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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다시 베를린
이번 독일 행의 초반은 다소 어수선했던 편이다.
초행길도 아니었고, 나는 이미 국제적으로도 상당히 많이 떠돌았던 경험의 소유자였는데도.
물론 결과적으론 목적지였던 ‘베를린’에 자리를 잡기 위한 행보였지만......
*
일단, 다시 유스호스텔로 왔다.
이틈 밤 치 숙박료를 지불했고, 3층으로 올라와 함부르크에서 가져온 햄버거를 먹었다.
점심 겸 저녁이었다.
내가 차고 있는 시계의 시간을 여기 베를린 걸로 바꿔야겠다.
한국 시간을 그대로 두었더니 헷갈려서 귀찮기만 하다. 그런 미련은 이제 성가실 뿐으로,
멕시코에 있을 때는 내내 한국시간을 고집하며 살았던 나다.
그리고 이제 이틀 동안 이곳 유스호스텔에서 머무는 것으로, 내 독일에서의 전초전을 끝내기로 해야겠다.
방을 구하든, 잠시 스페인으로 가서 상황을 보든......
더 이상 오늘 밤엔 이 방에 아무도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밖에 나갔다 왔다.
알렉산더 광장엘 가니 썰렁한 바람만 불어 '동물원(Zoo)역' 쪽으로 다시 갔다.
‘빠리(Paris)’ 행 기차가 어떤 것인지 미리 살펴보기 위해 플랫홈에서 기다렸는데, 6인 1실이면서 1등 칸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타고 빠리를 경유해 바르셀로나로 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밖에 나갔다 오니 다른 편 침대엔 이미 두 사람이 들어와 이부자리를 정리해 놓고 나간 뒤였다.
머릿속이 나른하고, 졸립기만 하다.
모든 게 귀찮다.
6 . 1
*
잠은 잘 잤다.
언제 왔는지 모른 건너 편 침대엔 두 녀석이 각자 자기 칸에 누워서 자고 있고, 이쪽 아래 칸도 채워져 있다.
잠깐 동쪽의 햇빛이 내 침상에도 비치더니 이젠 구름에 덮여 사라져버렸다.
더운 것보다는 흐려도 선선한 것이 좋을 듯 싶다. 오늘 만큼은......
여기는 여름인데도 모기가 없다.
그래서 건물엔 방충망도 없다.
더우면 문을 열어놓고 자도 별 일이 없는 것이다.
여기 ‘미술학교’에 가 보았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가 아닌, 집을 구하기 위해 학교 게시판에 붙여 있는 광고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나에게 맞는 조건의 매물이 거의 없었고 나온 것도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몇 군데 전화를 걸었는데, 오늘 따라 아무도 받지 않았다.
낮에, 여기서 화랑을 경영한다는 노 00씨 댁에 가게 되었다.
내 작품과 자료도 보여주었고, 한식으로 대접을 너무 잘 받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부인은 날더러, 자기네 빈 공간에서 그림 그리면서 식사는 거기서 하고 한 달에 천 마르크를 내라고 제안하던데,
지금 가진 총 재산도 그 돈이 될까말까 한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물론 그들은 날 위해 호의를 베풀어준 것일 텐데, 내가 여기까지 와서 무슨 하숙을 할 것이며, 그런 돈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한국인과 같이 지내다 보면 야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구설수에 휘말려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다시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는데,
어딜 가거나 처음에 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여기서는 돈도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그 두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6 . 2
*
유스호스텔에서 저녁을 먹고 조금씩 어두워지는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문소리가 나기에 독일 애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동양인 하나가 들어왔다. 그러면서,
“일본인이세요(Japaness)?” 하고 묻기에,
“난 한국사람인데요(I’m a Korean).” 하자,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 한국사람이었다.
여행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했고, 그는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또 다시 우두커니 2층 침상에 앉아 있다가, 불을 끄고 누웠다.
언뜻 잠이 들었을까 하는데 그가 돌아왔고 자기 침상에 들어갔다.
밖에서는 단체로 온 독일 애들이 떠들고 있었는데, 나는 깨다 잠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 꿈을 꾸었다.
친구 J도 보았고, 어딘가를 가는 꿈도 꾸었다.
잠결에 먼동이 트는 하늘을 보았으나, 또 다시 보니 구름으로 가득 덮여 있다.
오늘 밤에 스페인으로 가나?
밖엔 비가 오는 것 같다. 전형적인 독일 분위기다.
음산하고 착 가라앉은......
6 . 3
마, 기적처럼
계획에 없었던, 그러면서도 전혀 엉뚱한 장소에 내렸던 나는 여전히 막막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거기서부터 뭔가를 시작해야만 할 시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다. 설사 계획을 세운다 해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를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물 한 병도 제대로 못 사먹는 나라#
그렇게라도 밤을 샜기 때문이었을까?
어느덧 시간은 5시가 되고 있었고, 지옥 같던 버스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도 불구하고 몸이 녹초가 돼 있어서, 무거운 짐을 내린 뒤 나는 도로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비가 내린 건 분명한 것 같았는데, 시원한 기운보다는 후텁지근하고 눅눅한 기운이 더 강해서 새벽의 상쾌함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런 나에게 가장 시급했던 건 물이었다.
밤새도록 시달렸지만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어서였는데,
일단 물이라도 사 마시려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가게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역 주변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어서,
‘이 나라는 밤에도 사람들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구나!’ 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오기까지도 중간 버스 터미널의 대합실엔 수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았기에 든 생각이었다.
우리나라거나 다른 북쪽의 나라라면, 아직은 4월이고 그것도 초라 밤이면 추울 텐데, 여기는 열대기후라서인지 썩 춥지 않아서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여기는 기차역 대합실도 밤에는 문을 닫는지, 제법 커다란 역 안은 깔끔하게 정리는 돼 보였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물으니,
7시나 돼야 문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역 앞 광장의 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몸이 좍 늘어지기 시작했다.
정말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 뒤 방에 눕기라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서울의 내 아파트가 그리웠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내 상황을 좀 점검하려다 보니,
'이렇게 힘들여 끝내 거기 ‘까보 끄루스’에 간다고 해도, 아니, 그건 내 꿈이고 실제로 거기까지 가게 될지도 의문인데...... 그리고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면, 설사 간다고 해도 결코 매끄럽게 일이 이어질 거 같지도 않은데...... 그렇다면 다른 데로 가야 하나? 그렇다면, 여기서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하는, 자꾸만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생각이 모아지면서,
‘내가 왜 이런 생고생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후회를 넘어 불만이 치밀다 못해 화까지 나기도 했다.
그렇게 파김치가 되어 앉아 있는데,
내가 있는 쪽으로 버스 한 대가 오더니, 군인들과 그 가족으로 보이는(갓난아기를 안은 젊은 여자도 함께)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내려 그 주변을 서성이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토니’가 가르쳐준(내 서류 노트에 적어준) 지명 중 그 지방을 가리키면서,
“저, ‘그란마(Granma)’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저 쪽으로 돌아가 여행사에 물어보면 잘 가르쳐 줄 겁니다.” 하기에,
그 쪽으로 다시 짐을 옮겨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쪽 모퉁이에는 노숙자인지 여행객인지 모르지만 천정이 있는 쪽 바닥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웅크리거나 눕거나 쪼그린 채 잠을 자고 있었고,
아직은 시간이 이른지 거기도 문이 닫혀 있어서,
나는 다시 거기의 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얼마 후 한 사람이 다가와,
“어디로 가려고 하는데요?” 고 친절하게 묻는 모양새가 삐끼가 분명했는데,
“우선, 물을 마시고 싶은데, 어디에 가게가 있나요?” 하고 내가 물었더니,
“여기는 물 사먹을 수 있는 데가 없어요.” 하는 거 아닌가.
