사상 칸트의 철학 밑 바탕에는 - “자기 자신” autonomy가 있다.
4월 30일
C. Van Til 100p(교재)
하나님에 대한 완해 불가... Incomprehensibility of God
≫ 일반계시 - 불신자에게도 주신 계시(롬1장), 피조물가운데에도, 하나님이 만드시 모든 만물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지만... 그러나 부패한 인간은 이 일반계시를 통하여서는 구원에 대한 온전한 지식은 알 수가 없다.
≫ 특별계시 - 롬9:10 ~ 15, 구원에 대한 온전한 지식. 신구약 66권(성경). 히1:1~ “옛적에...여러부분(구약은 3부분; 오경, 선지서, 시가서)... 여러모양... 이 모든 날 마지막에(하나님의 때)...”
반틸의 전제한다라는 말은? -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계시를 전제한다.
반틸의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 - 완전한 구별.
하나님의 지식은 절대적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알수 있게한 해석이다. 반면에 우리의 지식은 파생적이고 유비적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식과 우리의 지식의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사람의 지식은 한계가 있고 하나님은 한계가 없다.
5월 7일
제2장 유신론 45p
“성경을 제쳐놓고 일반계시로만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
7p II 유신론
3. 기독교 유신논증 8p
중세때부터 발전.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로부터 주신 성경외에 일반계시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기독교 유신논증이라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유신논증은 출발부터가 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일반계시의 방법은 3가지로 -
a. 자연을 통해서, b.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c. 역사의 진전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에 기초를 둔 계시를 일반계시라고 한다. 우리의 구원과는 상관없으나 우리가 구원받을때에 핑계할 수 없는 증거가 된다. 또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부패성의 영향으로 일반계시를 통해 구원을 얻을맏한 그런 지식을 가질 수가 없다.
결론 - 유신논증들이 하나님의 증명할 수 없고 그러나 불신자들을 향한 증언으로는 역할을 할 수가 있다.
7가지 논증.
1) 본체론적 논증 - 플라톤의 철학에 영향을 받음
2) 우주론적 논증 -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음. 결과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제일 원인.
3) 목적론적 논증 - 모든 사물에는 목적이 있다. 예) 시계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 여기엔 설계사가 있다. 그렇다면 우주 만물을 만든 설계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증명할 수는 없다.
4) 심미학적 논증
5) 인론적 논증
6) 도덕적 논증 - 칸트의 입장.
7) 역사적 논증
보충 설명 45p 이하 제2장 유신론 찰스하지의 설명
유신논증은 증명으로서 부족하지만, 증언으로서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런 논증들을 일반계시로 출발했기 때문에 특별계시의 도움을 늘 받아야 한다.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다는 존재를 전제함으로 출발한다.
학생들 발표 “메치천”
5월21일
프란시스 어거스트 쉐퍼 4세 발표 ; 전제주의 변증학자이긴 하지만 반틸과는 달리 현실사회를 바라보면서 문화비평가로써 일반학문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답자가 되신다고 주장.
기독교유신논증의 전제들 - 특별계시를 제쳐놓고 일반계시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기독교 유신논증자체가 성경을 제체놓고 일반계시만으로 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하나님을 도달하기에는 이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증명들은 가능성(있을법한)과 개연성의 세계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고 온전한 증거가 될 수 없다. 칸트는 가능한 세계와 불가능한 세계 두 세계를 나누었다.
5월28일
p.1. 변증학 강의 차례
역사적고찰에서는 교리사 책 참고.
“J.N.D Kelly의 교리사, 제베르크의 교리사, 하르낙의 교부신학, Gonzales의 기독교사상사,
(니콘에칼콘콘; 회의들)”
하나님 관념의 기원 - 찰스하지는 “하나님의 지식은 본유적”이라고 했다. 여기서 본유적의미는 사전적의미 보다는 다른 뜻으로 설명했다. 바빙크는 본유적 지식을 인정을 하지만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제일 내세웠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되어 있는 사람의 구조상 하나님을 놓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완전히 가질 수가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고 주장함.
기독교 유신론증 - 45p~, 본체론적, 우주론, 목적론, 심미학적 등등. 적어도 찰스 하지가 말한 4가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1. 본체론 논증; 안셈의 입장을 알아야 함. 안셈의 삼단논법 “자기보다 더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분이 계시다라는 것”. 이데아에서부터 실제로 나아가는 것. 여기에 대해서 칸트는 “상상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고 비평을 함.
