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영화인 그레고르 뮐러와 친구 필립의 2013년과 2017년 평양 여행기를 담은 영화 ‘헬로우 평양’의 한 장면에 아파트들이 보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북한에서도 주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은 ‘아빠트’(아파트의 북한말)와 연립주택 등 공동주택이다. 연구자료를 토대로 북한 아파트를 알아본다.
북한의 주거 형태
북한에서는 주택을 ‘살림집’이라고 부른다. 아파트는 살림집의 한 종류다.
북한의 주거 상황에 관한 최신 공식 통계라야 2008년 유엔인구기금(UNFPA)과 북한중앙통계국이 조사해 발표한 자료뿐이다. 이때 전국 588만 세대 중 연립주택 258만 세대(44%), 단독주택 199만 세대(34%), 아파트 126만 세대(21%), 기타 5만 세대(1%)로 집계됐다. 이후 공동주택이 더 많이 지어지긴 했으나 형태별 구성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북한 연구자들은 말한다.
평양의 주택 중 63%가 아파트여서 다른 지역과 차이가 컸다. 김성욱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평양 및 대도시의 일부 지역을 제외한 지역의 주거수준은 매우 열악하고 지역별 주거격차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토지주택연구원(LHI)은 북한 신문의 보도, 북한정보 포털, 한국 정부 자료, 탈북자 설문조사 등을 토대로 연구한 결과 2015년 기준으로 주택 수를 340만~472만 가구로 추정했다. 588만 세대 기준으로 주택보급률은 58~80% 수준에 불과하다는 계산이다. LHI는 가구당 평균 2.4의 방이 있고 상수도 보급률은 93% 수준인 것으로 추산했다.
1998년 헌법 개정 뒤 주택소유 인정
살림집의 개인소유 허용
북한은 사회주의여서 국가가 건설해 인민에 배정한 주택은 국가 소유다. 북한 정권 수립 이전의 개인소유 주택의 경우 토지는 국가 소유고 주택은 예외적으로 개인소유를 인정해 상속과 매매를 허용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주택을 거래하려면 재판소나 보안서의 서류를 떼느라 뇌물을 바쳐야 했다고 한다. 소유권의 개념도 한국의 그것과는 크게 달랐다.
1998년 북한 헌법 개정으로 건물은 집단적 소유의 대상에서 제외돼 살림집의 개인소유가 허용됐다. 민법도 개인의 주택소유를 인정한다.
북한 평양 중구역의 미래과학자거리 [출처: 데일리NK]
국가 대신 돈주가 나서 건설・분양
북한 아파트 짓는 ‘돈주’
1991년 소련의 붕괴 등 여파로 북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국가의 식량배급과 주택공급이 끊기자 주민들은 스스로 주택문제 해결에 나서야 했다. 최천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1980년대 전후로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 적령기에 달하면서 주택 부족이 극에 달했고,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주택 배급제가 사실상 붕괴했다”고 설명한다.
이때 등장한 세력이 ‘돈주’였다. 돈주는 고위층 자녀, 달러벌이 일꾼 같은 무역종사자, 장마당(시장)에서 푼돈을 모아 종잣돈을 마련한 상인 등이 각종 수단으로 달러를 끌어모아 투자자 역할을 한 것. 돈이 없어 주택건설을 하지 못하는 국가 대신 돈주가 돈을 대고 국가의 건설시스템을 활용해 아파트 등을 건설하고 아파트를 분양해 번 돈을 건설에 협조한 공무원과 군인들에게 뇌물로 주는 방식이다. 자재나 설비를 공급하고 아파트 분양권을 받기도 한다.