“뭐라고요? 물을 사 먹을 수가 없다니. 그럼, 물 없이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여행을 다니는데요?” 하고 말도 안 된다는 듯 다시 묻자,
“그래도 쿠바는 물을 사 먹을 수 없거든요.” 하기에,
나는 콧방귀부터 뀐 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어요? 여기 쿠바 사람들은 물도 안 마시고 사나?” 하고 다시 빈정거리는 투로 이젠 묻는 게 아니라 따지듯 묻자.
“우리는 물을 안 사 먹어요.”하기에,
“사 먹고 안 사먹는 거야, 당신들 자유고, 그럼, 수돗물은 어디서 먹을 수 있는데요?” 하고 물으니,
그 얼마 전 거기 여행사 쪽 건물의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서 한 여인이 걸레로 바닥 청소를 하고 있는 쪽을 가리키며,
“저 옆에 들어가면 될 걸요?” 하고 가르쳐 줘,
무엇보다도 목이 말랐던 나는, 그 지친 몸에 무거운 짐까지 끌고 그 쪽으로 가서 그 청소하는 여자에게 물으니,
“지금은 안 돼요!” 하고 단호하게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기에 수도가 있다는데, 그저 물만 마신다니까요!” 하고 나도 화가 나서 말을 하자,
“아무튼, 안 돼요.” 하고 인상까지 쓰기에,
기가 막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억지를 부릴 수도 없어서 그냥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걸 지켜보던 삐끼가,
“그럼, 내가 물을 구해 올 게요.” 하더니 어딘가로 뛰어 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저 놈이 또 물을 구해 와서 나에게 또 얼마나 삥땅을 치려고 그러나?’ 하는 경계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래도 물을 마실 수만 있다면, 그깟 다소간 수고비 정도는 지불할 수도 있다는 심정으로 그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한참 만에 그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면서,
“지금은 불가능해요!” 하니,
“아니, 여기는 물 파는 가게도 없어요?” 하고 내가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쿠바는 물을 안 팔아요.” 하기에,
“말도 안 돼! 무슨 놈의 나라가 물도 못 마시게 돌아가? 이게 나라야?” 하고 더 짜증스럽게 불평을 했는데,
“근데, 어디를 가려고 하는데요?” 하고 다시 묻기에,
“나는 ‘까보 끄루스’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가는데, 여기서 뭘 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하자,
“그래요? 그럼, 좀만 기다려 보세요.” 하더니 그가 그 너머 몇 대의 택시들이 서 있는 곳으로 뛰어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갈증 때문에 도무지 참을 수가 없던 나는, 다시 그 버스 사무실이 있는 건물 철창을 지나 아까 청소하던 여자 쪽으로 가서,
“나, 목말라 못 살겠는데, 어디서 물을 마셔야 돼요?” 하고 인상까지 쓰면서 신경질적으로 물었더니,
여전히 못마땅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면서 손을 들어 조금 더 기다리는 신호를 하기에,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어?” 하며, “당신들은 물 안 마시고 사나요?” 하고 큰 소리를 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잠깐 기다리세요.” 하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곧 나오면서는 물 2리터짜리 패트병을 보여주면서,
“70 뻬소!” 하는 것이었다.
기가 막히고도 우스웠다. 그리고 나는 약간 당황하기까지 했다.
왜냐면, 그 주변에는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몇 명은 되었고, 여전히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데도, 그렇게 아주 공공연하게 물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당황하기까지 했던 건,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그 물을 사먹고 싶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겐 정말 ‘생명수’ 같은 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대용 가방을 뒤져보니, 하필이면 잔돈이 합해서 63 뻬소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거스름 돈 있나요?” 했더니,
“No,” 하면서, “거기, 100 뻬소짜리도 있구만. 그걸로 줘도 되잖아요?” 하기에,
그렇잖아도 화가 치밀었던 나는,
“내가 단 돈 1 뻬소라도 더 주나 봐라!” 하고 한국말로 웅얼거리면서, “나도 더 이상은 못 줘!” 하고 눈을 부라리자, 그제야,
“그럼, 그거라도 주세요.” 하기에,
마지못한 척(?), 겨우 물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물을 들고 거기 철창문을 나왔는데, 이제는 또 삐끼가 오더니,
“거기 ‘까보 끄루스’까지 가려면 직접 가는 버스는 없고, 여기서 ‘바야모(Bayamo)’까지 간 다음 거기서 갈아타야 한다는데, ‘바야모’에 가는 버스는 ‘비아술’ 차로 오후 3시에나 있다는데요?”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알 게 되었다. 내가 가야할, 그리고 어젯밤에 갔어야 할 곳이 ‘바야모(Bayamo)’라는 도시라는 걸. 그러고 보니, 토니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했는데, 내가 그 지명을 단 번에 듣고 기억하지 못한 일로 여태까지 이런 고통을 당해왔다는 게 상기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일단,
“그럼, 몇 시간을 기다려야 돼?” 하면서 난감해 하자,
“택시로 가려면 150불이라는데......” 하기에, 나는 또 기가 막혀,
‘이 도둑놈들!’ 하면서,
“그렇게나 비싸게 주고 갈 사람이 어딨어? 내가 어제 아바나에서 여기로 오는 버스를 갈아 탄 곳까지 올 때도 50불을 주고 왔는데, 여기서 거기가 얼마나 먼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동쪽 지방이 분명한데, 그 돈을 내고 택시를 타라고?” 하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자,
“아바나에서 올 때는 합승이지만, 까보 끄루스에 가는 건 혼자 가기 때문에, 왕복 비용까지 받아야 해서 그렇다는데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듣고 보니 일리는 있는 말 같았다. 그렇지만,
“아무튼, 그런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긴 한데, 아직 8시도 안 돼... 남은 시간은 충분하니, 내가 물도 좀 마시고, 생각도 좀 해 보고, 가게 생기면 당신을 부를 테니, 나를 좀 가만히 있게 내버려 둬 주세요.” 하고 하도 들러붙으려고 해서, 전후 상황 설멸까지 곁들여 사정조로 말을 했더니,
“알았어요......” 하고 다시 택시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겨우 안정을 찾고, 나는 물을 마시려고 물병 뚜껑을 돌려 땄다.
그런데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여전히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를 주시하기에, 게다가 너무 힘들고 약도 올라있었기에,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어? 아니, 사람들이 물도 안 마시고 사나? 도대체 물도 사 먹을 수가 없는 나라라니, 이게 무슨 나라야? 말도 안 돼!” 하고 짜증스럽게, 그렇지만 혼잣말처럼 내뱉었는데,
내가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일반적으론(다른 나라라면) 누군가는,
“저기, 어딘가에 가면 수퍼가 있으니 거기서 사 드세요.” 하는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말은 없고,
“그니까 여기가 쿠바에요.” 하는 자조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불평한 ‘물을 사 먹을 수 없는 나라’ 라는 말에 수긍과 동조를 하는 모양새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물을 꿀꺽꿀꺽 마시면서도, 그 말이 나에겐 하나의 슬픔으로 와 닿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바나에서도 그랬잖은가 말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서야 겨우 물을 살 수 있었는데, 물 한 병 사는데 여권을 요구했고 비자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다고도 했던 걸 보면......