2. 우주론 논증; 원인과 결과, .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의존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하나님을 증명하는 5가지 방법 “a. 움직음으로부터의 논증(자기는 움직이지는 않지만 다른 것을 움직이는 근원, b. 유효한 원인으로부터의 논증 (결과엔 원인이 있다. 최종원인, 제일원인), c. 우연성으로부터의 논증 (세상엔 우연이란 없다. 그래서 우연을 일으킨 필연이 있다. 첫필연적인 존재가 있다.), d. 사물안의 온전성의 정돈으로부터의 논증 (어떤 사물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완전하는 것을 염두해 둔 것이다. 완전한 존재=신), e. 목적으로부터의 논증 (시계도 설계사에 의해서 만들어진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우주만물도 목적이 있다.)” 나중에 이 다섯가지가 감각지각을 통해서, 인과관계를 이용해서, 무한한 역추론을 사용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반박을 받음.
3. 도덕적론논증: 칸트는 “저 하늘에는 빛나는 별이 있고 내 마음속에는 도덕이 있다”고 말했다. 칸트의 영향을 받은 슐라이마허(자유주의의 아버지)는 말하길 기독교는 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링이 중요한 것이다. 예수는 사람이 이었는데 그 안에 신 의존 감정이 충만해져서 기적이 가능하다“고 했다. 1919년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로 말미암아 초자연주의를 부정하던 자유주의에 커다란 변화를 주어 현대신학이 시작함.
벨하우젠의 문서비평설, 1921년 양식사학파가 불트만에 의해 시작됨 그래서 말하길 복음서의 기록은 믿을만 하지 못하다. 1세기의 세계관 신화적인 요소를 제거해야 기독교의 핵심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 칼 바르트 (현대신학의 아버지). 반틸은 말하길 슐라이마허는 마더리즘이고 칼 바르트는 뉴 마더리즘이라고 말했다. 칼 바르트는 부활도 믿는다고 말을 하나 그 뜻이 다르다. 즉 부활은 실제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결단을 일으키는 성도의 마음속의 부활을 믿는 것이다. Historie(사실로의 역사)와 Geschichte(개인의 주관적인 역사)의 논쟁이다. 반틸은 슐라이마허와 칼바르트가 다르지 않는 오늘날 우리의 언어로 설명된 신현대주의라는 것이다.
칸트는 이런 4대 논증으론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경험으로는 알 수 있지만, 경험세계의 밖에 있는 “천사, 영혼, 신” 등은 우리의 이성의 한계 밖에 있기 때문에 신이 계신지 안 계신지 도저히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4대논증은 특별계시인 말씀을 제쳐 놓고 일반계시로만 논증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의도 자체가 한계를 지니고 있고 또한 잘못된 것이다. 어떤 한계에 부딪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참조. 그리고 개연성과 가능성을 가지고 절대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4대 논증을 가지고 하나님의 존재 증명에는 쓸모가 없지만, 불신자들에게 유적적인 증거로는 사용할 수가 있다.
꼭 읽기: 칸트의 유시론증, 반틸의 전제주의적 그리고 수업중 학생들이 발표한 것(6개)도 간결하게 예로 장점과 단점을 알아야 함.
6월4일
박형룡박사의 조직신학은 세부분으로 되어있다. 조직신학을 20권을 썼는데 그 중 7권이 변증학이다. 다른 사람보다 변증학에 대한 부분이 더 많다.
a. 서론 - 변증학의 역사, 변증학과 험증학 그리고 견해서의 차이
b. 제일편 - 유신론(하나님의 존재) “본체론적, 우주론적, 심리학적, 도덕적, 역사론적 등등” 유신론에 반대하는 입장들 “무신론, 유물론, 자연론, 실증론, 범신론, 막스주의론”
c. 제이편 - 유령(영혼, 양심, 자유의 존재)론을 다룸.
1971년 총신에 계셨다. 박박사님에게서는 아쉽게도 전제주의론적인 면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기독교의 사실들을 모아서 사실들을 정리한 증거주의적 변증학에만 머물렀다. 즉 워필드의 방법에 머물렀다. 아마도 박아론 박사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나하는 생각(교수입장). 박아론박사는 유신론을 많이 다루었고 세명“도이빌트, 반틸, 박형룡”을 함께 다루었다. 그러나 박아론 박사는 자신은 전제주의적인 입장으로 도이빌트와 반틸의 방법을 다루었지만, 구체적으로는 자세히 들어가지 못했다. 또 도이빌트의 부정적인 입장을 많이 다루었다. 총신의 변증학은 구프린스톤의 워필드가 가지고 있는 증거주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옹호하고 변증하는 입장을 취했다. 박아론이 변증학쪽에 즉 전제주의적 면을 총신에 도입한 것은 유익했다.박아론박사의 3가지 - 변증학, 종말론 그리고 현대신학. 아버지는 원천봉쇄론을 썼지만 자기는 웨스민의 반틸의 입장과 풀러의 카넬의 입장 중간에서 조화를 이루며 있다고 했다. 하지만... 카넬은 기독교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사람이기 때문에 반틸과 카넬의 조화는 말자체가 어폐가 있을뿐더러 조화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변증학, 견해서 그리고 험증학의 정의
변증학의 방법론 - 우리는 전제주의적 방법이지만 다른 방법론 즉 증거주의 방법과 내면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경험주의 방법론도 있다는 것.
