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亂) 후 곤산(崑山)에 이르러
집과 산을 한 번 떠난 지 십 년이나 지나
이제돌아오니 송국(松菊)이 반이나 모자라졌네.
임천(林泉)에서 지내리라는언약 어찌 저버리겠나,
먼지 쌓인 땅에서 머리 숙이면서 내 자신이가여울 따름이다.
향리(鄕里)를 잠깐 지나니 꿈에 온 듯한데,
전쟁이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다행히 몸은 성하구나.
어느 때에 운봉(雲峯) 아래에다 집을 얽고서,
산골 물 길어다가 차 끓이고 돌을 베고서잠들까.
요점정리
작자 : 완채 / 조동일 옮김
갈래 : 칠언율시(七言律詩), 서정시
성격 : 우국적, 전원 귀의적
율격 : 정형률, 압운
어조 : 어조 : 침통하면서도 안타까운 목소리
심상 : 비유적, 시각적 심상
제재 : 곤산(崑山)
주제 : 전쟁에서 나라를 구하고 평화로운 자연 귀의에의 소망, 또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소망
구성 :
수련 전쟁으로 인한 고향의 황폐한 모습
함련 전원 귀의의 약속과 전쟁으로 인한 상심, 암담한 현실에서의번민
경련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성찰
미련 자연 속에서의 평화로운 삶에 대한 희구
출전 :<抑齋遺集> 권 1
내용연구
집과 산을 한 번 떠난 지 십 년이나 지나
이제 돌아오니 송국(松菊)이 반이나 모자라졌네.
명나라의 침공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나, 전쟁을 했던 십 년이 지나 고향에 돌아와 보니 고향이 많이 황폐화 해졌음을 나타낸다. '송국이 반이나 모지라졌네'는 고향 혹은
조국이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졌음을 소나무와 국화의 황폐를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임천(林泉)에서 지내리라는 언약 어찌 저버리겠나,
먼지 쌓인 땅에서 머리 숙이면서 내 자신이 가여울 따름이다.
고향의 자연 속에서 지내리라는 스스로의 약속을 어찌 저버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고향 땅에 서니 내 자신이 가여울 뿐이구나. 전쟁으로 인한 고향의 황폐함과 전원에 귀의하고자 하는 자신의 소망을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소망과 소명감이 충돌하는 대목으로, 암담한 현실에서의 번민이 드러나 있다. 관련 고사성어로는 수구초심(首邱初心)
임천(林泉) : ① 숲과 샘. 또는 숲 속의 샘. '자연'을 뜻하는 말. ② 세상을 버리고 은둔하기 알맞은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장부가 세상을 평정할 큰 재주를 품고 어찌 임천 아래 그대로 늙을 수야 있겠습니까?‘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향리(鄕里)를 잠깐 지나니 꿈에 온 듯한데,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다행히 몸은 성하구나.
전쟁이 끝나지 않아서 전원에 귀의할 수는 없지만, 다생히 몸은 아직 성하니 언젠가는 전원에 귀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전쟁의 비극성이 바탕에 깔려 있다.
어느 때에 운봉(雲峯) 아래에다 집을 얽고서,
산골 물 길어다가 차 끓이고 돌을 베고서 잠들까.
전쟁에서 승리한 뒤의 평화로운 고향의자연 속에서의 삶에 대한 소박한 꿈을 나타내고 있다. 전원 생활에서의동경은 동양 문화의 보편적인 정서이기도 하다.
一別家山恰十年 일별가산흡십년
歸來松菊半攸然 귀래송국반유년
林泉有約那堪負 인천유약나감부
帥土底頭只自憐 수토저두지자련
鄕里 過如夢到 향리참과여몽도
干戈未息幸身全 간과미식행신전
何時結屋雲峯下 하시결옥운봉하
汲澗烹茶枕石眠 금간팽다침석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베트남의 민족 시인 완채의 <抑?遺集> 권1에 실려 있는 칠언 율시(七言律詩)의 한시(漢詩)로 42번째 작품이다. 전쟁으로 인한 조국의 강산이 황폐화 되었음을 한탄하고 있고,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완채의 소박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작자의 소망은 민족을 구하러 나선 애국지사로서의 의연한 모습과 관련을맺고 동시에 전반부에서 그려낸 조국의 위기 상황과 강한 대비를 이룸으로써 그 절실함이 더욱 고조된다.
이 시의 원제목은 "난후도곤산감작(亂後到崑山感作)"으로, 작가가 독립 전쟁을 하던 중 잠시 곤산에 들렀을 때 지은 것으로, 전란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평화로운 삶을 이루고자 하는 시인의 소망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시는, 대개의 훌륭한 시들이 다 그렇듯이, 그 높은 뜻을 절절한 서정으로 용해시키고 있다. 그가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운봉(雲峯) 아래 집을 얽고 조용히 차를 마시고 싶다는, 소박하면서도 진실한 꿈이다. 그 꿈은 강국(强國)의 침략에 의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처한 조국과 대비되어, 또한 조국을 위해 떨치고 나선 시인의 모습과 관련되어 읽는 이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특히, 잦은 외침(外侵)으로 많은 시달림을 받은 바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 시가 주는 감동은 각별한 것이라할 수 있다.
완채는 곤산에 '진원단퇴휴처'라고 주를 달아놓았다. 여기에서 '진원단'은 완채의 외할버지를 가리킨다. 완채는 그의 외할아버지 소유지를 상속받고, 물러나 은거하면서 세상의 다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을 이 노래를 통해 되새겼던 것 같다. 실제로 완채는 르 왕조의 태조가 세상을 떠난 다음 조정에서 처신이 어려워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명나라와의 오랜 전쟁으로 인한 조국의 황폐함을 극복하고 세상의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시적 자아의 내면이 안타까운 서정 속에서 잘 드러나 있다.
심화 자료
완채(阮 )
완채(Nguyn Trai 1380-1442) 베트남의 문인이자 정치가. 명나라의 침략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고 르왕조을 세우는데 큰 공적을 세워 재상으로 활동했으나 후에 시역(弑逆)의 죄를 쓰고 삼족(三族)을 멸하는 화(禍)를 입었다.
베트남 문학의 특성
베트남 문학에서 특징적인 것은 표기문자 상에 한문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트남이 한문을 수입한 것은, 기원전 207-208년부터 서기 938년의 약 천여 년 사이이다.
이 때부터 그들은 중국의 고대 시문의 영향을 받아 한문시를 썼으며, 우리의 향찰이나 이두처럼 그들의 음운 체계에 적용했다. 그러나 17세기 초 유럽 인들의 아시아 진출과 함께 서구
카톨릭 선교사들이 로마 문자와 같은 베트남 문자를 만들어 냄으로써 베트남의 민족 문학이 한문학을 대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민족 문학의 거성으로 느구이옌두를 손꼽을 수 있다. 이러한 고전적 민족 문학은 1730년 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문학의 저항을 받았으며, 1936년의 테루의 시는 모더니즘의대표가 되었다.
특히, 베트남은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만큼 프랑스 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남북 분단과 베트남의 전쟁으로 인한 민족적 비참성과 저항이 담긴 시, 소설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베트남인들은 스스로 근면, 성실, 인내, 친절, 용감성 등의 국민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안의 끊임없는 외침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국민"으로 자신들을 표현하고자 하며, 무엇보다 외세에 굴복하지 않은 역사를 지닌 나라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이러한 것이 외세 저항의 바탕이 깔려있는 것이 베트남 문학의 보편적인 주제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