그리고 ‘까사’ 주인이 물 한 병을 주는데, 이런 생수도 아닌, 그저 수돗물을 패트병에 담은 것 같은 물이었던 걸 보면......#
#적시에 만난 귀인(貴人)#
그렇게 갈증을 달랜 뒤 다시 앉으려고 보니,
내가 조금 전까지 앉았던 좌석에 50대로 보이는 한 부부가 앉아 있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그 자리에 앉기를 주저하자, 그들이 자리를 조금 내주며 앉으라고 하기에 자리를 좁혀가며 앉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시 멍한 모습으로 그리고 풀 죽은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는데,
갑자기 그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스페인어를 참 잘 하시네요.” 하면서, “여기 우리 집사람이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교산데......” 하기에, 멍해지고 있던 내가 ‘스페인어 교사’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여,
“아, 그런가요? 저는 옛날에 바르셀로나에서 몇 년을 살아서, 그나마 이렇게라도 조금 스페인어를 할 수 있답니다.” 했더니,
“아니요! 아주 잘 하세요.” 하고 이번에는 그 여자도 나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까보 끄루스(Cabo Cruz)’라는 바닷가 마을에 가려고 하는데, 혹시... 여기서 거기를 어떻게 해서 가야 하는지 아시나요?” 하고 정중하게 묻자,
“그래요? 우리도 거기 ‘까보 끄루스’에 가봤던 사람들인데, 거기가 조용하고 아름답긴 한데... 가시기가 좀 까다로울 걸요?” 하는 식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왜냐면 여태까지는 내가 그렇게 말을 하면, 모든 사람들이 잘 모르던 곳이었는데, 이들 부부는 그 현장에 직접 가봤던 사람이라는 데다, 그 쪽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나에겐 충분한 정보를 줄 사람 같기도 해서, 내가 그들에 바짝 다가앉았던 것이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 ‘까보 끄루스’ 주변이 ‘국립 환경보전 지역’이란 것도 알고 있을 정도로 여자가 똑똑한 건 물론 그 주변 지형과 문화에 대한 얘기까지를 해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연환경 문제에도 아주 적극적인 자세로, 여자는 뭔가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여자는,
내가 갔어야 했던 곳이 ‘바야모(Bayamo)’인데,
여기 ‘산티아고’하고는 지방 자체가 다르고(우리로 말하면 다른 ‘도(道)’나, ‘군(郡)’인 듯.) ‘그란마(Granma)’라는 다른 지방에 속한 한 큰 도시인데, 거기서 또 작은 행정구역인 ‘니께로(Niquero)’까지 간 다음(그렇다면 여기는 면 소재지 정도), 거기서도 또 바다 쪽으로 제법 들어가야 그 외딴 마을인 ‘까보 끄루스’라고,
자신들의 핸드폰에서 지도를 찾아 보여주면서까지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제 내가 가려고 했던 ‘까마궤이(Camaguey)’는 중간 지점은 맞은데, ‘까보 끄루스’와는 너무나 먼 곳이었다는 것이고,
어젯밤 내가 즉흥적으로 연장해서 오게 된 여기 ‘산티아고’도 그 방향과는 많이 어긋난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어젯밤 내가 그 깡통버스를 타고 오느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게 지나친 도시들이 몇 개 되었는데, 그걸 알아야 그 ‘바야모’란 도시와 얼마나 다른 곳으로 지나쳤는지를 알 수 있겠는데, 나는 여전히 어젯밤의 행로를 구체적으로 그녀에게 설명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같은 동쪽은 동쪽이어서, ‘바야모’나 ‘까보 끄루스’에 가려면 여기서는 또 서쪽으로, 더구나 다른 지방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나 같은 외국인은 여기서도 ‘비아술’이란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데,
아까 삐끼가 알려준 대로 그 버스는 오후 3시에나 출발한다고 하니,
그때까지 기다린다고 해도 내가 카드결제를 할 수 없어서 그 버스를 탈 수 있을지도 의문이어서, 이래저래 걱정은 증폭되기만 했다.
더구나 오후 3시까지 기다려야 할 시간이 너무 아깝기도 했지만, 만약 운 좋게 그 버스를 타고 ‘바야모’에 도착한다고 해도, 저녁 시간이 될 텐데,
‘그렇다면 거기에서도 또 밤을 새워야 된다고?’ 하는 걱정거리 하나가 추가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 이 넉넉하게 남아있는 낮 시간에 그 ’바야모‘라는 도시에 가서 목적지인 ’까보 끄르수‘에 조금 더 가까이 들어간다던지, 안전한 잠자리를 잡아야 쉬기라도 할 텐데, 오후 세 시에나 버스가 있다면 내가 그 때까지 어디서 시간을 보낼 것이며, 현지에 도착해서 오늘도 또 잠자리 때문에 길에서 얼마나 헤매거나 또 공포에 젖으라고? 그건 안 된다. 그건 피해야 한다. 차라리 택시를 잡아타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튼 그 여자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내 정확한 상황은 그랬고,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차표 구매 역시 문제가 있을 터라, 이래저래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들도 나를 도울 의지가 충분했고, 나 역시 그들에게 매달리고 있던 터라 어떻게 해서든지(그들의 도움을 빌어서라도) 버스표를 구매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애써도, 더구나 토요일이라 그런지, 결국 버스표를 예매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니 그들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난감하고 한심하고 막막한 상황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것인데,
그 와중에도 여자가, 순전히 ‘자신의 생각일 뿐’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가만히 보니 당신은 건장한 젊은이도 아니고, 분명 현금을 소지하고 있을 텐데, 당신 돈도 문제지만 가방의 옷과 소지품 모두가 쿠바 사람들에겐 탐나는 물건이 될 수도 있다.” 면서, “당신의 모든 것이 ‘공격의 타겟’이 될 수도 있으니, 특히 장거리면서 ‘까보 끄루스’ 같은 한적한 시골 마을까지 혼자서 택시를 타고 가는 건 피해야 할 거예요. 중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어요?” 하고.
맞는 말이었다. 나는 그게 충분히 근거가 있는 말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는 별의 별 상상이 다 되면서,
이제는 또 겁도 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 나는 스페인 마드릳 중심부 으슥한 곳에서 모로코인 2인조 강도를 만나, 앞에서는 칼로 내 목을 겨누고 뒤에서는 목을 졸라 정신을 잃고 쓰러져(나중에 정신이 돌아왔지만, 살해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었다.), 내가 가졌던 모든 돈 될 것을 몽땅 털린 전력이 있던 사람으로,
그 일까지 상기되면서는, 이제는 공포감까지 몰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는 아바나에서 공공연하게 열 명 가까이 합승을 해서 택시를 탔기 때문에 그런 위험과는 결부시키지 않아도 되는 여정이었지만, ‘십자 곶’은 외진 곳이기도 한데다, 합승할 사람도 없을 터라, 바쁘다고 나 혼자 택시를 타고 갈 경우엔, 어딘지도 모르는 어떤 한적한 곳에서 어떤 상황과 맞닥뜨릴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농후할 것 같았다.
물론 그 여자의 말이 지나친 기우일 수도 있다. 그런 일은 그리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다 나는 ‘쿠바는 안전한 나라’라는 소리를 듣고 왔기 때문에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작 쿠바인이 나에게 그렇게 조언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어찌 부정만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그 상황의 나는 한 번 그 여자를 신뢰하게 되다 보니, 그 여자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에겐 정말 무슨 철칙이나 예언처럼 들리기도 했기 때문에,
소름까지 돋도록 정신이 번쩍 들었고, 심신이 바짝 오그라들고도 있었다.
그렇잖아도 힘든 상황에서의 나는 정말, 이제는 사면초과라 아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 정말, 내가 왜 이 나라에 왔을까?’ 한심하기 짝이 없도록 후회막급이었다.
물 한 병 제대로 사 먹을 수 없는 것도 모자라, 어디 돌아다닐 자유마저 없고(버스표를 살 수조차 없으니), 이제는 목숨을 연명하는 일까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니......