슐라이마허는 자유주의 아버지, 칼 바르트는 현대주의 아버지. 반틸은 이 두 신학이 연결되었다고 주장하며 칼바르트를 뉴마더리즘 즉 신현대주의라고 보았다. 비록 칼바르트의 신학이 자유주의의 반대에 나왔지만 현대주의가 옷만 바꿔입고 나온 뉴마더리즘이라고 반틸은 보았다. 그래서 서로 연결점이 있다는 것.
유신론증 - 본체론적, 우주론적, 목적론적, 도덕적“칸트의 역할, 대륙의 합리론(이성)과 영국쪽의 경험론(감각), 이 둘의 충돌중에서 흄의 주장(하나님의 영역은 저편에 있는 것으로 비합리적인 것으로 신학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 사이에 골짜기를 파 놓았다)”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어떤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종교와 신학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칸트는 지식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되지 않고 사람에게는 이 받아들인 것을 지식화하는 형식화하는 범주화해서 우리에게 받아들인다. 12범주 - 통일성, 복수성, 전체성, 인과성... 이러한 것들(12범주)을 가지고 사람들이 들어온 지식을 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감각적으로 들어온 것만을 범주화 될 수 있다고 주장하므로, 천사나 신 이런것들은 감각적인 것이 아닌 다른 영역에 속하므로 지식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칸트는 두 세계를 나누었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세계와 현상계 밖에 있는 세계. 그러므로 칸트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즉 칸트는 불가지론적 입장에 서 있다. 과학의 세계와 종교의 세계를 완전히 분리했다. 현상계와 예지계 이 사이에 넘을 수 벽을 쌓았다. 그래서 칸트는 종교를 과학의 세계에서 밀어내어 종교는 현상의 세계에서는 아무 할 말이 없다고 주장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신이 필요없는가? 이것이 칸트의 고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실천이성의 요청에 의해서 어떤 도덕적인 존재가 있을 것이다... 신의 필요성을 느꼈다. 과학적으로는 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도덕적으로는 신의 필요성을 말한 칸트.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느낌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느낌을 기록한 것이다.
슐라이마허는 칸트의 글을 읽고 자유주의 아버지가 되었다. 계시로써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요. “신 절대의존 감정”이 예수 안에서 충만해서 이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의 중요한 점은 내면적인 체험이지 교리가 아니다. 그리고 타 종교에도 예수처럼은 안되지만 신절대의존으로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범신다적인 입장에 있다. 개인의 필링을 중요시함.
리출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이루어지는 윤리적인 세계다. 교회는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 기독교 교리를 다 무시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성이 없고 현재성만 강조. 리출로부터 출발해서 미국에와 사회복음주의 출발이 시작되었다.
기독교는 하등종교가 고등종교로 발전된 것이다. 아돌프 하르낙은 복음서를 1세기의 제자가 아닌 2,3세기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헬라적인 요소가 많이 첨부되었기 때문에 성경에서 헬라적인 요소를 벗겨야 하고 복음의 핵심을 보아야 한다.
1919년 기점으로 해서 1차대전이 끝나고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이 나옴. 1921년 불트만의 공관복음이 나옴.
칼바르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계시는 기록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통로일뿐이다. 그러나 계시는 아니다. 성경이 우리 마음에 부딪힐때 성경이 비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불트만은 성경이 2,3세기의 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경을 아무리 읽고 연구해도 2,3세기의 예수 밖에 알 수 없고 케리그마밖에 모른다. 이것이 역사적인 예수와 신학의 단절이다.
케제만, 본카드 이 사람들이 포스트 불트만들이다.
칸트의 철학은 슐라이마허에서 출발해서 칼 바르트로...
쉐이퍼는 학자라기 보다는 불신자를 향해 접촉점을 만드는 설교가였다.
그러나 반틸은 불신사장의 전제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인 학문적으로 설명했다.
반틸은 쉐이퍼를 공격했다. 왜냐면 불신자에게 중간역역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쉐이퍼는 증거주의, 자연주의, 초자연주의, 현대주의 입장에 섰다.
1939년부터 에밀턴의 영향이 미국에 미침.
칼바르트는 부활을 믿는 다고 말을 하나 예수의 역사적인 부활보다는 부활에 대해 설교될때 우리가 믿고 우리 마음속에 부활 되었다고, 그 부활을 믿는 것이다. Historie를 믿지 않고 Geschichte를 믿었다.
반틸, 쉐이퍼, 메이천등등 방법, 장단점을 꼭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