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젊음과 생명을 의미한다는 을미년 청양의 해를 벅찬 감동으로 맞이하였던 것이 바로 엊그제인 듯한데, 2015년 한 해도 어느덧 며칠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28일~31일, 이제 나흘 남은 시간이란 마치 우수리로 남은 잔돈처럼 느껴지고 마음은 벌써 병신년 붉은 원숭이의 해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한 해가 가는 일은 매양 우리의 마음속에 ‘아쉬움’과 ‘서운함’ 또는 ‘섭섭함’을 적잖게 남겨 놓는 일이기도 해서 마지막 해넘이의 시각이면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기도 할 것입니다. 지는 해와 함께 영영 묻어 버리고 싶은 일도 있겠지만, 쉽게 묻어 버릴 수는 없을 만큼 아쉽고, 서운하고, 섭섭하기까지 한 일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겠지요.
문제는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게 될 ‘아쉬움’과 ‘서운함/섭섭함’의 원인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형용사 ‘아쉽다’와 ‘서운하다/섭섭하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실망스럽고 미련이 남다.”라는 뜻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용법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지요,
우선 ‘아쉽다’는 주로 실망 또는 미련의 원인이 화자 자신의 행동이나 상황 때문에 생긴 일에 대하여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⑴ㄱ. 임원 승진의 기쁨보다 공부를 소홀히 해 전체를 보는 눈이 부족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ㄴ. 내 스스로도 이 날 득점력은 좋았지만 야투율이 50%도 안 돼 아쉬웠다.
이러한 문장들에서 ‘아쉽다’는 말하는 이가 자신의 행동이나 관련된 상황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데 쓰인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실망스러운 느낌과 감정이 다른 사람이나 상황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면, ‘서운하다’나‘섭섭하다’가 쓰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⑵ㄱ. 박인비가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 대한 논란에 서운함을 표현했다
ㄴ. 이후 김정민의 장모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사위가 우리 딸이랑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내 식성에 대해서 모르고 있어 조금은 섭섭하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위 문장들을 보면 (2ㄱ)에서는 ‘서운함’의 원인이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 대한 논란’에 있으며, (2ㄴ)에서는 ‘섭섭함’의 원인이 장모의 식성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위의 무심함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운하다’나‘섭섭하다’는 화자 자신의 행동이나 상황보다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상황에 그 원인이 있는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편, ‘아쉽다’는 말하는 이가 자신의 행동이나 관련된 상황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 외에, 무언가가 필요할 때 그것이 없거나 모자라서 안타깝고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에도 사용됩니다. 다음이 그 예이지요.
⑶ㄱ. 그는 어려서부터 아쉬운게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ㄴ.선수들은 열심히 해줬는데, 외국 선수들의 활약이 아쉬웠다.
요컨대, 자신의 행동이나 상황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무언가가 필요할 때 그것이 없거나 모자라서 안타깝고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에는 ‘아쉽다’를, 실망스러운 느낌과 감정이 다른 사람이나 그와 관련된 상황 때문에 생기는 경우에는 ‘서운하다/섭섭하다’를 사용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올해 마지막 해넘이의 순간에는 어떤 ‘아쉬움’도, ‘서운함’과 ‘섭섭함’도 남김없이 지워버리고, 새로운 한 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의 샘물을 오롯이 길어 올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