게다가 그들 부부도 10시 반인가는 어딘가 다른 곳에 갈 버스를 타려고 나와 있던 참이라, 이제 그들마저 떠나버리면, 나는 이 낯설고 삭막한 도시에서 어디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함과 조바심에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 미치겠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날 그 어떤 방법도 없다는 건가?” 하고 혼잣말이자 그들도 들을 만큼 큰 한탄을 하고 말았는데...... #
#‘불법’으로 점철된 ‘기적’#
코가 석자로 빠져 넋을 놓고 앉아 있던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그들은,
갑자기 여자가 남편에게 조용히 뭔가를 얘기하면서 잠시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더니, 남편이 바삐 다시 여행사 사무실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들도 어딘가로 간다고 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일로 간 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얼마 뒤에 돌아와서는 나에게 바삐 뭐라고 얘기를 하던데,
여자 얘기는 잘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남자 말은 너무 빠르고 또 뭔가 여기 쿠바 사람들의 특유의 어투가 나를 헷갈리게 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재차 확인을 해 보니,
“당신이 지금 20불을 내면 곧 ‘바야모(Bayamo)’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거 같았다.
난,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린가 했다. 너무나 극적인 일이라서.
‘지금 이 순간에 무슨 그런 일이 있냐고!’ 하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리벙벙해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웬 말쑥한 기사 정복을 한 60은 돼 보이는 기사가 우리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나를 한 번 흘끗 바라본 뒤 돌아갔고,
그와 동시에 다시 남편이 다가와,
“저 기사가 운전하는 다른 버스가 곧 ‘바야모(Bayamo)’ 방향으로 출발을 하는데, 20불을 준비해서 우선 5불을 나에게 주면, 중간에서 이 일을 꾸민 아까 당신이 물을 샀던 청소하던 여자에게 갖다 줄 거고, 당신은 15불을 가지고 있다가 버스를 탄 뒤, 나중에 저 버스 기사가 요구할 때 주면 되거든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운전기사가 확인차 나를 보러 왔던 모양인데,
그러면서 자신에게 바로 5불을 달라고도 했는데,
그가 나에게 했던 말 자체는 충분히 이해를 했는데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데요?” 하고 그 진의를 묻자, 그가 잠깐 머뭇거리면서도,
“이건 정식으로 하는 게 아니고... 그렇지만 버스 기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 여기, 쿠바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고 또 이렇게들 사니, 그렇게 알고, 바야모에 가려면 빨리 돈을 주세요. 시간이 없어요!” 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 거의 귓속말처럼 바삐 속삭이기에, 그제야,
“예?” 하면서 돈을 꺼내려 휴대용 가방을 열면서도,
‘이럴 수도 있나? 여기서는 이렇게도 산다고?’ 하는 생각과 함께, 아니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자동적으로 휴대용 가방에서 돈을 꺼내고 있었다.
이들 부부가 하라는 대로 해서 내가 해를 입을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신뢰감도 이미 작용하고 있었고, 어떻게든 그들의 말에 따라야만 한다는 절박함과 긴박감도 함께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나에게 생겼던 한 행운(?)은, 외국인들이 타야 할 ‘비아술’ 여행사 버스가 아닌 쿠바 내국인만을 실어 나르는 다른 회사의 버스를 타는 일인데, 공교롭게도 그 버스가 바로 얼마 뒤에 ‘산티아고’를 출발하는데(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바야모(Bayamo)’란 도시를 지나가기 때문에 내가 그 버스를 타면 된다는 건데,
다만 외국인인 나는 거기 버스 터미널에서 정식으로 그 버스를 탈 수는 없기 때문에, 야매로(사기로. 그래서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그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모든 일을 주선한 청소부 여자에게 수고비로 5불을 주고 나중에 버스 기사에게 15불을 주면,
그 버스가 나를 어찌됐든 ‘바야모(Bayamo)’까지 실어다 줄 거라는 것이었다.
물론, 쿠바 자체에서도 불법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 순간의 나는 그게 불법인지 인식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그들 부부의, 여기 쿠바 사람들이 하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이런 식의 야매는 공공연하게 벌어지니 걱정 말라는(아까 그 청소부 여자가 나에게 물을 판 것처럼),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한 말을 떠올리며,
그들 부부가 하라는 대로는 따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상황에서의 나는(조금만 더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기라도 했다면) 한국에서처럼 ‘불법’ 운운하면서,
"난 그런 거 안 해!"하고 거부했을 수도 있다.
난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그 순간엔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혼이 빠져 그 일에 휩쓸리고 말았는데, 처음엔 그 부부가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 하다가,
‘어? 이건 아닌데...... 내가 이래도 되나?’ 했던 순간이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미 나는 그 일에 한 쪽 발을 담근 상태였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만약 이 버스를 놓친다면, 그리고 얼마 뒤 이 부부마저 떠난다면......’ 하는 겁에 질려 있는 상태여서, 어쩌면 내 생명의 안위까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복합적인 상황이었기에,
무엇보다도 거기서 그 부부와 헤어지게 된다면, 그 지친 몸에 꼼짝없이 쿠바라는 나라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조차 잃은 채 발이 묶여 오도가도 못할 수도 있었던 터라, 더구나 버스가 곧 출발한다기에 아무 정신도 없이,
정말 공교롭게도 그 절박한 순간에 ‘바야모(Bayamo)’로 가는 버스가 하늘에서 느닷없이 뚝 떨어져 내려와 나를 거기까지 실어다 주겠다는 행운을 잡아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나에겐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던가!
(사실 그때 그 버스를 놓쳤다면, ‘까보 끄루스’행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맘을 바꿔먹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 순간이 나에겐 이 쿠바에서의 체류를 위한 변곡점이었다고 나중에야 인식하게 되었는데(물론 그 순간엔 그마저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하늘이 시킨 일이라면, 하늘에 진심어린 감사라도 드리고 싶다. 나를 쿠바에 남게 해준 일이자, 어차피 그것도 ‘불법으로 하늘에서 도와준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야매’고 뭐고 그런 건 그 상황에서는 관심조차 가질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좋은 기회를 맞는 순간까지도 문제가 있었다.
가만 보니 나에겐, 또 잔돈(달러)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어딜 가서 달러를 바꿀 수도 없는 상황이라, 한 순간,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야 한단 말인가!’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바뀌고도 있었는데, 그 남편이,
“(5달러짜리 지폐)달러가 없으면, 대신 쿠바 뻬소라도 줍시다!” 하기에,
또 쿠바 돈을 겨우 맞춰 500뻬소를 만들어 그에게 쥐어주기는 했는데,
그러고도 또 15불을 만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10불’짜리 지폐는 없고 ‘10유로’가 있어서 그걸로 대체하기로는 했는데, ‘5불’이 또 문제였다.
‘20불’짜리 지폐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20불을 다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또 난관에 봉착했는데, 이번에도 쿠바 돈과 합해서 ‘15불’을 만들어 보자면서, 그 여자가 가지고 있던 쿠바 돈을 환전해줘서 가까스로 정확한 액수를 맞춰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내가 차를 타려면 ‘버스 터미널’에서 멀리 떨어진 뒤 쪽 어딘가에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거장에서 정식으로 차에 오를 수 없으니(외국인이라),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 거기서 얼마 쯤 떨어진 한 쪽 구석에 가 있어야, 정거장을 출발한 버스가 나와 거리 한 쪽에서 나를 태울 거라기에,
나와 그 남편은 무거운 짐을 끌고 들고 뛰다시피 그 뒷동네로 가야만 했다.
