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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5일(토) 이스라엘의 갈릴리, 가나, 나사렛
오늘은 이스라엘 성지순례 마지막 날이다. 어제 워낙 바쁘게 다니다보니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조금 여유가 있는 일정이니 잘 보고, 느끼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생각보다는 몸이 무겁지가 않다. 감사한 일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배는 하이파 항구에 도착하였다. 하이파는 이스라엘 최대 규모의 항구이며, 무역과 관광이 이 항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항구도시의 인구는 이스라엘 전체의 5위 수준이나 우리나라처럼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아니란다.
성경에 엘리야를 죽이려고 아합의 악한 왕후 이세벨이 추격해 올 때 엘리야가 숨은 곳이 바로 이 하이파라고 한다.
하이파 항구에서 나와서 버스를 타고 갈릴리 지방으로 출발하였다. 갈릴리 지방은 해수면보다 210m 낮은 곳에 위치한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요단강 계곡의 평야와 이스르엘 평원으로 인하여 고대로부터 각종 산업과 어업이 발달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지역에 비하여 천연적인 혜택을 많이 받은 곳이다.
그러나 정치적, 종교적 배경으로 볼 때에는 구약의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의 변방으로 실상 멸시를 당하던 스불론과 납달리 땅(사9:1)이었으며, 솔로몬 때에는 성전을 짓기 위하여 수입한 백향목, 잣나무 값으로 인한 부채를 갚지 못하여 두로와 히람에게 갈릴리 지방의 성읍 20개를 주었지만 그의 눈에 들지 않았다.(왕상9:10-14) 갈릴리 북부의 대부분은 산지로서 크게 유용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요7:49)로 규정하고,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요7:52) 확신하였다. 또한 베드로를 ‘갈릴리 사람’으로 구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야 말로 메시야를 대망하며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것이다. 제1차 유대 반란의 진원지가 바로 갈릴리였다.
팔복교회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팔복교회이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하신 장소에 세워진 기념교회이다. 팔복교회는 갈릴리 호수가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아름다운 교회이다. 이 교회는 현무암으로 건축되어 검은색을 띠고 있는데 10대 아름다운 교회로 선정될 만큼 주변이 아름답다.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산상설교를 하셨는데 그 앞 부분이 소위 팔복에 대한 설교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듣고 모두 놀랐다고 성경에 기록되고 있다. 왜 놀랐을까? 저들은 그동안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로부터 모세의 율법에 대하여 들어왔다. 저들은 모세의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정죄와 판단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설교는 저들의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런 말은 지금까지 저들이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던 것이다.
구약에 십계명이 있다면, 신약에는 팔복이 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구원이 있고, 은혜가 있고, 치유가 있고, 응답이 있고, 축복이 있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구름떼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그런데 이곳 팔복교회에 도착하니 조금만 웃음소리나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나이많은 수녀가 마이크를 들고 나와서 계속하여 조용하게 해 달라는 방송을 반복하였다. “쉬~잇. Be silence!" 그래서 우리 일행은 교회 주변만 둘러보고는 버스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내가 기도순서를 맡았다. “복이 있도다 마음이 가난한 자여 천국이 그대의 것이로다” 예수님의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고, 율법과 죄악의 결박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모든 결박이 풀리기를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오병이어 기적교회
오병이어의 기적은 벳새다 광야에서 일어난 기적이다. 그런데 이 기념교회는 벳새다가 아닌 다른 곳에 세워져 있다. 벳새다란 지명은 ‘어부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기념교회가 세워진 배경에는 헬레나 왕후가 성지순례를 하던 중 함께 동행했던 성경학자들의 착각에 의해 지금 이 자리에 어병이어 기념교회를 세웠다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가지고 온 떡은 보리떡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지역은 밀농사가 성행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밀로 빵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밀 대신 보리를 이용하여 빵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가지고 온 고기를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는 ‘익투스’란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익투스란 물고기란 뜻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익투스가 아니라 ‘압사리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 단어의 뜻은 ‘가치없고 쓸모없는 고기’란 뜻이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면 좋은 고기는 팔지만, 가치없는 고기는 가난한 자를 위하여 남겨놓곤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밀로 만든 떡이 아니라 보리로 만든 떡과 가치없고 쓸모없는 고기를 가지고 온 어린아이의 집 부모는 매우 가난한 집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가난한 부모가 싸 준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드린 어린아이의 헌신은 많은 사람의 배를 부르게 만드는 기적의 씨앗이 되었다.
