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인, 거지라는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대다수 사람은 적어도 '빌어먹지 말아야지'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은행에 빚지지 말아야지. 타인에게 손내밀지 말아야지.
애써 금전적 구걸을 안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가족과 지인의 금전적 도움을 받았다. 상황이 나아졌을 때는 바로 빚부터 갚았다.
하지만 더 중요하고 실제적인 부분에서는 평생 구걸하며 살았고, 지금도 구걸 중이라는 증거에 충격을 받았다. 어제 2022 씨네페미니즘학교 열린강좌 3강의 초대강사인 최은미 작가를 통해서였다. 강연 중에 언급한 토니 모리슨이란 작가를 집에 와서 구글링했다.
"토니 모리슨은 <빌러비드(Beloved)>로 퓰리처상과 흑인여성으로서 첫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019년 8월 7일 88세로 세상을 떠난 그녀는 시각적인 힘과 시적인 표현으로 미국 현실의 본질적인 면을 생생히 드러냈다는 찬사를 받으며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문학성을 인정받으면서도 대중적 인기를 누린 드문 작가였다."
(중앙일보, 이은주 기자 "아무에게도 구걸하지마, 특히 사랑"…토니 모리슨이 남긴 말, 2019.08.07/[삶과 추억] 토니 모리슨, 글쓰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2019.08.08 )
생전에 남긴 명언들이 많은데, 특히 두 문장이 가슴에 콱 박혔다.
"당신이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쓰인 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만 한다."
"아무에게도 구걸하지 마, 특히 사랑."
특히 두 번째 문장에서 심장이 멎는 충격을 받았다.
아무에게도 구걸하지 마, 특히 인정!
아무에게도 구걸하지 마, 특히 칭찬!
이렇게 바꿔보니 정말 구걸하며 살아왔음이,
지금도 그 지긋지긋한 구걸을 멈추지 않고 있음이 절실히 다가왔다.
오후에 글쓰기 강연과 영화 강연을 들으러 지하철로 가는 길에도 그 일이 있었다.
초등 남학생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더니 갑자기 내게 인사를 하는 거다.
"혹시 저를 알아요? "
"아니요. 그냥 인사했어요" 했다.
"그래요? 반가웠어요."
지나오면서 기분이 좋았다.
왜 기분이 좋았을까 생각해봤다.
나를 인정해준 게 좋았다. 뭘 인정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낯선 동네에서 산책을 하는데, 그때도 초등 남학생이었다. 마주오던 남학생이 너무나 반갑고 환하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그때도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나도 "안녕하세요? 인사해줘서 고마워요." 라고 반응했다.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칭찬받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은연중에 타인의 사랑과 인정, 칭찬에 목말라하며 구걸하는 게 문제다. 당장 타인의 사랑과 인정, 칭찬에 목매는 짓을 그만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매번 쓸모없는 일과 관계에 시간과 에너지, 돈을 들여 자신을 갉아먹지 않으리라. 정작 하고 싶은 말과 글은 가슴 한 켠에 밀어붙인 채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원치 않는 말을 내뱉고, 애둘러 두루뭉실한 글을 쓰는 짓은 없으리라!
더 이상 사랑과 인정, 칭찬을 구걸하지 않겠다!
나로서 오롯이 살겠다!
감정의 구걸, 말과 글의 구걸, 행동의 구걸을 당장 그만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