그러자, 아닌 게 아니라 버스 한 대가 큰 길로 나오더니 차선을 변경하려고(좌회전) 중간에 섰는데, 내가 탈 버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남편이 내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뛰어가더니 기사와 애기를 나누던데,
뒤 쫓던 날더러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해서 뛰어가 보니, 좌회전 그 앞 쪽 건너편으로 가 있으라기에,
우리는 또 정신없이 짐을 들고 길을 두 번이나 건너서 앞쪽 반대편으로 겨우 가게 되었고, 곧 도착한 버스가 우리 앞에 섰다.
그러더니 덩치가 건장한 흑인 조수(?)가 나오더니 내 가방을 버스 짐칸에 실었고, 날더러 어서 타라고 다그치기에 정신없이 버스에 올랐더니 내가 앉을 자리는 없었다. 아니 이미 서너 사람이 중간 통로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그들도 나와 같은 불법 탑승자인가 보았다.)
그러다 보니, 날더러는 바로 운전석 옆 계단에 앉으라기에, 겨우 앉았는데,
그와 동시에 버스의 문이 닫히고 출발하려는데,
아,
그 여자는 보이지도(우리를 쫓아오지도 못해) 않았고, 그 남편이 내가 계단에 앉는 모습까지를 보면서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손을 흔들던데,
덩치 큰 흑인의 다리 가랑이 틈사이로 보이는 그를 보며,
하마터면 나는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렇게 버스는 출발했는데,
그들 부부를 만나면서부터 버스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나에겐 마치 무슨 첩보영화의 한 작전 같이 긴박하고 위태롭기까지 했던 터라, 어찌나 정신이 없었던지 눈물 나올 겨를도 없었지만, 어찌 내가 감동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제야 나는 정신이 좀 들었는데,
만약 그 부부를 만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한 기적 같은 과정을 거쳐, 나는 결국 ‘바야모’라는 곳에 간다는 버스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가고는 있는데...#
어쨌거나 여기 ‘쿠바’란 나라도 ‘불법’이거나 ‘비정상적인 통로’의 교통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가 보았다. 열악한 교통 환경이기에, 그렇게라도 해야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그런 게 어디 교통뿐이랴? 다른 삶의 모습 곳곳에도 그런 일들이 숨어있으리라는 건 작금의 이 일 하나 만을 겪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겠고......
그렇게 나는 버스에 올랐고, 버스는 또 얼마를 가는지 두 시간 넘게 이제는 산도 제법 보이는 구릉 길도 달려(중간에 자리가 나서 나는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가고 있었다. 그런데 구릉 길로는 마차가 눈에 띄게 많이 다니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나왔던 ‘마부’라는 노래가 절로 불려지는 듯한 기분에 젖고도 있었다.
뚜각또각 말 발굽소리가 들리는 듯한 리듬의 다소 경쾌하면서도 약간 서글픈 멜로디의 노랜데, 그 가사 중에는,
‘나는 열심히 일한다네, 장갈 가기 위해서~’ 라는 대목이 있어서,
그걸 상상하다 보면 절로 입가에 웃음이 배어나와,
‘내 몸 상태가 좋기만 하다면, 그런 노래를 들으며 이 길을 달리는 것도 참 재밌겠다!’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그만큼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버스가 달리는 내내 어디라도 길 가에서 사람들이 차량을 불러 세우는 모습이 눈에 띄어,
‘버스(대중 교통수단) 타기가 이렇게도 힘든 나라니, 사람들이 여행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얼마나 불편할까? 게다가 눈에 띄는 대중교통 수단이라는 것도 대형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많은 ‘깡통 버스’들이던데......’ 하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내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더구나 어젯밤 탔던 버스를 떠올리면 더더욱......
그러다 보니 또 그런 상황에서도 버스를 얻어 타고 가고는 있었지만 가봤자 희망도 없는 ‘십자 곶(Cabo Cruz)’으로 향하고 있는 내 모습이 다 부질없는 일만 같았다.
거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가고는 있지만, 뭐 확실한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 이런 암울한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간단 말인가? 그리고 그 끝은 어떤 것일까?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도대체 왜? 이런 나라에 와서 이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인지......’ 여전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미치겠다. 이렇게 희망 없는 행로를 밑도 끝도 없이 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런데 이제는 그 행로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고, 그런데 희망도 없고, 그렇다고 당장 다 때려 치지도 못할 상황이고......’
그런데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한 가지 뭔가 이상하면서도 나를 의아하게 만드는 게 있었는데,
‘도대체 왜 내가 자꾸만 거기 ‘십자 곶’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아바나 공항에서 ‘토니’라는 친구를 만나 거기로 가겠다고 계획을 세웠던 일이야, 그렇다고 칠 수 있다. 그 누구를 만났다 해도 그 사람이 신뢰를 주었다면 나는 그 사람 말을 따랐을 테니까. 그런데,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던 게 바로, 그 친구 ‘토니’와 헤어지는 순간부터였는데,
그래서 그 마을에 가지 못한다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 계속 펼쳐지고 있는데도,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내가 왜 그 마을로(향해) 한 발짝씩 점점 다가가고 있는지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이 물거품이 돼도 이미 몇 번은 그랬을 상황의 연속으로,
안 될 듯 안 될 듯하면서도, 조금 씩 조금 씩 현지에 가까워져가고 있으니,
‘그게 우연일까? 아니면, 어쩌면 나에겐 이미 정해져 있던 길일까?’ 하는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상하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면, 애당초 막막한 상황의 아바나 공항에서 그 ‘토니’라는 젊은이를 만난 것부터도 뭔가 예삿일은 아닐 것 같긴 했다. 물론 운이 좋았던 건 부정할 수 없었지만 어떻게 그런 맞춤형의 도우미를 딱 그런 적시적소에 만난 것인지......
그걸 그냥 우연이라고 치기엔, 너무 우연이 아닐 것 같은, 뭔가 누군가의(?) 계시가 없이는 그런 일이 쉬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역시 없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2012년 ‘모로코’에 갔을 때도, 내가 첫 날 머물던 호텔의 한 성실한 보이(종업원)의 말을 그대로 믿고 행선지를 정해 끝내 그 시골 바닷가마을까지 찾아가 두 달 반여를 지냈던 일이 있다.)
그러고 보면, 왜 나는 어딘가 낯선 곳에 가면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그건 누구에게나 벌어질 일이고), 그 사람을 전적으로 믿고 그대로 따라주다 보면, 이렇게 뭔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생기면서 하나의 길이 열리는 것인지......