이 교회 안에 오병이어의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을 가만히 보면 물고기는 2마리인데 떡은 4개만 그려져 있다. 떡 하나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그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보리떡 하나는 예수님이 지금 들고 축사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즉 오병이어의 기적은 과거에 종결된 기적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삶을 붙잡고 축사하고 계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의 축복은 현재진행형(~ing)이다.
둘째, 예수님 자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산 떡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분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에 생명의 산 떡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의 양식과 영혼의 양식을 함께 공급해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 마당에 연자 맷돌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맷돌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크기는 10배 정도 커서 사람의 힘으로는 돌리기 어려워 보인다. 당시 소들이 연자맷돌을 돌렸고, 두 눈이 뽑힌 삼손도 이 연자맷돌을 돌렸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소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연자맷돌이다.
베드로 수위권(首位權)교회
오병이어 기적교회에서 100m 쯤 떨어진 곳에 베드로 수위권교회가 있다. 이는 요한복음 21장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일명 새사명교회라고도 한다. 새사명교회란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사람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받았고, 두 번째로 “내 양을 먹이라”는 새로운 사명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베드로 수위권교회는 갈릴리 바다에 인접한 곳에 세워져 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밤새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와 제자들을 위하여 조반을 준비하신 예수님이 기록되어 있다. 비록 저들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저들을 위하여 조반을 친히 준비하셨다.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조반을 드신 후에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시고, “내 양을 먹이라”는 새로운 사명을 주신다. 카톨릭에서는 이 때 양을 치는 목자의 지팡이를 베드로에게 넘겨주셨다고 주장하며, 베드로를 제1대 초대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지팡이를 받는 베드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베드로 수위권교회 방문을 마친 후 곧장 식당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늘 주 메뉴는 베드로고기이다. 베드로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게 하여 총153마리의 고기를 잡았다. 바로 그 고기를 베드로고기라 부른다. 고기의 크기는 조금 큰 편인데, 가시가 굵고 거세어 자칫 목에 걸리면 위험하다. 먹어보니 맛은 담백하였다.
베드로 기념교회
점심식사 후 다시 버스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향하였다. 이 지역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 초기사역이 주로 이루어진 장소이다. 가버나움이란 지명의 뜻은 ‘긍휼의 도시’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지역의 사람들을 향하여 크게 책망하셨다. “네가 어디까지 높아지겠느냐, 내가 너를 낮추리라”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 도시의 사람들은 매우 교만하였던 것이다.
이 도시는 다메섹과 터키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고, 교통의 요지로서 많은 인구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 가버나움 사람들은 교만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저들을 책망하신 것이다.
이곳 가버나움에 베드로 집터가 있는데 그곳에 베드로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 회당의 터가 남아있는데, 벽 아랫부분은 검은색 돌, 윗부분은 흰색 돌로 쌓여 있다. 검은색 돌은 예수님 당시부터 있었던 곳이며, 그 윗부분은 4세기 경에 증축한 것이라고 한다. 증축하게 된 것은 지진으로 인하여 파괴되었기 때문인데, 회당이 있던 자리에 복원을 시켜놓았다. 당시 회당의 중앙부분에는 ‘모세의 의자’라는 평평하고 넓은 바위가 있었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만이 사람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읽거나 강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회당 바로 옆에 시몬 베드로의 집터가 있었다. 흔히 베드로는 무식한 어부라고 말을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부유한 선주의 아들이었으므로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것이며,
둘째, 베드로의 집이 회당 바로 옆에 있었으니 어릴 때부터 회당에서 가르치는 말을 들으며 살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당시 율법학자들이 베드로를 ‘학문없는 자’로 보았지만 그의 설교를 듣고 깜짝 놀랐다는 기록이 있다. 과연 베드로가 일자무식꾼인가? 그런데 학문없다는 저들의 기준은 소위 모세의 율법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의미이며, 베드로가 율법을 따르기보다 젊은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는 점에서 학문없는 자라고 보았던 것이다.