돈주 등장 초기에는 5만 달러 이상 자산이면 됐지만 이후 지방에서도 10만 달러를 훨씬 넘는 재력가가 돼야 돈주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은행을 대신해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거나, 기업소나 공장에 직접 투자해 이윤을 남긴다. 중앙 또는 지방의 당간부들과 결탁해 이권을 챙기면서 부를 축적한다. 이들의 재력과 권한이 너무 커져 북한 경제를 좌우할 정도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한 북한 연구자는 현재 북한에 지어지는 아파트의 80%는 민간에 의해 건설되며 신축된 아파트의 3분의 1 정도가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탈북자 설문조사에서도 돈을 주고 주택을 구매한 경우(67%)가 국가에서 집을 배정받은 경우(14%)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평양 아파트 평균 1억 원대 거래
평양 집값
북한의 집값은 천천히, 꾸준히 올랐다. 김정은 집권 후 주택건설 공급실적은 연평균 6500세대로, 김정일 시대에 비해 약 30% 증가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평양을 중심으로 현대식 아파트의 몸값이 오르면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 가장 비싼 평양의 아파트는 최근 평균 1억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달러를 원화로 환산한 가격이다. 북한에서는 북한 원화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값비싼 물건은 달러로 거래한다.
한국의 한강 뷰 단지처럼 대동강 뷰 아파트는 프리미엄이 붙어 2억 원대까지 나간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는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평양 중심구역의 고급 아파트값이 20만 달러(약 2억8000만 원)에 이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150㎡(45평)형으로 방 4개와 화장실이 2개 있는 구조다. 평양 변두리는 방 한 칸짜리 집이 3000달러(약 420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부자들은 고층 아닌 저층에 살아
평양 초고층 아파트
올해 4월 평양에 8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가 1년 만에 완성됐다. 북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류경호텔(101층)을 짓는 데 24년이 걸린 전례로 볼 때 부실 공사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류경호텔은 외장공사만 완료해 숙박시설이 아니라 체제선전물로만 쓰이고 있다. 2007년 혜산시, 2013년 평성시, 2014년 평양시에서 아파트 붕괴사고로 인해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있어 우려가 더욱 크다.
평양 고층 아파트에는 누가 살까. 부자는 고층이 아닌 저층에 산다. 일반적인 로열층은 저층이다.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웃돈을 주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전기가 자주 끊겨 엘리베이터는 출퇴근 시간 외에는 멈춰 있고 출퇴근 시간마저도 이용할 수 없는 날이 많다. 수돗물 공급도 원활하지 않다.
신식 아파트들은 10층씩 묶어 급수하는 방식인데 물이 5층 정도 올라가다 끊기기도 한다. 그러면 주민이 물통을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식량, 연탄과 가스, 석유 등 생활필수품도 손으로 운반해야 한다.
북한 소식 전문매체 데일리NK는 지난 5월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래과학자거리 아파트는 지어진 지 얼마 안 돼 수도에서 진흙물이 나오거나 사흘에 한 번 공급하던 물을 일주일에 한 번 주고 그마저도 몇 분간 쫄쫄 나오고 만다”고 전했다. 매체는 또 “국방성이 위생병(하전사)을 동원해 ‘물공급 전투’에 나서지만 고층아파트 세대는 물이 부족해 화장실 보기도 두려워한다”고 실태를 소개했다.
북한의 아파트는 멀쩡한 외양에 어울리지 않게 아궁이로 집을 데우는 경우가 많다. 강미진 NK투자개발 대표는 작년 한 TV프로그램에서 “신식 아파트는 중앙난방을 해주지만 별도로 난방이 필요한 집들은 부엌 한 켠에 아궁이를 따로 설치한다”고 말했다.
탈북민으로 북한의 주택을 연구해온 홍성원 통일교육원 사회전문강사는 “대동강 뷰 아파트 같은 프리미엄 아파트라면 특별대우를 받으니 고층도 인기가 있다”면서 “이곳 입주자들은 전기와 물을 웃돈을 주고 별도로 계약해 공급받는다”고 전했다. 극도의 자본주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북한 최고위층의 한 모습이다.