다른 사람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아니면 나에게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건지 도대체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뭔가 분명, ‘말로(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을 ‘운명적’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고, 그렇다면 나는 이번에도 결국은 그 길로 가게 될 것 같은데......’ 하면서도,
‘에이, 그건 억측이야! 내가 ‘토니’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겠지. 굳이 나라는 사람에게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내가 무슨 신의 계시를 받고 태어난 사람도 아니고(만약 그랬다면 이런 지지리 궁상을 떨며 한 평생을 살아왔겠는가? 그리고 여전히 힘겹게만 살아가겠어?) 특별한 능력을 받아 살아온 사람도 아닌데, 괜히 과대망상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어. 이러다 그 일이 또 삐그덕 다른 식으로 흘러 또 다른 일로 이어질지도 모르고, 그렇게 돼도 나는 할 말이 없을 테니까. 너무나 ‘운명적’ ‘드라마틱’ ‘미스테리’ 같은 말을 남용하다 보면, 남들이, ‘웃기지 좀 마!’ 할 거고, 내 스스로도 민망해지는 기분이니까.’ 하고,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을 가치 절하라도 시키려는 자세를 취하고도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는 거기 ‘바야모(Bayamo)’란 곳에 닿는 건 시간문제고(중간에 한 사람에게 물으니 12시 반 경에 도착하리라고 했다.),
거기에서 다음 행선지인 ‘니께로(Niquero)’ 그리고 ‘십자 곶(Cavo Cruz)’까지 가야 하는데,
이 대중교통 수단이 빈약한 쿠바에서 두 번 정도의 단계가 남아있는 목적지를 단 번에 갈 수는 없을 테니,
‘오늘 밤은 중간인 ‘니께로(Niquero)’에서 자게 될 건가? 그렇게 되면 호텔을 잡아야 할 텐데, 거기에도 그런 숙소가 있기는 할까?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초행길이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긴 한데, 그렇게 결국(오늘은 힘들지 모르고 내일은 가능할까?) ‘십자 곶’에 닿는다 해도, 내가 머물 공간이나 있을까?’ 하는, 그곳을 향해 가고 있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믿을 건 아무 것도 없는 암울한 행로는 끝 모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도착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또,
‘그나저나 ‘바야모(Bayamo)’에서 11시에 날 기다리고 있었을 그 택시 기사는, 이미 허탕쳤을 텐데(시간이 이미 지난 뒤였다.)...... 돌아갔겠지? 아바나 공항에서 토니가 직접 그와 약속을 잡아놓는 걸 내가 다 듣고 있었는데, 그의 전화번호를 받은 것도 아니고, ‘비아술’ 버스를 타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 약속은 이미 깨진 것인데, 아무리 내가 그 약속을 일부러 안 지키려고 해서 그랬던 건 아니지만, ‘어떤 한국 놈인지, 사람 허탕쳐놓았으니 어딜 가든, 재수나 옴 붙어라!’ 하고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을 테지.’ 하는 생각 역시 아니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또 웃기게도, 그러면서도 나는,
‘그런데 혹시? 그가, ‘비아술’ 버스에서 내가 내리지 않은 걸 확인한 다음, 돌아가지 않고, 반대 방향이긴 하지만, ‘산티아고’에서 도착하는 이 버스와의 시간 차이가 약 한 시간 반 정도니(그것도 낮이고), 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까?’ 하는, 일말의 아주 희미한 그러면서도 만의 하나인 가능성에 대해서도 상상은 해보고 있었다.
‘물론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람 일이니 또 모르잖겠는가 말이다......’ 하고 나는 뭔가 모르지만,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 사람은 택시 기사라, 누구보다도 이 나라의 교통 시스템에 대해선 잘 알 테니, 허탕 친 건 그렇더라도, 그렇지만 ‘한 번 친 거, 두 번 못 칠까?’ 하는 심정에, 한 번 더 칠 각오를 하고, 반대 방향에서 오는 이 버스까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
(‘글쎄, 그 가능성은 너무나 희박하지만, 그럴 수도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한 가닥 바람이 내 맘 깊숙한 곳에는 자리 잡고 있었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나의 이 길이(‘까보 끄루스’를 찾아가는) ‘이미 운명적으로 결정된 길’이라고 믿겠다!’ 하는, 이제는 내기라도 하려는 듯, ‘투기성’의 바람까지도 갖기 시작했다.
그건 그 막연한 상황의 나 자신에게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
바, 또 하나의 세상 끝 ‘까보 끄루스’
그런데도 나는 아마득하기만 한 어딘가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누가 있는지 같은 건 이제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설사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또 새로운 그 어딘가로 떠나게 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그저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쩐지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 이것도 기적?#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 그 목적지는 있게 마련일 터였다.
내가 탄 버스는 대번에 보기로도 커다란 한 도시에 진입하고 있었는데, 거기가 ‘바야모(Bayamo)’라는 도시일 것이었다. 그런데 나에겐,
‘결국, 다 왔단 말인가?’ 하는, 설렘보다는 뭔가 주저하는 마음부터 앞서기 시작했다. 그건 또 다른 여정의 시작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도시가 큰 만큼 터미널 역시 상당히 커보였는데,
막 버스에서 내렸던 내가 화물칸에서 짐을 꺼내고 있던 기사에게 다가가,
“그 뒤에 있는 검은 가방이 내 건데요.” 하고 말했고, 그가 가방을 꺼내 나에게 건네는 순간,
“꼬레아노, 꼬레아노?” 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나에게 다가오는 한 약간 뚱뚱한 사람이 있었다. (원래는 ‘리(Lee)’라고 부르기로 약속까지 해놓고는 엉뚱하게 '한국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였다.
“택시 기사?”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던 내가 반색을 하며 확인하자,
“당연하지요(Claro que si)!” 하는 그의 표정이 환한 보름달 같았다. 정말 그렇게 웃고 있었다.
아!
기쁨과 놀라움 반가움..... 그런, 여러 감정들이 한순간에 나를 감싸왔다.
환한 대낮(12시 반 맑은 날씨)의 따뜻하고 나른함만큼이나 포근한 안도감에 내 다리의 힘까지 좌르르 풀리고 있었다.
'아, 어째 이런 일이! 이런 기적이!'
그를 보면서도, 확인까지 했으면서도 믿겨지지가 않아, 나는 한동안 입도 다물지 못했던 것 같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거기 ‘까보 끄루스(Cabo Cruz)’라는 마을에 가야만 한다. 아니, 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운명적으로도 이미 정해져 있던 길일 테니까.’ 그 생각부터 들었다. 아니, 이젠 확신까지 드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아, 분명 ‘길’은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거야!’ 그동안의 암울했던 상황이 그 순간으로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이제 맘 놓고 나는 운명이 정해준 길만 따라가면 될 테니까. 굳이 내가 미리 걱정하고 마음 졸이며 새로운 길을 탐색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니까......
택시 기사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내 가방을 끌고 앞장서더니, 지금 바로 현지에 갈 기세로 서두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아침도 거른 채 물만 마셨던 나는 배가 너무 고파, 더구나 그 ‘십자 곶’이란 마을에 들어가면 가게도 없다는 얘기를 이미 들었기에,
“이 보슈! 아무리 급해도 우선 뭐라도 좀 먹고 가야 하지 않겠소? 내가 아침도 못 먹어서 배가 고파 죽겠는데......” 하고 짜증조로 얘기하면서, “내가 듣기론, 그 마을엔 가게도 없다던데... 들어가기 전에 일단, 나 먹을 거라도 좀 준비하구요. 그냥 빈손으로 들어갔다가 무슨 꼴을 당하려고?” 하자,
“아, 그런가요?” 하면서도 다소 난감해 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나는 또, 관심의 집중이었던 택시 가격도 알아야만 해서,
“그리고 거까지 가는 비용은 얼마나 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5천 쿠바 뻬소(50달러)요.” 그의 답은 간단했다.