교회 입구에 베드로의 동상이 나오는데 베드로의 왼손에 목자의 지팡이가 들려있고, 오른팔에는 물고기 2마리가 있고, 손에 2개의 천국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명을 한 번 주셨는데 왜 2개의 천국열쇠를 그려놓았을까? 그 해답은 하나는 하늘의 열쇠이며, 또 다른 하나는 땅의 열쇠라는 주장이다. 그 외에 다른 여러 주장이 있으나 신빙성이 높지 못하다.
가나 혼인잔치교회
요한복음에 의하면 가나는 예수님께서 혼인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신 곳이다.(요2:1-11)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2개의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그중에 카톨릭 소속 프란시스코 교회에는 돌항아리 하나를 보관하고 있으며, 희랍 정교회에도 돌항아리 하나를 보관하고 있는데 각기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돌항아리가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신 본래의 항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이 교회당에서 결혼식을 하면 오랫동안 행복하게 산다고 하여 많은 신혼부부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고 있다고 한다.
유대인들의 결혼은 다음과 같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정혼하는 것과, 신랑이 신부를 정식으로 데리러 오는 두 단계이다.
정혼은 우리나라의 약혼과는 다르다. 약혼을 한 후에는 파혼할 수 있고, 이 경우 아무런 법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경우 정혼을 하면 그 때부터 한 집에 같이 살지 않지만 결혼한 것과 동일하다. 정혼의 기간은 대략 1년이며 그 기간동안 신랑은 처갓집에 지불할 결혼지참금을 마련해야 하며, 아내는 열심히 집안 살림을 배운다. 만약 정혼한 기간동안 다른 남자 또는 여자와 동침하게 되면 간음한 것과 동일하게 돌에 맞아 죽게 되어있다. 그래서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이 당시에는 매우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정혼의 기간이 끝나면 신랑은 결혼지참금을 가지고 처갓집을 방문하여 지불해야 한다. 신부의 부모가 그 지참금이 너무 적거나 만족하지 못할 경우 딸을 보내지 않는다. 그러면 신랑은 다시 결혼지참금을 더 마련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해야 한다. 마침내 결혼지참금에 대한 양가의 합의가 이루어지면 그제야 신부는 신랑을 따라 가게 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랑이 자신을 데리러 올 때가 언제가 될지 신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10처녀의 비유에서 “신랑이 더디 오므로”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이와 같은 유대인의 결혼절차를 보면 정확하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신랑의 드디어 자신을 데리러 왔지만 기름 등불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하여 슬피 울게 된다는 것이다.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알렸을 때 마리아는 깜짝 놀랐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닥칠 위험과 수치를 감수하기로 작정한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신랑 요셉에게도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를 받아들일 것을 말씀하였다. 요셉도 정혼한 마리아의 임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마리아에게는 주변 친족이나 이웃사람들이 자신을 정죄하여 돌로 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마리아가 친족 엘리사벳의 집으로 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때 엘리사벳도 임신하여 있었고, 태중에 어린아이-후일 세례 요한-가 기뻐하였다고 하였다. 이로 인하여 마리아는 더욱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신랑되신 예수님이 오실 때 우리는 정결하고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신부가 되어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나사렛 동네
지금 나사렛 동네에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지난 1967년 이스라엘이 주변 4개 연합군과 6일 전쟁을 벌인 결과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요르단 일대를 점령한 후, 이곳에 정착촌을 만들어 유대인들이 살도록 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유대인과 아랍사람이 함께 같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세웠던 1948년에는 그 이전부터 이 땅에 살고 있던 과거 요르단 사람들에게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주어 계속 머물러 살도록 하였다. 그런데 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1948년 이후부터 거주한 사람에 대하여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주지 않았고, 저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여 달라는 요청도 거절하였다. 그 사람들이 요르단으로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요르단 정부조차 저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 저들은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다. 국민소득은 연간 1500불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어떤 복지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의 국민소득은 32,000불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는 장벽을 쌓아 철저하게 저들과의 분리정책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 베들레헴을 방문할 때 검문소로부터 검문을 받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고자 폭탄 테러 등을 행한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에 대하여 시민권을 달라는 시위인 것이다. 지난 1993년 팔레스타인 지도자 아라파트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폭탄테러 등은 크게 감소하였지만, 저들의 삶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사렛은 예루살렘 동쪽 약 134km 지점, 다볼산 서쪽의 9km, 갈릴리 바다 서쪽 도시인 티베리아에서는 서남쪽으로 약31km 떨어진 곳의 산악지대에 있는 마을이다. 