북한 평양 중구역의 미래과학자거리 아파트 내부 [출처: 데일리NK]
벽지・장판 등 모두 입주자가 해야
북한 아파트 인테리어
북한 아파트는 중국과 비슷하게 벽면과 출입문, 창문, 전기선과 배수관 등 기본 건축이 끝나면 판매된다. 아파트 구매자가 경제력에 맞춰 인테리어를 한다.
RFA는 “아파트 입주 후 벽지와 장판은 물론 싱크대와 세면대, 욕조 등 인테리어는 100% 입주자의 몫”이라며 “각자 경제 형편에 따라 1000달러에서 최고 1만 달러까지 들여 인테리어를 완성한다”고 전했다.
박희진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도시의 아파트는 골조를 바꾸기 어렵고 부엌과 화장실을 중심으로 인테리어를 한다”고 말했다. 화장실의 경우 분리돼있는 세면 칸과 변소 칸을 합친다. 전기와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욕실 안에 물탱크를 설치한다. 부엌에는 유리로 장식장을 만들거나 타일을 바른다.
박 교수가 인터뷰한 혜산시 출신 30대 여성 탈북민은 “국경도시에서는 제법 돈을 크게 만지는 돈주들이 집에 자물쇠, 인터폰, CCTV를 설치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양강도 출신 30대 남성 탈북민은 “전문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2018~2019년 욕실을 리모델링해주고 300달러를 받았다”고 말한다.
최근 북한에서 경제력 과시용 주택 개조가 인기일 정도로 빈부 격차가 묵인되고 있다. 수입 대비 지출을 따지던 과거의 검열도 사라져 아파트도 개성 표현의 대상이 됐다는 것.
북한이 체제 선전을 위해 내세운 키즈 유튜버 ‘송아 채널’에서 최고위층 자녀의 아파트 방 인테리어를 볼 수 있다. [출처: 송아채널 캡처]
올해 북한이 체제 선전을 위해 내세운 키즈 유튜버 ‘송아 채널’에서 아파트 인테리어를 볼 수 있다. 최고위층의 자녀로 평양에 사는 11살 송아의 방은 한국의 평범한 초등학생의 방과 비슷하게 꾸며져 있다. 하얀색 책장에 알록달록한 책들이 꽂혀 있고 핑크색 인형, 지구본, 액자가 보인다.
물은 평양도 하루 한시간만 받아
북한 아파트 관리
홍성원 통일교육원 강사는 “북한은 아파트관리비가 없고 국가가 배급한 주택은 임차료도 없으며 다만 전기사용료, 물 사용료는 낸다”고 소개한다. 이때 저렴한 국정가격이 아니라 시장가격(특별공급 받는 가격)을 감안해서 중간가격 정도를 낸다는 것. 최근 전기 부족이 심화해 전기료를 누진방식으로 부과한다.
해외 사진작가가 찍은 북한의 아파트들. [출처: Michal Huniewicz 홈페이지]
해외 사진작가가 찍은 북한의 아파트들. [출처: Michal Huniewicz 홈페이지]
홍 강사는 “전기 및 상하수도 시스템이 붕괴됐고 대도시에서만 어느 정도 작동하는 상태”라면서 “그나마 평양에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물을 매일 새벽 2~3시, 하루 한 시간만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지방도시는 우물물을 사용한다.
아파트 경비는 각 세대가 날짜별로 돌아가면서 경비를 서고 방범을 한다. 당간부나 고위관료가 많이 사는 평양의 고급 아파트는 돈을 걷어 월급제 경비원을 고용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홍 강사는 전했다.
아파트 상하수도관 등의 고장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동사무소를 통해 민원이 제기돼도 각 도시의 도시경영사업소는 기본 배관만 점검하고 여기서부터 각 세대로 연결되는 배관은 세대의 책임이다. 페인트칠, 미화작업 등 노후화한 아파트 관리는 동사무소의 인민반장이 알아서 하게 돼 있지만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북한에도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가 많아 수리 또는 재건축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