“아니, 뭐가 그리 비싸?” 하고 내가 퉁명스럽게 물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요.” 하고 그는 별 감정도 없는 듯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래봤자, 이제는 다 왔는데, 얼마나 남았다고 그렇게 비싸게 받아? 여긴, 어딜 가도 맨 도둑놈들만 있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니, 이 보슈! 어제 내가 ‘아바나’에서 어젯밤 자정 쯤 ‘프로빈시알’ 이라나 뭐라나 하던 곳까지 온 것도 5천뻬소였는데, 여기서 ‘까보 끄루스’에 가는 게 얼마나 된다고, 똑 같은 가격을 받는다는 거요? 기껏해야 같은 지방 안일 텐데......” 하고 여전히 못마땅해 하는데도, 그는 별다른 대꾸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택시에 올랐고, 그는 거기에 서 있던 다른 택시 기사에게, 이 근방에 점심을 먹을 데가 어딘지를 묻더니, 거기를 찾아가려는 듯 차를 몰았는데,
“뭘 드시겠어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알 수가 있나? 쿠바 음식이 뭐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니...... 시장 같은 데에서 눈으로 보고 정하면 될 걸!’ 하면서도,
“글쎄요, 허다 못해... 햄버거 같은 간단한 거라도...... 그리고 장도 좀 봐야 하니, 일단 시장으로 갑시다!” 했는데,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여기, 시장이 어디드라?” 하며 난색을 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여기도 상당히 큰 도시 같은데, 아무 시장이라도 가면 되잖아요? 택시 기사가 그런 것도 몰라?” 하고 마땅찮은 표정을 지었는데,
“그런 데가 없는데......” 하니,
‘뭐, 이런 멍청한 놈이 다 있어?’(그래봤자 그는 40대로 보였으니까.) 하는 답답한 심정으로,
“아니, 사람들이 먹고 살려면, 어디든 시장은 있을 거 아뇨? 그 중 아무 데나 가자니까!” 하고 이번에는 큰소리로 짜증을 부렸는데도,(내가 쿠바 사정을 너무도 몰라서 저지르고 있던 실수였다.)
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
“웬만하면 그냥 가지 않으시겠어요?” 하고 웃음까지 보이니, 내가 기가 막혀,
“아니,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못 가겠다니까! 아침도 못 먹고 물만 마시다 왔다니까. 뭐든 먹고 가야 할 거 아뇨?” 하고 눈을 부라리며 말했는데, 그런데도,
“참내! 시장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그런 데가 있는지도 잘 모르고......” 혼자 궁시렁대기에,
“내가 듣기론, 더구나 거기 ‘까보 끄루스’ 마을엔 가게 같은 것도 없다던데, 그럼 어떡하라구요?” 하고 이제는 아예 화까지 냈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왜 먹을 게 없겠어요?” 하고, 나를 약올리려는 건지 엉뚱한(동문서답) 말만 하니, 답답하긴 했지만 또 한 편으론, 여기 ‘바야모(Bayamo)’에서는 뭘 마땅히 사 먹을 수도 시장 찾아가기도 마땅하지 않은 듯해서(사실은 내가 모르고 있었는데, 그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판단으로),
“근데, 도대체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요?” 하고 내가 하도 이상해서 물으니,
“너무 멀다니까요.” 하는 거 아닌가.
“뭐요? 아니,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멀다는 거요? 그래봤자, 같은 지방(군) 안인데?”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는데,
“150km요.” 하고 또 태연한 얼굴로 간단명료하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설마......' 하고 부정하면서, '내가 이 작은 나라에서 그렇게나 오래 걸려 여기에 도착했는데, 이제 같은 지방 안인데(우리로 말하면 군(郡)정도), 아무리 멀다 해도 한 시간 안이면 닿을 거 아냐? 그러고 보면, 이 놈도 도둑놈인가?’ 하고 내 생각만을 앞세우면서, ‘이 차를 타고 가야 돼? 아니면, 내려......’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땡볕이 내리쬐는 도심을 그렇게 빙빙 돌 수만은 없을 것 같았고, 또 일단 차에 오르고 나니, 어서 빨리 목적지에(이제는 택시를 탔으니 바꿔 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가고 싶은 조바심도 생겨,
‘그래, 조금만 더 참자. 지금 배고픈 게 문제가 아니지......’ 하고 자위를 하면서,
“그럽시다. 그럼, 그냥 갑시다!” 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결국은 요기도 못한 채 다시 그 마을을 향해 달려가야만 했던 것이다.#
# 끝없는 길#
그렇게 털털거리는 택시는, 그에 비해선 또 의외로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바야모(Bayamo)’ 도심을 빠져나와 이젠 또 변화도 없고 특징마저도 없는 것 같은 평원 길을 달리는데,
왜 그랬는지, 새삼스럽게도 나는 이 택시기사가 기특하고도 신기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오전 11시 ‘바야모(Bayamo)’ 터미널에 ‘비아술’ 버스가 도착했을 때, 내가 그 버스에 탈 수 없었기 때문에(나는 그 반대 방향인 ‘산티아고’ 쪽에서 오고 있었는데), 허탕을 치고, 나에게 욕을 퍼부으며 실망하고 돌아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내가 타고 온 엉뚱한 방향의 버스까지 기다린 건지......
‘거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만약 이 버스에도 내가 타지 않았다면 이 친구는 어떻게 했을까?’ 그게 궁금해서,
“아니 근데, 만약 내가 오늘 오지 않았다면, 어떡할 뻔 했소?" 하고 넌지시 그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는 대답은 않고 그냥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는 말 수가 굉장히 없는 편이군......’ 하면서 나는,
‘오늘 일은 ‘기적’이야. 어찌 아니겠는가 말이다. 지금도 나는 못 믿겠는데, 이 친구라고 쉽게 믿어지겠는가 말이다. 그것도 쿠바 사람도 아닌 외국인이 그 험난한 과정을 뚫고 이렇게나마(반대방향에서 오는 엉뚱한 버스를 타고 시간도 한 시간 반이나 늦게) 도착을 했으니......’ 하면서, 혼자 바둑을 복기하듯 그 상황을 되새기고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신기하고 극적이어서,
"아니, 내가... 굉장히 힘들게 여기에 도착한 거거든요? 어쩌면 어젯밤부터 길이 어긋나, 오늘은 아예 여기게 도착 자체를 못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일부러 안 오려는 게 아니었고, 못 올 가능성이 훨씬 많았다는 거요. 그런데도, 어찌어찌 해서... 이렇게 겨우 도착을 했던 건데, 만약... 내가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셈이었소?" 하고 다시 천천히 물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러니,
'아니, 이 친구가 생긴 것도 소도둑놈 같이 생겼구만, 왜 이렇게 말 수가 적어?' 하다간, '그래도 밉상은 아니네.....' 하는 식으로, 끝내 그의 대답을 받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난 다음에야, 나는 '윌리암'이라는 토니의 친구를 통해서, 이 상황의 한 대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 말에 따르면,
내가 '비아술' 버스에서 내리지 않자, 이 택시 기사가 윌리암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가 허탕을 쳤다며, 그래도 자기가 '바야모'까지 빈 차로 왔다갔다 하는 비용은 지불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항의 전화를 해왔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나는 거기까지 신경을 쓰지는 못했지만, 택시 기사로서 한 승객을 태우기 위해(그렇지만 허탕 쳐) ‘니께로’라는 도시에서 ‘바야모’까지 왕복 운행을 했던 비용에 대한 문제도 불거졌던 것이고, 결과적으론 그 책임 소재도 나에게 있었다는 것인데, 어쨌거나 그렇게라도 내가 현지에 도착했던 게, 여러 사람에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었던가를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말도 없이 쏜살같이 차를 몰았는데, 중간 중간 몇 개의 마을을 거치다 보니 도로 중간 중간에 ‘파인애플’ ‘망고’ ‘토마토’ 등을 파는 노점상이 보여,
가뜩이나 배가 고팠던 나는 군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기에,
“여기가 ‘니께로(Niquero)’요?” 하고 물으면,
“아직 멀었어요!” 하는, 여전히 단답식의 짧은 대답만을 하기에,
‘그래봤자 곧 도착하겠지......’ 하면서, 늘 그렇듯 나는 주변 풍광에 관심을 쏟으며 가고 있었는데,
마을을 하나 둘 지나고 또 지나고 또 지나도, 계속 ‘니께로(Niquero)’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니,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데?” 하고, 참다 참다 짜증스럽게 묻자,
“아직도 멀었거든요!” 하는 식으로만 대답을 하니, 답답한 건 물론 내 스스로 머쓱해지기까지 했는데,
정말 끝도 없는 길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아, 나는 배는 고파 죽겠는데, 길은 멀다 하고......