지중해에서는 동으로 약3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갈릴리 지방의 작은 도시였으나 지금은 이 지역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삼태기 모양으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분지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위에는 해발 375m의 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이곳은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 국제도시인 바닷길이 지나는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나사렛은 구약에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으며, 신약에서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살았고, 예수께서 출생한 후 잠시 애굽으로 피하였던 경우(마2:13-15)를 제외하고는 공생애가 시작될 때까지 일생을 보낸 곳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부른다. 공생애 기간 중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의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신 후 동네 사람들에게 끌려가 낭떠러지에 밀쳐 죽을 위기를 맞기도 했다.(눅4:16-30)
마리아수태고지 기념교회
이곳에 처음 교회가 세워진 것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의하여 국교로 공인된 이후 당시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여사의 주선에 의한 것이다. (326년경) 그러나 여러 차례 파괴되고 재건되는 역사적인 과정을 반복하면서 현재의 교회당 건물은 다섯 번째 교회로 1955년에 착공하여 1969년에 헌당하였다. 이 교회는 중동지역의 교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교회이며, 베이지색 건물에 옅은 벽돌색 돌을 줄무늬처럼 배열한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교회 건축가인 이탈리아 무치오가 설계, 건축하였는데 정면 폭이 30m, 길이 70m이다.
교회 출입구 정면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 수태소식을 전하는 장면과 생애를 묘사한 그림이 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모자이크 바닥과 색유리, 뾰족탑 형태의 지붕은 60m 높이로 솟아 백합꽃을 거꾸로 매단 느낌을 주고 있다.
넓은 벽면에 가득 채우고 있는 성화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전 세계 각국에서 이 교회의 헌당을 축하하기 위하여 보낸 것들이며, 각기 자기나라의 풍속 배경을 넣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불교권인 태국에서 보낸 것은 석가모니의 그림과 함께 그의 손에 십자가가 꽂힌 지구본을 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보낸 그림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마리아가 색동옷을 입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무궁화꽃을 배경으로 넣고 아래쪽에는 “평화의 모후여 하례하나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세련미가 떨어지지만 그런대로 한국의 특징을 살려주고 있다.
교회 옆쪽에 카톨릭 교황과 동방정교의 대표가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동상이 서 있다. 카톨릭과 동방정교가 각각 마리아의 수태고지에 대하여 주장하는 내용이 서로 달랐다고 한다. 동방정교에서는 마리아가 우물가에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서 수태고지를 하였다고 주장하며, 지금 이곳에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리아의 우물 위에 저들 나름대로의 마리아수태고지 기념교회를 세웠다. 현재 우리가 방문한 이 교회는 마리아가 살던 집터 위에 세워진 것이다. 마리아 수태고지에 대한 논쟁을 그치고 각자의 주장을 존중해 주기로 카톨릭과 동방정교가 서로 합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동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본당 안으로 들어가니 강대상 뒤쪽 벽면에 큰 성화가 걸려있다. 그 그림은 예수님의 재림할 때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다. 그런데 몇 가지 주목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상징하는 그림이 있고, 예수님 곁에는 베드로가 함께 서 있으며, 옆에는 12사도, 역대 교황과 성인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그림이 들어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뒤쪽에 의자에 앉아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보인다. 카톨릭이 마리아를 더욱 숭상하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이다.
요셉기념교회
마리아 수태고지 교회 바로 옆에 요셉 기념교회가 있다. 요셉 기념교회는 요셉이 살던 집터 위에 세워졌는데 그 거리가 가까워 마리아와 요셉은 바로 이웃에 살던 관계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마리아수태고지 기념교회에 비하면 그 규모가 훨씬 작게 만들어져 마리아 숭배사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요셉기념교회와 마리아수태고지 기념교회 중간쯤에 마리아의 동상이 서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마리아의 발아래 뱀이 있다. 마리아가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형상이다. 이는 성경말씀을 무시한 것이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으리니” 이것이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자의 후손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지금 카톨릭에서는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이 아니라 여자인 마리아가 직접 뱀의 머리를 밟고 있다. 카톨릭이 얼마나 성경말씀을 떠나 있는지 잘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그리고 마당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예수님을 낳을 것을 알려주는 동상이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참 재미있다. 마치 천사가 마리아의 뺨을 치는 것처럼 보인다.
갈멜산, 엘리야기념교회
오늘은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마지막 코스이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아합왕에게 바알신을 섬기는 우상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 신앙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도전하였던 현장이다. 갈멜산 위에 오르니 갈릴리 마을이 한 눈에 보인다. 눈앞에 넓은 이스르엘 평지가 펼쳐져 있다. 구약시대에도 이곳은 비옥한 땅이었으며, 아합왕의 시대에 최고의 번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가장 타락한 시대였으며, 엘리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왕에게 나아갔던 곳이다.
교회 입구에는 엘리야가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를 발로 밟고 칼로 죽이는 모습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다. 엘리야가 들고 있는 칼이 일부 부러지고 휘어질 정도로 타락한 바알의 선지자를 처단하였던 것이다.
교회 옥상에 올라갔더니 갈멜산 엘리야기념교회를 중심으로 사방이 활짝 열려있으며, 각기 방향을 화살표 모양으로 표시하고 있다. 바알의 선지자를 죽인 기손 시내도 보였다. 우측으로 지중해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보였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위대한 승리를 한 후 3년 6개월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이 땅에 비를 달라고 기도하고 사환을 보내었을 때 사환은 우리가 바라보는 지중해 쪽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일곱 번 기도하였을 때 지중해 상공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뜨는 것을 보고하였고, 엘리야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된 것을 확신하여 아합왕에게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우리 모든 일행은 이곳에 임하셨던 불과 같은 성령, 소나기와 같은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마치고
마지막 순례일정을 마치고 다시 하이파 항구를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피로가 밀려왔다. 너무나 바쁘게 진행된 이스라엘의 이틀간 성지순례였다. 항구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보충 설명이 있었다.
오늘 우리가 다닌 북부지방 즉 갈릴리와 나사렛은 과거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었을 때 북 이스라엘에 속한 곳이다. 남 유다에 비하여 넓은 땅, 많은 지파와 백성들이 있어 겉으로 보이는 힘은 남 유다에 비하여 강했다. 반면 남 유다의 땅은 척박하여 북 이스라엘에 비하여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남북으로 나뉘었을 때 북한은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여 당시 남한보다 훨씬 살림살이가 나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이은 세습을 통해 인간을 하나님처럼 신격화하여 섬기는 우상의 나라가 아닌가? 지금 그 나라는 국민들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탈북하는 사람들로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남한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어 있으며,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축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으리라.
북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렸으나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하나님의 절기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고, 타락한 모습을 보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앗수르에 의해 멸망되고, 북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반면 남 유다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이어 갔으므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그늘에 거하게 되었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해방되었다. 그후 2천년의 디아스포라 고통의 세월이 있었으나 지난 1948년 마침내 지금 이 곳에 다시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축복을 받았다. 이곳 사람을 유대인이라고 말할 때 남 유다사람이라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과거 반만년의 역사 가운데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물질주의, 반기독교 세력, 이단의 활개, 세속화되어버린 교회와 성도의 모습 등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에 임하기 전에 우리 모든 한국교회가 바로 일어서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 김정은의 군사적 도발보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서 있음에 더 큰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이틀 동안 가이드를 맡은 우 목사께서 이스라엘을 위한 두 가지 기도제목을 부탁한다.
첫째는 이 지역의 평화를 위한 기도이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 평행선을 긋고 있는 전쟁과 대적관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하나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되어지기를 원하는 기도제목이다.
둘째 이스라엘 시민권을 받지 못한 팔레스타인 사람의 삶을 위한 기도이다. 경제적인 빈곤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이것은 저들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기도제목이다.
이틀간의 이스라엘 성지순례 일정을 마치고 다시 하이파 항구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에 탑승하였다.
지금 한국은 주일 새벽2시, 오늘은 다음세대 전도축제 2번째 초청주일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큰 은혜와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씻은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배는 터키의 이즈밀 항구를 향하여 항해를 시작한다. 사도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길을 따라 터키의 에베소 지역의 복음 전파현장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