그렇게 두 시간 반 정도 지루한 평원 길을 달려서야 겨우 중간이라는(‘면’ 소재지 정도?) ‘니께로(Niquero)’에 닿았던 것이고, 그제야 그가,
“여기서도 반시간 넘게 가야 거기 ‘십자 곶’이거든요.” 하는데, 나는 이미 지친 상태였다.
그리고 처음에 그가 부른 금액이 너무 비싸다고 불만을 토로했던 나는 어느새,
‘그래서 그렇게 받을 수밖에 없는 거로구나!’ 하고 스스로도 인정하면서, 더 이상 금액에 대한 불평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세상의 누구든 자신이 정당하게 한 일의 대가는 받아야 하니까.
아무리 내가 돈을 아껴야 할 가난한 여행객이라지만, 상대방에게 일을 시켜놓고 무작정 깎기만 하는 사람 역시 아니니까.
더구나 그는 최선을 다해 차를 몰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그에게,
“근데, 이 보슈! 나는 중간에 너무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하마터면 여기에 못 올 수도 있었거든? 정말이라니까! 근데, 만약... 내가 끝내 오지 못했다면, 넌 어쩔 뻔했냐고? 이렇게 오고가는 기름 값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그쯤 되자 나에게도 그런 게 인식되어져서) 하고 두 차례나 더 물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내가 그렇게 묻는 걸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이면서도 고개만 끄덕이며 웃을 뿐, 말을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답답했던 내가,
"너,(스페인어로는 '너'라는 표현이 잘 못도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도 이렇게 말이 없냐?" 하고 물어도,
여전히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어서(그렇지만 밉상은 아니어서),
결국 내가 지고 말았다.
‘내 이 세상을 그렇게 떠돌아다녔어도, 이런 택시 기사는 또 처음이네......’ 하면서, 나도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 끝 마을#
그런데 길은 거기서도 곧 끝나는 게 아니었다.
‘니께로(Niquero)’라는 도시는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어서 그 거리만도 상당했고, 거기서 또 해변 쪽으로 나오더니, 차는 또 숲속으로 들어가던데,
이제 길은 더 조악해진 그러면서도(아스팔트길이긴 했지만 너덜너널한) 숲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움푹 팬 곳이 너무 많아 덜컹거릴 수밖에 없는 길을 택시는 이리저리 쿵쾅거리며 정신없이 달리는데, 나는 이제는 차라리 기가 막히기까지 했다. 다 왔을 듯도 한데, 그 길 또한 끝이 없도록 길었던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한다는 거야?' 하고 이제는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실려 가는 나도 지겨운데, 일을 빨리 끝내고 싶을 이 친구는 오죽하랴?’ 하고 이제는 오히려 그 편에 서 있는 내가 우습기도 했는데,
그래도 그는 싫은 기색 하나 내지 않고 운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도 나에겐 고맙고 기특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아, 어차피 ‘곶’이니 세상의 한 끝이긴 하다지만, 정말, 이 세상 끝까지 갈 작정인가?' 하고 있는데, 저 앞쪽 까마득한 끝부분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지막한 언덕 같았는데 집 몇 채가 있었고 거기가 ‘까보 끄루스(Cabo Cruz)’라는 것이었다.
‘아! 다 왔구나. 내가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이 세상의 한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이로구나......’ 하는 안도의 숨과 함께 한 집 앞에 섰다.
집의 위치는 이 언덕 같은 마을의 윗부분이라 괜찮았고, 분홍색의 페인트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산뜻하기까지 했다.
택시가 크락션을 울리자, 한 사람이 바삐 나왔는데, ‘토니’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윌리암’일 터였다.
허긴 내가 ‘바야모’에 도착하자마자 이 기사가 ‘윌리암’과 전화로 통화하는 걸 보았기 때문에, 그도 이미 준비는 돼 있었던 듯, 그러면서도,
“바로 얼마 전에 ‘토니’와 통화를 했었거든요.” 하면서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렇지만 일단 그 택시기사에게 택시비를 지불하면서,
“사실, 나는 이렇게 멀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오늘, 먼 길을 달리느라 수고 많았소. 피곤하겠네!" 하고 웃으며(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새록새록해 정말 웃음이 나왔다.), "고맙소!" 하고 어깨까지 두드려주자,
"나도 고마워요!" 하고 여전히 짧은 대답을 하면서도 피식 웃더니,
그 길로 환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윌리암이 내 짐가방을 끌고 집 본채가 아닌 그 옆의 건물로 가기에 나도 따라 들어갔다.
깨끗한 더블 침대가 놓여 있었고 냉장고도 한 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에어컨도 트는 등, 방은 깨끗하면서도 현대식으로 불편함은 없을 듯했다.
그런데 바람이 통하지 않는 난점이 있는 것 같았다. 창이 있기는 했지만, 가려져 있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차피 에어컨을 튼 상태라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았고,
이제는 그를 따라 본채로 갔더니 거기에 부엌이 있기에,
“내 방 있는 숙소에서는 요리를 할 수 없나요?” 하고 물었더니,
“우리와 이 부엌을 함께 쓰면 돼요.” 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부엌을 함께 쓴다고? 그건, 아닌데......’ 그 당장 김이 팍 새고 말았다. 그렇지만 일단 숙박료도 중요한지라,
“하룻밤 숙박료는요?” 하고 묻자,
“20불인데요.” 하는데,
“아니, 이런 구석진 시골이 왜 이리 비싸요? 나는 아바나에서도 15불에 잤는데!” 하자,
“그럼, 15불에 해줄 게요.” 하기에, 거기서 더 깎는 것도 짜증스러워서,
‘오늘 하룻밤만 자고 나중에 생각하자!’ 며,
“내가 여기까지 찾아오느라 정말 죽을 뻔했는데, 무엇보다도 지금 배고파 죽겠는데......” 하자,
“조금만 기다리세요.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하기에,
어쨌거나 샤워부터 하기로 했다.
그렇게 샤워를 했고, 잠시 쉬고 있는데 식사 준비가 됐다기에 가서 점심을 배부르게 먹었다. 그가 직접 한 요리 같았는데, 손이 커서 그런지 아니면 여기 쿠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음식이 너무 많아서 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뒤,
“윌리암, 당신 친구 ‘토니’의 아버지를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은데요?” 하자,
“그럴까요? 저랑 함께 가시죠!” 하고 그가 앞장서는 것이었다.
그렇게 둘이 나왔는데, 그 집에서 계속 위쪽이면서 앞 방향으로 한 20여 미터 꼭대기에 다다르자,
아!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거기가 '카리브 해'일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옥색의 환상적인 색감이 나를 흥분하게 했는데, 거기 그리 높지 않은 낭떠러지를 우측으로 돌자, 거기에도 한 마을이 있어 보였고 그 쪽으로도 집이 적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마을은 그 낭떠러지를 경계로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것 같았는데, 거기서 한참을 내려가자 그 안쪽으로는 높은 ‘등대’가 하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이 ‘곶’을 발견한 뒤 세웠다는 등대는 고풍스럽긴 했지만 많이 낡은 상태였고, ‘토니’의 아버지가 사는 집은 거기서도 100미터쯤 더 들어간 외딴 나무집으로 그 마을에서도 마지막 집이었다.
“토니!” 하고 윌리암이 큰소리로 부르자, 한 맑은 표정의 노인이 나와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는데,
그렇게 나는 아바나 공항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젊은이와의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다. #